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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y 29. 2021

[서유기(西遊記)](16세기) - 오승은

'요괴'와 '부처'의 경계에서

'요괴'와 '부처'의 경계에서

- [서유기(西遊記)](16세기), 오승은, <혜민북스>, 2021.





"삼장은 석가여래의 말에 머리를 조아렸다. 성불하여 '부처'가 되는 영광만큼 커다란 책임감이 그의 가슴 속에 가득 차올랐다. 그 날부터 삼장은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로 봉해져 모두의 존경을 받는 부처가 되었다.

석가여래의 은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삼장의 제자들에게도 차례로 직함이 내려졌다.

먼저 손오공은 '투전승불(鬪戰勝佛)'이 되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세상의 정의를 관할하는 부처가 됐다는 의미였다...

뒤를 이어 저팔계는 '정단사자(淨壇使者)'가 되었다. 그것은 (천축국) 뇌음사의 음식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평소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썼으니 적성에 딱 맞는 직함이라고 할 만 했다...

마지막으로 사오정은 '금신나한(金身羅漢)'에 임명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자리였다..."

- [서유기], '28장. 불경을 전하고 부처가 되다', 오승은, 16세기.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언제 처음 알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 집 한구석에 있던 노란색 표지의 <세계동화전집>의 이미지를 아무리 톺아봐도 '서유기' 또는 '손오공' 따위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 전집에 있었다면 흑백이나마 그 독특한 캐릭터들의 삽화가 떠오를 텐데 그런 게 없는 걸 보면 분명 그 전집엔 없었다. 항상 그랬듯 TV에서 방영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로라공주'를 지키던 우주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가 우선 생각난 건 나의 초등 시절의 기억일 테고,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 '서유항마록(China Gate)'이 떠오른다면 '80년대 후반 나의 중학생 시절의 그것일 게다. 우리에게는 또 허영만 선생의 만화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분명 중국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서유기(西遊記)]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럼에도 손오공 일행의 숙적들인 '금각', '은각' 대왕이나 '우마왕'과 '파초선' 따위가 기억나는 건 어디선가 짧은 에피소드들은 자주 접했던 것이리라. 원래 '4대 기서'인 [삼국지연의], [수호지], [금병매] 등과 같이 [서유기] 또한 이야기꾼들이 글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림과 함께 들려주던 짧은 극들의 집합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어린이들에게도 그렇게 전해져 왔나 보다.


(인터넷 갈무리)


어렸을 적에는 손오공과 그 일당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정해진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경로를 따라 '성불(成佛)'했겠거니 예상했던 그 이상은 아니었다. 중년에 접어들어 새삼 [서유기(西遊記)]를 집어든 이유는 그 구체적 '결론'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10권짜리 전집까지 읽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나이들어 다시 읽고는 크게 재미를 못 느낀 탓일 게다. 가장 최근에 나온 단권짜리 [서유기]는 2021년에 <혜민북스>에서 출간된 책인데, 시작과 결말은 그대로 옮기되 '삼장법사'를 수행하는 과정은 대표적인 에피소드 몇 가지만 추린 판본이겠다. 펴낸이 '진수진'이라는 것 외에 역자 소개도 없고, [서유기]의 최종 보스 격인 '우마왕'도 안나와서 아쉽기도 한 책이지만 오랫만에 나는 손오공 일행의 모험담을 읽게 되었다.

결론에 삼장법사는 예상대로 '성불'하여 큰 부처 중 하나가 되었는데, 아마도 부처님들의 단상에 오르는 '전단공덕불'이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투전승불'로 요괴들을 물리치는 부처가 되는데, 아마도 몸을 쓰는 하급 부처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주인공답게 '성불'한다. 손오공과 한편이면서도 계속 그의 자리를 시기하는 듯 부딪치기도 하는 저팔계는 이름을 '저오능'이라 삼장이 지어주었으나  별칭인 '팔계'로 더 알려졌는데 식탐과 게으름, 폭력 등 본능 위주인 캐릭터라 '여덟 가지 계율'의 별명을 받게 되었다. 저팔계는 '정단사자', 사오정은 '금신나한'이 되는데, '사자'와 '나한'은 부처나 보살 같은 존재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속세가 아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속하는 존귀한 신분이 된다.



중년이 된 내가 새롭게 캐릭터들을 창조할 수 없어 여러 가지 기억들을 더듬어 조합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이미지는 역시 주로 1980년대 오락실 게임의 캐릭터를 90% 이상 모방하고 말았다. 그래도 오랫만에 그렸으니 첨부는 해둔다. 오락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내가 '서유항마록(China Gate)' 캐릭터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1980년대 오락실 게임, [서유항마록(China Gate)])





"현장은 10세 때 형을 따라 낙양의 정토사에서 불경을 공부하다가 13세 때 승적에 이름을 올리고 전국을 떠돌며 강론을 펴면서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다. 그는 불경를 원전에 입각해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천축국'으로 가서 원전을 구하고자 629년 8월에 서역을 향해 장안을 떠났다. 이때 법사 나이 27세였다... 현장은 (실크로드로 이어지는) '하서주랑'을 따라 길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는 당나라가 건국한 지 얼마 안되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엄금하고 있었다. 이에 양주 도독은 현장의 출국을 단호히 금지하며 장안으로 돌아가 달라고 했다. 그러나 현장법사는 국법을 어겨서라도 인도로 가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중국편 2], '3부. 실크로드의 관문', <창비>, 2019.



