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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12. 2021

[루시의 발자국](2020) - 후안 미야스/아르수아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루시(Lucy)'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루시(Lucy)'

- [루시의 발자국](2020),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틈새책방>, 2021.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화석 형태로 발견된 '루시(Lucy)'는 약 300만년(32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인이다. 키는 1미터가 조금 넘고, 몸무게는 30킬로그램도 안되었으며, 20세를 전후해서 세상을 떴다. 그녀의 뼈는 발굴자들이 비틀스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듣던 순간에 세상에 나타났다... 350만년 전 이족(직립)보행을 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자국들은 해변 모래 위에 찍혀있는 우리 아이들의 발자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 모두 무의식 상태에서 생체역학적으로 움직인다."

- [루시의 발자국], '3. 루시 인 더 스카이',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2020.



뤽 베송 감독의 2014년 영화 [루시]에서 우연히 인간 뇌의 100%를 사용하게 된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마주보는 존재가 '최초의 인류'로 불리는 '루시(Lucy)'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두뇌'였다는 아인슈타인 조차도 뇌의 10% 정도 썼다는데 그런 천재도 말년에는 치매를 겪고 말았단다. 만약 뇌용량의 전부를 사용한다면 아마도 과부하로 인해 미쳐버리거나 폭발해 버릴 것 같지만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가정이니 정말 그럴지는 과학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사피엔스]의 '빅 히스토리언' 유발 하라리가 '길가메시(Gilgamesh) 프로젝트'라 부른 '인류 영생'의 계획은 과학기술과 AI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 능력의 100% 이상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니 영화처럼 '우연한 약물반응'이 아닌 '필연적 과학'의 힘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과학은 그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극한으로까지 실험을 진척시켜야 할 그만의 길이 있을테니 말이다. 결국 영화 [루시]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인류가 100% 이상 진화할 때 하더라도 최초의 모습과 결국 마주칠 것이니 '최초의 인간'인 '루시'를 잊지 말라는 경고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뤽 베송의 2014년 영화, [루시] )



인류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 600만년 전 아프리카 동부지역에서 출현했다. 다른 유인원과 같이 밀림지대에서 나무를 타던 그들이 '어떤 요인'에 의해 땅으로 내려왔고 온갖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면서도 이 힘든 환경에서 살아남으면서 그들만의 진화를 했다. 완전 직립보행을 하면서 7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되고 '불'의 사용과 '인지혁명'을 통해 1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네안데르탈인' 등의 힘센 종들을 '지략전'으로 물리치거나 '이종교배'로 흡수하면서 현재 지구상 포유류의 1/3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선사(先史)시대'는 인류 역사의 95%를 차지하니 5천년 전에야 '문자'가 처음 나타난 것을 보면 우리의 '문자'는 "전체 역사에서 본다면 '어제' 발명된 것"([루시의 발자국], '0. 할아버지를 찾아뵙고')이다. 물론 '진화'의 역사 또한 선형적이거나 단계적이지만은 않고 복합중층적이고 단계공존적일 테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도식화'와 '공식화'가 필요하다는 게 지론인 나는 6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 20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의 '도구적 인간', 100~7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불의 발견', 1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 8천년 전 신석기 시대 '농업혁명', 4천년 전 '청동기', 3천년 전 '철기' 시대 등으로 인류 역사를 단순화하여 기억한다. 여기에 지구 최강의 종(種)이 된 인간이 '과학혁명'을 통해 '호모(Homo)'를 떼고 그냥 '슬기로운' 사피엔스(Sapiens)가 된다는 것이 유발 하라리의 '빅 히스토리(Big History)' 인류학이다. 그 다음 단계는 인류 종 자체가 스스로 '신(神:Deus)'이 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인 것일테고 말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45


( 알타미라 동굴 벽화 )


