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 [쌍전(雙典)], 류짜이푸, 임태홍/한순자 옮김, <글항아리>, 2012.
"이 책의 주제는 '쌍전(雙典)', 즉 두 권의 경전에 대한 비판이다. 두 권의 경전이란 중국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소설로 꼽히는 [수호전]과 [삼국지]를 말한다. 여기에서 '비판'이라는 말은 '문화비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며 통상적인 '문학비평'이 아니다.
'문화비판'과 '문학비평'은 그 개념이 서로 다르다. '문학비평'의 대상은 문학작품이다... 한편 '문화비판'은 문학작품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문화적인 인식을 다룬다. 그것은 단지 내용하고만 관련된다... 지금 [수호전]과 [삼국지]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소설들의 핵심적인 가치관과 인식이다...
우리는 [삼국지]와 [수호전]의 재기발랄함과 예술적인 매력에 스며 있는 '독기'와 '피비린내'를 거부할수 있다. 가치관의 측면에서 지적하자면 이 두 걸작은 '대재난의 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폭력을 숭배'하고, 또 한편으로는 '권모술수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 작품이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며 잠재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두 소설은 중국인에게 '지옥의 문'인 것이다."
- [쌍전], 류짜이푸, <들어가는 말>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로 공산당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해외 망명한 중국사회과학원 전 연구원 류짜이푸는 2012년 [쌍전]을 통해 [수호전]과 [삼국지]가 지금껏 중국인들의 정신을 파괴해 왔다며, "문학적으로는 매우 걸출하고 아주 재미있는 두 경전"을 "문화적으로 비판"한다.
간략히 요약하면, [수호전]은 "폭력을 숭배"하고 [삼국지]는 "권모술수를 숭배"하므로, "어려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해 보면, 어려서는 [삼국지] 권모술수의 외피인 다양한 인물군상의 매력을 보고 늙어서는 [수호전]의 폭력에 은폐되어 부각되지 않는 '상생의 철학'을 보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쌍전] 독해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저자 류짜이푸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이룬 '공산당 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으면서 수천 년 중국 역사상 '혁명가'들을 다 똑같은 자들로 본다는 것이다.
"[수호전]은 단지 탐관오리에 반항한 것이며 황제에반항한 것이다... 송강(양산박 두목)은 투항을 하여 수정주의자가 되었다... 고구(탐관오리)와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지주계급 내부에서 한 파가 다른 파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송강은 투항을 했고, 그 후 바로 방랍(북송 말 농민반란의 우두머리)을 쳤다. 이들 농민 의거를 이끈 지도자들은 바람직하지 않게도 투항을 했다. (양산박 부하들인) 이규, 오용, 완소아, 완소오, 완소칠은 훌륭하다. 그들은 투항을 원하지 않았다. 루쉰(노신)은 [수호전]을 잘 평가했다. 그는 말했다. '[수호전]은... 천자에 반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대군이 도착하자 바로 투항을 해버렸다. 그리고 국가를 대신해서 다른 강도들을 쳤다.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하는 강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노예였다.'([삼한집], <부랑배의 변천>)"
- 마오쩌뚱(모택동), 1975. / [쌍전], 류짜이푸, <1부. [수호전] 비판>에서 재인용
'폭력'을 숭배하는 [수호전]의 주인공들은 온갖 살육과 도살의 향연을 펼친다. '흑선풍 이규'는 특유의 쌍도끼로 부자들은 물론 혼외정사 남녀, 심지어 영아도 절단내고는 그 인육까지 구워 먹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 축구만 잘하여 황제의 신임을 산 탐관오리 고구로부터 누명을 쓴 장교 임충, 술에 취해 절간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살인을 일삼는 노지심 등의 인물들은 "지옥의 문"을 지키는 마귀들 자체다. 명나라 말기 시내암이 정리한 소설 [수호전]의 서막에서 수십년 전 홍신이라는 북송 중앙정부 관리가 지역민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판도라처럼 호기심에 열어 버렸다는 '복마지전'이라는 상자로부터 108기의 악마들이 세상에 나온다.
