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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y 30. 2020

[어셈블리](2017) - 안토니오 네그리 외

'새로운 군주'인 전략적 '다중'에 의한 '대항권력'

'새로운 군주'인 전략적 '다중'에 의한 '대항권력'
-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새로운 '군주(君主)'가 지평선 위로 출현하고 있다. 이 '군주'는 '다중(多衆)'의 열정에게서 태어났다. 은행가, 금융가, 관료, 그리고 부자들의 여물통을 끊임없이 채우는 부패한 정책에 대한 의분,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의 끔찍한 수준에 대한 격분, 지구와 그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분노와 걱정, 멈출 수 없을 듯이 보이는 폭력과 전쟁에 대한 규탄. 사람들 대부분이 이 모두를 인식하지만,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힘이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군주'란 자유와 평등의 길, 모두에 의해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공통적인 것'을 모두의 손에 쥐어주는 과제를 제시하는 길을 가리킨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군주'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개인 혹은 심지어 어떤 당이나 지도자 회의를 가리키지 않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이한 형태의 저항과 투쟁이 마디마디 이어져서 이루어진 정치적 결합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군주'는 일관된 배열로 움직이며 암묵적으로 어떤 위협을 가하는 떼, '다중'으로 나타난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서문>, 2017.


삼성 재벌에게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다 1995년에 해고된 김용희 노동자가 1년 여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노동자가 함께 만든 '사회적 부'를 불법적으로 '사유화'하려는 한 줌의 삼성 재벌 3세가 재판에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공대위와 합의했으나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다중'의 힘으로 정치 권력자의 자리만 바꾼 결과 민주주의자들인 '촛불 정부'는 여전히 삼성 재벌의 편이다.

2008년 신자유주의 금융자본 위기로 촉발된 다수 대중의 저항과 시위가 자본주의 개조를 외치는 지금,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2017년에 [어셈블리(Assembly)]로 돌아왔다. [어셈블리]는 지난 세기전환기에 신자유주의와 노동 대중의 관계를 정립한 [제국]이래 [다중], [공동체] 등 연작의 총결산이며, 우리말로는 '집회/시위' 또는 '모이기/모으기'를 의미한다.


1. '신자유주의' = '금융자본'의 '제국'


"(반작용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회복하는 대신 국가를 다시 발명했다. 즉, 국가를 계급투쟁과 사회적 요구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을 사회적 갈등의 위험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민주주의를 완전히 알아볼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종속시킴으로써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정치적' 형태가 체제의 다른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신자유주의와 그 통치형태에 맞서고 그것을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다중'과 그들의 '해방기획'에 있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3-0. 금융통제와 신자유주의적 협치>, 2017.


자본주의 체제의 사상적 유래는 '자유주의'다. 근대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이념인데, 자본의 이익 창출은 개인간의 계약으로 가능하니 국가는 '작은 정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혁명사상으로서 '자유주의'는 봉건지주 왕국은 무너뜨렸으나, 노예처럼 일하거나 굶을 '자유'만을 지닌 다수 노동계급을 양산했다.
세계대전과 자본주의 체제내 복지국가 전성기를 거치면서 강력한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반작용'으로 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자유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국경을 넘어서 이익을 창출하는 초국적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되 '제국주의'적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과 그들의 연합체를 더욱 강화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조상인 '자유주의'와 달리 '작은 정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초국적 자본의 전세계적 수탈을 지지하고 보장하는 강력한 국가권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네그리와 하트는 지난 세기말 저작 [제국]에서 '제국'은 20세기 초중반의 '제국주의'가 아니고 그렇다고 초강대국 '미국'도 아니라고 규정했다. 이는 형태는 달라졌으되, 본질은 '금융자본'이 주가 되는 점에서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 제국주의'의 계보 위에 있다.

이 '신자유주의'의 위기 또한 '금융자본'의 위기에서 촉발될 수 밖에 없는데, 2008년부터 전면화된 세계적 금융위기가 그 현상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금융은 도박(투기)이 아니라 박탈의 장치"(3-10)로서 "실제로 금융자본은 철도, 통신, 제조업 혹은 국가의 문화재와 같은 공공재 등을 개인의 손에 넘기는 과정에 기여한다"(3-10). 모든 '신자유주의' 정치권력이 열성적으로 수행한 '민영화' 얘기다. '민영화'는 '제국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유행이나 정책결정이 아닌 '금융자본주의'의 필연적 형태인 것이다.

