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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14. 2020

[절반의 중국사](2015) - 가오훙레이

세상에 '중심'이란 없다 - '중(中)'국 아닌 중국 이야기

세상에 '중심'이란 없다 - '중(中)'국 아닌 중국 이야기
- [절반의 중국사], 가오훙레이, 김선자 옮김, <메디치>, 2017.


"그(아틸라)가 장악한 흉노제국은 흉노 역사상 최후의, 그리고 가장 찬란했던 한 장을 써내려 갔다. 그는 '이로우면 나아가고 불리하면 물러난다. 도망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는 군사 책략을 발전시켰다. 수십만 군대를 지휘해 사방을 약탈했으며, 그 족적이 유럽 전체에 미쳤다. 441년, 아틸라는 군대를 이끌고 남하해 비잔티움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다가와 해마다 2,100만 파운드의 황금을 바치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다. 그 뿐만 아니라 비잔티움제국은 발칸반도 대부분을 흉노에 양도해야 했다. 447년, 아틸라는 도나우강 유역의 교역시장에서 꼬투리를 잡아 대군을 이끌고 비잔티움제국으로 쳐들어갔다. 70여 개의 성를 공격해 무너뜨렸고, 비잔티움제국의 많은 지역을 유린했다... 이때부터 비잔티움 사람들은 아틸라를 '신의 채찍'이라고 불렀다."
- [절반의 중국사], 가오훙레이, <1장. 흉노>


중국(中國)은 글자 그대로 모든 국가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아시아 문명의 발상지로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라 또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일텐데, 중국의 '동북공정'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오래전부터 '서북공정'으로 진행되어 오는 오만한 민족통합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동북공정'에는 우리 한반도의 오래된 한민족이 고조선 연구로 또는 '요동'을 하나의 역사공동체로서 연구하는 '요동사'의 작업 등으로 대치하고 있으니 차치하고 '서북공정'에 대한 대항논리로 중국 서방의 '오랑캐', 즉 서방의 소수민족 역사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수많은 '오랑캐'의 시작은 중국의 기원전 6~8세기 춘추전국시대부터 등장하는 북방의 집단 '흉노'다.

아득한 시절, '동이족'의 '용산문화'인 은나라를 물리치고 중원을 장악한 서방의 '앙소문화' 주나라는 수도를 서안(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기며 '동주 열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고 자신들을 중심으로 서북쪽의 '견융족'을 견제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국력을 강화시켜 결국 최초의 통일을 이룬 나라가 바로 진시황의 진나라다. 사실 진나라는 '오랑캐 견웅족'과 혼혈된 '오랑캐' 그 자체였겠지만 구분은 모호하고 중국이 통일된 후로는 농경이 가능한 연 강우량 15인치선을 기준(만리장성)으로 '중국인'과 북방 민족의 큰 전선을 긋게 된다.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그 북방민족을 중국인들은 '흉노(匈奴)'라 불렀다. '흉노', 즉 '흉측한 노예'라는 명칭을 북방인 스스로 불렀을 리는 없으나, 흉노의 왕은 '선우(單于)'라 불렀는데 우리의 시조 '단군'의 유래가 '선우'와 비슷한 한자인 '단간(單干)'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로 중국 문화와 크게 구분되는 북방의 거대한 역사문화적 공동체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도 된다.

유목의 흉노는 전국시대 진의 서북부와 연의 동북부를 자주 침범하여 농경 생산물을 약탈하고 도망가기를 반복하였는데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은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수확의 계절보다 건강한말을 타고 흉노족이 노략하러 내려오는 무시무시한계절이었다.


