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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26. 2021

[위진남북조-수당의 정국] - 이중톈

이중톈의 전공, '제2제국'

이중톈의 전공, '제2제국'

- [위진풍도] / [남조와 북조] / [수당의 정국]





"제1제국인 진한은 441년이고 제2제국인 수당은 326년이며 제3제국인 송원은 416년, 제4제국인 명청은 543년이다. 그 밖의 369년은 분류가 불가능해 별도로 취급할 수 밖에 없다.

그 369년은 바로 위진남북조다."

- [수당의 정국], <1장. 수양제>, 이중톈, 2015.



2006년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CCTV)의 인문강연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한나라 시대의 풍운아들'이라는 주제로 인기를 끌고는 이를 [삼국지를 품평하다(品三国)/국역:삼국지 강의/2007)]라는 책으로 펴내 '삼국지 르네상스'를 이끈 '중국 최고 인기 역사고전해설가' 이중톈(이중텐:易中天)은 2013년 5월부터 '이중톈의 중국사'를 집필하고 있단다. 순환을 의미하는 '완전한 수'인 '3'의 배수를 좋아하는 중국인답게 총 6부작에 각 부 6권의 시리즈로서 중국 '삼황오제'의 '선조'부터 등소평 시대까지 총 '36권(6부X6권)'으로 계획되었는데, 6가지 계략당 각 6가지 계책으로 구성된 '36계'가 연상된다. '6X6=36'이나 '9X9=81' 또는 손오공의 '일흔두(3X24=72)가지 도술' 따위 민간에 떠도는 숱한 '3'의 배수들은 사실 구체적 숫자가 아니라 "무한히 많다"는 뜻이다. 아무튼 방송이나 강연을 통한 '무한한' 돈벌이를 포기하고 시골에 틀어박혀 집필에 전념하는 이중톈은 '분기당 2권 출간'의 애초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지만 2018년 현재 중국에서는 20권 정도 냈다고 한다. 우리는 2021년 현재 13권 [수당의 정국]까지 번역되어 나왔다.

1947년생으로 일흔이 넘은 유명 역사학자 이중톈은 '돈벌이'는 포기했지만 추리소설을 틈틈이 읽는 것은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의 특이한 '중국사' 글쓰기의 특징은 "간결하고 단순한 문체", 그리고 "추리소설과 시나리오 기법"이다. [사기], [한서], [삼국지], [진서], [당서], [자치통감] 등의 문헌이나 문물 고증을 통해 '역사서'로서 당연히도 엄밀하고 사실적인 서술을 지향하지만 역사의 순서를 설명하느라 사실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논문이 아니므로 모든 것을 담기 위해 모든 역사적 사료들을 늘어놓고 분류하지 않는다. 내가 읽기로는 일종의 '문화사'로 그 시대의 특징을 정의하려는 목표로 수렴하기 위해 '추리소설'이나 '시나리오'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그러므로 독자는 둘 중 하나일 테다.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이미 알고 있든지, 그런 사소한 일들은 관심없고 각 시대의 특징만 파악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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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학자인 이중톈의 전공은 '위진남북조와 수당의 역사문화'라고 한다. 중국사는 사마천 [사기]로 방향을 잡고 진수의 [삼국지]와 증선지의 [십팔사략]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나는, 이중톈의 중국사 시리즈를 읽을 마음은 없었다. 다만 [삼국지 강의]로 역사 '르네상스'를 '재부흥'시켰던 그가 본인의 '전공'에 해당되는 시기의 이야기들은 과연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 시작은 [위진풍도(魏晉風度)]다.


그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진시황 통일 전 춘추전국 시대까지의 '방국시대' 즉 지방국가 또는 열국의 시대와 진한부터 명청까지 통일왕조의 '제국시대'와 신해혁명 이후의 '공화국시대'로 크게 구분한다. 약 2천년을 아우르는 '제국시대'는 또 다시 1~4제국으로 나뉘는데, 진나라와 한나라는 '제1제국', 수나라와 당나라는 '제2제국', 송나라와 원나라는 '제3제국', 명나라와 청나라는 '제4제국'이다. 이 중 이중톈의 전공은 '제2제국' 수-당 시대에 해당되는데, 이를 예고하는 시기가 '오호십육국'과 '위진남북조' 시대이며, 이 시대를 설명하는 문화적 풍류가 바로 '위진풍도'인 것이다.