'자유경쟁'에서 출발한 자본주의는 그 발전단계에서 '독점'으로 흐르며 이를 촉발하는 '금융'이라는 매개는 끊임없이 '혁신'을 외치지만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기업가정신' 따위가 아니라 '파생금융상품' 등에서 보듯 모든 사물과 생명체까지도 '자본'으로 '추상화'시켜 이익을 무한하게 '추출'하고자 한다. [어셈블리]가 말하는 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의 '추출주의'는 "지대가 산출되는 모든 활동들이 그렇듯... 생산으로부터의 유리(추상)로 특징지어지며"(3-10), 노동생산 현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광범위하게 착취한다. 이 과정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한 '자본의 지대추구화'와 맞닿아 있으며, 이러한 금융자본이 "생산에 대한 중앙집중화된 통제를 촉진"(3-10)함으로써 '독점자본'으로의 필연적 귀결과 이와 결탁한 국가권력을 '발명'하는데 가히 김규항 선생이 [혁명노트]에서 말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한쪽에는 '이자로 먹고살며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다른 한쪽에는 "집단적 지식과 지성 및 사회적 소통능력, 돌봄능력, 협력능력을 통해 사회적 부(공통적인 것)를 생산하며 자신들이 생산한 공통적인 것에 대한 자유롭고 열려있는 접근을 통해 안전을 추구"(3부 - 시초축적 보론)하려는 '불안정한' 다수가 있다.

이것이 [어셈블리]가 규정하는 '계급투쟁'의 '전선'이다. 또한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금융통제', '혁신'과 '창조적 기업가정신'의 객관적 실체다.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악질적인 측면은 재산 소유자의 자유나 자본주의 기업가의 자유에 관한 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나 사회 최하층민의 자유를 찬양한다는 점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기업가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새처럼 자유롭다. 자신의 불안정한 삶을 최선을 다해 관리할 자유, 그리하여 살아남을 자유라니, 이 얼마나 멋진 위선인가!"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3-12. 이음매에서 어긋난 신자유주의적 행정>, 2017.


2. '공통적인 것' : '고정자본'의 재전유


"현대적 소유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오늘날의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의 형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노동이 사회화되고 전사회가 가치화의 영역이 될 때, 즉 지성, 신체활동, 문화적 창조성, 온갖 창의적인 힘이 협동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사회를 생산 및 재생산할 때, '공통적인 것'은 생산성의 열쇠가 되는 반면, 사적 소유는 생산능력을 저해하는 족쇄가 된다. 다시 말해 소유의 주권적 성격을 벗겨내 '공통적인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새로운 소유형태가 아니라 '비소유'이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2-6. 어떻게 소유를 공통적인 것에 개방할 것인가>, 2017.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자본주의 모순' 중 하나는 '사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간의 그것인데, 생산수단(고정자본)을 사유화하여 발전시킨 '생산력'과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계급과 노동력만을 가진 다수 노동자계급과의 '생산관계'간의 모순이다. 자본이 독점화되고 '소유'가 '사유화'될수록, 생산수단(고정자본)으로부터 분리된 노동자계급은 다수가 되므로 '생산'은 '사회화'된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헤겔화'시킨 루카치나 마르쿠제 등의 해석으로 이제는 현재에 맞게 '현대화'시켜야 한다.
[어셈블리]는 노동하는 '다중'의 '연대경제'를 강조하는데, 다수의 '협력'과 '자주관리'를 대안으로 하여 '다중'의 자유를 확장하고 협력의 규칙 및 민주주의 규범이 되면서 이러한 '사회적 협력' 속에서 '다중'의 '주체성'이 발생한다(2-6).

"'디지털화'는 이미 공장에서 일어나던 노동력의 기술적 구성의 변형을 전사회적으로 확장"(2-7)했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자본의 생산활동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다수의 소비자들의 관계에서 보듯, 더이상 '사적 소유'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는 "고정자본에 부여된 노동자들의 생산적인 사회적 협력은 비록 지금은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를 자본에게 넘겨주긴 하지만, 노동자들의 자율을 위한 잠재력을 제기하며, 노동과 자본의 힘 관계를 역전시킨다"(2-7). 이 역관계는 '계급투쟁'을 생산적 삶 자체에 투입하는데, 공장노동을 넘어선 전사회적 생산자로서 다수의 '사회적 노동'은 '삶정치적'(2-7) 계급투쟁의 형태를 제기하는 바, 이제 사회적으로 노동하고 생산하는 '다중'은 '협력'과 '연대'의 '민주주의' 무기로 무장한 채 '고정자본'을 되찾고 '재전유'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정의한  '산 노동'의 생산적 축적물로서 '죽은 노동'인 '고정자본(생산수단)'은 이제 현대에 이르러 다수의 수중으로 '사회화'되어야 한다. [어셈블리]는 "고정자본은 인간자신이다"(2-7)라고까지 규정하는데, '노동력'을 '인적 자본'으로 바꿔 부른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역시 맞닿는다.


