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의 중국문명사 비판
'자유주의자'의 중국문명사 비판
- [송나라의 슬픔](2009), 샤오젠성, 조경희/임소연 옮김, <글항아리>, 2021.
"(진나라의) 일원화된 정치 설계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심을 지닌 역대 왕조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이후 역대 왕조의 제도적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구조는 서주처럼 천자, 제후, 대부, 국인이라는 다극적 힘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체제가 아니었다. 이 체제 아래서는 황제와 관료(통치자), 그리고 백성(피통치자)이라는 양극의 힘만 있을 뿐이어서 사회는 매우 불안정해졌다. 통치자가 우위를 점하면 전제이고 피통치자가 우위를 점하면 혁명이었다."
- [송나라의 슬픔], <3장. 폭력과 전제로 비롯된 재난>, 샤오젠성, 2009.
냉전 이후 미-중 간 대립이 치열하다.
미국은 '자본주의', 중국은 '사회주의' 대국인 듯 하나, 바야흐로 21세기는 체제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불평등'의 세계체제에서 각국의 이익만이 충돌한다. 전세계 민중들은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결집하는데 국가권력들은 이에 편승하는 듯 하면서도 기후위기가 임박했든 말든 '국가자본주의' 이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모두 '국가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중국의 언론인 샤오젠성(1955~)은 중국의 문명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책 [중국문명적반사(中國文明的反思)](2009)에서 현대 중국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국사를 큰줄기로 하여 서술하는 이 책은 2007년에 중국 당국의 심의에 걸려 대폭 삭제된 채 출간되었다가 2009년 홍콩에서 무삭제로 재출간되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지금의 '사회주의' 중국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맹렬하게 비판하는데 그 비판적 근거는 진시황의 진나라로부터 설계된 중앙집권적 전제와 독재적 정치체제다. 2021년 한국어판의 제목은 [송나라의 슬픔]이다. 샤오젠성이 보기에 중국 문명사에서 가장 전성기는 5대10국 이후 조광윤이 건국한 송나라였고 원-명-청의 전제 독재가 다시 들어서면서 중국문명과 인권이 재차 무참하게 짓밟혔으므로 그에게 중국사는 그 자체로 '송나라의 슬픔'이었다.
"송나라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책을 펴는 한편 우민정책을 타파했다. 송나라 백성은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고 나라의 법제는 완비되었으며 사회는 나날이 번영했다. 뛰어난 인재가 대거 배출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명나라가 건국되고 주원장이 전제통치를 펴면서 송나라의 사회상은 철저히 파괴된다. 주원장은 송나라의 자유롭고 개방적 정책을 계승하는 대신 남송때 나타난 도학(성리학)을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그렇게 인성파괴의 시대가 도래했다."
- [송나라의 슬픔], <6장. 황권지상 인권추락의 시대>, 샤오젠성, 2009.
샤오젠성이 중국문명사를 돌아보는 결론은 하나다.
지금의 '사회주의' 중국은 사회적으로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정치적으로 견제받지 않는 일당독재 국가이므로, 영미 서구사회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첫째 개방적 인재선발과 둘째 사유재산 보호, 셋째 언론자유와 개방정책, 넷째 '인권보장법' 제정(같은책, <결론>)이다.
그가 주장하는 중국사의 적폐로서 황제 개인독재의 전제정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심각한 역사적 병증임에 틀림없다.