"춘추전국의 결과로 첫 번째 제국('제1제국'), 즉 진한과 한나라 문명이 탄생했다. 위진남북조의 결과는 두 번째 제국('제2제국' 수당)과 당나라 문명의 탄생이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두 문명을 비교하여 위진은 춘추에 해당하고 남북조는 전국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주나라의 착오는 제도... 한나라의 골칫거리는 문화... 그래서 춘추전국 이후에 탄생한 것은 새 제도였고, 위진남북조 이후에 탄생한 것은 새 문화였다. 한나라 문명과 비교하여 당나라 문명은 한층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췄으며 유교숭배도 유, 불, 도의 삼교합류로 바뀌었다. 물론 국가적 사상과 주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학이었다.

이것이 바로 위진남북조의 역할이었다."

- [위진풍도], <5장. 가치관>, 이중톈, 2015.



후한 말기 '삼국지' 난세를 거쳐 사마의 집안이 치밀한 준비를 통해 창업한 () 중앙집권의 군현제를 정착시킨 진한 '1제국' 업적을 뒤집어 다시금 사마씨 왕자들에게 분봉을 하는 '봉건제' 채택함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데, 진무제 사마염의 할아버지 사마의라는 인물 자체가 '국가' '공공성'보다는 가문의 생존을 우선시했던 '() 집단' 기원이었다. 이들 사마씨 왕자들은 황권을 두고 서로 죽고 죽이는 '팔왕의 ' 거쳐 이들에 기생하는 '사족'들을 낳았고 반란의 전투력은 사방의 이민족 '용병'들의 군사적 응집을 도왔으며 결국 북방의 '대기근'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4세기에 북방 유목민들이 서방의 지중해와 중앙의 '중간 지대'  동방의 '중원'으로 비슷한 시기에 대거 이동할 , 동아시아의 남쪽으로 쫓기면서 '패수' 아래 강남지방에 '사족 집단' 중심이 되는 중국의 '남조' 이어간다. 장안과 낙양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중원'으로서 북쪽은 이후로  한세기 넘게 흉노, , , , 선비족의 '다섯 오랑캐(5)' 16'(이중톈은 '18') 번갈아 세우다가 결국 선비족의 '북위' 통일하고, 사마씨의 '서진' 망하고 '사족'들과 달아나 자리잡은 남쪽에서는 동진-유송-남제--() 단명왕조와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가  한세기 이상 지속된다.  당시 정착화되려는 유목민족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북쪽 절반을 갱신해간 한편, 무능과 사치향락의 극치를 보여주던 강남의 '사족'들은 술과 약물, 고담준론과 시로 세월을 보내며 '위진남북조' 문화를 형성했는데, 당대의 잘생긴 '사족' 출신 귀족 남성들은 기존의 '남성적' 영웅호걸의 이미지와는 달리 화장을 하고 '여성화' 연약하거나 혹은 병약한 스타일로 연예인 못지 않은 유행을 선도했단다. 원래 풍체가 당당했던 제갈량이 잘생긴 미남에 하얀 피부를 지닌 것으로 묘사된 [삼국지연의] 문학적 표현은 아마도 이런 '위진풍도'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전통 유학에서는 불길하게 여겼을 귀신을 부르는 '휘파람' 또한 '위진풍도' 유행  하나였는데 이중톈은  원조로서 와룡시절의 제갈량도 한가로이 무릎을 안고 앉아 '휘파람' 길게 불었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조의 '사족(士族)'들은 지위는 높으나   있는 일은 없었고 실질적인 실무를 맡은 한단계 아래 '서족(庶族)'들이 실력과 신망을 쌓아 남조의 새로운 왕조를 거듭 개창하였으나 귀족적이고 사치한 강남 '사족' 중심의 '풍도' 지배당해 결국 북쪽을 완전 통일한 '선비화된 한족' 수문제 양견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이데올로기는 유교가 주가 되고 불교와 도교를 함께 받아들이는 형태가 돼야 했다...

북주 무제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다른 이들도 틀리지는 않았다. 사실 (북위) 태무제가 도교를 신봉한 것도, 양 무제가 불문에 귀의한 것도, 그리고 북주 무제가 유학을 추종한 것도 모두 미래에 삼교(유-불-도)가 합류해 장기간 공존하게 되는 것에 대한 준비였다. 그 세 황제는 모두 열린 마음과 긴 안목을 가진 채 자신이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 괘념치 않았고 심지어 민족의 이익에 위배되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했다. 그래서 수문제 양견이 다시 한족 성으로 돌아와 불교를 믿기 시작했을 때 더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새 문명이 도래했다."

