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운명'을 가른 '자연의 복수'
'로마의 운명'을 가른 '자연의 복수'
-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1. 기후 변화와 로마의 운명
"고대인들은 '포르투나 여신(운명/복수의 여신)'의 섬뜩한 지배력을 존경했다. 그들 나름대로,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구조와 우연, 자연의 법칙과 순전한 운이 혼합된 변덕스러운 것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인류 서사 중에서도 '운명'적인 시기에 살았다...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명 중 하나를 만들고 해체하는 일에 '환경'이 일정 부분을 담당했음을 여러 방식으로 알 수 있다. 로마는 거의 필연적으로 거울이자 척도이기도 하다... '자연의 복수'... 이 문명의 '운명'을 좌우할 '자연환경'의 막강한 힘을 생각하면, 우리는 로마인들에게 공감하며 다가갈 수밖에 없다."
- [로마의 운명], <에필로그>, 카일 하퍼, 2017.
흔히 지금 우리들 사는 시대를 '인류세'라 부른다.
46억살인 우리 지구는 생명체가 등장하고 약 20여 만년 정도는 '플라이스토세(홍적세)'인 빙하기에 있었고, 최근 약 1만년 정도는 '홀로세(충적세)'라는 신생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인류의 원시 조상과 구석기인들은 빙하기를 겪었고, 신석기 시대 농경을 하면서는 다소 온난해진 기후에서 정착 문명을 영위할 수 있었다. 사피엔스의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발견과 문명의 발전이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온난다습한 기후가 뒷받침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유발 하라리가 보기에는 '밀'이라는 종이 정착과 스스로의 번식을 위해 사피엔스를 이용했을 수도 있단다. 농경과 정착을 하면서 예전의 수렵, 채취 시절에 비해 더욱 빈번해진 각종 질병과 기근으로 고생한 사피엔스는 오히려 '밀'을 포함한 다른 종들에게 사기당한 것이란다. '인류세'는 지구 기후환경의 폭력적 변화를 가속시키는 인류가 그만큼 환경에 영향를 크게 미치기 때문에 더욱 자연을 보호하고 경계하자는 뜻에서 이르는 일종의 은유이자 경고일 뿐, 학문적으로 아직까지 지금의 지구는 '홀로세'를 지나고 있다. 그런데 '홀로세'라고 하여 항상 기후환경이 같을 수는 없었다. 지구는 약간 기울어져 있기에 태양을 공전하는 동안 각도의 변화로 태양열을 일정하게 받을 수도 없고 지각변동은 끊임없으며 화산폭발로 대기가 변화되면 오랜 기간 기온이 떨어지기도 했다. 과학은 자연을 정밀하게 관찰하여 그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을 찾고자 했으나 역사 속에서 이런 지구의 변화는 '우연' 그 자체다.
고대인들이 '신'과 같은 절대자를 떠올렸던 것은 과학이 미처 발달하기 전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지구환경의 '우연성'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운명' 또는 '복수'의 여신인 '포르투나'는 어떤 때는 눈을 가린 채 공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지구라는 자연 앞에 선 인류도 그렇다.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도시국가 로마는 기원전 3세기부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이후인 기원후 1세기를 지나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던 2세기 경에 걸쳐 '기후최적기'를 맞게 된다. 지중해를 둘러싼 이 고대 로마 문명은 고온다습하고 온난한 '홀로세'의 변덕에 힘입어 발전하고 팽창하면서 거대 제국이 되었으나, 크고 작은 기후 변화를 동반한 과도기를 거쳐 기원후 5세기 이후인 '고대 후기 소빙하기'가 닥치면서 제국의 해체를 향해 노정한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로마의 도시국가들이 삼림벌채 등의 대개발로 인해 지구를 건조화시킨 영향도 다소 있었겠지만, 고대에는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태워대며 대놓고 환경을 오염시킬 만한 단계는 아니었다. 고대인들은 고작 나무를 베고 만든 도시에 모여서 배설물이나 오물을 집단으로 버리는 수준이었다.
