'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가
'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가
- [모략(謀略)], 차이위치우 외,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대지약우(大智若愚). [노자]를 보면 '가장 떳떳한 사람은 마치 겸손한 것 같고,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은 마치 졸렬한 것 같고,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마치 말더듬이 같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장자]에서도 노자의 말을 끌어다 '위대한 기교는 졸렬하게 보인다'는 말을 하고 있다... 송나라 때 소식(소동파)은 벼슬길에 오르는 사람을 위한 축하의 글에서 '위대한 용기는 겁을 먹은 것 같고, 위대한 지혜는 어리석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본래 지모가 뛰어난 사람은 일부러 멍청하게 보이려 한다. 이 모략은 마음 속에 품은 원대한 포부를 감추고 특정한 정치, 군사적 의도를 실현시키려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지혜로우면서도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할 수 있으면서도 못하는 것처럼 꾸며 상대를 속이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 [모략(謀略], <정치모략 -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모략(謀略)'이라 하면 보통 위 인용문과 같이 여겨진다. 상대를 속이고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속임수' 같은 것. [손자병법] <시계편>에는 "병(兵)이란 궤도(詭道)"라고 하는데, 군사작전은 다름아닌 '속임수'라는 의미다.
유방이 항우가 초대한 '홍문연'에서 굽신거리고, 조조의 휘하에 의탁하던 시절 유비가 텃밭이나 가꾸다가 "천하 영웅은 그대와 나 둘 뿐"이라는 조조의 말에 크게 놀라는 척 하며 나중에 삼국을 정립하는 과정 따위가 그렇다.
"'모략'은 대단히 친숙하면서도 신비한 단어다. 수천년 동안 이 단어는 인류의 사회적 실천, 사유의 발전과 발걸음을 함께 해 왔다... 파란만장한 인류 발전사는 모략의 창조사이자 실천사로, 시공을 초월해서 인류 지혜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인류 사유의 긴 흐름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인간은 실천 속에서 점차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다듬어 각종 '기모묘계(奇謀妙計)'를 창조해 냈다. 뒷사람들은 앞사람의 사유 성과를 몸소 실천하고 운용하여 앞사람들이 남긴 모략의 이론과 실천을 총결했다. 인류의 '모략사유'에 대한 연구와 총결은 지금까지 멈춰본 적이 없다.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지혜의 창고' 속을 구경하다 보면 모략이 놀랍게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중요한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음모'건 '양모'건 간에... 뛰어난 모략은 아주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 [모략(謀略], <'모략총서'를 펴내며>
중국의 군사학자 차이위치우를 필두로 한 일련의 학자들이 1992년에 수천년 인류 사유의 발전 사례로서 [모략론], [모략고], [모략가]의 '모략 3부작'을 기획해서 집필했고, 그 중 [모략고]를 우리나라에서 편역한 [모략] '3부작'은 '정치', '통치', '외교', '언변', '간사', '경제', '군사' 분야별 정리하여 각종 고사와 고전의 문장, 사례 등을 총망라한다.
물론, 인류 사유의 발전 과정에서 '음모'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과정이다. 인류 '지혜의 보고'로서 '모략'은 '양모(좋은 꾀)'와 '음모(나쁜 꾀)'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모순되고 대립하며 변화발전함으로써 후대로 이러지며, 이러한 인류 사유와 지혜, 철학의 발전이 거대하게 이루어진다.
'모략'은 인류 사상사의 '빅데이터'인 것이다.
화원위엔이란 중문학 박사는 2003년 이러한 '모략'들을 [책략(策略)]과 [권력(勸力)]이라는 나름의 분류법으로 재편했는데, [책략]은 '모책', '심책', '정책', '기책', '술책', '방책' 등으로, [권력]은 '권모', '용권', '제권', '분권' 등 세부항목으로 나눠 역사 속 인물들의 고사를 소개한다. 역시 중문학자인 자오촨둥은 앞서 1999년에 춘추전국의 '백가쟁명'과 통일왕조의 '궁정논변', 소수민족 분열기와 집권기의 '격변기'의 분류법으로 [쟁경] 같은 책을 출간했다. 이 모든 테마가 다름아닌 '모략론'인 것이다.
