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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19. 2021

[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20세기) - 김산해

서사시의 '문자', 인류 최초의 '사상'적 문헌

서사시의 '문자', 인류 최초의 '사상'적 문헌

-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휴머니스트>, 2005~2020.





"조지 스미스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지 12년 뒤(1872년)에 서판을 해독한 내용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로써 그는 종교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 놓았다...

물론 '홍수 서판'의 중요성은 비단 종교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홍수 서판'은 문학의 역사에도 중요한 증거자료다. 스미스의 '홍수 서판'은 기원전 7세기에 나왔으나 이제 우리는 원래 그보다 1,000년 앞서 기록된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이 그 홍수 이야기를 세계문학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서사시인 저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로 엮은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길가메시는 불사의 삶과 자각을 찾아 웅대한 여정에 오르는 영웅이다. 그는 악마와 괴물들을 만나 싸우며 온갖 역경을 극복한다. 그러다 후대의 서사시 영웅들처럼 마침내 자신의 본성과 유한한 운명이라는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기에 이른다. 스미스의 '서판'은 이 이야기 가운데 열한째 장에 지나지 않는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훌륭한 이야기의 요소를 모두 갖췄을 뿐 아니라 문자기록의 역사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기도 한다...

이야기는 대개 말이나 노랫말 형태로 기억을 통해 전승됐다. 그러다가 4,000년 전쯤에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이야기가 점차 기록으로 남기 시작했다... 문자는 이야기의 저작권을 공동체에서 개인에게로 이양했다. 더욱이 기록된 문서는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에 바야흐로 특정 양식의 이야기가 더 많은 언어로 쉽게 전해질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기록된 문학은 '세계 문학'으로 부상했다... 여기 이 스미스의 '홍수 서판'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가 출현하면서 문자는 사실을 기록하는 수단에서 사상을 연구하는 수단으로 옮겨갔다."

-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16. 홍수 서판(700~600 BC), 대영박물관.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를 떠올려 본다.

'최초'의 문자, '최초'의 숫자, '최초'의 족장, '최초'의 국가, '최초'의 제국 등. 정착과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큰 강물의 범람으로 비옥한 토지에 기반한 공동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황하', '인더스강', '나일강'의 '4대 문명 발상지'로 기억된다. 이 중 대부분의 '최초' 문명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삼각주인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비롯된다. 이라크 지역 일대인 이 '중간 지대'는 동서남방의 각 문명이 교차하는 지대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점토 서판에 기록된 문자와 회계장부, 5천년 전 '최초'의 언어와 문자인 '수메르어'와 '최초'의 세습체제 '우루크' 왕조, 4천5백년 전 '아카드어'와 '최초'의 도시국가 '아카드', 4천년 전 히브리족의 조상인 '최초'의 족장 '아브람', 3천5백년 전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아시리아와 바빌론을 유린한 히타이트의 철기 문명, 배타적 유일신교의 최고봉인 '유대교'의 구약과 '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 문명 등 인류 문명의 프로토 타입이 바로 '중간 지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있다. 아마도 '우루크'의 후예인 '이라크'가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며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 배경도 그러한 '자부심'에 기초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외세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라크박물관'은 '대영박물관' 못지 않은 위엄을 갖추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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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대영박물관 인근 인쇄소의 도제로 일하던 조지 스미스(Georgy Smith : 1840~1876)라는 청년은 점심시간만 되면 박물관에 와서 오래된 점토 서판을 들여다 보았단다. 이를 지켜본 비문 발굴자이자 설형문자 해독자인 헨리 롤린슨 경이 스미스에게 본인의 연구방으로 들어올 수 있는 특혜를 주었고 결국 조지 스미스는 서른 두살에 인류 문명에 한 획을 긋는 서판 하나를 '최초'로 읽어 내려간다. 이 서판이 바로 기원전 7~8세기에 쓰인 '홍수 서판'이었다. 구약 '창세기'에나 존재하던 신의 징벌로서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서 기록된 증거였고, 이 기록의 '문자'로 인해 가능해진 인류 서사의 향연과 '세계 문학'의 발견이었다.

19세기 당시는 찰스 다윈으로 대표되는 '생물학'으로서 근대 과학의 발전이 정점을 향하던 시절이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물리학'과 18세기의 '화학'에 이은 이 과학의 진격은 기존 종교와 신화에만 의지하던 인류 문명을 한 단계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일종의 '문헌고고학' 분야의 과학자로서 스미스는 점토 서판의 해독을 통해 수천년 전 '대홍수'의 자연적 재앙을 증명했고 이후 인류 '최초'의 대서사시인 '길가메시(길가메쉬:Gilgamesh)' 이야기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가 1872년에 처음 읽어내린 '홍수 서판'은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의 열한번 째 장이었던 것이다.



( 길가메시 설형문자 )



"길가메쉬(길가메시)가 '멀리 있는 자' 우트나피쉬팀에게 말했다.


'우트나피쉬팀이여. 제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당신 모습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와 같습니다!... 말해주십시오. 어떻게 당신이 신들의 회합에 나설 수 있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를!'


'길가메쉬, 내가 너에게 숨겨진 사실을 말해주리라. 신들의 비밀을 네게 말해주리라! 너도 분명히 알고 있는 슈루파크라는 도시가 유프라테스 강둑에 있었지. 정말로 오래된 도시였고, 그곳에 신들이 살고 있었다네. 위대한 신들이 사람에게 홍수로 벌을 주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지혜의 왕자 에아가... 그들이 나눈 대화를 갈대 담에 대고 반복해서 말했지... 오, 슈루파크의 사람이여... 집을 부수고 배를 만들어라! 재산을 포기하고 생명을 찾아라! 소유물을 내버리고 생명을 유지하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배에 태우고..."


