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의 '낭만주의'의 승리
책소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1951. (1606)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처음 나오면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데는 당시(1974~1981년) 우리 출판문화의 척박함도 한몫했다. 예술사에 관한 수준있는 저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사회현실을 보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 자체가 억압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로부터 20세기의 영화예술에 이르는 온갖 장르를 일관된 '사회사'로 서술한 예술의 통사는 교양과 지적 해방에 대한 한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특성은 원저가 출간되기 시작한 1950년대 초의 서양의 지적 풍토에서도 흔하지 않은 미덕이었음을 덧붙이고 싶다. 속류 맑시즘의 기계적 적용이 아닌 예술비평을 이처럼 방대한 규모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자신만만한 필치로 전개한 사례는 그후로도 많지 않았기에, 하우저의 이 저서는 오늘도 여전히 이 분야의 고전적 저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안다...
'예술사면 됐지 어째서 예술의 사회사냐'는 시비 또한 지속된다고 할 때, 예술도 하나의 사회현상이고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마땅하다는 저자의 발상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도전임을 짐작할 수 있다."
- 백낙청(번역자), <새로운 개정판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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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시대에는 '토종 미학자' 유홍준의 저서나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등을 보면서 '예술의 사회사'를 접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고전은 고전'이다.
'세계사 입문의 고전'인 [곰브리치 세계사]를 우리 아이들과 한장 한장 읽듯이 두고두고 곱씹으며 후세들에게 권할 수 있는.
헝가리 태생 마르크스주의 예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는 "자연주의(리얼리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라 규정하는가 하면,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이라고도 하며, "20세기 인상주의의 부정"이자 "표현의 직접성을 위한 투쟁"으로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움직임"이라면서 '낭만주의'를 '예술의 사회사'에서 가장 주요한 문예사조로 보는 듯 하다.
엥겔스가 발자크의 '사실주의(자연주의)'를 통해 '리얼리즘의 승리'를 보았다면, 하우저는 문예의 사회사를 통해 혁명적 '낭만주의의 승리'를 보았을 수도 있다.
역사적 유물론의 시각으로 접근하되 문예사조를 '도식화'하지 않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단연 '예술사의 고전'이다.
(2016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