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기(武器)'로서의 '철학(哲學)'
삶의 '무기(武器)'로서의 '철학(哲學)'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8),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북스>, 2019.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선의로 깔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 좋은 세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이상을 잃지 않은 채 그러한 '이상 사회'를 꿈꾸며 운동을 벌이는 일이 독선과 기만에 빠질 위험성 또한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과거의 철학자가 남긴 사회에 대한 고찰이 우리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1부. 무기가 되는 철학>, 야마구치 슈, 2018.
1888년, 죽은 칼 마르크스의 살아남은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고전철학'에 '종말'을 고한다.
본래 '철학(哲學)'은 고대 인류의 의식이 각성하면서 "세계는 무엇(what)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how) 돌아가는가?"에 관한 답을 찾는 '학(學)' 자체였다. 자연과학이 발전하기 전인 고대에는 '철학'이 당연히 학문의 최고 지위였고, '과학'이나 '종교'가 곧 '철학'이었다. 이 궁극의 학문으로서 철학은 인간의 주체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주관적 관념은 객관적 대상에 1차적 영향을 받는다. 그에 따라 '주체'가 먼저라 보는 철학을 '관념론', '객체'가 우선이라 전제하는 철학을 '유물론'이라 했다. '양자역학'의 현대과학 시대인 지금은 무엇이 1차적이고 우선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와 '신화' 또는 '이데올로기'로 당대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집단이나 계급의 철학이 '관념론'인 한, 다수 민중의 '유물론'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근대 이전 썩은 왕조를 무너뜨린 수많은 농민반란이 종교적인 '관념론'의 이데올로기 아래로 모였을지는 몰라도 사실 다수 민중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었던 현실적 '유물론자'들이었다. 이 다수 유물론자들에게 선택지는 늘 둘 중 하나였다. "이대로 굶어 죽느냐, 아니면 뒤집어 엎느냐?"
엥겔스가 종말을 고한 '독일 고전철학'은 바로 고대로부터 19세기 당시까지 철학사를 지배해 온 '관념론' 및 독일 사변철학이었다. 자연과학은 발전하고 대다수 노동계급이 자본으로부터 대규모 착취당하는데 더 이상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서는 안되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철학이었다. 따라서 이제 철학은 '관념론'에 종말을 고하고 '유물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어야 했다. 엥겔스에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철학'의 상속자는 바로 자본주의 착취로 억압받는 다수 노동계급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미 '철학'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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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업경영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원제 : 무기가 되는 철학)](2018)라는 책에서 지루한 철학사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근대 철학의 분기점이라는 칸트를 건너뛰고 과학철학의 맹아를 담은 스피노자를 무시한다. 으레 철학사 서적이 다루듯 고대 그리스 철학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기업 컨설팅 그룹 소속답게 비즈니스에서 '실용'적으로 중요한 철학 개념 50가지를 추려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네 가지 범주에 각 콘셉트(개념)들을 배치하여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기업경영과 비즈니스 세상에서 '혁신'을 통해 '영속'하고자 하는 기업가들의 인문학적 '무기'이자 다수 기업 실무자들 삶의 '무기'가 된다. 그는 인용한다. "교양이 없는 CEO는 '위험천만'하다"고.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앨런 케이, 야마구치 슈의 같은책 <4-49> 중.
자본가로부터 비용을 받고 기업경영 컨설팅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저자는 언뜻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성과급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자율적인 상황에서 목표 달성이 더 용이하다는 근거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같은책, <1-3>)에서 찾고, 기업 의사결정에도 끝까지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하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악마의 대변인'(<2-16>) 이야기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한다는 '1만번의 법칙'은 틀렸다며 질 들뢰즈의 '파라노이아(편집증)'와 '스키조프레니아(분열증)'를 거론하며 여의치 않으면 현실 직장으로부터 탈주하라(<3-33>)고 말한다. 온갖 '능력주의'로 포장된 기업의 인사평가는 애초에 공정할 수 없다며 캐나다 심리학자 멜빈 러너(<3-37>)의 '공정한 세상 가설'을 소개한다. 즉,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공정세상'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본다. 자본주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칼 마르크스까지 다루는 이 기업 컨설턴트는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 체제비판의 핵심인 '물화'가 아니라 초기 마르크스 철학의 인간적 요소였던 '소외'(<3-25>)를 소개하는데 그친다. 저자가 철학적 사고에서 중요하게 소개하는 사고방식은 헤겔의 '변증법'(<4-42>)인데, 서로 대립하고 모순되는 사물이 '맞서고 얽혀('맞얽힘')' 새롭고 창의적인 사고로 '나선형 발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야마구치 수는 기업의 돈을 받고 컨설팅 보고서를 쓰기는 하나, 기업 담당자들에게 '미래'가 어떨지 묻지 말란다. 그는 미국의 퍼스널 컴퓨터 선구자인 앨런 케이(<4-49>)의 말을 빌어 답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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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1-10. 한나 아렌트_악의 평범성>, 야마구치 슈.
야마구치 슈가 50명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을 빌어 소개하는 '삶의 무기'로서의 철학 개념들의 핵심은 결국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사고'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평론가인 한나 아렌트(같은책, <1-10>)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기획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방청하고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악'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일본 천왕처럼 거대악으로 상징될 수 있으나 정작 이러한 악의 집행은 지배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에 무비판적으로 '실무'를 맡아 처리한 평범한 자들이 자행했다.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고 처형된 아이히만이 법정에 등장하는 것을 본 한나 아렌트는 그 살인자가 '악마'가 아닌 지극히 나약해보이고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단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폭력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1차대전 패전국의 전후 경제위기에 불만을 품은 다수 민중들이 그 파시스트들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주었고, 자기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그 권력을 지지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악마와 같은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한 그 평범한 '악마'들은 결국 수천만 명을 살육했다. 한나 아렌트는 무비판적 실무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 악행들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말을 지어냈다.
이 '악의 평범성'은 절대악을 이상화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스스로의 맹목성과 무비판성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했다. 그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실무능력'은 주변의 다수 지지자들의 이익이라는 '선의'로 포장되는데, 이것이 가능하게 한 건 현실 체제와 제도, 지배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었다. 연말에 폭탄과 같이 사면복권된 박근혜가 절대권력을 휘두를 때 대한문 앞에 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농성장을 갈아엎고 화단을 만든 서울 중구청 공무원 실무자들의 삽질이 떠오른다. 그들은 오직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었지만, 29명의 정리해고 조합원 사망자들과 유족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평범한 악마들'이었다.
기업경영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가 말하는 비판적 사고로서의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는 주장에 깊이 동감한다. 이 비판적 무기를 벼리기 위해 저자가 소개하는 개념들 또한 매력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가 칸트와 스피노자 등을 제끼면서 돌아보는 철학사 또한 재미있고 유익하나 '비판'은 얘기하되 '변혁'을 담지 못하는 철학은 역시 공허하다. 그냥 '철학'이라는 주제로 책과 강연을 팔아 명성을 사기 위한 '교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현 체제와 시스템을 "왜 비판하는가"에 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무기'로서의 '철학'의 상속자가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는 다수 대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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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8),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북스>, 2019.
2.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프리드리히 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3.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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