스페인은 고인류학(古人類學) 분야에서 영국이나 미국 못지 않게 발전한 국가라고 한다. 3만 7천년 ~ 1만 4천년 전의 알타미라, 라 코바시에야 동굴벽화나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등 고인류 관련 유적도 많고 그에 따라 연구성과도 높다고 포스텍대 김준홍 교수([루시의 발자국] 감수)는 말한다. 스페인 소설가인 후안 호세 미야스는 유명 고생물학자인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의 입을 빌어 고인류학과 비교동물학 및 진화생물학 등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오래되고 어려운 전문지식을 현재의 생활 속에 녹여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아르수아가 교수를 따라 유적지와 시장, 놀이터와 학교, 박물관과 성인용품점, 개 전시장과 공동묘지 등을 돌아다니며 인류 진화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이 책 [루시의 발자국](2020년)은 우선, 재미있다.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유쾌하고 지적인 인간 진화 탐구여행'을 부제로 한 내용들은 어려운 주제임에도 머릿속에 억지로 주입할 필요없이 소설 읽듯이 책장을 넘기면 된다. 인류의 역사, 더 넓게 46억년 지구의 역사를 보면 모든 '과학'은 '가설'에 불과하므로 어느 이론이나 주장도 교과서로 공부하듯이 진지하게 읽을 것 없이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될 것 같다. 지금 확실한 것 같은 사실 또는 진리가 앞으로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의해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 나만 해도 어린 시절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의 앞 단계 조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두 종은 상당 기간 공존 및 생존경쟁을 했고 6~9만년 전 양종간 상호교배를 통해 현재 인류의 2% 정도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형질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아마도 대륙 중앙에서 유래했을 네안데르탈인은 아프리카 동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체격조건도 좋고 두뇌도 더 커서 육체적 진화가 앞섰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떤 '우연'한 형질 변화를 겪어 똑똑하고 영리해진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사회를 더 잘 조직하면서 사회가 덜 발달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킬 수 있었다고도 한다. 생물의 '진화'는 '필연'이지만, 그 '필연'의 대장정에서 그때 그때의 선택은 '우연'이라는 이 '변증법'은 19세기 오스트리아 수도사 멘델이 교회 뒷마당에 완두콩을 키울 때 새롭게 시작된 것이 아니다. 모든 물질의 역사에 배태된 '법칙'이다. 세살 짜리 아이가 해변에 남긴 발자국은 600만년 전 나무에서 내려와 약 320만년 전 처음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루시(Lucy)'의 족적과 같은데, 어떤 '우연'의 힘에 따라 두발로 일어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300만년 넘게 후손들은 몸으로 이 생체역학을 그대로 구현하는 일종의 '필연'을 보여준다.





"사냥꾼 인간 가설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원래 식물성 양식을 섭취했고, 비교적 적은 양의 고기를 섭취한 가장 마지막 종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오스트랄로스피테쿠스가 먹던 식물성 양식은 대형 유인원의 먹이처럼 열량이 낮고 섬유질 함량이 높은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고대 유인원의 소화계는 오늘날의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그 크기가 컸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사냥꾼 인간 가설은 약 200만년 전 오스트랄로스피테쿠스에서 진화한 (호모) 하빌리스와 이들의 후손이 고기를 더 많이 먹게 되면서 입과 소화계가 그에 맞게 적응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 [요리 본능], '2장. 요리하는 유인원', 리처드 랭엄, 2009.



약 20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는 인류의 조상이 '도구'를 사용한 흔적에서 유래한다. 완전한 '직립보행'의 '호모 에렉투스'와 그로 인해 두 손의 자유를 얻은 인류의 조상이 주변 사물을 '도구'로 활용하며 진화해 갔다는데, 그 덕분에 풍성한 밀림에서 밀려난 척박한 초원지대에서도 먹을거리를 좀더 얻을 수 있었겠지만, 인류의 조상은 애초에 고릴라나 침팬지의 조상과 경쟁에서 이기기 힘든 신체조건과 환경을 가졌을 것이다. 고릴라는 생긴 것과 달리 지금까지도 편한 환경에서 채식을 주로 하면서 하루 종일 먹고 놀며, 침팬지나 원숭이류는 위험한 땅으로 잘 내려오지 않은 채 익숙한 나무에서 과일과 곤충 따위를 먹으며 살아간다. 오직 인간만이 그 옛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처럼 안하던 짓을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한다. 그렇게 발전과 진화는 척박하고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획득한 형질의 '돌연변이'적 변화가 주요인이다. 최초의 인간 '루시'의 종족들은 사냥을 통해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우연히 '불'을 발견하여 '화식(火食)'을 했다. 영미권에서 침팬지 연구로 저명하며 [루시의 발자국]의 화자 중 하나인 고생물학자 아르수아가가 자주 언급하는 동물학자 리처드 랭엄은 인간처럼 역시 사냥을 할 줄 알았던 침팬지는 '생식(生食)'으로 인해 하루 종일 소화시키는 것이 일이며 그 외의 다른 '노동'이 불가하다고 한다. 반면 인류는 그 조상 때부터 익혀먹은 결과 소화가 빨리 되고 그 열량과 자유로운 두 손으로 '노동'이 가능했다. 이는 노동문화적 측면 뿐만 아니라 소화기계의 진화로도 나타나는데, 밖에 나간 남성들의 사냥은 성공확률이 높지 않아 집안의 여성들이 땅을 보고 발견한 각종 곡물과 곤충, 생선/어패류를 통해 부족한 열량을 조금씩 채우며 소화력에서나마 그 열량을 아낄 수 밖에 없던 환경에 따라 인류의 소화기계는 갈수록 '지름길'을 찾아 짧아졌단다. 실제로 '불'을 사용하기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소화기관은 침팬지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가 '직립보행'과 '화식', 그리고 진화를 거쳐 지금의 인간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간소한 소화기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동서양의 전설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영웅의 배를 갈라 꺼낸 창자가 엄청나게 많더라는 이야기는 그만큼 그가 품은 뜻과 도량이 원대했다는 암시였을 수도 있겠지만 고대의 그 영웅이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신체조건과 힘을 지녔다는 은유일 수도 있었다.