18세기에 [로마제국 쇠망사]를 지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쇠망한 것은 "무절제한 팽창이 가져온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썼다.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켰고,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는 우연히 인위적 기둥들이 허물어지게 되자 그 방대한 구조물은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로마제국 쇠망사])"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팽창이 시작하자마자 쇠망의 기운이 함께 싹튼다는 고찰이며, 이런 원리는 세상만물에 투영된다. 로마의 멸망에 관한 후대의 논의는 많고도 복잡하겠지만, 기번의 평가는 인류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수긍할 만 하다. 그러나 관점을 좀더 넓혀 우리 지구별로 확장하면 이야기는 '기후'와 '질병'을 피해갈 수 없다. '자연의 복수' 또한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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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몰락은 곧 인간의 야심에 대한 '자연의 승리'였다.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은 황제들과 야만인들, 원로들과 장군들, 병사들과 노예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러나 또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화산'과 '태양주기'의 영향도 컸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생태환경의 변화'라는 거대한 드라마에 로마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배역을 맡고 등장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과학적 도구(자연기록보관소)'를 갖게 되었다."
- [로마의 운명], <프롤로그>, 카일 하퍼, 2017.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역사학 교수인 카일 하퍼(Kyle Harper)는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2017)에서 로마의 몰락은 "인간의 야심에 대한 '자연의 승리'"로 규정한다. 로마와 중세 초기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하퍼는 에드워드 기번부터 시오노 나나미까지 로마의 역사에 관한 대작들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도구는 '자연기록보관소'에서 최근에서야 얻을 수 있는 '자연'에 관한 정보와 데이터들이다.
방대한 제국으로 팽창한 로마는 고대 서방의 중심으로서 사통팔달의 도로를 통해 세상만물과 만인의 교류가 가능하도록 만든 대명사가 되었다. 전쟁이든 교역이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제국의 팽창과 함께 로마 특유의 '공화정'이 자리잡는 한편, 이를 뒷받침했던 '기후최적기'는 지구 고유의 변덕스러운 운동을 토대로 도시문명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환경, 즉 지중해와 근동지역 일대의 건조화를 서서히 진행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아직 풍토화되지 않았던 미생물들의 확장으로 세 차례의 '페스트(전염병 팬데믹)'를 겪는다. 로마 '기후최적기'가 끝나가는 기원후 2세기의 '안토니누스 페스트'와 3세기의 '키프리아누스 페스트', 그리고 마지막 6세기부터 8세기를 거쳐 지속적으로 창궐한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그것이다.
2. 팬데믹과 로마의 운명
"... 물건(교역)과 신(종교)이 가는 곳에는 '병원균'들도 간다. 인도양 체제의 진정한 생물학적 의의는 '유라시아의 문명화된 질병집단들'을 융합시킨 것이 아니라, 장애물 없이 신종 전염병을 통과시킬 수 있는 통로를 형성했다는 데 있었다... 질병사의 드라마는 병원체의 진화와 인간의 연결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데 있다. 로마제국에서는 그 두 가지 힘이 특별히 중대한 방식으로 함께 어우러졌다."
- [로마의 운명], <3. 아폴로의 복수>, 카일 하퍼, 2017.
'기후 변화' 이후에는 항상 '전염병(질병)'이 왔다. 이는 로마만의 일이 아니었지만, '팬데믹'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로마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제국의 도로망으로 제국의 군대와 생산물을 퍼뜨리기 시작한 최초의 거대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세 차례 '페스트'는 팬데믹으로 불리는 대재앙이었고 한때 7,500만 명에 이르던 로마 인구의 절반을 죽였다. 사망률은 60~40%에 이르렀다고 하퍼는 고대의 기록과 현대의 데이터로 추정한다.
