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탐험가들'인가, '제국주의 첨병들'인가
'위대한 탐험가들'인가, '제국주의 첨병들'인가
-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 홉커크, 김영종 옮김, <사계절>, 2000.
"예수가 태어나기 1세기 전, (중국 한무제 시기) 장건이라는 이름의 모험심 많은 중국의 한 젊은이가 비밀 임무를 띠고 당시로서는 멀고도 신비스러운 서역으로 출발하였다. 비록 그의 목적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은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여행이 되었다. 그 까닭은 중국이 유럽을 발견하고 또 실크로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여행가'는 황제로부터 대단히 명예로운 벼슬을 하사받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셈이었고, 이는 당시 두 강대국인 중국과 로마를 잇는 결과를 낳았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 홉커크, <1장. 실크로드의 성쇠>
돈황 막고굴은 중국 서쪽 장안과 함양을 지나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 사이에 있는 '천불동'으로 유명한데, 중국 문화의 다양성을 꽃피운 4~5세기 '5호16국 시대'에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북위, 전진 등의 저, 강, 선비족 소수민족 정권부터 '혼혈정권'인 당나라 시대까지 이어지며 수많은 석굴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역시 소수민족들의 활발한 교류와 문화적 유연성으로 동서 문화가 접목되는 지점이다. 또한 '제국'의 역사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말하고자 하는 '제국'은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레닌, [제국주의론], 1916.)"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을 시작하던 그 시기의 특정 체제였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74
돈황 막고굴에서 수많은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북방의 차르 제국 러시아가 제일 먼저 들었고 지질학자 오브루체프를 보내 돈황 고문서를 발견한중국인 왕원록 도사를 통해 일부 입수하지만 그 가치를 몰랐다. 지질학자이니 당연히 몰랐을 것인데, 당시 식민지 영토 확장이 주목표인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지도의 구체적 확정을 위해 지리학자, 지질학자, 지도제작자를 오지로 파견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 탐험의 선구자는 스웨덴 출신 지리학자 스벤 헤딘이다. 1899년에 헤딘은 중국 고대 국경도시였다가 이민족에게 넘어간 도시 '누란'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 최초의 '제국주의' 탐험가였다. 고대 불교 유적과 당시 사람들의 기록 등 소중한 유물들을 발견했음은 물론이고 왜소한 체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가차없이 탐험에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는 과연 최고였다고 칭송받지만, 정치적으로는 결국 독일 제국주의 편에 선 '제국주의자'였다. 스벤 헤딘은 유럽 제국주의 탐험가의 시조다.
"일찍이 헝가리 지리학자 로치 라요시한테서 돈황의 장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스타인은, 그곳을 발굴하거나 걸작의 벽화를 뜯어올 계획이 없었던 당시에도, 거기에 가보는 것이 오랫동안의 꿈이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12장. 돈황 - 숨겨진 고대의 서고>
이제 '제국주의' 국가들은 지리학자들을 철수시켰고, '동양학자'들을 파견한다. 독일의 폰 르코크,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대표적인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돈황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스타인이다. 헝가리 출신 동양학자 스타인은 헝가리어, 영어, 독어, 불어는 물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산스크리트어에 능했으나 정작 중국어를 몰라 왕도사와 돈황 고문서를 거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수차례 원정을 통해 많은 고문서를 영국으로 가져갔는데 헝가리 출신인 스타인의 조상이 흉노를 연상시키는 훈족이라 동방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도 한다.
"촛불 하나만을 밝힌 채, 스타인이 필사본을 가져감으로써 생긴 비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펠리오는 먼지투성이의 꾸러미들을 뒤지면서 길고 숨막히는 3주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처음 열흘 간은 하루에 거의 1천 개의 두루마리를 공략했다...' 그는 자신을 경주용 차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서지학자라고...비유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13장. 펠리오 - 품위 있게 적을 만드는 기술>
결과는 그렇지 않았으나, 스타인이 돈황에 처음 갈 때만 해도 유물 약탈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프랑스 서지학자 폴 펠리오는 대놓고 고문서 유출을 위해 그곳으로 갔다. 사마천의 [사기]를 처음으로 불어로 번역한 에두아르 샤반의 제자이며 13개 국어에 능하고 특히 동남아와 북경에도 거주하면서 중국어도 능통한 데다가 사교성도 좋아 [실크로드의 악마]에서 '품위 있게 적을 만드는 기술'을 지녔다는 천재학자. 이전 선배들이 고문서들을 닥치는 대로 가져갔다면, 이 프랑스 천재 서지학자는 지식을 토대로 고문서들을 분류하여 영리하게 유럽으로 들여와 전시회까지 연다. 불세출의 천재학자 또한 업적 욕심에 '제국주의'를 비껴가지 못한다.
