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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an 02. 2022

[역사의 역사](2018) - 유시민

'역사서술'의 역사 : 역사가 역사다워지는 '서사의 힘'

'역사서술'의 역사 : 역사가 역사다워지는 '서사의 힘'

- [역사의 역사], 유시민, <돌베개>, 2018.





"이 책은 굳이 분류하지면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히스토리오그라피'는 역사학 이론과 역사서술 방법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우리말로는 보통 '사학사(史學史)'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학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사학사'는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역사학'과 '역사서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목적과 성격과 작업방식이 다르다. '역사학'은 학술연구 활동이지만, '역사서술'은 문학적 창작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로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한다."

- [역사의 역사], <서문 - 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 2018.



20세기 말에는 세기말 징후로 여전히 '종말'과 '휴거'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신세기에 대한 막연한 '희망'도 가득찼다. 우리 '20세기 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왠지 21세기가 되면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 등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20세기 후반부 격동의 시대에 30~40대 청장년을 보낸 1960년대생 '20세기 청년' 선배들이 어린 우리 1970년대생 '20세기 소년' 후배들에게 남긴 자취였을 수도 있다.

소소하지만 인류의 '역사'란 이런 계기들의 집합이다.


내가 스무살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역시 우리를 각성시킨 것은 여전한 현실과 이런 세상을 분석해주는 '20세기 청년' 선배들이었다. 일면식은 없지만 군부독재에 용감하게 항거하고 새세상의 대안들을 치열하게 학습하며 노동현장에서 스러져간 사람들과 잠시 서구로 탈주했다 돌아왔다는 그 지식인들의 멋진 글들이었다. 일제강점기 목숨을 건 독립투사들은 너무 멀었지만, 어찌보면 나와 한 세대임에도 치열했던 '20세기 청년'들의 후일담은 가깝게 느껴졌다.

스무살의 나는, 이들의 '역사서술'에 매료되었다.


21세기 하고도 사반세기를 통과하는 지금 보니, 그 용감했던 '역사서술가'들은 다들 그들끼리 동지였고 친구였다. 1980년 '서울역 회군' 과정에서 노선투쟁을 했고, 비합법 지하 패밀리에서 이래저래 다들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비판하던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관리에 성공했고, 그들의 80년대생 자녀들 스펙과 세습자산을 불려줬다. 그렇게 그들은 본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이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지금 우리 사회를 아예 부동산과 금융투기, 학벌중심의 '세습자본주의'로 고착시켰다.

지금 시대는 이들을 정치권 여야를 떠나 공통되게 '586 세대'라 칭한다.


그렇지 않은 선배들이 더 많다는 것도 나는 안다.

20세기 말에 세계의 '종말'이 아닌 민중의 '희망'을 말하며 노동자 진보정당을 만들고 분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길을 찾기 더 어려운 지금도 그 '희망'을 놓지 않고 산다.

그 당시에도 역시 '선구적'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유시민이 그랬고, 진중권이 그랬고, 조국도 그랬다.

유시민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을 존중했지만 그 유려한 말발과 글발로 소수 진보정당의 고군분투를 허망한 '사표'로 만들어줬다. 진중권은 같은 편인 것 같지만 다수와 함께 하기에는 너무 읽은 책이 많아 내부의 적을 늘 만들고 동지들을 조롱했다. 조국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그 중 가장 급진적이고 싶었겠으나 그러기에 너무 부자집 출신이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세기의 '천재'들이 자본가가 아닌 다수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 있어준 것 자체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들 '20세기 천재들'은 다수 민중을 너무 비웃고 우롱했다.

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점이다. 일단 글쓰기로만 보면, 유시민과 진중권은 당최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선거철만 되면 노무현식 '좌파 신자유주의'를 다시금 유행시키기 위해 묵직한 주제의 책들을 가볍게 내곤 하는데, 유투브로 갈아타기 전 2018년의 저서 [역사의 역사]는 그래도 내가 그 중 유일하고도 유익하게 생각하는 책이다. 물론  사무금융 산별노조 독서회 '수요회'에 추천했다가 좌파 동지로부터 '손절' 당할 뻔도 했지만, 여전히 다른이들에게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다. '정치'가 아닌 '역사'를 다루는 위험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그래도 아직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2018)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가의 시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로부터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 14세기 이슬람 '문명사학자' 이븐 할둔, 19세기 프로이센 제국의 '천생 역사가' 레오폴트 랑케,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우리의 박은식과 신채호, 백남운 선생,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와 '문명의 충돌'로 인한 서구중심사관의 몰락을 징후하는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의 20세기 역사학을 거쳐 최근의 '빅히스토리' 역사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 등의 '역사서술(writing history)'의 역사를 충실하게 요약하고 있다.

21세기의 유시민은 이제 더 이상 다수 민중이 '승리'하는 당위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 르포작가'로서 '역사' 자체가 아닌 '역사서술'을 주제로 하여 [역사의 역사]에서 다루는 기라성 같은 역사가들이 '역사'라는 사실적 소재를 빚어 문학적 창작을 이루어낸 성과물로서의 그들의 저서들과 그 사실들의 연속성의 '역사'를 파헤친다.


'역사' 19세기 독일의 반동적 군주제 역사가인 레오폴트 랑케(같은책, <4>)건조한 문헌적 역사가 추구한 '사실 그대로' 서술이 불가능하며,  '역사가' 개인들의 시대적 한계와 나름의 '철학' 관점, 정치적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므로 '역사서술의 역사'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 또는 '사학사(史學史)' 주제로 하는   [역사의 역사] 저자인 유시민 본인의 '글쓰기' 학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역사 르포르타주(르포)'라고 <서문>에서 명확히 규정한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낭독회),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증명이었으며("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적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역사], <6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유시민, 2018.



