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알튀세르의 '고독' : 알튀세르 유고집
루이 알튀세르의 '고독' : 후기 알튀세르 유고집
- [마키아벨리의 가면](1972~1986),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이후>, 2001.
"저는 필요한 변형을 가하면, 자연법 철학자들이 국가의 역사에 관해 내세우는 교훈적인 담론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마르크스와 아주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주장하고자 합니다... 국가가 법과 자연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대신에, 그는 국민국가가 될 만큼 충분히 지속하고 강력해지려면 국가가 어떻게 탄생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는 법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으며, 모든 국가의 필수불가결한 무장력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국가의 시작에 필연적인 잔인성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종교를 이용해야 하는 종교 없는 정치의 언어로, 도덕적이어야 하지만 도덕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는 정치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그는 계급들간의 투쟁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권리, 법, 도덕은 그에 적합한 부차적인 장소로 배치합니다."
- [마키아벨리의 가면], <부록 - 마키아벨리의 고독>, 루이 알튀세르.
'철학(哲學)'은 추상화(抽象化)'다.
'구체적 사실'들 속에서 그 '현상'들의 원인들을 이론화하는 것이 각각의 영역에서의 '과학'이라면, 이들의 흐름을 꿰뚫는 '본질'을 '추상화'하여 거대한 사상적 논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철학'이다. 사회구성체로는 경제적 토대인 하부구조의 결정적 영향을 받는 정치와 문화 등 상부구조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에게는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였고 알튀세르에게는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힘'이었으며 유발 하라리에게는 반대로 '사피엔스'의 1차 '인지혁명'의 키워드였다.
'철학'은 '추상'이고 '허위의식'이지만, 그 이상의 '현실적 힘'이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1918~1990)는 20세기 말 한국에서 잊혀졌다.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다시 마르크스 자체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건 좌파의 흐름에서 90년대를 휩쓴 '포스트 모더니즘' 등의 사조를 타고 잠시 머물다 떠나간 이론가 중 하나다. 철학자이자 공산주의 이론가인데 평생 정신분열증으로 살다가 아내를 목졸라 죽이고 정신병원에 유폐된 그는 1978년까지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끝으로 더이상 저작을 발표하지 못하나, 이후 편집자들에 의해 '유고'들이 속속 출간된다.
'인간주의'적 청년 마르크스와 '구조주의'적 노년 마르크스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절단)',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의 '철학'과 '유물론'일 수 밖에 없는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 '주체 없는' 사회구성체에서의 경제적 '최종심급'을 인정하면서도 상부구조와 관계되는 복합적 '중층결정',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힘'으로 확장한 '국가론', 그리고 '과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은 알튀세르가 한국에 들여온 사상들이었다. 이후 몇 번의 '자기 비판'과 에티엔 발리바르 등 제자들과의 결별이 그의 '정신분열'의 영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글과 사상은 어렵다.
21세기 초, 우연히 발견한 그의 첫번째 유고작은 [마키아벨리의 가면]이었다. 이후 거의 20년 가까이 지나 [무엇을 할 것인가?], [검은 소] 등의 유고집이 편집되어 국내에 소개되고 그 사이 2011년에는 알튀세르 전공학자들의 글들이 '추모집' 비슷한 [알튀세르 효과]라는 900여 쪽의 책으로도 묶였다.
