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Mar 29. 2020

[십팔사략(十八史略)](13세기) - 증선지

다양한 '아시아'의 역사 중 하나로서 '중국'

다양한 '아시아'의 역사 중 하나로서 '중국'
- [십팔사략], 증선지, 소준섭 편역, <현대지성>, 2018.


"... 진회는 엄청난 고문을 가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악비에게 모반하려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 했으나 악비는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윗옷을 벗어 등을 보였다. 거기에는 '진충보국(盡忠報國 : 모든 정성과 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하리라)'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문신되어 있었다. 악비의 모반죄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회는 단 하나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다만, '그에게... 아마 무언가... 모반죄가 있을 것입니다'라며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남)송나라의 충신 악비 장군은 이렇듯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때 악비의 나이 39세였다."
- 증선지, [십팔사략], <남송시대>

중국의 '정사(正史)'는 17세기 청나라 건륭 연간에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와 진수의 [삼국지] 등 '4사'와 청나라 장정옥의 [명사]까지 이후 기전체 '단대사'들을 포함한 '24사(二十四史)'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특징은 기전체 형식으로 당시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전 왕조의 역사를 당시 왕명에 의해 기술한 역사서라는 것인데, 유일하게 사마천의 [사기]는 '왕명'이 아닌 사마천의 굳은 의지로 '중국 민족'의 주체적 '통사'로서  거대한 '족보' 정리 작업이었고, 나머지 '단대사'는 이전 왕조를 뒤집어 엎고 역성혁명를 했으나 '천자'로서 하늘의 계시를 받은 정통성이 있음을 천명하기 위함이었다.
역성혁명를 통해 새왕조를 열었던 조선의 세종 시기에 김종서, 정인지 등에게 명해 [고려사]를 편찬한 이유도 같다.
청나라 '르네상스' 건륭제가 '이민족' 여진이었음에도 결국 '중국'의 정통성 있는 정권이었음을 애써 과시하기 위해 '정사 24사'를 확정한 것이었다.

'정사'는 아니지만, 13세기 중국에는 [십팔사략(十八史略)]이 있다.
청나라의 선조인 여진족 금나라에 의해 멸망한 북송시대 이후 강남에 자리잡았다가 칭기즈칸의 몽골제국(그 중 원나라)에 의해 멸족된 남송시대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증선지가 이전 18종의 '정사'를 간략히 정리한 역사서다.
나열하면,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 진수의 [삼국지], 방현령의 [진서], 심약의 [송서], 소자현의 [남제서], 요사렴의 [양서]와 [진서], 위수의 [후위서], 이백약의 [북제서], 영호덕분의 [후주서], 위장의 [수서], 이연수의 [남사]와 [북사], 구양수의 [당서]와 [오대사], 탁극탁의 [송사], 이렇게 '고금역대' 18종의 '정사'들을 요약한 것인데, 하나의 왕조를 기록한 것은 '서'로, 남북조 시대나 5대10국 시대처럼 여러 왕조의 기록은 '사'로 이름지었으며, 그 기록자들은 바로 다음 왕조의 저자들이었다.

사마천의 작업 덕택에 증선지도 중국의 시조로서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하면서 각 왕조들의 '약사'를 서술하고 있어 남송시대까지 중국의 전체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수많은 인물군상들이 명멸하는 역사기록이나 [십팔사략]의 클라이막스 또는 '주인공'은 악비 장군일 것이다. 다른 단대사들에서는 볼 수 없겠지만, 사마천의 [사기]의 절정이 '초한전쟁'의 영웅 유방과 항우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증선지는 멸망한 남송을 외세로부터 끝내 지키고자 했던 '한족의 영웅' 악비와 '매국의 간신' 진회를 대비시키고 있다.
'정사'는 아니지만 [삼국지연의]를 지은 원말명초의 '독립투사' 나관중이 '촉한정통 춘추필법'으로 촉한황제 유비를 부각했듯이 말이다.

금나라와 원나라가 유일하게 두려워 했던 악비 장군은 중국인들에게 쉽게 말해 임진정유왜란 시기 왜국이 유일하게 두려워 했던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같다. 악비를 모함해 죽인 추밀부사 진회도 처음부터 간신은 아니었다지만 금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화친파'였고, 악비는 '주전파'였다. 우리의 병자호란 시기 '남한산성 농성'과 같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병자호란에서는 악비 같은 명장이 없다.

결국, 당대에는 간신 진회가 '승리'했지만, 악비의 고향을 비롯한 후세 중국인들에게 진회는 두고두고 모욕을 당하고 있다.

[십팔사략]의 저자 증선지는 남송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가 원세조 쿠빌라이에게 사형당한 충신 문천상의 후배였다고 한다. 선배 문천상은 나라를 위해 의병을 모으고 잡혀가서도 충절을 지키다가 죽었고, 후배 증선지는 원나라 초까지 살아남아 '중국 민족의 통사'를 [십팔사략]으로 정리했다.

우리에게 '십팔사략' 이야기는 [고우영의 십팔사략] 만화로 나오기도 했는데, '편역서'는 2015년에 출간되었다.


"'남선북마'라는 표현이 있다... '중국'은 원래 '가운데 있는 나라'가 아닌 '나라의 가운데'를 의미했다... 중화는 '문화의 중심', 다시 말해 수도권을 말한다... '관동은 상(재상)을 내고, 관서는 장(장군)을 낸다'는 표현이 있다... 중국은 광대하고 사람이나 물건의 경관도 다양하다... 남과 북, 동과 서가 마치 서로를 보완하듯 하나의 완성된 천하를 만드는 것이 이상이었다. 분열의 시대는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 상태에 안주하지 않았다. 항상 통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고 마침내는 달성했다."
- 진순신, [중국 오천년], 1983.

아시아의 역사를 문학적 형태로 표현한 일본 작가 진순신은 [중국사 오천년 1~2]에서 [십팔사략]처럼 삼황오제부터 시작하는 중국의 5천년 전역사를 서술한다. 그는 "1949년 10월 1일 톈안먼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을 선포한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붓을 놓기로 한다"며 긴 이야기를 마치는데, 아마도 현대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맡기기로 한 듯 하다. 하긴, 지금의 중국이 '국가사회주의'인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불과한지, '시장사회주의'라는 별종인지 평가는 불가하다.

진순신에 의하면, 중국은 '중화'라는 '나라 가운데' 문명과 동서남북 사방의 이질적 문화가 오랫동안 함께 어우러진 거대한 복합문화인데, 황하를 중심으로 북쪽은 말을 타고 남쪽은 배를 타며, 함곡관을 기준으로 동쪽은 문인(재상)을, 서쪽은 무인(장군)을 내면서 분열과 통일을 반복해온 역사라는 것이다.
즉,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화주의'의 중국과 동서남북 다양한 문화의 발자취로서 '아시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중국' 또한 다양한 '아시아 역사'의 일부다.

동북쪽에서 말을 달리고 동남쪽에서 해상을 장악했던 우리 요동과 한반도의 역사는 결국, '중국'의 변방이 아니라 '아시아 역사'의 당당한 한 부분인 것이다.

***

1. [십팔사략], 증선지, 소준섭 편역, <현대지성>, 2018.
2. [중국 오천년 1~2], 진순신, 이혁재 옮김, <다락원>, 2002.
3. '최고 수준의 중국 역사문화답사기 시리즈 9권', 진순신 외, <솔출판사>, 2002.


이전 18화 [쌍전(雙典](2010) - 류짜이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