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 : '평행 전쟁'
지금도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 : '평행 전쟁'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2012), 도니 글룩스타인, 김덕련 옮김, <오월의봄>, 2021.
"연합국 정부들의 동기와 야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메울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따라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를 산산조각 낸 사건들은 추축국과 맞서 싸운 단일한 전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전쟁'에 해당한다... 내각과 소작농들, 육군사령부와 막사, 중역들과 노동자들은 각각 다른 전쟁을 벌였다 - 한쪽은 '제국주의 전쟁'을, 다른 한쪽은 '민중의 전쟁'을... 2차 세계대전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를 놓고 연합국 정부들과 추축국 정부들 간에 벌어진 다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파시즘 대 반파시즘'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믿음은 추축국/연합국으로 나뉜 양측 지배자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들어가는 말>, 도니 글룩스타인, 2012.
2차 세계대전은 전쟁영화 소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현대사 가장 최근의 전세계적 '총력전'이었다. 전쟁영화의 2/3 정도가 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이 절반, 1차 세계대전이 12%,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이 각 2%씩 된다고 한다(도니 글룩스타인, 같은책).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국민(민족)국가'는 예전 중세봉건적 체제와 달리 국가 중앙군의 강화를 이루어냈다. 초기 자본주의 시초축적과 함께 봉건제를 탈피하려던 '절대왕정' 시기의 중앙집중적 국가체계를 계승한 근대 부르주아 국가체계는 자본주의 과잉생산 발달과 함께 전세계로 시장을 넓히면서 '제국주의'로 진화한다. 국가의 중앙군대로서 '국민군'은 전 민중의 총동원을 의미한다.
자본은 필연적으로 대자본으로 독점화되고 이와 결탁한 국가권력은 해외 팽창을 통해 전세계 식민지를 분할하고 또 다시 재분할한다(레닌, [제국주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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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은 현대 '제국'으로 탈바꿈하려는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합스부르크) 제국의 구지배에 대항한 프랑스-영국-러시아 제국의 기득권 투쟁이었다. 이 전형적 '제국주의 전쟁'은 각국에서 점차 발전하던 노동계급의 내전으로 인해 종전되는데, '총력전'으로 피폐해진 각국의 다수 노동자-농민들이 대중파업과 같은 계급투쟁을 통해 국가독점자본주의 권력으로 하여금 전쟁을 더 수행할 수 없도록 강제했다. '제국주의 전쟁'과 평행한 '민중의 전쟁'은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과 1918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1920년대 오스트리아 '붉은 빈' 건설 등으로 나타났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막대한 배상청구로 파산된 패전국 독일과 떡고물을 별로 챙기지 못한 이탈리아 및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권력은 '파시즘(이탈리아)', '나치즘(독일)', '천왕군국주의(일본)' 등의 국가주의 사상으로 나타나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전선을 형성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은 이 전쟁을 '정의'가 승리한 '반파시즘' 전쟁으로 선전했고 전쟁 영화의 대부분 소재가 된 이유도 '정의의 전쟁'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이론가 토니 클리프의 아들이자 트로츠키주의자인 도니 글룩스타인은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2012)에서 2차 세계대전을 '평행 전쟁(pararell war)'으로 규정한다. 일반의 믿음과는 달리 2차 세계대전은 '정의의 반파시즘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과 '민중의 전쟁'이 여전히 병행했던 '평행 전쟁'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은 다수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내전으로 종식되었으나 더욱 진화된 지배계급의 2차 '제국주의 전쟁'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정치체제인 '파시즘(나치즘)'의 등장으로 인해 이에 대항한 지배계급의 전쟁과 피지배계급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2차 세계대전을 조망하는데, 유고슬라비아에서 친왕정 기득권인 미하일로비치 게릴라부대는 침략자인 독일 나치즘과의 전쟁보다 티토가 이끄는 국내 공산주의 게릴라 토벌에 더 힘썼고 연합국의 지원만 기다리는 '대기주의'로 일관하며 기득권 체제 유지를 위해 나치와의 타협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그리스 지배계급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가 배신하기 전까지 스탈린 또한 '반파시즘' 전쟁에 나서느니 불가침협정을 맺었고 영국이나 미국 등 연합국 또한 '선전포고'는 말 뿐, 추축국이 자기들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 후에야 마지못해 방어전에 나섰다. 영국은 히틀러를 믿어서 뮌헨 협정에 서명했다기 보다 공산주의 세계혁명을 막기 위해 차라리 이 전쟁광과 손잡으려 했다. '제국주의 전쟁'의 주체인 연합국 지배계급의 목적은 '반파시즘'이 아니라 '파시즘'과의 타협이었다. 이들 제국주의 연합국의 본질은 2차 세계대전 직전 파시스트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드러났다. 무솔리니든 히틀러든 프랑스나 영국 정부 모두 스페인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프랑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들 제국주의자들의 공동전선은 다수 노동계급의 혁명을 막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하였으나 현실 '공산주의' 소련 또한 스페인 내전에서 노동계급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자유주의든 '파시즘'이든 스탈린주의든 그들 모든 지배계급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다수 노동계급의 체제전복, 즉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도니 글룩스타인은 2차 세계대전의 전주곡으로서 스페인 내전으로부터 시작하여 유고, 그리스 등 중간 교전지대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의 추축국은 물론, 인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아시아에서 일본제국주의 침략전 등의 전쟁 상황을 서술하면서 이 '두 개의 평행 전쟁'의 양상을 추적한다.