'과학'의 역사에서 '수학'의 대륙을 발견한 고대 그리스 탈레스로부터 '물리학'의 대륙을 발견한 갈릴레이와 뉴턴, 그리고 데카르트, '역사'의 대륙을 발견한 마르크스의 '철학'적 계보를 이어가려던 루이 알튀세르는 근대초의 이탈리아에서 '정치학'을 연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만나서 그의 '가면'을 쓴 채 그의 '고독'을 논한다. [마키아벨리의 가면]은 1972~1980년대까지 마키아벨리에 관한 알튀세르의 강의록을 프랑스에서 [마키아벨리와 우리]라는 제목으로 엮은 책의 국역본이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도 '군주주의자'도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오직 하나의 정부 형태에만 관심이 있다. 즉, 국가를 지속시켜줄 수 있는 정부 형태"([마키아벨리의 가면], <2장>). 분열된 이탈리아에서 현존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이상적' 국가형태를 매우 현실적인 방법으로 실현하고자 한 마키아벨리는 한 지방에서 홀로 고독하게 세력을 키우는 체자레 보르지아라는 '군주' 또는 '왕자(The Prince)'를 현실적 잠재태로 설정하고 그 유명한 '사자와 여우' 의 비유로써 도덕윤리와 분리된 하나의 현실적 '정치이론'이라는 '과학'의 대륙을 발견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이상은 역시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마르크스처럼 '고독'한 이유이며,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을 추구한 루이 알튀세르 자신이 마르크스와 마키아벨리의 '가면'을 쓰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변증법의 기본명제는 추상적 진리는 없으며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 <R. 변증법에 대한 몇마디. 두 변혁>,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레닌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위치, 계급관계, 그러므로 세계적 차원과 국민적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제국주의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이 두 측면은 분리 불가능하죠) 계급투쟁의 상태로 필연적으로 향하는 그러한 분석을 말하는 것입니다."
- [검은 소], <2장. 22차 당대회의 모순>, 루이 알튀세르.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은 22차 당대회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폐기한다. 스탈린의 '1국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완성'을 선언하고 하나의 '현실 정치체제'가 된 후 유럽 선진 자본주의 각국에서 '의회주의'를 병행하는 유럽 공산당들은 노선 전환을 시도한다. 마르크스주의 '과학'인 '역사유물론'에서 '필연'적 이행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고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수정하는 '유로 코뮤니즘'의 출현이다. 루이 알튀세르와 에티엔 발리바르 등의 마르크스 철학자이자 공산주의 이론가들은 이 기획에 '이론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 테마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알튀세르의 제자이자 젊은 동료로서 1965년 [자본론을 읽는다]의 공저자이기도 한 에티엔 발리바르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국역:[민주주의와 독재])가 이론적 포문을 열었고 이에 대한 보완과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문제제기 형태의 글이 알튀세르의 [검은 소]인데, 본인 또는 "이미 안다고 가정된 자"라는 가상의 인물과 자기 인터뷰하는 형식의 문답집이다. [검은 소] 제목의 '철학'적 의미는 '깊은 어둠 속에서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검은 소들'인데, 19세기 프랑스 화가 폴 위에의 <올가트 절벽 위의 검은 소들>처럼 위험에 처한 현실을 은유할 수도 있겠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정치체제 이전에 '역사유물론'의 '과학'과 '유물변증법'의 '철학'의 사상체계 상 '필연적' 개념이다.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혁명적이었던 근대 자본주의 부르주아 계급은 현대에 이르러 소수의 지배계급으로서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양산하면서 이 절대다수의 노동계급은 계급 자체를 철폐하고 '무계급사회'를 건설할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이 '무계급사회'인 공산주의'는 이상향이며, '이행기'로서 절대다수 노동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독재'의 다른 이름이듯,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절대다수 노동인민의 '독재'이므로 '이론적'으로 다수의 '민주주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계급이 철폐되면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 마르크스가 정초한 ('역사'라는) '과학'의 유일한 대상은 그가 서로 다른 생산양식이라고 불렀던 것에 속하는 서로 다른 사회구성체들 내의 '계급투쟁의 법칙'입니다."
- [검은 소], <5장.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루이 알튀세르.
루이 알튀세르에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람시의 진보적 정치정당으로서 '현대의 군주'를 거쳐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이상적 현실'이라는 지점에서 마주친다. '계급투쟁'의 엄연한 현실이 스탈린주의적 '선언'에 의해 소멸할 수 없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학' 또한 '단어'를 없앤다고 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1976년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단어'를 폐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필연적' 개념을 '해방'시켰다는데, 그는 당강령 속에서 사멸해 가던 개념이 다시금 부활되어 현실 속에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방식으로 논의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계급투쟁'으로서 '철학'적 작업은 '실천적 계급투쟁'을 끝내 담보하지 못한 채 '유고집'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역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군주/왕자/체자레 보르지아)'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고독한 군주'는 '귀족'과 끊임없이 투쟁한다. "인민의 목표는 군주의 목표보다 명예롭기 때문([군주론],<9장>)"에 아무리 해도 만족시킬 수 없는 '지배계급 내 적들'인 '귀족'보다는 다수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국민국가'를 건설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계급투쟁'의 현실을 논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정치과학'에서의 이와 같은 '국가론'과 '권력론'은 이상적이라 할지라도 '필연적'이고, '불가능'하나 추구할 수 밖에 없는 방향이자 역사의 경향성이다. 더구나 지금 이 시대는 부르주아계급들의 '과두정적 공화국'을 딛고 다수 인민의 힘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적 공화정'의 시기다.