[역사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역사가는 이슬람의 이븐 할둔(같은책, <3장>)이다. 그는 '역사'를 '이야기'나 서사가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설정한 아마도 최초의 역사가였단다. 그의 [역사서설]은 이슬람 공동체의 사회문화인 '아싸비야'를 중심으로 기후와 자연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복합다단한 역사 이야기 이전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화를 시도한 '서설(무깟디마)'이었다. 14세기 이슬람 문화인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이븐 할둔의 이 '역사학'은 칭기스 칸의 세계제국이 분할된 후 이슬람권의 칸으로부터 공식 역사서가 되고 할둔 본인도 '칸의 스승'과 같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만년의 할둔은 역시 말년의 티무르와 독대했지만, 그가 티무르에게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중앙아시아 일대를 제패하고 동아시아 중국대륙의 명나라를 정벌하려던 티무르는 죽었고 할둔 또한 그 이듬해인가 죽었으므로 후세는 칭기스 칸의 후예를 자칭한 정복자 티무르가 한 도시 정복의 대가로 역사가 이븐 할둔과의 접견을 요청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정복자의 스승인 '역사학의 아버지' 이븐 할둔은 오만한 정복자들도 우러러 본 역사가였다.



유시민에게 칼 마르크스는 아마도 '애증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는 전세계 수많은 청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자유주의자였던 '20세기 청년' 유시민에게도 세계를 변혁하라는 가르침을 처음으로 준 역사가였을 테고, 그로 인해 적어도 마르크스의 저서만큼은, 최소한 [공산당선언](1848)만큼은 유시민은 그 누구의 번역이 아닌 원전을 통한 스스로의 번역만을 인정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비록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이 '역사를 비껴간 역사법칙'(같은책, <5장>)이었다고 결론짓고 있지만, 칼 마르크스는 유시민의 자유주의적 사상경로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가'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자유주의자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든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19세기 유럽의 칼 마르크스는 늘 그런 선학이다. 마르크스가 철학자였든 역사가였든 정치경제학자였든 아니면 백수나 문학가였든, 그는 우리 인류 사상사에 항상 그런 역사적 '서사의 힘'을 유산으로 남겼다.



20세기 초 우리 식민지 조선의 역사가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선생(같은책, <6장>)은 더욱 인상깊다.

성리학 선비였던 박은식 선생의 피를 토하는 역사학과 [한국통사]는 아마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조건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 아니었다면 이 개명 유학자가 왕정이 아닌 민주정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며 일제에 끝까지 항거한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와 [조선혁명선언] 또한 마찬가지다. 의열단의 강령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1923)은 20세기 조선판 [공산당선언]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역시 유학자였던 신채호 선생은 민주주의자 박은식 선생보다 더 급진적으로 사회주의 또는 아니키즘 성향까지 보이나 이들 또한 역사가였기에 고대 문헌의 철저한 고증과 비교분석을 통해 가장 개연성이 높은 역사이론을 채택한 것이었다. 이들은 외세를 물리친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강감찬과 이순신 등의 민족적 영웅전을 쓰면서 식민사학에 대항한 우리 고유의 민족사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해방공간에서 북조선으로 넘어간 백남운 선생은 우리의 역사를 마르크스주의 '역사단계론'에 끼워 맞추기는 했으나 아마도 우리 역사학계에서 최초로 '역사유물론'을 정초한 역사학자일 것이다. 백남운 선생의 [조선사회경제사]는 우리 역사를 '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의 '역사단계발전론' 틀에서 해석하면서 식민지 조선은 '특수한 단계'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를 우리 사상계에 이식하여 식민사관과 투쟁하는 유물사관(역사유물론)을 정립하자는 시도였다.

우리 역사가인 이들 선학들의 '민족사관'과 '유물사관'이 지금 후세들에게 다소 과격하고 도그마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특수단계에서는 필연의 역사학이었다.

[역사의 역사] 저자 유시민은 말한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이 쓴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다"라고.

나 또한 그렇다. 식민지 시대든 군부 파시즘 시대든 그 시절 지식인들의 역사는 슬프다.

내게는 유시민 작가도 그렇다.



이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변한 에드워드 핼릿 카(같은책, <7장>)가 정초한 '현대 역사학'과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의 지구환경 역사학 및 미래지향적 '빅히스토리'(같은책, <9장>)는 세간에 너무 많이 언급되고 있어 유시민의 이 책에서 그리 새롭지는 않다. 다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빅히스토리'는 '역사서술'의 역사를 돌아볼 때 반드시 거쳐야 할 현대사의 한 단계가 되었다. 이들은 이미 지난 '역사서술'이 아니라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인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서 '역사'는 걸출한 역사가들의 탁월한 안목으로 취사선택된 서사를 통해 비로소 역사다워진다고 소감을 밝히며 [역사의 역사]를 마무리한다.

인류의 역사는 역사가들의 "서사의 힘"(같은책, <에필로그>)으로 '발전'한다고 믿기에 유시민은 '역사서술의 역사'를 묵직하게 엮어냈다.

사회과학 저서 출판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돌베개> 출판사의 편집과 디자인 또한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본 소감이다."

- [역사의 역사],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유시민, 2018.


https://brunch.co.kr/@beatrice1007/131


***


1.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2.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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