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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Oct 17. 2020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1972) - 조지프 캠벨

'지평'없는 '신화'의 새로운 '지평' 열기

'지평'없는 '신화'의 새로운 '지평' 열기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1972), 조지프 캠벨, 권영주 옮김, <더퀘스트>, 2020.





"... 신화는 말하자면 집단의 꿈이요, 꿈은 개인의 신화다."
- 조지프 캠벨,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1. 신화가 과학을 만났을 때', 1961.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1904~1987)은 1958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에서 행한 신화 관련 강연록을 정리하여 [Myths To Live By]라는 책을 낸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이라는 국역본의 이 원제는 우리말로 "우리가 삶의 신조로 삼을 신화 이야기" 정도 될 듯 한데,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한 각 지역의 흥미진진한 신화 이야기인 줄 알고 펼치니, '신화 일반'에 관한 이야기였다. 유럽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를 번역한 저자는 동양, 더 세부적으로 인도 신화 이야기를 많이 언급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주의 법칙'을 묘사한 '신화' 일반은 우리들 인간 '마음의 법칙'에 다름 아니라는 내용인데, 인류의 사유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신화' 이야기는 '종교'와 '과학'을 비껴갈 수 없다.


"이전부터 사회의 도덕질서는 종교화된 신화가 바탕이 됐고, 과학이 신화에 영향을 끼쳐 불가피하게 도덕질서에 혼란을 야기한다면, 이제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신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강'.


인류가 아직 '문명'을 깨우치기 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근원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고대에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개인의 상상이라면 '꿈'이겠지만 여러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었다.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모두에게 "널리 사랑받은 신화적 상상"이라면 "정신의 사실(캠벨, 같은책, 1강)"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바로 '이데올로기'의 시작이다.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에게는 '허위의식'이자 '관념'이었고, 알튀세르에게는 현실적인 힘을 갖는 계급투쟁의 '무기'였으며, 하라리에게는 호모 사피엔스의 최초 '인지 혁명'의 요체다.
그러므로 '집단의 꿈'인 '신화'는 '이데올로기'로서 해당 사회의 '도덕질서'를 규정했고, '종교'로서 다수에게 절대적 믿음의 교리를 선사했으며 이에 반대 사실을 밝혀낸 '과학'과 대립하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단'을 양산했다.
그리하여 '종교'는 '정신적 사실'로서 더욱 확고해지려고 하지만, 결국 '과학'에 의해 밀려난다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의 역사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캠벨에 의하면, '과학' 또한 완결될 수 없는 가설의 연속이며 '신화'나 '종교'는 어느 면에서는 당시의 '과학'이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아닌, 2천년 전의 '과학'과 현재의 '과학' 사이의 대립으로 보아야 한다.
역시 동양(인도) 사상답게 '신화'도 '종교'도 '과학'도 하나로서 '합일'된다.


"... 새로운 지혜는 공상하는 젊음이 아니라, 경험 많은 노년의 지혜이며,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가 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5. 동서양 종교는 어떻게 대립하는가'.


'신화' 또는 '이데올로기'로 유발 하라리식 표현으로 하면 '인지 혁명'을 이룬 호모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훑은 캠벨은 '동양과 서양의 분리'에 주목한다. '신화'의 동기가 되는 '만물을 지배하는 거대한 우주법칙'을 이집트어로는 '마트(Maat)', 수메르어로는 '메(Me)', 중국어로는 '도(道)',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Dharma)'라고 하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 또는 지금의 중근동 지역인 '레반트' 지역에서는 이러한 '거대한 우주법칙'이나 자연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닌 "얼마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고 실제로 자주 변하는 개인"을 중심으로 '신화'를 구축해 왔다. 캠벨은 여기서 유럽 또는 서양 고유의 '개인주의'를 본다.

동양은 '도' 또는 '하늘', '천자', '텡그리' 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집단화'하는 반면, 서양은 이 모두를 '인격화'시킨 신을 통해 '개인화'한다. 천국과 지옥, 신과 악마, 선과 악 등의 고전적 이분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가 근원인데, '불'을 숭상하며 '빛'과 '어둠'의 대립을 중심사상으로 했던 교리가 이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신화의 뿌리였던 것이다. 이를 구제하는 자가 바로 '메시아', '그리스도', '구세주'다. 한편, 동양의 불교에서도 '메시아'와 비슷한 '미륵불'도 있고 깨달은 자도 있으며, 극락과 지옥도 있고 부처와 악귀 역시 존재하나, 이들은 이분법적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동양은 외부의 신이 아닌 "자신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강조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라는 '합일'을 강조한다.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중심개념인 '선(禪)'의 최종 목표는 '개념의 그물을 끊는 무심(無心)의 철학'이며, '부처'를 뜻하는 '여래(如來)'는 무엇을 설교하는 자가 아니라 무의미하게 그냥 '그처럼 다가오는 자'라는 의미다. '존재(sattva)'가 '깨달은(bodhi)' 자로서 '보살(Bodhisattva)'은 현세에서 '자비'로서 중생을 구제하면서도 속세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것에는 무심하다. 선악과 옳고 그름 등의 이분법 조차 '자비'라는 "형이상학적 충동 속에 사라진다(캠벨, 같은책, 8강)."