기원후 165년, '5현제' 중 네번째 '안토니누스' 황제의 치세와 번영에도 불구하고 '기후최적기'가 지나자마자 '5현제'의 마지막 다섯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집권 초기 '안토니누스 페스트'가 발생했다.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하퍼는 이를 '천연두'로 추정한다. 하퍼가 로마를 "유럽에 결핵이 퍼져나가는 분수령"이자 "달팽이처럼 퍼져나가던 나병의 전파를 가속화([로마의 운명], <3. 아폴로의 복수>)"한 주범으로 지목했듯 '결핵'과 '나병', '말라리아'와 '탄저병' 등은 이미 이들 병원균들이 유입된 후 도시에 토착화된 로마가 전유럽에 퍼뜨린 질병이었는데, 역시 도시로 밀집정착하는 생활로 인해 발생했을 이 1차 '천연두' 팬데믹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전방위적 파괴력으로 로마 인구를 10% 정도 감소시켰다. '안토니누스 페스트'는 인류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채 공공보건이 정착되기 전까지 다른 질병들과 함께 풍토병이 된다.
제국의 쇠망을 지켜보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안토니아누스 페스트' 이후 로마제국의 모습에서 '세계의 노년기'를 본다. 냉랭해지고 건조해진 기후와 팬데믹으로 지쳐가는 제국의 실상을 본 것일 수도, 그리스 문명의 뒤를 이어 전염병을 '아폴로(태양의 신)'에 기대 극복하려던 다신교적 문화를 본 기독교인의 절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주교의 기록으로 기원후 249년부터 10년 이상 지속된 2차 팬데믹은 '키프리아누스 페스트'로 남았다. 로마 중기 '기후최적기'에서 고대 후기 소빙하기로 변화하던 과도기에 등장한 이 2차 '페스트'를 하퍼는 역시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인플루엔자'로 추측한다. 아마도 파르티아(페르시아) 원정으로 인한 동방의 모기나 벼룩, 설치류를 접한 군대의 복귀로 유입된 '바이러스성 출혈열'일 수도 있을 이 '키프리아누스 페스트'의 결과는 '세계의 노년기'의 확인이었다. 1차 팬데믹 이후 로마는 제국의 활발한 연결망과 황제 및 원로원 등 '공화정'의 정통성으로 다시 이전처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를 강타한 2차 팬데믹을 겪은 '노년기' 로마의 회복탄력성은 떨어졌고 군대 신병 모집은 어려워졌기에 북방 '야만인'과의 타협이 불가피했다. 북방의 전선이 뚫리면서 변경의 용맹한 장군들은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는데, '키프리아누스 페스트'는 정권의 '정통성'이 약한 '군인황제'의 시대를 열었다.
어느덧 기독교는 슬그머니 지배이념이 되었는데 아마도 '세계의 노년기'를 본 로마인들이 더 나아가 '세계의 종말'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회복탄력성'과 '정통성'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과 시민들의 자부심은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군대를 앞세운 호전적인 정복활동과 제국의 팽창은 멈추지 않았고 서로마의 도시 로마는 제국의 상징적 중심,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은 실질적 중심으로서 건재해 보였다. 그러던 중 지구는 기원후 536년 '여름이 없는 해'가 올 정도로 냉랭하고 추운 기후를 점차로 드러냈고 이로 인해 아래로 내려오는 이민족들과 '곰쥐' 같은 설치류, 벼룩으로 인해 3차 팬데믹을 겪게 된다. 로마의 '기후최적기' 이후 슬슬 추워진 제국의 동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밀려온 훈족에 의해 밀려난 고트족이 로마의 변경을 밀고 들어왔고 알라리크 왕이 통일하여 결집시킨 강력해진 고트족 군대에 의해 5세기에 서로마는 멸망했다. 기독교인들이 전염병과 같은 '신의 채찍'이라 부른 훈족의 아틸라 왕이 헝가리에서 진군을 멈추고 돌아간 이유 또한 로마제국의 중심부가 '말라리아'라는 "세균갑옷으로 무장([로마의 운명], <5. 운명의 수레바퀴>)"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를 구하고도 찬양받지 못한 구원자" 말라리아를 옮기는 "아노펠리스 모기는 춥고 건조한 곳까지는 따라갈 수 없었다(같은책, 같은곳)". '말라리아'는 로마인에게 이미 풍토병이었는데, 6세기에 새롭게 창궐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로 불리게되는 전염병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페스트(흑사병)'의 시작이었다. 주인공은 서혜부 림프종을 일컫는 '부보닉 페스트'와 '폐 페스트'의 원인이 되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박테리아였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걸렸다가 살아남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 진짜 '페스트'는 기원후 541년에 이집트 해안에 상륙한 이후 약 2세기 동안 15년 마다 또는 나중에는 65년에 한 번씩 창궐하면서 로마 인구를 절반으로 줄였다. 이 '페스트'는 14세기 이후 500년 동안 유럽인구를 반토막 냈다는 바로 그 '흑사병'이었다. 로마 공화정은 역시 재기를 꿈꾸었지만, 서로마는 이미 5세기에 이민족에 의해 멸망되었고 이를 되찾으려는 동로마(비잔틴) 제국은 어느새 예전의 제국의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인구는 정체되었고 "고대 후기의 소빙하기로 알려진 물리적 기후 악화와 팬데믹으로 인해 고대 질서의 마지막 기반이 깨끗이 사라졌다([로마의 운명], <6. 분노의 포도착즙기>)".