- [남조와 북조], <5장. 새 문명의 재창조>, 이중톈, 2015.



이중톈의 표현에 의하면 '기생충'이나 '암세포'와 같은 '사족'들의 '풍류'가 만연하던 '위진풍도'의 "혼란과 분열은 새로운 조합을 의미할 뿐이며 그 조합의 전제는 융합([위진풍도], <5장>)"이라면서, 이중톈은 '남북조'로의 필연적 이행을 말한다. '5호16국'의 '혼란'과 '분열'은 사실상 중국 문명의 업그레이드 전환기였고 통일제국을 향한 남조와 북조의 끊임없는 노력은 기왕에 '중원'에 국한되어 있던 '제1제국'의 시야를 넓혔다. 강남 지역은 '삼국지' 손권의 오나라의 중흥에도 불구하고 중원에서 보기에 '오랑캐'의 땅이었으나 '위진풍도' 덕분에 비로소 '문화'적으로 개화되었고 '오랑캐'에게 빼앗긴 북방의 '중원'은 열심히 '혼혈(hybrid)'을 거듭했다. 이중톈은 "남북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 문화도 없다([남조와 북조])"고 말한다. 북조는 결국 선비족의 승리로 탁발(척발)씨의 '북위'가 통일했다. 태무제 탁발도는 도교를 기반으로 유교와 불교를 융합하기도 했으나 불교를 중시하던 태자 탁발황 세력과 대립하며 불교를 금지하는 '대법난(446년)'을 일으키기도 했고, 남조 양나라의 무제는 불자를 자처하며 공자와 노자(신선)를 부처의 제자로 만들려고 했다지만 결국 이데올로기적으로 유-불-도의 '삼교' 융합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적극 시도된 것 또한 '위진풍도'라 할 수 있겠다.


탁발씨의 북위가 선비화된 한족 고씨의 동위와 한족화된 선비족 우문씨의 서위로 또 다시 분열되었을 때 동위는 북제로, 서위는 북주로 이어졌고 문명화가 다소 늦었던 북주의 무제가 유교를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를 융합한 지배이데올로기 정립과 국가제도의 혁신을 통해 북방 재통일의 기반을 다지다가 죽고, 그의 사위인 선비족 이름 '보륙가 나라연'이 자신의 한족 성을 되찾아 '양견'이 되었을 때는 이미 선비족을 위시한 '5호'와 한족의 '혼혈'이 한창 때였을 것이다. 북주-북제-남진의 '삼국시대'를 잠시 거쳐 수문제 양견이 중국을 다시 통일했을 때 중국은 '제1제국' 당시의 중국이 아니었다. 연간 등강수량 800밀리미터 기준선인 회하와 진령의 '북위 33도'는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선이라는데, 이를 넘어 남진을 멸한 수나라의 대원수는 수문제의 둘째아들인 스무살 양광, 즉 훗날의 수양제였다. 그는 남조 진나라 마지막 황제 진숙보를 폐하면서 혼폭의 군주라는 뜻의 '양(煬)'이라 불렀다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이 후대인 당나라에 의해 '수 양(煬)제'로 불리게 된다.


대운하를 파고 무리한 순행과 원정을 일삼으며 고구려를 계속 점령하려다가 멸망한 수나라는 수문제 양견의 '개황' 치세에는 중국 역사  어느 때보다 부유했고 빠르게 전란을 딛고 안정을 찾았다. 수양제는 아버지를 죽이고 태자 자리를 빼앗아 황제가 되었다는 의혹을 계속 받았고 사치와 향락, 무리한 정벌로 수나라를 망하게  '혼폭' 군주 '()' 되었으나 기실 당나라 '정관의 ' 열었다는 당태종은 그의 판박이였다. 그들 둘은 '쿠데타' 통해 황제가 되었고 고구려 정벌을 무리하게 시도한 점이 똑같았다. 그들의 쿠데타는 기존 황태자의 기반이었던 '관농(관중-농서) 세력' 반발한 새로운 세력의 정치 노선투쟁이었다. 남진을 멸하고 강남 출신 배우자를 얻은 수양제는 기존 장안 일대를 중심으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과 투쟁하여 승리했고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완성하여 중국 대륙내 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지속된 원정으로 수도인 장안 세력의 지지가 취약했던 당태종 이세민은 역시 기득권 세력인 황태자 이건성을 비롯한 형제들을 죽이고는 지역적 '패도(霸道)' 아닌 전국적 '왕도(王道)' 실현한다면서 위징과 함께 '정관의 ' 연다. 이들은 또한 수도 장안 못지 않게 낙양을 재개발한 공통점도 있다. 수양제를 빼닮은 당태종은  나아가 서쪽의 돌궐을 장악하여 '천카간' 명예를 얻고 당나라의 문화적 영토를 서역까지 넓히면서 '실크로드' 장악했다. 물론 동쪽의 고구려 원정은 수나라처럼 실패하였으나 결국 후대에 이르러 고구려에 대한 '원한' 풀고야 말지만  당나라 '제국' 지역적 영토를 넓히자 마자 얼마   '안사(안록산-사사명) '이라는 내분으로 무너지는 역사의 경향적 '법칙' 재차 증명한다.