('하서주랑'과 실크로드)



중국 명나라 작가 오승은(吳承恩:1509~1582)이 지었다는 [서유기(西遊記)]는 아마도 당나라 태종 시기 천축국(인도)으로 가서 불경의 원전을 가지고 온 현장(玄奘) 법사가 지은 [대당서역기]에 온갖 신화적 색채를 입혀 전해 내려오던 민간대중의 이야기를 모아서 편집한 책일 것이다. 위 책 [서유기]의 <7장>에는 화과산 돌원숭이로 태어나 72가지 도술을 익힌 후 천상과 온세상을 휘저으며 갖은 난동을 부리던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이 석가여래에 의해 오행산에 갇힌지 500년 후인 당태종 13년에 갈수록 흉악해지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부처님이 관음보살을 당나라로 보내 불경을 전달할 '삼장법사'를 간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삼장'의 본명은 승려 '진현장(陳玄奘)'으로 석가여래의 두번째 제자가 환생한 자였다. [서유기]에서는 당태종 이세민이 이를 적극 후원하여 '현장'에게 '당삼장(唐三藏)'이라는 이름도 하사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당나라 초기 서쪽 변경의 혼란을 막고자 민간인의 출국을 금지했고, 현장법사는 국법을 어기고는 밀출국을 시도한 것이었다. 당태종 이세민은 현장이 14년 후 불경을 가지고 귀국한 후에야 그를 인정하고 높이 모시려 했는데, 현장은 이를 사양하고는 이후 죽기까지 약 20여년 간 원전불경의 번역작업에 몰두한다. 이 시기 현장의 뛰어난 제자 2명 중 한 명인 원측대사가 신라 출신 승려라고 한다. 당나라 초기 서쪽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에는 '고죽국', '누란' 등의 독립왕국들이 번성하여 국가간 문화교류를 했고 이후 실크로드 연결을 통해 서역과의 교역도 가능하게 했는데 수백년 전인 기원전 한무제 시기 장건이 그랬듯 7세기의 '현장'은 당시 '하서주랑'과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의 문명국들을 다니며 [대당서역기]의 기록을 남긴다. 한편, [서유기]의 '삼장'이 온갖 요괴들을 물리치고 열국들을 거치며 천축국 뇌음사의 석가여래 앞에서 원전불경 '35부 5,048권'을 받은 것이 장안을 떠난지 14년, 즉 5,040여 일만이라고 한다. 이후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다시 당나라로 가서 불경를 전한 후 천축국에 복귀하여 '성불'하는데는 고작 8일이 걸린 것을 보면, 정말 쓸데없이 개고생한 것 같지만 결국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세 제자와 함께 헤쳐온 과정 자체가 '성불'의 과정이었다는 것이 [서유기]의 실질적 결말이기에 이 기이한 이야기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손오공이야 무예든 지략이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끊임없이 동생 저팔계의 시기를 받지만 정말 어려울 때는 관음보살이나 옥황상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문제해결의 능력자다. 그럼에도 '성불'의 조건은 무능력의 대가인 삼장법사의 신실한 한 걸음 한 걸음이라는 사실, 근두운(筋斗雲)을 타고 단숨에 날아가는 속도전이 아니라 용마를 타고 세상 곳곳을 답사하며 주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불의한 요괴를 물리치며 정의를 확인하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천상에서 쫓겨나는 손오공' - 인터넷 갈무리)



손오공의 모티브는 현장법사가 실크로드의 관문인 옥문관 가기 전 과주(안서)에서 마부로 고용한 '석반타'라는 호승(胡僧:서역승려)이라고 한다. 실제 석반타는 인도까지 현장을 수행한 것은 아니고 옥문관을 나서기 전 "딸린 가족이 많은 데다가 국법도 어길 수 없다"며 돌아선다. 이후 홀로 남아 제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었을 '현장(삼장)'을 수행한 건 사람이 아니라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같은 환상 속 요괴들이었을 텐데, 기실 [서유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괴들은 실제 존재라기 보다는 요괴보다도 더 무서운 인간 군상의 은유였을 것이다.

'삼장법사'라는 중심이 없는 '세 제자(손오공/저팔계/사오정)'는 '요괴'와 '부처'의 경계에 선 존재들이며 막강한 도술 능력에도 불구하고 '요괴'의 본성에 더 가깝지만 비로소 '삼장법사'로 인해 '요괴'의 모습을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다시 [서유기]의 주인공은 '손오공'이 아닌 삼장'이, '요괴'가 아닌 '인간'이 된다.



이것이 바로 나이가 들수록 손오공의 활약보다 삼장법사의 신심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



https://brunch.co.kr/@beatrice10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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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유기(西遊記)](16세기), 오승은, <혜민북스>, 2021.

2.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중국편 2], 유홍준,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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