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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10. 2021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7) - 친타오

승시순변(乘時順變)의 승자, 사마의(司馬懿)

승시순변(乘時順變) 승자, 사마의(司馬懿)

-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7), 친타오, 박소정 옮김, <더봄>, 2018.





"... 사마의의 인생은 수렴하는 방식이다. 사마의는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자기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경험과 교훈을 차곡차곡 모았다. 눈덩이를 굴리듯이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경험과 교훈이 쌓이게 된 것이다."

- [결국 이기는, 사마의], <서장>, 친타오.



2021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5년 전 '촛불항쟁'으로 역사의 쓰레기통에나 처박힐 수구반동세력의 부활로 끝났다. '선거'나 투표' 같은 '대리주의' 정치는 부차적이다. 역사는 오만한 권력자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난 다수 민중의 대중반란이 주요 동력이니 민주당이든 수구정당이든 거대 양당 기득권동맹은 서로 자리 바꾸기나 반복하다가 결국 대중반란으로 질적 쇄신을 겪는다. 지금의 '민주정부'가 30년전 '문민정부'보다 조금이라도 낫다면, 그건 민중반란의 힘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양당정치' 따위가 아니라, '20대 개새끼론'을 극복하는 '세대' 간 연대의 문제가 놓여 있다.



기원후 180년대 중국 후한(後漢) 말기를 깨우친 사건은 다수 민중이 일어난 '황건농민반란'이었다. 이후 위-촉-오 삼국 정립을 거쳐 사마염이 전국을 통일하고 진(晉)나라를 세우기까지 100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삼국지'다. '삼국지'의 승자는 조조도, 유비도, 가장 오래 산 손권도 아니었다. 최후의 승자는 동오의 손권보다 한 해 먼저 죽은 73세의 노인이었다. 바로 '서진'을 창립한 사마(司馬)씨 가문의 사마의(司馬懿:179~251)였는데, 그가 진무제 사마염의 할아버지다.





"[진서]를 보면 사마의 형제가 '한나라 말기의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글공부를 쉬지 않았다'고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의 성공비결이다... '오경' 중에서 사마의가 즐겨 읽은 책은 추측해 보자면 [역경]과 [춘추]를 꼽을 수 있겠다. [역경]에는 천지의 지혜가 포함되어 있어 우주 균형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춘추]는 정치와 군사교재에 가깝다... 사마의는 '현명한 사람이면 기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경솔하게 움직이거나,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 가만히 앉아 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조조에게 간언했는데, 이는 바로 [역경]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역경]에 나오는 '승시순변(乘時順變)'의 사유방식은 사마의가 기회를 잡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며 사마의의 일생에 영향을 주었다."

- [결국 이기는, 사마의], <1장. 잠룡물용>, 친타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24



유한한 능력의 인간은 완벽할  없다. 100 쟁투를 끝낸 승자인 사마의는 지략이나 군사력 등의 재능과 정치력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으나 겸손했고 인내심은 갑이었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을 끈질기게 기용한 주군이었던 조조를 한없이 우려르며 존경했지만 위나라 조씨 3대를 지나 결국  가문을 멸족시켰으며, '한나라 부흥' 이데올로기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진지하기 그지 없는 촉한의 제갈량과 대치만 하면서도 거꾸러뜨렸다. 삼국지 최고의 지략가 제갈량이라는 외부의 강적이 사라진  '무적' 사마의에게는 내부 정치투쟁을 통한 '혁명' 또는 '쿠데타'  밖에 없었다.

사마의 최대 라이벌 '죽은 (제갈)공명'은 여전히 '산 (사마)중달'에게 '평상심'을 단련케 했다.

역시, '최고의 책사'로서 사마의 최강의 덕목은 '중국 최고의 책사' 장량(장자방)처럼 '참을성' '인내심', 그리고 '평상심'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93



중국의 법사학자 친타오는 2017 '권모술수' '후흑학' 대가로까지 평가되는 사마의 평전의 '완결판' 냈다.    권이면 사마의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광고가 기억나지만, 기존 '처세' 치우친   사마의 이야기가 아닌 소설 형식으로 지어진 '사마의 평전'이다. 사마의 최고의 적수 제갈량 뿐만 아니라 주군 조조 마저도  '평전' 조연이다.

