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Sep 18. 2021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2019) - 바스카 선카라

새로울 것 없는 '사회주의 선언'의 새로움

새로울 것 없는 '사회주의 선언'의 새로움

-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2019), 바스카 선카라,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편집부 옮김, 2021.





"사회주의자들은 종종 미래에만 눈을 두는 이상주의자들로 오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사회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역사학의 학도들이었다.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도 이 전통을 따라야 한다.

...

우리의 긴급한 사명은 분명하다. 우리는 착취, 기후적인 대재앙, 악선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류를 위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1장. 사회주의 시민의 어떤 하루>, 바스카 선카라, 2019.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8 유럽 혁명을 앞두고 '사회주의' 정치강령을 담은 팜플렛을 쓴다.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과정에서 소외된 노동과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구제를 앞세운 '공상적 사회주의'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계급으로 각성하여 주체적으로 해방을 쟁취한다는 '과학적 사회주의' 강령의 고전이   저작이 바로 [공산당 선언] 또는 [공산주의자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이다.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공산당 선언], <1장>)인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계급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생산의 사회화 사이의 모순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며,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이 최고조에 이르면 인류 역사에서 계급투쟁을 영원히 끝내는 역사적 사명을 절대다수 노동계급이 지게 된다는 이 혁명강령에서, 노동계급의 친구이며 동지인 '과학적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의 당면한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싸우는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이 운동의 '미래'를 보여주어야"([공산당 선언], <4장>) 하는 임무를 맡는다.


'공산주의자' 또는 그보다 폭넓게 '사회주의자'는 그래서 '미래'의 유토피아를, 그 이상적인 다음 체제를 꿈꾸는 자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급진주의 잡지 <자코뱅>의 창립자이자 편집자인 바스카 선카라(Bhaska Sunkara)에 의하면 이는 '오해'이며, 사회주의자는 원래부터 '역사학도'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에서 '평등'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주의의 교훈과 분석, 실천(행동)의 준거로 삼을 '전통'이 있으며, 사회주의자들은 그 역사로부터 배워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바스카 선카라가 2019년에 지구상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사회주의 선언(The Socialist Manifesto)]이라는 책을 냈을 ,  부제는 <극단적 불평등 시대에 급진적 정치를 위한 옹호론(The Case for Radical Politics in an Era of Extreme Inequality)>으로 삼았다. 토마 피케티의 주제인 '불평등' 역시 문제였고,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세계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극단적 '불평등'으로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1980년대말 자본주의 승리로서 '역사의 종말'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18년에 본인의 헛소리를 인정했다는데, '불평등' 먹고자란 자본주의는 이미 예전처럼 고쳐쓸  없는 상황이 되었다. 1930년대의 케인즈주의나 이후 1970년대까지의 사회민주주의를 다시 불러온들 회생불가의 체제가 되었다. 이대로 가면 1% 99% 투쟁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바스카 선카라는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전한 곳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 분석한 마르크스주의 분석틀을 다시금 소환하며 2019년의 미국에서 [사회주의 선언] 출간했는데, 2021 우리 국역은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되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71



"[공산당 선언]은 정치강령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1848년) 세계혁명 직전에 쓰여진 짧은 문서... 그것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발전시키고 노동계급을 '미래'의 전환을 가져올 핵심에 있는 행위자로 기술한 것이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노동조합주의'가 확산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이 운동이 가진 잠재력을 보았다... 그에게 이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자를 비극에서 구원할 수 있는 투쟁의 필요조건으로 보았다."

-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2장. 무덤을 파는 사람들>, 바스카 선카라, 2019.