'민중의 전쟁'은 현 체제 유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을 너머 새로운 세상을 지향했고, 각국 레지스탕스 게릴라군대는 양성 평등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치마를 입고 총을 든 여성전사들의 사진이 인상깊다. 소설 [태백산맥]의 '외서댁'은 '민중의 전쟁'의 전세계적 흐름이었다.
한편, 이 모든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한 연합국들의 목표는 식민지들의 '해방'이 아니라 본인들의 하수인 정권 수립이었다. 지배계급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를 위해서 좀전의 적이었던 '파시스트'와의 협력도 불사했다. 우리 한반도는 이 책에서 별 언급이 없는데, 아마도 일제의 직접지배를 이미 받고 있었으므로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게릴라전과 같은 '민중의 전쟁' 양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직접지배지인 우리의 항일 게릴라전쟁은 주로 해외에서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종전 후 한반도에서 나타난 계급지배의 양상은 비슷했다. 국내 계급투쟁이나 해외 항일 게릴라전쟁 등의 '민중의 전쟁'을 이어갔던 세력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축출되었고 남한에서는 미군정과 이승만 단독정권의 지배를 위해 친일 부역자들이 다시 부활했다. 유고의 티토나 프랑스 레지스탕스, 독일과 이탈리아의 노동계급과 정당은 파시스트 부역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죄하였으나 강대국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된 그리스는 격렬한 레지스탕스 투쟁에도 불구하고 전후 괴뢰왕정이 복고되었으며, 우리 한반도는 해외에서 '민중의 전쟁'을 수행한 독립운동가들 조차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친일-친미 부역정권이 오래도록 막았다. 일제강점기 '민중의 전쟁'이 부각될 수록 독재정권의 '정당성'은 부정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김원봉 선생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홍범도 장군은 2021년이 되어서야 고향도 아닌 남한땅에 그것도 부역자들도 묻힌 곳에 함께 모셔졌다.
"'평행 전쟁(pararell war)'은 다른 면에서도 달랐다. 연합국의 지배계급은 그들이 특권을 누리는 현재 상태를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에 반해 대중의 무장투쟁은 진정한, 모든 이를 아우르는 인간해방과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위해 분투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과 나란히 '민중의 전쟁'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였다 -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기 위한 '민중의 봉기'였다. 2차 세계대전은 다른 많은 면에서 1차 세계대전과 상당히 달랐다."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나가는 말>, 도니 글룩스타인, 2012.
친일, 친나치, 파시스트 부역자들은 결국 연합국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여기저기에서 부활했는데,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계급지배를 공고히 하는 목적을 애초부터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다. 친일파 이완용은 자식들에게 앞으로는 친미파가 되라는 '선견지명'이 담긴 유언을 남겼고, 그 자식들의 이익은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법으로 보호해주고 있다. 독점자본이 된 대자본들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파시즘에 부역하지 않은 사례가 없다. 그들의 목적은 '공동체'가 아니라 '사적 이익'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적 이익'만을 신성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경향은 반복된다.
"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나, '민중의 전쟁'이었나?"라는 질문에 도니 글룩스타인은 이 책을 통해 답한다. "둘 다였다."라고. 그리고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유언과도 같은 [분노하라!](2011)를 인용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지배계급이 일으키는 '제국주의 전쟁'과 이에 맞서는 '민중의 전쟁'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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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2012), Donny Gluckstein, 김덕련 옮김, <오월의봄>, 2021.
2. [제2차 세계대전](2014), 게르하르트 와인버그, 박수민 옮김, <교유서가>, 2018.
: 2차 세계대전의 진행사는 대부분 방대하고 분량도 많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미국의 군사역사학자인 게르하르트 와인버그의 이 책은 간략한 서술로 2차 세계대전의 전체를 조망하고 있어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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