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공산주의가 눈앞에 있다!
'럭셔리' 공산주의가 눈앞에 있다!
-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 '공산주의'는 인류가 마르크스가 '필요의 영역'이라고 부른 것에서 탈피해 '자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
'공산주의'는 화려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가 아니다."
-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1-3. FALC란 무엇인가>, 아론 바스타니, 2019.
1848년 유럽혁명의 시기에 '과학적 사회주의자'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을 때, 혁명의 '현실정치'적 결과는 또 다시 '왕정 타도'와 '공화국 건설'이었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이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달랐던 건 다수 '노동계급'의 힘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바야흐로 일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된 채 가진 건 노동력 뿐인 도시 '자유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다수 양산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한 신세계는 이 다수 노동계급의 힘으로 소외된 노동을 해방시키고 나아가 '계급' 자체가 철폐된 세상이었다. '계급투쟁의 인류역사'를 끝장내는 것이 다수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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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70여 년이 흐른 2019년, 미국 정치평론가 아론 바스타니(Aron Bastani)는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풍요'와 '자동화'를 기반으로 탈자본주의적 새로운 '정치'를 통해 쟁취할 세계를 다시금 '선언'한다.
이른바,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 :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이다.
"'5가지 위기(기후변화, 자원부족, 과잉인구, 고령화, 자동화에 따른 기술적 실업)'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버틸 능력을 약화한다. '5가지 위기'는 끊임없는 확장, 무한한 자원, 이윤을 위한 생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 등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을 없앨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같은책, <1-2. 세차례 대변혁>.
저자는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있던 1989년, 미국에서 '자본주의 체제승리'로서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무명 정치학자의 공상이론은 저자에 의하면 현재에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으로 유령처럼 배회한다. 즉,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더 게 쉽다"는 지배이념과 시장맹신 사상이 근거하는 이데올로기다. 2018년 후쿠야마는 자신의 '역사의 종말'이 헛소리였음을 시인했다지만 체제유지를 위한 시대의 관념은 굳건하다. 인류의 마지막 체제는 자본주의 밖에 없다는 관념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1차 대변혁'인 '농업혁명'과 '2차 대변혁'으로서의 '산업혁명'에 이어 '3차 대혁명'인 '정보혁명' 또는 '정보의 대해방'(같은책,<1-2>)에서 정점을 찍는다. 과학기술 발전과 디지털화로 인해 정보, 노동, 에너지, 자원, 건강과 음식 등 '희소성'을 경제적 특징으로 하던 재화들이 무한발전 및 무한공급되고, 이것들의 가격이 공짜('0')로 수렴되는 '무어의 법칙'이 작용하면 이를 다수가 전유하도록 분배하는 '력셔리 포퓰리즘 정치'를 통해 'FALC'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뜻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사라지고, 풍요가 희소성을 대신하고, 노동과 여가가 하나로 합쳐지는 사회다... FALC는 '3차 대변혁(정보해방)'의 경향을 뒷받침하기 보다 그 자체로 '3차 대변혁'의 경향이 도달한 결론이다...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희소성'을 겪는 상태에서 어느 것이 유용성을 넘어서는지 보여준다. 필요한 것을 뛰어넘은 과잉이 이 개념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보, 노동, 에너지, 자원의 값이 영구적으로 내려가고 일과 낡은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용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구분하는 모든 경계를 허문다."
- 같은책, <1-3>.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간다"는 마르크스주의 이상향 또한 '희소성'의 경제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에 의하면 이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풍요'와 '자동화'다. 태양열은 전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할 에너지를 단 9분만에 지구로 전달하고 있으며 기후위기를 벗어날 '탈탄소' 자원은 얼마 안 있어 우주로 나가 채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이 아니라 실제 혁신적인 자본가들과 그 정권들이 이미 고액을 투자하여 시작한 일들이다. 물론 '자유 시장'을 믿는 그들은 '무한공급'의 가능성을 여전히 '희소성'으로 위장해서 소수의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다수가 할 일은 '3차 대변혁'의 특징인 '공짜로 수렴하는 자원과 기술'의 경향을 믿고 이 '공유자원(the commons)'들을 재전유하는 것이다. 이 '공유자원'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어셈블리](2017)에서 다수대중이 재전유해야 하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s)'과 같고, 노동하는 다수에 의해 확대되어야 하는 소유의 '사회화'다. 이제 공공재를 만드는 사람이 그 공공재를 소유하는 시대가 진정 오게 된다.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제대로 된 '중앙은행'의 최종 임무는 금융자본시장의 '점진적 사회화(같은책,<3-1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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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하트 / 안토니오 네그리, [어셈블리], 2017.)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전제는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소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다수'의 '소유', 즉 '사회화'를 위해서는 '력셔리 포퓰리즘'이 필요하다.