'역사학도'인 사회주의자답게 바스카 선카라는 '과학적 사회주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부터 시작하여 사회주의 역사를 <1부>에 싣고 있다. 역사의 필연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자본가계급은 생산수단의 독점과 잉여가치 창출의 과정인 '착취'를 통해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양산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파고 명부의 문을 연다"([공산당 선언]). 선카라의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1부>의 <2장. 무덤을 파는 사람들>에서는 노동계급의 주체적 운동을 강조한 마르크스주의를 다룬다. <3장. 우리가 상실한 미래>에서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초기 혁명적 역사에서 세계대전을 거치며 수정된 자본주의 체제 내 개량의 역사를, <4장. 소수의 승리>에서는 독일 사민당의 개량화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 러시아 볼셰비키혁명과 그 실패를 다룬다. <5장. 실패한 신>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내 복지국가의 길을 갔으나 "원칙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사회주의적 지평을 공유"하며 "잠정적 유토피아"를 자처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를 돌아본다. 중국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를 다룬 <6장. 제3세계 혁명>을 거쳐 <7장. 사회주의와 미국>에서는 저자 본인이 살고 있는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독일 사회주의자 베르너 좀바르트의 질문이었던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나?"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남북전쟁 이후 근대 노예노동을 해체하고 산업 노동력을 대거 확보한 북군의 임무는 급진적 사회주의 봉기를 막는 것이 되었고, 19세기말 미국 철도노동자 유진 뎁스로 대표되던 미국 사회주의당의 투쟁은 결국 공화-민주 양당 체제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는데, 선카라에 의하면 그 이유는 유럽이나 러시아 등과는 다르게 미국의 사회주의는 강력한 이념적 통일성이 없이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언어로 느슨하게 연결된 일종의 "폭넓은 정치동맹"(같은책, <7장>)이었기 때문으로 보는 듯 하다. 한편으로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대중적 사회주의자의 대표였던 유진 뎁스의 '유연함'을 언급하고 미국에서 좌파가 주류가 되려면 "일상에 뿌리를 둔 우리 자신의 언어로 표현"(같은책, <7장>)된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논지는 미국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어쩐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아마도 '양당주의' 정치체제가 굳어진 미국의 현실과 사회주의 이념 사이의 "외줄타기"의 모호함의 덫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1부>는 마르크스 이후 현대 미국까지의 사회주의 통사를 다루되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는 않고 짧게 흐름만 건드리고 있다. 마치 중국 역사가 이중텐의 [중국통사] 시리즈처럼 몇 가지 사안 중심으로 간략히 서술한다. '사회주의'에 대해 60% 가까이 호감을 표시한 21세기 미국의 신세대가 접근하기 쉽게 의도한 듯 한 서술이다.

사회주의와 진보정당 운동의 세부적인 역사를 읽어보려면 장석준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2019)가 추천할 만 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





"사회주의적 전제는 명확하다. 그 핵심적인 것은 인민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품위와 존중, 공정한 대우를 바란다는 점이다. '민주적인 계급정치'는 공동의 반대자에 맞서서 인민을 단결시키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모두를 인종, 성, 편견에 뿌리를 둔 압제에 대항하는 긴 대열에 참여시킨다...

... 운동 내부에 '사회주의자들'이 있어야 운동의 전망을 제시하고 운동을 추진할 수 있다."

-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9장.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바스카 선카라, 2019.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피해갈 수 없다. 바스카 선카라가 이 책의 <2부>에서 평하는 버니 샌더스는 "근대적인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같은책, <8장. 맥의 귀환>). 즉, 체제 내 개량으로 선회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폐기한 '계급투쟁'을 샌더스는 미국 사회에서 다시 복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샌더스는 극단적 불평등에 분노한 다수 대중에게 엘리트들과 투쟁하여 그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오자고 주장한다. 모두 함께 미국을 위해 일하고 '국민통합'으로 국가를 살리자는 게 아니라 '계급투쟁'을 다시금 복원하여 절대 다수가 살만한 국가를 만들자고 외친다. 현대의 제대로 된 '계급정치'가 미국에 의외의 한방을 날리고 있다.


바스카 선카라는 한편으로 계급투쟁은 해본 역사가 없던 영국의 노동당에서 영국인 다수의 분노와 참여를 업은 제레미 코빈의 등극을 조명한다. 코빈은 미국의 샌더스처럼 평생 사회주의적 일관성을 견지하고 노동계급과 함께한 인물로 '코비니즘'이 영국 노동당을 통해 제시한 경제강령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내다보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치비전을 되살렸다"(같은책, <8장>). 지배계급의 조롱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코비니즘은 체제 내 개혁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본의 소유권과 통제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같은책, <8장>). 비록 브렉시트 정국에서 실각하기는 했으나 다수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믿고 끊임없이 자본의 소유권에 도전하고 자본의 통제를 시도하는 코비니즘의 정치는 저자의 눈에 현대적 '사회주의 선언'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모든 사회주의적 전진은 세 가지 요소(대중정당, 사회운동적 기반, 노동계급의 참여)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분산된 산발적인 저항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통합하고 발전시키는 '노동계급 정당'과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 <9장.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바스카 선카라, 2019.