3. '자연의 복수'와 사피엔스의 운명
"'종말이라는 열쇠'...
... 안토니누스 페스트는 고대적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의 방향을 바꾸었고, 아폴로 숭배가 보편적이 되도록 했다. 키프리아누스 페스트는 고대 시민의 다신교라는 기반을 무너뜨렸으며, 기독교가 슬그머니 세상에 나오도록 허용했다. 6세기와 7세기에는 페스트와 기후 변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고대 후기의 마지막 자손인 이슬람교 안에서 '종말론(메시아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환경의 격변, 정치적 해체, 종교적 소요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로마가 몰락해가는 마지막 순서를 결정했다...
그것이 '세상의 종말'이었다."
- [로마의 운명], <7. 심판의 날>, 카일 하퍼, 2017.
카일 하퍼는 우리가 지금껏 역사를 볼 때 "자연을 정적인 배경으로 여겨왔다([로마의 운명], <에필로그>)."고 하면서 그 사례로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1798)을 들며 책의 '에필로그'를 연다. 역사는 인류의 정치경제 및 사회체제의 프리즘에 국한해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치경제체제를 인구통계학적 고찰로까지 상승시킨 업적에도 불구하고, 18~19세기의 맬서스는 이후 인류가 해법으로 내놓은 '산업혁명'을 예측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 현대와 같은 '기후변동' 또한 고려할 수 없었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이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오던 이민족들 및 듣도보도 못한 전염병으로 몰락한 고대 로마인들 또한 자연을 항상 그대로인 '정적인 배경'으로 전제했을 수도 있다. 로마인들은 로마가 망한다고 보지 않았다. 다만 변화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로마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이었다. 이는 아마도 근현대 다수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의 몰락은 '세계의 종말'이라며 불안을 조성한다. '과학'이 아닌 '종교'가 된 주류경제학이다. 불평등 체제의 종식에서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평등체제로의 이행이라는 과학적인 '희망'을 보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더욱 필요한 지점이다. 여기에 현재는 급격하게 진행 중인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이 항상 결합되어야 한다.
카일 하퍼는 [로마의 운명]을 논하면서 최근의 방대하고 정교한 정보와 데이터를 토대로 하여 '역사'를 또 하나의 '과학'으로 만들고 있다. 고대의 로마인들이 '기후 변화'와 '전염병'을 보며 '세상의 종말'을 보았다면, 현대의 우리는 임박한 '기후 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끊이지 않을 '팬데믹'을 앞두고 과학적 예측과 그럼에도 불구한 세계의 '종말'이 아닌 '희망'을 보아야 하겠다.
그것이 기존의 로마 쇠망의 전통적인 원인에 덧붙여 역사학자 카일 하퍼가 다시금 '로마'의 '운명'을 고찰하는 이유 아니겠는가.
자연은 로마제국에 '복수'를 했고, 로마시민들의 욕망에 맞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자연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다시금 정복하고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와 '질병'이라는 이 대자연에 얹혀사는 사피엔스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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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2017), Kyle Harper,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2.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2010.
3. [공화국의 몰락](2003), 톰 홀랜드, 김병화 옮김, <웅진닷컴>, 2004.
4. [청소년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원저, 배은숙 지음, <두리미디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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