"'포퓰리즘'이란 경제를 움직이는 주류의 사고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정치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경도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대란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 아래 '포퓰리즘'을 공격한다... '력셔리 포퓰리즘'은 '붉은색'과 '녹색' 정치를 한데 결합한다... 번영과 민주주의, '공유자원(the commons)'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 완성하는 관계다.
... '3차 대변혁'이라는 조건이 마련되기 전에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1차 대변혁' 전에 잉여생산물을 얻거나, '2차 대변혁' 전에 전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같은책, <3-9. 대중의 지지 : 럭셔리 포퓰리즘>.
'FALC'의 정치 모토는 '자유'와 '화려함', 그리고 '탈희소성'의 추구다. 14세기에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카톨릭을 대중화했던 영국 신학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보다 후대인 <95개조 반박문>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에 불을 당길 수 있었던 건 15세기 근대 인쇄기술의 '혁명'적 변화가 비로소 바탕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19세기 '공산당 선언'이 20세기 '공산권 몰락'의 구질구질한 이미지로 남은 이유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생산력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해서다.
아론 바스타니에 의하면 이제 '풍요'와 '력셔리'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다시금 '공산주의 선언'이 가능하다.
화려하지 않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소비에트가 구리게 끝난 이유도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이론에 기반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인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로 발전한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마르크스의 '예측'은 여전히 '과학'이었으나 정작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도, 노동자 보통선거도 못보고 19세기에 지구를 떠났다.
"이제 기술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기술을 뒷받침하는 사상과 사회적 관계, '정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
우리는 'FALC'를 지도 삼아 '희소성'과 '노동기반사회'라는 미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FALC'는 지금 당장 필요한 행동을 제시한다... 'FALC'는 구체적이고 단순명료한 '정치'적 방안을 요구한다. 바로 신자유주의와 단절', 노동자 소유경제로 이행,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국가재정 지원,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상품이 아닌 기본권으로서 'UBS(Universal Basic Service : 보편기본복지)'다...
...
쟁취해야 할 세계가 눈앞에 있다!"
- 같은책, <3-12. FALC : 새로운 시작>.
결론은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지배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GDP 수치 성장과 '통화주의'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국가'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국제투기에 대항하는 '국제주의'적 '자본(금융)거래세'(같은책,<3-11>)와 부유한 선진국이 '제3세계' 저발전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지구세'(같은책,<3-10>) 등은 토마 피케티식 '현대화된 사회민주주의'의 또 다른 대중판 같기도 하지만, '21세기 공산주의 선언'을 내건 아론 바스타니의 'FALC(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그 '너머'를 확실하게 명시한다. 모두가 등돌려 버린 '구질한' 공산주의를 '화려하게' 포장하면서까지 말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5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2013.)
https://brunch.co.kr/@beatrice1007/135
(토마 피케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2019.)
'희소성'과 '노동기반사회'의 기존 자본주의적 '미로'에서 벗어나는 우리 모두의 기본권 보장은 '보편기본복지(UBS : Universal Basic Service)'로 정책화된다.
이는 '보편기본소득(UBI : Universal Basic Income)'보다 "바람직한 대안"(같은책,<3-11>)인데 "노동 없는 임금"인 '기본소득'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사실 외에 모든 것이 불확실"(3-11)한 반면, '보편기본복지'는 주거나 의료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하면서 '화려한' 공산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에너지와 노동, 자원이 정보와 마찬가지로 공짜에 가까워지고 무한공급이 확대되는 한, 역사는 'UBS(보편기본복지)' 편이다(같은책,(3-10>)."
이는 다음 우리 대선의 주요쟁점이 될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의 대립에서 '복지축소'를 전제로 하여 '국가임금'식 괴물로 변형될 우파적 '기본소득' 책동을 분쇄하고 '보편복지'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 몇 푼과 기본권을 교환할 수는 없다.
'붉은색(평등)'과 '녹색(환경)'이 결합된 정치(생태사회주의)를 통해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생산된 '공공재(the commons)'를 다수가 재전유하는 '풍요'와 '럭셔리'가 '공산주의'였다니, 저자의 낙관적이고 꿈같은 이야기가 새삼 고맙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재생에너지와 '탈탄소화', 우주개발, 생명(유전)공학, 세포농업 등 현대과학의 신기술 발전에 관한 <2부>의 노동, 에너지, 자원, 건강, 음식 등의 간략한 소개들은 오히려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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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2.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
3.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4.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5.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6.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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