리처드 랭엄 교수의 '화식'과 인류 진화에 관한 [요리 본능](2009년)이란 책의 원제는 '불의 발견(Catching Fire)'이다.





"돌팔매질... 우리 인간은 어떤 물체를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생물종이지요...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지금 우리 시대에는 '험담('리더십에 대한 제약')'이 돌멩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루시의 발자국], '2. 여기 있는 모두가 네안데르탈인이에요', 2020.



고생물/고인류학자 아르수아가는 신체조건으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던 인류의 조상이 주변 '도구'를 사용하면서 발전시킨 '기술' 중 하나가 '돌팔매질'이라고 말한다. '돌팔매질'로 시작한 이 정교한 기술개발은 '인지혁명'의 집단적이고 사회조직적 발전과 함께 이후 인간이 다른 강력한 종들을 견제하는 중요한 형질인데, '문명인' 다윗이 '원시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구약의 전설과도 같이 인간을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만드는 중요한 기술일 뿐만 아니라 '약자'들이 힘만 믿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강자'들에게 대항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아르수아가는 사회조직이 발달된 문명사회에서는 다수가 퍼뜨리는 '험담'이 이런 권력자를 견제하고 제어하는 '돌팔매질'이라고 빗대고 있는데, 이런 비유가 스페인 고인류학자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의 대표적 입담이다. 물리적 힘이 약했던 인류의 조상은 늘 이런 식의 '혁명'적 형질을 개발하고 물려주었다.


'신(神)의 계획'에 따라 시계처럼 돌아가는 세계를 밝히고자 했던 18세기 신학철학자 페일리의 이론에 평생 맞서 자연의 '무의식적 선택'으로서의 '진화론'과 그 '종의 기원'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찰스 다윈의 작업은 "시계 제작자도 없고, 설계도 없고,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의도도 없는([루시의 발자국], '8. 시계 제작자가 필요 없다')" 자연 그 자체의 진화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었다.

[루시의 발자국] 스페인 마드리드의 '알무데나' 공동묘지에서 '죽음'(같은책, '16. 이제 사람들의 평가에 맡기자') 주제로 마무리되지만, 개체의 동시대적 죽음들은 '종의 기원' 따르면 영속성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도 있다.

'변증법(辨證法)' '단절(斷)' 통해 이어진다.


진화사(進化史) '필연' 경향에서 정해진 것은 "만물은 변화한다(萬物流轉)" '변증법적 진리' 뿐이며, 나도 모르는  안의 '루시(Lucy)' 나와 마주보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 아닐는지.





"진화의 이야기는 구조를 가진 게 아니에요. 사건의 발단, 절정, 결말이 없어요. 진화는 '카오스(Chaos)'의 세계거든요."

- [루시의 발자국], '5. 작은 것의 혁명', 2020.



***


1. [루시의 발자국](2020),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틈새책방>, 2021.

2. [요리 본능(Catching Fire)](2009), 리처드 랭엄, 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1.

3.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역, <김영사>, 2011.

4.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문학과 사상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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