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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Dec 05. 2020

[로드(The Road)](2006) - 코맥 매카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이란 '개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이란 '개그'
- [로드(The Road)](2006), 코맥 매카시,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8.





"아팠죠, 그죠?
그래. 아팠어.
아빠는 정말로 용감해요?
중간 정도.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뭐예요?
남자는 피가 섞인 가래를 길에 뱉어냈다. 오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거.
정말요?
아니. 귀담아 듣지 마라. 자, 가자."
- [로드], 코맥 매카시, 2006.


나는 자녀들과 '개그' 주고받기를 좋아한다. 일상을 진지하지 않게, 그러나 메시지가 남으면 좋은 그런 대화를 나는 '개그'라 보는데. 물론 아이들에게 '교훈'이 필요하다 판단되면 순식간에 진지모드 돌입하는 게 문제지만, '마지막 보호막'인 아버지라 어쩔 수 없다고 애들 의견은 상관없이 혼자 생각하고 말지만, 내가 내 아이들과 진짜로 하고 싶은 건 평생 '개그' 주고받다 가는 거다.

미국 소설가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1933~)의 소설 [로드(The Road)](2006)는 문명이 싸그리 파괴된 황무지에서 '남쪽'으로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현대 미국소설을 대표하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계보를 잇는다고 하는데 역시, 왜 인류문명이 멸망했는지, 언제 어느 곳인지, 아들은 몇살인지 등은 굳이 친절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배경설명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냥 화자 본인 얘기만 몽롱하게 이어간다. 읽다보면 꿈속 얘기인가 현실 묘사인가 모호하기도 하다.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게 '가장 용감한 일'이라는 말은 소설 속 아빠가 아들에게 던진 '개그'만은 아니다. 인류문명은 전쟁이든 기후위기든 그 어떤 이유에선가 멸망했고, 대빙하기와 같은 시기를 맞아 인류는 멸종되고 있었으니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밤을 이겨내고 아침에 눈을 뜬 것이 진정 '용감한 일'이 맞다. 몇 살인지 모르나 어린 아들에게는 그 '용감함' 조차 허락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남자는 회색빛이 비치자마자 일어났다. 소년은 그냥 자게 놓아두고 길까지 걸어가 쭈그리고 앉아 남쪽 땅을 살폈다. 황폐하고, 고요하고, 신조차 없는 땅. 10월일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은 없었다.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지 몇 년은 되었다. 그들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 번 더 겨울을 난다는 것은 죽음을 뜻했다."
- [로드], 코맥 매카시, 2006.


소설 초반에 그나마 가장 친절하게 묘사된 전체 소설의 배경설명이다. 나는 곧장 '황무지'를 떠올렸는데, 20세기초 영국시인 T.S.엘리엇을 비롯, 1980년대 미국영화 [매드맥스]와 1990년대 일본만화 [북두의권]의 배경인 풀 한포기 안 나는 누런 땅이었다. 이어 겨울을 연상하니 2010년대 한국영화 [설국열차]도 떠올랐으나 매카시의 [로드]는 2000년대 소설이니 [설국열차]보다 앞선다.



자본주의 체제위기인 전쟁과 내란, 착취와 약탈, 그리고 기후위기로 추정되는 문명파괴 후, [매드맥스]에는 '동쪽'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돕는 '영웅' 맥스에게 특별한 방향은 없다. [북두의권]의 '세기말구세주' 켄시로도 마찬가지나 실은 전 여친 유리아가 그의 유일한 방향이다. [설국열차]의 혁명가 커티스는 열차 기관실이라는 명확한 현실적 목표가 있었지만 민수의 방향은 그 '현실'에 없는 열차 바깥이다.
그런데 소설 [로드]의 '작은 영웅' 아빠의 목적지 '남쪽'은 무엇이었을까.

"소멸해가는 마지막 기독교군대([로드])"처럼 손바닥에서 사라지는 잿빛 눈송이를 보며 본인들의 존재도 소리소문 없이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로드]의 '남자'는 어린 '아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스스로를 '남쪽'으로 "불을 옮기는 좋은 사람들([로드])"이라 부른다. '남자' 본인을 진정 그렇게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들 '희망'의 상징인 어린 '아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소설속 '남자'의 본심은 '아들'의 엄마이자 부인이었던 꿈속 '여자'를 따라 죽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들'의 존재로 인해 그의 삶은 진부하지만, '절망'에서 '희망'으로 표현되는 역설법이자 반어법 자체가 된다. 이래서 '인생'이란 게 말로 참 표현하기 어렵게 된다.

소설의 끝은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살짝 슬프다.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개그'를 날리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는 일상이 참으로 감사할 정도로. 이 또한 진부하지만. 멸종의 순간에도, 이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거란 예감에도 '어린이'나 '청년'은 여전히 '희망'일 수 밖에 없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마저 없으면 인생은 그냥 '절망'이나 '죽음', "마지막 기독교군대"와 같은 비극적 '소멸'에 바로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생'이란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개그'다.



***

- [로드(The Road)](2006), 코맥 매카시,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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