하늘과 땅을 나눈 반고 시대 이후 삼황오제 시기부터 중국인은 서양인과 같은 '신앙'이 없이 '인간화된 신'을 믿은 결과 하-상나라의 독재적 왕권을 신성시했고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의 봉건제도를 통해 '민주적' 가능성이 잠시 나타나기도 했지만 진시황이 전국의 민중들을 몰살시키면서 이룩한 '대일통' 이후 독재자를 신격화('천자')하는 정치문명적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마오쩌뚱은 이러한 전제정권을 뒤집어 엎은 숱한 농민혁명이 중국역사를 이끌어온 주된 동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오쩌뚱의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이러한 중국적 전제정치의 대단원으로 보는 샤오젠성에게 농민혁명은 문명의 파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천만명의 춘추전국시대 인구가 진나라의 통일과 8년간의 초한전쟁을 거치면서 반토막 났고 유방이 건국한 전한시기에 회복된 인구수는 후한 말 황건농민반란과 삼국쟁투 과정에서 1/7 정도 남았으며 수나라 초 다시 회복된 인구가 수나라 말기 군웅반란을 거치며 1/3 토막 났다가 당나라의 정관의 치와 개원성세를 거쳐 다시 회복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같은책, <7장. 기형의 사회>). 부패한 왕조의 타도 후 들어선 새로운 왕조는 황권 독재의 반복이었을 뿐이므로 다수에 의한 혁명은 신문명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문명파괴'에 불과하다는 것이 샤오젠성의 일관된 역사관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23
https://brunch.co.kr/@beatrice1007/224
이 중 예외는 한나라 문제와 수나라 문제 양견, 송나라 태조 조광윤 정도였다. 유방 사후 외척인 여후가 타도되면서 귀족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옹립된 한나라 문제는 이후 경제에 이르기까지 '문경의 치'를 열었는데 사대부의 '공화'적 지배가 가능하도록 노장사상의 '무위'를 실현한 황제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나라를 건국한 문제 양견은 5호16국과 위진남북조의 성과를 딛고는 검소한 통치로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당나라 멸망 후 5대10국의 마지막 강국 후주의 세종 시영이 급사하고 어린 왕으로부터 선양을 받은 조광윤의 송나라는 무리한 '대일통'이나 북벌이 아닌 열린 내치를 통해 나라의 상공업을 장려하고 사상을 자유롭게 하여 중국문명의 최대 번영을 이루었다고 샤오젠성은 평가한다.
현재의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기 위한 답을 정해 놓았기에 저자가 보는 송나라의 번영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와 '사유재산 보호'의 유토피아와도 같다. 문치와 사유재산 보호의 천국 송나라는 북쪽 요나라와의 '전연의 맹' 조차도 굴욕이 아닌 평화의 정책이었단다. 북송 마지막 황제 휘종은 이러한 사유재산 보호정책을 거스르며 사욕을 채우다가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는데, 전반적으로 황권독재를 비판하는 '공화주의'적 시각에는 나 또한 동감해 마지 않으나 저자가 워낙 현대 중국공산당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사유재산 신성화'의 18세기 부르주아 혁명정신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프랑스혁명 식의 다수 혁명이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처럼 정치체제에 국한된 혁명이 바람직하다고 결론과도 같은 장황한 <8장. 실패로 끝난 문명전환>에서 강조한다. 송나라 문명이 몽골의 야만에 의해 파괴되고 한족의 반원 독립투쟁으로 세워진 명나라 홍건반란 또한 주원장의 독재로 마무리되었으며 만주족의 청나라는 명나라의 썩은 황권정치 위에 더 공고한 황권독재를 세우면서 중국 근대문명이 결과적으로 파탄났다고 보는 샤오젠성은 '공화주의'적 근대혁명인 1911년 신해혁명 조차도 대규모 반청운동이 됨으로써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이 실패했다고 본다. 나아가 쑨원의 신해혁명이 반청운동에 몰입하지 않고 청나라 황실 주도의 '입헌군주국'이 되었다면 영국처럼 발전된 자본주의가 되었을 수도 있었으며, 지방자치 분권을 기획한 '연성자치'를 쑨원이나 장제스, 마오쩌뚱이 지켜나갔다면 미국과 같은 민주적 정치제도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참으로 자의적인 역사해석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13
https://brunch.co.kr/@beatrice1007/4
"헌정의 비밀은 '한 천사의 통치보다 두 마귀의 공정한 경쟁이 낫다'는 데 있다. 민주, 법치, 공화, 헌정제도를 싹 틔울 수 있는 우선적인 조건은 국민의 참정이 아닌 사회 상층세력의 다원화다."