<1부>에서 사회주의 역사를 일별한 후, 신자유주의를 사기꾼 '맥(The Mack)'으로 은유한 이 책 <2부>의 <8장. 맥의 귀환>에서 198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 지배이념이 된 신자유주의에 도전하는 가장 왼쪽의 버니 샌더스의 '계급정치'와 제레미 코빈의 '대안정치'를 평가한 후 바스카 선카라는 다시 '사회주의 원칙'으로 돌아온다. 즉, 사회주의가 전면에 나서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강력한 대중적 '노동자 정당', 둘째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사회운동적 기반(조직), 셋째는 마르크스로부터 강조된 강력한 '노동조합 운동'이다. 의아스럽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주의 선언'의 요소가 왜 2백년 전 이야기와 같은가.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느슨한 정치동맹체"를 지목한 저자는 그리스 시리자나 스페인 포데모스 등의 좌파연합체보다는 확실히 강력한 노동자 중심의 대중정당에 방점을 찍고 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이 노동조합의 '민주화'다. 이 전통적인 두 요소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는 바로 아래로부터의 대중 '민주주의'다.


사회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역사학도'라고 했다. 진정한 역사학은 해당 시기를 고정된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다. 원칙은 그대로라도 시대적 조건이 다르면 그 원칙이 실현되는 형태가 다르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폭력혁명'을 주장했다면 그 배경은 평등한 보통선거로 정치참여가 불가능했던 19세기의 열악한 조건이 있었다. 독일 사민당 역사에서 칼 카우츠키가 19세기말 에르푸르트 강령을 통해 한층 더 낙관적인 계급투쟁과 생산수단 사회화를 주장했던 배경에는 자본주의 생산력의 낙관적 발전과 의회의 다수점령을 통한 노동계급의 참정권 확대의 조건이 있었다. 20세기초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이 가능했다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터에서 죽느냐 아니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다가 죽느냐 둘 중 하나의 극단적 선택지를 쥔 노동자-병사 소비에트 민주주의라는 조건이 있었다. 스웨덴 사민당이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를 벗어나 자본의 이윤과 함께 동반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한 배경에는 세계대전으로 피해를 덜 입었고 그로 인해 자본의 파괴가 덜했던 스웨덴의 조건이 한 몫 했다. '혁명'이란 대규모의 전면적 파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인데, 두 차례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적 전쟁경제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이런 대규모 자본파괴를 동반했다.


지금 다시 19세기의 사회주의 원칙인 '강력한 산별노조'와 '강력한 대중적 진보정당'을 '사회주의 선언'의 조건으로 내걸 수 있는 배경은, 우리 모두들 알고 있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불평등' 구조와 그럼에도 생산력 발전은 정체되며 기후위기로 인한 대재앙이 예고되는 세상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동안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해 정보네트워크 등 사회기반시설이 '공유재'의 경향성을 가지면서 더 많은 다수가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는 '대중 민주주의'가 무한 확장된다는 점이다. 다수가 생산한 '공유재'를 다수가 전유함으로써 노동조합의 관료성이 허물어지고 진보정당도 민주화되는 조건이라면, 신세대 '사회주의 선언'의 조건이 다시금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민주주의'로 재소환되어도 우리 다수가 얻어올 세상은 이전 세기와 달라질 수 있다.

역시 미국의 정치 평론가인 아론 바스타니(Aaron Bastani)가 2019년에 매우 낙관적으로 주장한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 :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라는 놀라운 작명의 [21세기 공산주의 선언]의 시대적 배경도 동일하다. 동시대 사람인 바스카 선카라가 [사회주의 선언]의 결론(<9장>)으로 내건 '15개 테제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해도 변화된 현재의 시대적 배경에서 변치 않는 '사회주의 선언'의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는 있을지 모른다.

전혀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사회주의 선언'은 달라진 시대적 배경을 조건으로 할 때 다시금 새로워진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73


이제 비로소,

잃을 것은 낡은 체제요,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다.


***


1.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The Socialist Manifesto)](2019), Bhaska Sunkara,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편집부 옮김, 2021.

2.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Aaron Bastani,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3.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1848.

4.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5.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 ‘큰 개혁’과 ‘작은 혁명’들의 이야기], 장석준, <서해문집>, 2019.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2509485011?afterWebWrite=true


이전 11화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도니 글룩스타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