양산박108인 반란자들은 '복마지전'에 갇혀 있던 바로 그 '악마들'인 것이다.
송강이라는 지방말단 관리는 특출한 능력도 없이 '포용력' 하나로 이 악마들의 두목이 되는데, 별명이 '급시우', 즉 '급할 때 내리는 단비'다. 악당들이 급할때 먹여주고 재워주고 같이 도망쳐 주고, 잔머리 대신 굴려서 유명한 호걸들을 속이고는 일부러 위기에 빠뜨려 양산박에 들어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이 송강의 역할이다. 겉으로는 탐관오리에 맞서 민중을 지킨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조직의 이익을 취하면서 결국 '반란군'이 아닌 양산박 '도적떼'에 머문다. 이들은 결코 진승과 오광, 유방과 항우, 이연이나 이밀, 황소, 주원장과 장사성, 이자성 같은 중국 역사상 '농민혁명가'들과 같은 권력의지가 없었으니, 무능했던 북송 마지막 황제 휘종에게 투항하고는 다른 농민혁명인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데 이용당하고 만다. 송강의 최후는 소설과 달리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겠으나 '혁명가'가 아닌 '노예'의 길을 택한 '양산박 108 두령'은 '폭력 숭배'라는 저질의 문화만 후대에 남기게 된다.
비록, 송강의 '정치철학'이 "너는 죽고 나만 살자"는 역대 중국 '혁명가'들의 '이기적 철학'과 달리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상생의 철학'이라고 정리한들, 그 과정에서 [수호전]의 악당들 손에 도륙된 민중, 여성, 아동들의 억울함이 풀릴리는 만무하다.
"유비가 관우를 위해서 보복한다고 하는 그 사건은 '의'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를 폭로했다. 하나는 '의'의 조직 원리와 윤리 원칙이 국가 원칙과 사회 원칙을 능가했을 때, 그것은 반드시 국가와 사회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의'의 근본적인 약점을 폭로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정만을 말하고 이성은 말하지 않으며, 형제간의 윤리만 말하고, 책임 윤리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윤리 도덕과 감정에서 분리되지 못하고 독립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단지 유비 집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에서 일종의 전통 관습이 되었으며, 그것이 수 천 년간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 [쌍전], 류짜이푸, <2부. [삼국지] 비판 - 지옥의 빛>
후한 말기 황건군 농민반란을 진압하고 '십상시' 환관과 외척 무리로부터 한나라 황실을 지키기 위한 전국 군웅할거 시대를 그린 명나라 '민족주의자' 나관중의 [삼국연의], 즉, 속칭 '[삼국지] 이야기'는 류짜이푸에 의하면 온갖 '권모술수'의 백화점이다.
오랜 세월 민중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 온 소설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되 재미를 위해 '초한지' 등의 이야기와 허구를 섞어 극화시키고 있다. 위나라 조조는 찬탈의 역적, 한나라 황실의 후예 유비는 파촉의 구석의 대장노릇으로 끝났으되 한왕조 부활의 영웅으로 그리며, 유비와 제갈량은 '초한지'의 유방과 장량과의 관계 등과 등치된다.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은 "정치적 수완은 있으되 군사적 재능이 부족"했음에도 소설을 통해 장량을 뛰어넘어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충성'과 '의리'의 화신 관우는 어떤 중국인들에게는 이미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난세였기는 하나, 류짜이푸에 의하면 그 시기는 '의리', '지혜' 등의 온갖 '원형(진짜)' 원리가 '위형(가짜)'으로 변질되는 변곡점이다.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건곤일척'의 투쟁에서 승리한 유방이 숙적 항우의 죽음을 예로써 대하는 것이 '원형'이라면, 일례로 오나라 주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량이 숙적이 죽었다며 크게 웃고는 오나라 정세를 탐하기 위해 조문을 가서 거짓으로 곡을 하는 장면은 '위형'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권모술수'로 가득한 [삼국지]는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 정치투쟁의 '3원칙'의 근원이 되는데, 1) '성실성'은 필요 없고, 2) '사당(죽음으로 맺은 조직)'을 결성하며, 3) 상대방에 '먹칠'을 하는 '3원칙'이 그것이다.