목차는 [주역]의 제1괘 '중천건(重天乾)' 괘의 각 효에 관한 설명을 대부분 빗대어 구성된다. 중천건은 "건(乾)'은 크고(元) 형통하고(亨) 이롭고(利) 바르니라(貞)"는 대전제로 아래로부터 위까지 6개의 각 효(-)를 '잠룡물용(潛龍勿用)', 현룡재전(見龍在田)', 종일건건(終日乾乾)', 혹약재연(或躍在淵)', 비룡재천(飛龍在天), '항룡유회(亢龍有悔)'의 단계로 설명한다. 물 아래 용은 쓰임이 없으나 땅위로 나타난 용이 씩씩해지면서 연못을 찾아 도약하면 언젠가 하늘을 나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물론 [주역]은 '변화의 경전'이므로 '종일건건'과 '비룡재천'만 할 수 없다. 결국 양효(-)가 음효(--)로 전환하는 맹아로서 '항룡유회' 즉 전성기를 거친 용이 아쉬움을 꼭 남긴다. 이로써 '중천건' 괘는 '음효(--)'로 이루진 '중지곤' 괘로 넘어간다.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가 기틀을 다져 고조(선제)로 추존되는 통일정권 진나라는 건국하자마자 10여 년 후 '팔왕의 난'으로 쇠락하며 중국 역사 최초의 다양한 문명 충돌의 시기인 '5호16국' 시대를 연다.



'최후의 승자'였으나 한 인간에 불과했던 사마의 또한 완벽할 수 없다. 그는 먼저 조조에게 출사한 일곱살 위 큰형 사마랑보다 주목받지 못했고, 출사를 명하는 조조를 피해 7년 동안이나 꾀병으로 두문불출하다가 조조가 대세를 확정하고 '패업'을 달성할 기미가 보이자 그의 휘하로 들어가 조조가 죽을 때까지 두려워하고 경외했다. 제갈량의 북벌에도 적극 맞서지 못한 채 머리싸움만 하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진 '죽은 (제갈)공명'에게 쫓겨간 '산 (사마)중달'이 되었다.

사마의는 분명, '삼국지' 1세대는 아니었다. 조조의 군막 아래서도 최고의 책사이자 명문세가 출신인 순욱과 감히 경쟁할 수도 없었고, 순욱, 순유, 정욱, 곽가 등의 '1세대 참모진'이 조조와 함께 사라진 후 조조의 아들 조비 정권에서 '2세대 참모'로서 두각을 드러낸다. 그 동안은 정권에 적극적인 계책을 내놓지도 않았고, 설령 내놓더라도 관철을 위한 투쟁보다는 관망했다. 계책이 받아들여지면 사마의 덕이었지만 채택되지 않더라도 그의 책임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책의 실패 후에도 '선견지명'의 평판은 남았으니 이것이 바로 권력투쟁에서 사마의가 주로 사용한 '권모술수'였다고 평가된다.


사마의가 37세였던 215년, '계륵'의 고사를 남기고 조조가 한중에서 퇴각할 때만 해도 사마의는 "기회가 눈 앞에 왔을 때 가만히 앉아 때를 놓치면 안된다"며 촉한으로 치고 들어가자는 혈기왕성함이 있었다. 그러나 66세가 된 244년 위나라 조정 내 최대 정적이던 조상이 촉한을 정벌하러 갈 때는 그때가 촉한정벌의 적기임을 알고도 정적 조상이 성공할까 두려워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공작을 펼쳤다. 늙은 책사 사마의에게는 이미 국가보다는 자신과 가문의 보위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사마의는 생전에는 '비룡재천(飛龍在天)'하고, 사후에는 '항룡유회(亢龍有悔)'했다... 사마의만 놓고 보았을 때는... 지략이 뛰어나고 군사를 다루는데 능했고, 은인과 도광양회가 특기였다... 그와 대치하고 음으로 양으로 맞대결을 펼친 적수들로는 조조, 제갈량, 조상, 맹달, 공손연, 왕릉 등이 있었다. 하나 같이 당대의 준걸이었지만, 사마의는 이들 중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마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자신만 구하고 시대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마의가 한 일이라고는 이제나저제나 자기 몸 하나 보존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마의 본인도 어느 정도 '유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사용한 계책과 입신의 도리는 사실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유가'적 소양은 그에게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 [결국 이기는, 사마의], <7장. 항룡유회>, 친타오.