수양제 양광이 없었다면 당태종 이세민도 없었다는 게 이중톈의 시각이다. 다만, 수양제와 당태종의 결정적 차이는 양제에게 민중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반면, 수나라 말기 '반란'으로 일어섰고 현무문의 '쿠데타'로 등극한 당태종은 민중들의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하는 '인의'의 '왕도'를 지향했던 점이었다.





"당나라인... 그들은 우세했고 우월했지만 우월감은 없었다... 문명은 사유재산이 아니고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실로 '대국의 풍모'였다.

이제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농업제국은 원래 확장성이 있었으며 수당은 또 혼혈왕조인데다 중국 문화의 우세까지 겸하여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세계성을 띤 문명을 창조해낸 3대 원인이었다. 비잔틴, 아랍과 함께 3대 제국이 되기에 충분했다."

- [수당의 정국], <5장. 세계 제국>, 이중톈, 2015.



이중톈의 '제2제국' 수-당 시대는 '위진풍도'에 기반한 혼혈과 융합, 남북조의 확장과 소통에 기반한 '세계 제국'이었다.

당나라는 사방을 아우르고 포용하는 당대의 '대국'으로서 이곳을 중심으로 융합되고 발전한 문화가 각 지역으로 이륙하는 "문화의 항공모함"([수당의 정국], <5장>)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70대의 역사학자로서 '마지막 사명'과 같은 중국사 집필의 목적지가 '하나의 중국'이겠거니 생각하면 뭐 특별하달 것은 없겠다. 다만, 수당 시대의 '3성6부'의 중앙집권 정부 제도의 정착과 찰거와 천거 등 오래된 관리 선발제도와 차별된 과거 시험 도입 등의 제도적 역할, '한족 우위'의 신화를 벗어나 '혼혈(hybrid)'을 거쳐서야 한단계 문명이 진보할 수 있었다는 계보학적 관점은 수긍할 만 하다. 서방의 고대 로마나 당나라, 현대의 미국과 같은 '세계 제국'의 공통점일 수도 있겠는데, 이중톈은 중국 한나라와 동서로마, 당나라와 비잔틴 동로마 등을 지속적으로 비교하며 나름의 세계사적 '역사법칙'을 증명하기도 한다.



중국인 이중톈의 '중국사' 중 '제2제국' 이전 이야기들은 별로 읽고 싶지는 않다. 그의 문체가 재미있기는 해도 굳이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선상에서 펼쳐질 그들 선조들 얘기를 읽을 필요성은 못 느낀다. 또한 "황제 아래 만민이 평등"하므로 "제국에는 계급이 없다"는 식의 이중톈의 관점은 인류 역사에서 '제국'이 가장 합리적인 체제였다는 식으로 보는 유발 하라리 같은 시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왕이 없는 '공화국'의 정치체제를 가장 선호하는 나는 '제국'의 긍정성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하여 이중톈의 '제2제국'을 들여다 보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간결한 문체와 추리소설 기법"으로 재생되는 역사는 그 자체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


1.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2. [남조와 북조 - 이중톈 중국사 12](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0.

3. [수당의 정국 - 이중톈 중국사 13](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1.

4. [삼국지강의(品三国)](2006), 이중톈,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 [빛나는 세계 제국 : 수당시대], 게가사와 야스노리(氣賀澤保規), 2014.

: 이중톈이 [수당의 정국]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는 일본 메이지대 동아시아 석각문물연구소장 게가사와 야스노리의 위 책은 국내 번역되면 읽어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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