- [송나라의 슬픔], <8장. 실패로 끝난 문명전환>, 샤오젠성, 2009.
'사유재산 신성화'와 그 핵심으로서 '토지 사유화'를 일관되게 틈만 나면 주장하고 중국역사 속 서주나 송나라 등을 지방분권과 상업발전의 국가체제로 미화하는 샤오젠성의 역사관은, "한 천사의 통치보다 두 마귀의 '공정한' 경쟁이 낫다"는 한 줄의 문장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에게 국가권력은 상업과 자본의 성장에 기여해야 하고 다수 민중의 참정권은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권력을 파괴하므로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 된다. 법치와 헌정의 이름으로 민중혁명은 상층 정치가들의 '다원화'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평등'한 이상사회를 꿈꾸는 '천사' 하나보다는 자본의 탐욕에 찌든 '마귀' 두 마리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정치체제가 더 낫다고 말한다.
중국의 체제가 너무도 싫은 나머지 자본주의 미국과 한국 같은 보수자본가 양당정치를 동경하는 듯 하다. 샤오젠성이 보기에 양당정치의 두 '마귀'들의 경쟁이 '공정'해 보이나 본데, 신성한 '사유재산' 보호를 최고의 존재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이 다수 민중들에게 현실에서 얼마나 '공정'한지 모르는 소리로 들린다.
"열린 정치 없이는 인권의 보장을 논할 수 없다... 서구의 민주헌정 제도는 권력에 대한 불신임, 즉 인치(人治)에 대한 불신임이라는 중요한 사상에서 기원했다... 1911년 중국은 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을 세웠고, 1949년 다시 한 번 공화국을 건립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민주가 진정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여전히 이긴 자는 왕이 되고 진 자는 역적이 되는 정권교체에 다름 아니었다. 민주와 자유의 꿈은 또 다시 물거품이 되었으며 헛수고가 되었다."
- [송나라의 슬픔], <서문>, 샤오젠성, 2009.
전제적 '황권독재'를 비판하다가 '사유재산 신성화'의 신앙과 민중혁명에 대한 혐오 앞에서 '입헌군주제'를 옹호하기도 하는 갈짓자 역사관에도 불구하고, 샤오젠성의 '중국문명사비판'은 자의적인 '인치(人治)'보다 '법치(法治)'를 중시하고 독재보다 인권을 앞세우며 폭력보다는 평화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 혁명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지만, 권력자만 바꾼 채 '불평등'의 체제를 전환하지 않는 한 결국 반쪽짜리 혁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도 2016~17년의 '촛불항쟁'을 통해 또 한번 배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사를 관통한 권모술수와 폭력 미화의 정수인 [삼국지연의]와 [수호지]를 비판하는 대목(같은책, <7장. 기형의 사회>)에서는 역시 중국체제를 비판하는 '자유주의' 지식인 류짜이푸의 [쌍전]과도 맥을 같이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66
'민주'와 '인권', '평화'는 '불평등' 체제의 전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아마도 샤오젠성의 갈짓자 역사관 또한 중국 체제전환의 '자유주의'적 과정이리라.
***
1. [송나라의 슬픔(中國文明的反思)](2009), 샤오젠성, 조경희/임소연 옮김, <글항아리>, 2021.
2. [진붕(秦崩) - 진시황에서 유방까지](2015), 리카이위안,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21.
3. [초망(楚亡) - 항우에서 한신까지](2015), 리카이위안,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1.
4. [쌍전(雙典)], 류짜이푸, 임태홍/한순자 옮김, <글항아리>, 2012.
5. [주원장전;朱元璋傳], 오함 지음,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6.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7. [남조와 북조 - 이중톈 중국사 12](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0.
8. [수당의 정국 - 이중톈 중국사 13](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1.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beatrice1007&logNo=222618206293&navType=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