-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21.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야기', 김산해.



구약 <창세기>에 신은 노아에게 전나무로 배를 만들어 암수 생명체 한 쌍씩 싣고 숨으면 40일 간 밤낮으로 큰 비를 내려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쓸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는데, 이는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들이 탐욕해지는 당시 현실에서 대홍수라는 대재난이 '신의 징벌'이었다는 종교신화적 전설이었다. '홍수서판'에 의하면 또 다른 신이 또 다른 인간에게 경고한 내용이 히브리어 성경보다 더 오래된 수메르어 또는 아카드어 문자로 기록된 바, 이는 아마도 오래전 언제쯤 대홍수의 자연재해로 그 일대의 인류 문명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현자(賢者)' 또는 '반신(半神)' 같은 존재로 대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약의 '노아'는 우루크 왕 길가메시 서사시의 '우트나피시팀', 수메르의 '지우수드라' 등으로 등장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최초 세습왕조 '우루크'의 5대 왕이었던 기원전 2천8백년의 '길가메시'는 키가 5미터에 짐승같은 완력의 지배자로서 세상 모든 새색시들과 먼저 동침하는 흡사 중세 영주의 '초야권'을 앞서 행세하던 폭군이었다. 세상 누구도 그를 제압할 수 없었는데 이를 본 수메르의 신은 '엔키두'라는 또 다른 짐승을 창조한다. '엔키두'라는 이 짐승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최초'의 인류 같은 느낌인데, '우루크' 왕조의 자손인 길가메시는 '반신반인'이었다. 어머니는 농경문화에서 너무도 중요한 들소의 신 '닌순'이었다. 신은 이 '반신반인'의 폭정을 막기 위해 진정한 인간 '엔키두'를 창조하고 당시 '비너스'와 같은 '샴하트'를 보내 동침을 시켜 '엔키두'를 문명화한다. 이제 '섹스'를 통해 진짜 인간으로 진화한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똑같은 용모와 힘으로 이 폭군 길가메시와 대적하고 건곤일척의 대회전 후 친구가 된 둘은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길가메시의 또 다른 모습으로서 엔키두는 삼나무 숲의 산신 '훔바바'에게 도전하려는 무모한 길가메시에게 지속적으로 신중함을 권유하다가 결국 따라나서서는 중도에 포기하려는 길가메시에게 끝까지 과업을 완수할 것을 종용하는데, 결국 엔키두와 함께 온갖 모험을 겪으면서 더욱 강해진 '반신반인' 길가메시는 '인간' 엔키두의 죽음을 보며 '영생', 즉 죽지 않는 삶을 찾아 왕좌까지 내던지고 또 다른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가 [길가메시 서사시]다. 결론적으로 신으로부터 왕의 권력은 부여받았으되 '영생'은 허락받지 못한 길가메시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대홍수' 속에서 살아남아 인류 문명을 보전시킨 현인 '우트나피시팀(지우수드라)'을 찾아가 '영생'의 '신'이 되는 방도를 묻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지 못한 길가메시는 결국 '슬퍼하지도, 절망하지도, 의기소침하지도 말라'는 신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절망과 의기소침과 분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서사시'의 기록자는 그럼에도 "길가메쉬, 쿨아바의 주님. 당신을 칭송하는 일은 즐겁습니다!"(같은책, '23. 길가메쉬의 죽음')라며 이 서사시를 끝맺는다.




[사피엔스]의 '빅 히스토리언' 유발 하라리는 현대와 미래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능력과 수명은 연장될 것이며 결국 '인간'으로서 '사피엔스(Sapiens)'는 '영생(永生:eternal life)'을 구하여 스스로 신(神:Deus)으로서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된다는 장대한 계획을 '길가메시 프로젝트(Gilgamesh Project)'라 명명한다. 과학은 설령 실패할지라도, 또는 악마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 목표를 향한 실험을 끝까지 밀어 붙인다. 나치의 파시즘적 광기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과학자들은 전쟁기술을 발전시켰고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인류를 죽인 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지금을 사는 우리는 현대문명의 풍요와 편의를 한껏 누리고 있다.


황하 문명에서 나온 다양한 인간군상과 집단들과 사상들의 쟁투를 거쳐 동아시아 문명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도 역시, 오래전 메소포타미아 '중간 지대'의 강력한 권력자 길가메시처럼 '영생'을 꿈꾸었다. 그러나 오히려 욕심과 '과로'가 심해 그의 통일제국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고 덕분에 고대의 '도술가'들은 진시황에게 사기는 쳤어도 당시의 '과학'이었을 '음양학'과 '도술학' 등을 한층 발전시켰을 수도 있겠다. 중세에 '영생'을 연구한 신비주의적 연금술은 이후 화학의 발전에 기여했다지 않은가.


하인리히 슐리만에게 고대 그리스 문명 발굴의 꿈을 꾸게 했던 2천8백년 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나 1천2백년 전 게르만족 영웅 서사시 [베어울프]보다 훨씬 전인 약 4천년 전에 인류 최초의 문자로 기록된 '세계 문학'의 시초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이라는 숙명과 그 앞에서의 공포를 딛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인간의지를 인류라는 종(種)에게 심어준 최초의 '사상적 문헌'이다.



***


1.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기원전 20세기), 김산해 지음, <휴머니스트>, 2005~2020.

2.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닐 맥그리거(대영박물관장), 김미경 옮김, <다산초당>, 2014.

3.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박수철 옮김, <커넥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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