"'중국'이라는 말의 최초 기록은 (주나라) 성왕이 낙읍(뤄양/낙양)을 건설한 것과 관계가 있다... 성왕은 (주)문왕이 천명을 받은 일과 무왕이 상(은)나라를 멸망시킨 일을 회고하면서, 무왕이 하늘에 고하길 '제가 이 중국에 정착해 여기서 백성을 다스리겠습니다'라고 했던 말을 언급한다... '이 중국에 정착하다'라는 무왕의 말에 언급된 중국이 바로 '중국'이라는 용어의 최초 기록이다. 물론 여기서 언급된 중국은 국가 개념이 아니라 '천하의 중심'이라는 의미이며 낙읍, 즉 뤄양(낙양)이 바로 그곳에 해당한다."
-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2장. 뤄양>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중국의 역사에서 강력한 통일제국이 건설되면 다른 소수민족들은 약화되고, 제국이 분열하면 소수민족들이 강성하여 대륙을 분할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왔다. 삼국지의 무대 후한 시기 잠시 집권한 동탁과 여포도 사실 서쪽 오랑캐인 강족 일파로 추정되는데 서방 양주 출신 동탁이 한나라 수도 낙양을 불태우고 서쪽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한 일, 조조가 원소를 소탕하며 원소를 도운 동북의 오환족을 멸망시킨 이야기, 사마염의 진나라가 '팔왕의 난'으로 무너지는 과정에서 전개된 '5호 16국' 시대, 즉 흉노, 갈, 선비, 저, 강족의 다섯 '호(胡;오랑캐)'의 16개 단명정권 시대를 통해 중국의 문화가 더욱 다양하고 찬란하게 채워졌음은 이미 다수설이다. 유방의 한나라 또는 사마염의 진나라를 끝으로 이후 중국의 통일정권은 모두 이민족(선비족의 수나라)또는 그 혼혈정권(선비족과 한족 혼혈 당나라)이었으니 '순수한 중국 민족'은 없다.

최초의 '오랑캐' 흉노족은 한무제에 의해 서방으로 더 밀려나며 5세기경 '신의 채찍' 아틸라는 서쪽 유럽의 비잔티움제국(동로마)은 물론 서로마까지 진출하는데, '신의 채찍'은 기독교적 프랑크인(동고트족 등의 유럽인)들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인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죄를 많이 지은 자신들에게 신이 채찍을 내려 교훈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지은 별칭이었다. 말을 타고 약탈하고 도망가다가 갑자기 말 위에서 등을 돌려 활을 쏘아 반격하는 유목인의 기동전은 이후 몽골족 칭기즈칸 대제국의 기본동력이었고, 말 잘 타고 활 잘 쏘는 요동의 '예맥족' 고구려인의 모습과도 같다.

흉노 이후 동북쪽의 '오랑캐', '동호족'은 지역 각 민족과 문화의 활발한 결합과 확장을 통해 오환족, 선비족, 거란족 등으로 대륙을 분할했고 아예 '숙신족' 여진은 금나라는 물론 청나라(후금)로서 중국 황제국의 마지막 역사를 장식했다.
서북방의 '원조 오랑캐', '흉노족'은 유라시아와 중근동 각 지역의 민족인 스키타이족 등과 섞이며 에프탈족, 마자르족 등의 모습으로 유라시아와 동유럽을 분할했다. 헝가리 제국을 세운 '훈족'의 조상이 '흉노족'이라는 역사적 증거는 찾기 힘들다지만, '중국' 중심에서 밀려난 아득한 거대 민족들이 전 세계를 유목하듯 누비며 열어젖힌 다양한 문화의 힘은 세계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가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게 효율적인 체제"로 꼽는 '제국'의 역사를 강조하며 "매번 전투에서 지면서도 전쟁에서 결국 이기면서 버티고 유지하는" '제국'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제국'이 기록한 역사에서 밀려나고 지도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소수 민족들은 알렉산더나 칭기즈칸, 나폴레옹 못지 않게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하는 윤활유였다.

그 민족 자체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여 스스로의 이름도 없이 명멸해 가며 중국 역사서를 통해 이름지어진 수많은 민족들의 역사는, 오만한 '중심'으로서의  '중(中)'국 아닌 중국 이야기를 펼치면서 '전통 중국사'를 '절반의 중국사'로 만든다.

우리 자체의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며 지금껏 잘 살아온 우리 민족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역사를 배운 식민사관의 대부 이병도 무리의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시,
세상에는 '중심'이란 없다.

(2020년 3월 13일)

***

1. [절반의 중국사], 가오훙레이, 김선자 옮김, <메디치>, 2017.
2.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도현신, <서해문집>, 2013.
3.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메디치>, 2018.
4. [삼국지 해제], 장정일/김운회/서동훈, <김영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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