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재구성
-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著, 장경덕 외 譯, <글항아리>, 2014.
경제학은 어렵다. 각종 수치들과 수학공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제학자들은 ‘순수과학자’임을 자처하는데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로 ‘불평등’ 문제를 세계사적으로 고찰하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불평등이 가장 극심하여 21세기의 구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현재 미국의 소득계층 구조에서 ‘선망받는 자리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이 그런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자신의 학문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주의 경제학과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불평등… 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의 크기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21세기 자본], 제3부 제7장 <불평등과 집중:기본적 지표>
[21세기 자본]의 주제는 ‘불평등’이다. 피케티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사회구성체론, 즉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의 ‘추상적 개념’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사회적 국가’, ‘누진적 자본세’, ‘국가 공공부채’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은 분명 경제학자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저축률 등의 방대한 통계자료(주로 근현대 약 300년간)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토마 피케티는 역시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 자본의 성격은 변했다. 과거에 주로 토지였던 자본은 이제 부동산, 산업 및 금융자본(자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
- [21세기 자본], 제2부 제3장 <자본의 변신>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적 데이터들을 주요 근거로 하여 불평등의 역사를 파헤치는 토마 피케티에 의하면 칼 마르크스는 의회보고서의 애독자였음에도 당시의 구체적 데이터 조차도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등이 20세기에 철학적으로 ‘다시 읽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은 ‘순수이론서’이다. 즉, 19세기 당시 최고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있던 영국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국으로부터 추출한 ‘추상적 개념’을 발전시켜 ‘순수이론적인 자본주의 자체’를 상정한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이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을 폭로’하는 서술형태를 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닌의 [철학노트]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르크스는 가장 단순한 개별로서 ‘상품’에서 시작하여 가장 총체적 보편으로서 ‘자본주의’ 자체를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는 최근 발간한 [자본론 공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론] 1권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 [자본론 공부], 제8장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2014.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잉여가치과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며 이는 자본의 원시축적에서부터 일체의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대다수 노동계급만이 담지한다. 자본에 대하여도 마르크스의 [자본] 3권에서 지대는 이자, 이윤, 세금 등과 같이 노동으로부터 생산된 잉여가치에서 배분된 형태 중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피케티는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본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대다수가 되는 노동계급의 ‘산 노동’이 [자본] 3권에 이르면 자본가의 ‘죽은 노동’을 대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하는데 피케티는 자본을 ‘비인적 자본’, 노동을 ‘인적 자본’으로 호명하며 ‘인적 자본’인 노동을 ‘주도적 형태의 자본’이라 규정한다. 보통 선진국 또는 피케티가 부르는 ‘부유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이 70%는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피케티 역시 방대한 자료를 통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인 ‘자본/소득 비율’을 약 30%인 ‘1/4 또는 1/3’ 정도로 본다. 여기서 피케티가 자본주의 분석에 사용하는 공식 몇 개는 차치하고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자 ‘양극화의 근본요인’으로 보는 공식은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이라는 부등식이다. 역사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누진적 소득세 등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사회복지국가 형태로 극복한 호황기를 제외하고 세계대전 이전이나 현재는 자본수익률(r)은 4~5%인데 반해 경제성장률(g)은 장기적으로 1~1.5%이므로 이 부등식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을 피해 자본축적 과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자본의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혹은 적어도 노동에 비해 자본의 거시경제적 중요성을 진정으로 축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도 이와 마찬가지인지를 고찰해야만 할 때다.
- [21세기 자본], 제2부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피케티는 자신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다름을 역설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은 빗나갔고 소련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으며 전후 사회민주주의 정책 또한 ‘현대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토마 피케티는 그럼에도 사이먼 쿠즈네츠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완화되고 균형을 이룬다고 예견하고 있지도 않다. 한편으로 장하준 교수처럼 보호무역과 국민국가적 시장통제를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계급 없는 완전평등사회 같은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자본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토마 피케티의 ‘자유주의적’ 결론이다.
(글로벌) 자본세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 국가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다. 첫번째 목적은 부의 불평등이 끝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두번째 목적은 금융 및 은행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은행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세는 우선 민주적 투명성과 금융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누가 전세계에 어떠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야만 한다… 자본세는 자본통제의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며 유럽의 비교우위에도 더 잘 맞는다.
- [21세기 자본], 제4부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자본은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올바른 해법은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 자본세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높은 수준의 국제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21세기 자본],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