"... 수행자와 성자는 그 (지복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데 반해, 조현병 환자는 그저 바다에 빠진 셈이다... 모험에서 돌아오려면 모험의 최종목적이 자기자신을 위한 해방이나 황홀경이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와 힘이어야 한다... 신화의 영웅, 샤먼, 신비주의자, 조현병 환자의 내적 여행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의 귀환 또는 증세의 완화는 '재생'으로 체험된다. 다시 말해 현실의 '지평'에 더는 구속되지 않는 '거듭난'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0. 내면으로 떠난 여행 : 조현병의 연구'.


캠벨은 이후 신화적 '영웅'과 정신분열(조현병)의 심리학을 비교하는데, 신화적 '영웅'은 기존 질서에서 일탈하는 자기부정 과정에서 집단적 공공선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민중들을 구원하고 '영웅'이 되는 반면, 조현병자도 비슷한 일탈을 겪지만 공적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병리현상에 머문다.


"... 불의 사용... 불에의 매료... 하지만 인간의 생각과 삶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밤하늘을 관측하던 신관들을 사로잡은 일로,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우주질서에 맞춰 사회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계급구조를 갖춘 도시국가가 등장해 그 뒤로 수천년간 모든 고대문명의 모델이 됐다. 다시 말해 그때 인간에게 문명화된 삶을 준 종교와 예술, 문학, 과학, 도덕, 사회질서는 '경제'가 아니라 '천체과학'에서 시작됐다는 뜻이다. '우리를 속여 한계를 넘게 해서' 경제나 정치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을 달성하게 해주었다.
...
선사시대의 동굴에서, 산 위의 절, 그리고 이제 달에 이르기까지 '지평'의 확장은 언제나 의식의 확장을 가져왔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위대한 도약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내 논지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1. 세상 바깥으로 떠난 여행 : 달 위를 걷다'.


이제 캠벨의 '신화 일반'에 대한 생각의 결론까지 왔다. 1969년 달 위에 인류의 발자취를 남긴 역대사건에 대한 감동과 얼핏 보이는 미국인으로서의 '미국주의'는 살짝 거슬리기는 하나, 캠벨의 논지는 '종교'나 '경제'나 '정치' 등의 '현실적 지평' 너머까지 인류를 인도했던 '과학'과 '신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로는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발전을 통해 현실의 '지평'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이며, '과학' 진보의 길에서 "다시, 신화를 읽을 시간" 또는 '과학'과 합일되어 '지평'을 열어가는 '신화'가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신조로 삼아야 할 신화([Myths To Live By])라는 내용일 것이다.





"새로운 신화는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지혜 전승의 상징이 특정한 역사적 실존인물과 실제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잠재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심리학적으로 올바른 의미에서 '영적으로' 해석할 때, 그 모든 것에서 진정한 '구원의 철학'이 나타날 것이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2. 끝맺으며 : '지평'의 소멸'.


과거에는 각 지역이나 분야, 다른 문화의 '지평'에서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캠벨이 이 책을 낸 1960년대에 이미 그런 '지평'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21세기인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캠벨이 말하는 '지금의 신화'는 우리 하나하나가 세상의 중심이고 우리 안에 각자 해방된 마음이 있으며 이 '마음의 법칙'이 모든 '우주의 법칙'이기에 우리 개인을 깨워 자기 스스로를 알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인도식으로 '요가'를 하면서 우주와 자기를 '합일'시키기라도 하라는 것 같지만, 수천 년전 '과학'이었던 '신화'와 오늘날의 '과학'이 하나이므로 결국 외부로 '지평'을 확대하는 '과학'의 길에서 내부의 우리 인류 '자기'를 함께 들여다 봐야 한다는 20세기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메시지는 21세기까지 [코스모스] 계획을 집대성하는 앤 드루얀(칼 세이건의 동료이자 배우자인 천체물리학자)의 마지막 문장들과 같다.


"우리는 서서히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자연의 법칙을 배우는 법을, 나무를 보살피는 법을 익혔다. 우리가 코스모스라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코스모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별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 앤 드루얀, [코스모스], 2020.





20세기의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 외부로 나아가는 길을 밝혔다면, 21세기의 앤 드루얀은 그 방식을 따라 인류라는 또 하나의 '별'로 돌아오는 길을 함께 밝히고자 한다.
그리하여 캠벨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방식으로 모든 것과 하나인 이 세계에 '지평'은 없다."
- 조지프 캠벨, 같은책, '12강', 1971.

***

1.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1972), 조지프 캠벨, 권영주 옮김, <더퀘스트>, 2020.
2. [코스모스](2020),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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