"그 소설([삼국지])에 등장하는 생사투쟁의 각 무리는 서로 구호가 다르고 내세운 기치도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이용한 '권모술수'는 대체로 같았다... 위와 같은 '(정치투쟁의) 세 가지 원칙'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정치 집단의 공통된 규칙이었다... 정치에 이렇다 할 '성실성이 필요 없다'는 것은 '지혜의 변질'이다. 죽음으로 뭉치는 '사당을 결성한다'는 것은 '의리의 변질'이며, '상대방에 먹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의 변질'이다."
- [쌍전], 류짜이푸, <2부. [삼국지] 비판 - '역사의 변질'>
[삼국지]를 통해 원래의 '지혜'는 속임수와 사기로 변질된다. [손자병법]에는 모든 군사계략은 '속임수(궤)'라 하나, [삼국지]에서는 병법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관계, 인간관계가 '속임수'고 '사기'다. 그러므로 '배신하면 죽음으로 갚는 사당' 결성이 필수적이며 초반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는 그 증거다. 결국 위나라 조조와의 전쟁에서 촉과 오가 동맹을 맺어야 함에도 요충지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사사로운 정으로 위나라의 조조를 봐주고 오나라 손권을 모욕하며 죽음을 자초했고 이 변질된 '의리'로 뭉친 유비가 무리한 복수전을 벌여 결국 '같은 해에 죽음'을 맞음으로써 부질없는 그 '의리'를 완성하고 만다. 이런 '의리'는 자신의 '사당' 외 어떠한 도덕윤리적, 국가사회적 '의'에는 무관심하기에 결과적으로 일반 민중들에게는 고단함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지]의 '후흑학'은 당대의 '영웅' 조조를 '간웅'으로 규정하고 '먹칠'로 일색하면서 '역사의 변질'을 이루고 있다. '권모술수'와 그릇된 '의리관'으로 역사왜곡까지 감행한다는 것인데, 소설에 대한 비판으로 가혹하다고 볼 것은 없다. 그 걸출한 작품 [삼국지]가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 왔기에 '문학비평'이 아닌 '문화비판'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류짜이푸에 따르면, 이런 [삼국지]는 [수호전]보다 더 해롭다.
마지막으로 이런 '권모술수형 인물'의 전형인 중국 '5대10국' 시대 재상 '풍도'와 관련 인물평을 하나 인용해 보자.
시대와 국경을 떠나 우리 역사에서는 그 전형으로 '전두환 국보위원'과 '박근혜 경제참모'이자 '민주당 대표'를 거쳐 현재 수구보수 선거총책까지 노리는 김종인 같은 자가 있겠다.
"북송 구양수가 지은 [신오대사]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외모는 다르지만 마음 씀씀이는 같은 한 인물을 그려냈다. 즉 다섯 성씨의 아홉 군주를 모시면서 공자처럼 73세까지 살다 죽은 '풍도'였다. 그는 아주 뻔뻔한 성품의 소유자였는데, 정말 허구적인 문학적 이미지와 역사적 사실이 기묘하게 결합된 듯한 인물이었다. 구양수가 <풍도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 것도 당연하다. '염치가 없어서 어느 것이나 다 가지려고 하고, 부끄러움을 몰라서 하지 않은 일이 없다. 사람이 이와 같으면 재난과 변란으로 패망할지라도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하물며 대신이 되어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떤 짓이든 다 하게 되면 천하는 혼란에 빠지고 나라는 망하지 않겠는가? 나는 풍도가 쓴 [장락노서]를 읽어보았는데, 스스로 뻐기는 것을 보았다. 지극히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쌍전], 류짜이푸 - 역사학자 린강의 <서문>
(2020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