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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05. 2020

[미술사의 기초개념] - 하인리히 뵐플린

우리 애기들 첫 미술관람과 '과학적 미술사'의 '철학'

책소개)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개념]과 우리 애기들 첫 미술전시 관람
- 2016. 8. 5. (금), 충무아트센터, '서양미술사 아틀리에'



"아무도 '눈(시각)'이 제 스스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다른 정신적 영역과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에 죽은 모형처럼 덮어 씌워진 그러한 시각적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항상 보기 원하는 대로 보아 온 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법칙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하다. 이 법칙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미술사의 중심과제이자 기본과제일 것이다."
-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개념], <서문>, 1915.

스위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우리집 신창동 헨젤과 그레텔 및 무적 애기의 첫 미술 관람을 결국 완수하고야 말았는데,
인터넷 예약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다가 저번 전쟁기념관 미켈란젤로전처럼 헛탕칠 수 없어 막무가내로 꼽사리껴서 입장했다.

15세기 조토, 마사초, 보티첼리 등의 고전기 르네상스(콰트로첸토)에서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뒤러 등의 전성기 르네상스(친퀘첸토)를 지나 17세기 렘브란트, 루벤스 등의 바로크(세이첸토)로 이어지는 시각표현양식의 이행을 뵐플린은 다음의 다섯가지 개념쌍으로 이론화한다.

1. 선적인 것(소묘) - 색채적인 것(회화)
2. 평면성 - 깊이감
3. 폐쇄적 형태 - 개방적 형태
4. 다원적 통일성(개별적 완성미) - 단일적 통일성(전체적 완성미)
5. 절대적 명료성(명료성) - 상대적 명료성(불명료성)

독일 근대 관념철학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서술하는 뵐플린이 칸트 철학에서 차용했을 '직관 범주'로서 이 개념쌍들은 상호 중첩되기도 하고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동일한 사태에 대한 다섯 가지 관점"(결론)이라고 한다.
15, 16세기 르네상스에서 17세기 바로크 및 로코코로 이행하는 이러한 양상과 특징들은 각 시대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선형으로 반복되고 발전된다는 뵐플린의 이론은 또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적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로크와 로코코는 18세기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고전주의'의 부활로 다시 대체된다.

"... 1800년경의 미술사적 변화는 당시의 일반적인 시대상황 만큼이나 독특하다. 서양 문화는 당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총괄적인 갱신 작업을 수행해 냈다.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경향과 낡은 경향간의 직접적인 대립이 일어났다.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 뵐플린, 같은책, <결론>, 1915.

미술사를 일직선적인 발전으로서 '고전주의의 승리'로 파악하는 18세기 요한 빙켈만의 '신고전주의' 관점과 달리,
20세기 뵐플린은 고전적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별개의 발전양식으로서 '새로운 경향'과 '낡은 경향'이라는 두 양식의 대립과 투쟁을 통해 미술사가 나선형의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고전적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절대로 가치판단을 의미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크에조차 그 나름의 고전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크는 고전적인 것의 몰락도 아니고 고양도 아닌, 전반적으로 아예 다른 미술이다. 근세 서유럽의 발전은 성장, 정점, 몰락의 간단한 곡선도식으로는 도저히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두 개의 정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는데..."
- 뵐플린, 같은책, <서문>, 1915.

"위의 두 가지 유형은 서로 독립하여 병존하는 것이므로 나중 단계를 전단계의 단순한 질적 상승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상은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바로크 양식은 18세기 말엽(아마도 프랑스 대혁명) 바로 대상에의 충실이라는 기치 아래 생겨난 고전적 경향에 의해 다시금 밀려나게 된 것이다."
- 뵐플린, 같은책, <4. 다원성과 통일성>, 1915.

뵐플린은 미술이나 예술에 미치는 '외적 미술사(정신사)'의 영향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내적 미술사'로서 미술 고유의 역사적 특수성을, 그 '내적 형식주의'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시각의 역사(표상의 역사)가 단순한 미술의 영역을 뛰어넘듯 '시각'을 통해 드러나는 민족적 다양성은 한낱 취향의 문제로 치부되어질 수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한 민족의 전체 세계상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 시각 형식의 이론이 역사학 분야에서 쓸모없기는 커녕 오히려 필수불가결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뵐플린, 같은책, <결론>, 1915.

"시각의 역사... 시대별 감각과 정신 사조에 맞추어 진행되는 그 내적인 과정은 늘 그 시대가 처한 포괄적인 발전상에 포함된다...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는 여기서 나의 [기초개념] 중에 나오는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겠다. 즉 '인간은 항상 원하는 대로 볼 뿐이다.'(서문) 예를 들면 회화적인 양식이라는 것도 그것이 납득될 만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시각의 역사와 일반 역사간의 상관성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거나 전혀 비교 불가능한 대상을 비교하려 한다거나 해서는 안된다. 미술은 역시 그 나름의 독특한 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미술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순수 직관에 의거하여 늘 새로운 형식을 유도해 냄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미술이 때로는 선두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인정하는 문화사도 쓰여질 법 하다."
- 뵐플린, 같은책, <후기:재고(1933)>.

미술이나 예술도 사회경제체제 토대를 반영하며, 그 '특수한 반영'(게오르그 루카치)을 통해 해당 사회체제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를 중시한 뵐플린이 '서문'에서 언급한 '과학적 미술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외적 '정신사'로서의 '관념철학'이 아니라 사회경제체제 전반을 아우르는 '역사유물론'을 기초로 해야 한다.

'과학적 미술사'에서도 아직까지 철학적으로 다른 길은 없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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