"... 진정한 큰 지혜는 기실 '무심(無心)'이다. '무심'이란 기존의 그 어떤 원칙이나 경험 그리고 사고방식에 국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심'의) 지혜를 지혜 중의 상등 지혜인 '상상지혜(上上知慧)'라고 하는데, 이런 상상지혜는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그와 유사한 지혜로운 일들을 많이 알거나 경험해야 현실적인 문제들에 봉착하여 그런 지혜들을 유효하게 키울 수가 있다."
- 풍몽룡, [지낭(智囊)], <상등의 지혜 - 서언>, 1626.
춘추전국시대를 소설화한 [동주열국지]로 유명한 명말청초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풍몽룡은 명나라 희종대에 역사 속 인물의 고사와 이에 대한 저자의 '평어(논평)'을 붙이는 형식으로 [지낭(智囊)]을 편찬했고 이 책은 당대 지배계급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혁명가 마오쩌뚱도 대장정 시기에도 늘 가지고 다니며 읽고 또 읽었다고 하는데, 과연 마오의 저작 중 수많은 중국 역사 사례의 원천이 풍몽룡의 [지낭]일 수도 있다.
또한, 풍몽룡의 [지낭]은 중국 '모략론'의 시초이기도 하겠다.
"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내 도와 마음이 성실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나뉘는 것입니다... 정치원리를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에 근본에 속하는 일과 말단에 속하는 일을 구별해서, 먼저 근본을 바로잡습니다... '근본'이라는 것은... 바로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거는 도 밖에 없으며, 도는 본성을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본성이 없는 것은 없으니, 도는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 [책문(策文) -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 김태완, <5장. 조광조의 대책>
조선 중기 '개혁가' 정암 조광조가 1515년(중종 10년) 알성시에 제출한 '책문'의 내용이다. 반정으로 집권한 중종이 기득권을 견제하기 위해 '개혁 세력'의 포섭이 필요했고 심지굳은 '도학정치'를 표방한 조광조를 등용했으나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당'처럼 기득권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기묘사화의 희생자가 된 조광조는 중종의 과거시험 마지막 질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가 다르지 않다"는 취지의 대책문을 제출한다.
조광조의 '책문' 또한 상당한 원리원칙을 토대로 한 인류 사유의 총결으로서 '모략'이며, 그 핵심은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공자의 '도학정치'이다.
중국은 수천년의 문자역사를 통해 아시아의 '노인'으로 살아왔다. 우리의 요동과 한반도 역사도 그와 같지만 중국과 같은 기록이 없어 이 '아시아 노인'의 고사를 많이 인용해 왔다.
중국인들은 '모략'을 수천년 '역사의 지혜'로 정리하면서 전수해 왔고, 문자기록에 뒤진 우리는 그들의 '지혜주머니(지낭)'에서 수많은 '대책'을 뒤지고 있다. 조광조의 '대책' 또한 그렇다.
궁금해 진다.
과연, '모략(謀略)'은 나이든 자의 '지낭(智囊)'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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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략(謀略)], 차이위치우 외, 김영수 편역, <들녘>, 1996.
2. [책략(策略)], 화원위엔, 박미애 옮김, <한스미디어>, 2005.
3. [권력(勸力)], 화원위엔, 정광훈 옮김, <한스미디어>, 2005.
4. [쟁경(爭經)], 자오촨둥, 노만수 옮김, <민음사>, 2013.
5. [지낭(智囊)](1626), 풍몽룡, 이원길 옮김, <신원문화사>, 2004.
6. [책문(策文)], 김태완, <소나무>,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