"... (랭던) 워너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벽화가 있는 동굴로 들어갔고, 먹을 때와 잠잘 때만 빼놓고 거기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것들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왜 대양과 두 대륙을 건너고, 또 몇 달 동안을 수레 옆에서 지친 몸을 끌고 걸어왔는가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연대를 비정하고, 교수들의 기존 이론을 보기 좋게 논박하고, 미술사의 영향들을 발견하기 위해 온 내가, 그저 두 손을 호주머니에 쑤셔넣은 채 석굴 사원의 한복판에 서서 생각을 가다듬어 보려고 애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15장. 랭던 워너가 위업에 도전하다>
펠리오가 왕도사를 속여 몇 차례 수탈해 간 다음, 미국에서는 동양미술사학자 랭던 워너가 온다. 그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모티브가 된 탐험가로 하버드대학 박물관 소속이었다. 그가 목숨걸고 돈황까지 온 이유는 불교벽화와 조상들을 훔쳐가기 위해서였다. 불굴의 이 미국인은 고대 예술품들을 훼손시키면서까지 닥치는 대로 미국으로 반출했다. 결국 워너는 중국 정부로부터 추방되었고 폴 펠리오와 '합동 약탈작전'까지 계획하는 등 여러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중국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영화의 탐험가 교수와 달리 정의나 양심 따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탐험대를 파견한 오타니 백작은 '정토진종' 본파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부친의 죽음으로 물려받은... 종파의 지도자로 취임하기 위해 귀국할 때까지 그는 장시간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보냈다... 그는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회원이었다... 종무를 맡은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자기가 중앙아시아에 파견한 탐험대들의 사진과 간략한 기사를 학회에 보냈다... (오타니의) 두 권의 정치적 문제에 관한 저작-하나는 중국, 또 하나는 만주에 관한 것-이 있다... 물론 이것은 스파이 우두머리로서 정교한 위장이었을 수도 있다."
- [실크로드의 악마들], <14장. 실크로드의 스파이들>
랭던 워너의 약탈 이후 중국 정부는 돈황을 봉쇄하고 중국 화가 장대천, 상서홍, 조선 출신 화가 한락연 등이 돈황벽화 보존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는데, 1900년대 초반에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제국주의'가 거세게 밀려올 때 타클라마칸 주변에 정체모를 '일본 스파이들'이 암약하고 있었다. 이들 '스파이들'의 대장은 오타니 고즈이. 일본 불교의 한 일파인 서본원사 정토진종 본파의 세습교주로 권세가인 공작의 딸과 혼인하여 백작이 되었으며 수 차례 '오타니 탐험대'를 중앙아시아로 파견하여 파산까지 이르러 '오타니 컬렉션'은 뿔뿔이 흩어진다. 학자도 아닌 다치바나 즈이초라는 젊은 승려를 탐험대장으로 한 원정은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눈에 신비롭고 의아했을 것이며, 결국 피터 홉커크는 [실크로드의 악마들]에서 일본 '오타니 탐험대'를 '실크로드의 스파이들'이라고 규정한다. 동양을 배척하는 서양 '제국주의자'의 시각일 수도 있겠으나,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대륙 공략을 위한 첩자질은 명확해 보인다.
유럽 '제국주의'들은 '악마'였고, 일본 '제국주의'는 '스파이'에 불과했다.
19~20세기에 유럽 '제국주의'가 탐험가들을 파견했다면, 고대에는 중국의 한나라의 탐험가 장건이 있었고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있었으며 우리 신라 승려 혜초가 있었다. 장건은 한무제에게 서역의 문화와 흉노의 기마력에 맞서는 '천마'의 군사력을 전했고, 현장은 '서유기'의 '삼장법사'로서 불교경전 원본을 전하면서 오렐 스타인이 가장 존경하는 탐험가였으며, 신라의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으로 중국의 승려들을 거꾸려뜨렸다.
피터 홉커크는 서양 탐험가들의 흥미로운 기록의 제목을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 지었다. 그러나 이는 동양인의 입장에서 부른 '양귀자' 또는 '서양 귀신들(Foreign Devils)'을 번역한 것일 뿐, '제국주의'의 '악마성'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만약 서양의 약탈이 없었으면 과연 방치되어 있던 그 유물들이 제대로 보존되었을 것인가'라는 우문은 '역사의 가정'이라는 부질없는 전제를 깔고 있으니, '만일 박정희 아니었으면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했을까' 같은 하나마나 한 질문에 불과하다.
선구적 탐험가들과 학자들의 불굴의 정신과 신비한 행적은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결국, 식민지 분할전쟁 과정에서 '문화약탈'이라는 20세기초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 '제국주의'의 '악마성'만이 짙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20년 3월 14일)
https://brunch.co.kr/@beatrice1007/226
***
1.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 홉커크, 김영종 옮김, <사계절>, 2000.
2.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중국편 1,2], 유홍준, <창비>, 2019.
3. [돈황 이야기], 마쓰오카 유즈루, 박세욱/조경숙 옮김, <연암서가>,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