그렇게 아들과 손자로 하여금 새로운 국가 창업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사마의의 본질은 명색이 '삼국지 2세대'로서의 모습이었다.

179년생 사마의는 태어나기 전부터 후한 말기의 난세가 배경이었다. 바른 정치를 건의하던 '청류'가 환관내시와 외척의 '탁류'로부터 탄압을 받은 '당고지화(黨錮之禍)로 정치는 부패했다. 살기 위해서는 직언을 하면 안되었다. 지식인들은 속세가 싫으면 떠나야 했고 다수 민중은 무기를 들고 일어나야 했다. 사마의가 여섯살 때 황건농민반란이 일어났고 열한살에는 동탁에 반대한 '17로 제후연합군'의 전쟁이 있었으며 피난 중의 군막에서 어린 사마의는 앞으로 살 궁리를 하며 [역경]과 [춘추], 각종 병법서를 섭렵했다. 사마의도 공맹의 유학(儒學)을 공부하며 자기 단련과 수양을 한 선비였겠으나 이미 시대는, 난세를 살아내는 '생존법칙'을 자연스레 터득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사마의 스승이자 은자였던 호소(호공명)처럼 산속에 숨을 것이 아니라면, 속세에서 "살기로 했으면 계속 살아남아야 했고, 사회에 뛰어들기로 했으면 이름을 남겨야 했다. 이것이 바로 난세를 살아가는 '생존법칙'이었다(같은책, <1장>)."

사마의는 깡패영화에 나오던 대사,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는 말을 태어나자마자 체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지금의 '세대'간 연대를 생각한다.

'적폐'를 청산할 의지도, 능력도 없던 민주당이 다수 민중반란인 '촛불항쟁' 덕에 어부지리로 집권했고 일부 민주주의자들의 개인기로 인기영합은 가능했을지 모르나 부동산 투기세력의 본질을 드러내며 수구반동들에게 부활의 기회를 제공했다. 거대양당 기득권동맹체제에서 집권 민주당에 실망한 20대 청년들이 수구반동을 선택한 것을 두고 '20대 개새끼론' 따위의 막말을 쏟아내는 우리 세대 '빠돌이'들을 돌아본다. 지금의 20대는 "정치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결국 선언하고 말았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태어나서 이명박근혜 시절에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당시 부모나 삼촌, 이모였던 우리 세대는 무슨 가치로 살았던가. 나 하나 살아남기 위해 남들을 더 철저하게 밟고 제껴야 했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기'를 해서라도 부를 축적하고 더 잘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축적한 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동산 값을 있지도 않는 '시장 논리'라는 미명으로 천정부지로 치솓게 만들었다. 꿈이 '건물주'라는 지금 20대 후세들을 욕할 자격은 애초에 우리 세대에게 없었다. 그래놓고 똑같은 부동산투기 귀재들인 거대양당 정치권력자들의 핑퐁놀이에 환호했으며 그 자들이 먹고 남은 떡고물을 주워먹기에 혈안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지금 세상은 누가 말했듯, '세습중산층' 사회며 이 따위 사회를 만든 것은 불우한 지금 20대들의 부모와 삼촌, 이모인 우리들 자신이다.


'결국 이기는' 사마의는 그가 젊은 시절 내내 경외했던 조조에 비하면 역사의 '실패자'다. 조조는 아들 조비와 조예를 잘 키워 3대까지 무난한 왕조를 이어간 반면, 사마의는 사마사, 사마소 아들형제는 잘 키웠으나 손자 사마염대에 이르러 창업과 동시에 멸망의 나락을 걷는다.

평생 '한왕조 부흥'의 대업을 쫓았으나 결국 이루지 못한 제갈량은 후세에 '최고의 책사'가 된 반면, 사마의는 '권모술수'와 '후흑학'의 대가로 남았다.

이렇게 '삼국지 2세대' 대표주자였던 사마의는 '공공성'이든 '국가'든 '민중'이든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생래적 특징이 본질이었다. 어찌보면 "살기로 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아야 했던" 사마의는 지금 우리의 20대와 닮아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승시순변(乘時順變)'이,

적어도 사마의 세대에게는 '권모술수'였던 것처럼.



***


1. [결국 이기는, 사마의](2017), 친타오, 박소정 옮김, <더봄>, 2018.

2.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2011), 자오위핑,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3.

3. [주역(周易)](3세기), 왕필 주해, 임채우 옮김, <>, 1998~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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