"진정 그람시는 피지배계급의 권력 쟁취 이전의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열렬히 강조했던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다.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고전들은 적절하고도 분명한 방식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말했다. 1) 노동자계급의 전위는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확장해야 하며 '자신의 관념'이 가장 많은 수의 지지자들에게 수용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2) 노동자계급의 당파는 자신의 영향력, 자신의 '헤게모니'를 자신과 가까운 대중조직들에까지 확장해야 하며, '권력 쟁취'에 필수불가결한 동맹을 이 조직들과 함께 형성해야 한다. 그람시는 이 두 가지 테제를 지지하지만, 그는 이 두 가지 테제에 세 번째 테제를 추가한다. 노동자계급은 '권력 쟁취' 이전에 사회 전체 안에서 헤게모니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테제를."
- [무엇을 할 것인가?], <2장. 안토니오 그람시와 절대적 경험주의>, 루이 알튀세르.
'국가'를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옥중수고])로 규정한 그람시에게 '헤게모니'는 노동계급 "당파의 관념이 취하는 영향력과 그 관객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는 것, 국가를 장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시민사회 권력의 중심들을 장악해 결국 시민사회 그 자체를 장악하는 것([무엇을 할 것인가?], <2장>, 루이 알튀세르)"이기도 하다. 즉, 다수 인민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국가권력 장악만이 목표가 아니라 사적인 영역인 일상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인데, '계급소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다수의 직접 민주주의 힘으로 그 차이를 무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목표일 수도 있겠다. '재벌해체' 등의 경제적 생산관계 재편은 오히려 정치권력을 잡은 후에 더욱 시도조차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련의 민주정부를 보며 경험했다. 유일한 방법은 정치권력자에 대한 대리주의적 의탁이 아닌 일상에서의 '계급투쟁'이다.
"마키아벨리의 의식이라는 '가면' 속에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 루이 알튀세르.
정치'를 도덕, 윤리 덕목과 분리시켜 근대 정치학의 기틀을 닦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현실' 군주에게 선택받기 위해 '헌사'를 바치면서까지 국가를 유지하며 권력을 지키는 방안을 제출했고 후세에 '권모술수 정치가'와 같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공화정'이나 '군주정' 어느 것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으로서 '정치학' 자체를 지지하였으므로 알튀세르에 의하면 말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는 마르크스와도 같이 '침묵 속에서' 그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한채 '고독'하다.
그리고 이 '고독'은 정신분열 속에서도 끝까지 '이론적 계급투쟁'이라는 '철학'적 작업을 수행한 루이 알튀세르에게도 해당된다.
이들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사상 자체, '원전(原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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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키아벨리의 가면](1972~1986),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이후>, 2001.
2. [검은 소 - 알튀세르의 상상 인터뷰], 루이 알튀세르, 배세진 옮김, <생각의 힘>, 2018.
3. [무엇을 할 것인가? - 그람시를 읽는 두 가지 방식], 루이 알튀세르, 배세진 옮김, <오월의 봄>, 2018.
4. [알튀세르 효과], 에티엔 발리바르/서관모 외, 진태원 엮음, <그린비>, 2011.
5. [옥중수고 1~2](1929~1935), 안토니오 그람시,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6. [군주론](1513), 니콜로 마키아벨리,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2014.
7. [자본론을 읽는다](1966), 루이 알튀세르,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8.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9. [레닌과 철학](1968), 루이 알튀세르, 이진수 옮김, <백의>, 1991.
10.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 루이 알튀세르, 김용선 옮김, <인간사랑>, 1992.
11. [민주주의와 독재], 에티엔 발리바르,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