"오늘날 강력한 노동형상이 알고리즘의 기능에 가려져 있다... '알고리즘'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지성에서 나온 기계이자 '일반지성'의 생산물인 '고정자본'이다... 노동자는 노동하는 동안 고정자본을 전유하여 그것을 다른 노동자와의 사회적, 협동적, 삶정치적 관계에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생산적 자연을, 즉 새로운 생산양식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삶형태를 결정한다... '고정자본'의 '재전유'는, 다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창출한 물리적 기계, 인공지능 기계, 사회적 기계 및 과학적 지식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는 것은, 그 전장에서 우리(다중)가 착수할 수 있는 대담하고 강력한 하나의 사업인 것이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2-7. 우리, 기계적 주체들>, 2017.


산업과 공장을 넘어서 전사회적으로 확대된 현재의 계급투쟁의 전장에서 "환원할 수 없는 다양성"(2부)으로서의 '다중'은, '공장 외부'에서 "사회적 생산"을 기반으로 '노조 외부'에서 "사회적 조합주의"를 공유하면서 새롭고 더욱 강력한 의미의 '총파업'으로서의 "사회적 파업"을 통해 '생산수단(고정자본)'을 '사회화'하는데 여전히 복무해야 한다.


"'모두에게 그들의 필요에 따라'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이고 환상적인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부의 생산 및 재생산에의 공통 참여에 따른 '공통적인' 가능성들의 재분배를 위한 정치적 지령이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16. 포르톨라노>, 2017.


3. '새로운 군주' = '다중'


"대신에 운동들은 전략과 전술을 전도해야 한다. 즉, 전략은 출현하는 사회세력들의 자율을 표현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전술은 기존 제도들에 (적대적으로) 참여하면서 특정한 경우에는 '리더십'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중(새로운 군주)'의 힘...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에 굳건히 근거할 때에만, 즉 우리가 공유하는 삶형태를 '공통적인 것' 안에서 유지하고 발전시킬 때에만, 우리는 오늘날 적절하게 말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다중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다르게, 민주주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함으로써, 사회적 삶이 기입된 '공통적인 것'을 함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잡아야 한다. 이것은 전위의 기획이 아니라 전복적, 적대적 형태로 사회의 복수적 존재론을 표현하는 연합의 기획이다. '다중'의 힘이 '새로운 군주'를 요청한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0. 새로운 군주>, 2017.


이탈리아 정치학 사상가인 [어셈블리] 저자들은 역시 그람시가 그랬듯 '군주(君主)' 타령이다.
물론, 민주주의자들이 말하는 '군주'가 왕일리는 없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영향이다. 그가 당시 가장 이상적 정치체제로서 '군주'를 호명한 것에 대한 정치적 '은유'로서 그람시는 그의 [옥중수고]에서 1920년대 '현대의 군주'는 '진보정당'이라 했고, 백년 후의 네그리와 하트는 "다양한 생산적 주체들"로서의 '다중(多衆)'을 '새로운 군주'라 명명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이상적 삶정치 체제'를 만드는 주체들이 바로 '다중'이기 때문인데, 세기초 [제국]의 결론으로서 '대중(multitude)'과 내용상 동일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48


[어셈블리]에서 인상적인 테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다중에게 전략을, 리더십에게 전술을!" (1부)

"공통적인 것을 첫째로, 권력을 둘째로!" (4부)

'리더십'이 이끌던 저항과 집회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무기로 다양성과 자율, 협력과 연대를 통한 '집회/모이기', 즉 '어셈블리(Assembly)'의 시대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다중과 유리되어 가기만 하는 '대의제' 자체도 실패했다고 규정하나 이는 '아나키즘'이나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군주'인 '다중'은 사회적 부로서 '고정자본'이나 기후환경 등을 포괄하는 '공통적인 것'의 재전유를 위해 '조직화'하는 "정치적 현실주의"(4-13)를 채택하고, '공통적인 것'을 우선 사회적으로 재전유한 후 '권력을 둘째로 잡아야' 하는데 권력자만 바꾸는 식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 되어야 한다. 즉, 다중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하고 리더십의 대의적 전횡을 완전히 통제하는 "대항권력의 제도화"(4-14)를 끊임없이 지향한다.
러시아혁명 시기 소비에트처럼 권력 위임을 너머 아래로부터 스스로 '이중권력'을 구성하면서 공적 권력과 병존하는 '대항권력'을 구축하고 대의자들을 견제 및 통제하면서 체제 변혁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중의 투쟁역사'는 "승리했든 패배했든... 대항권력의 제도를 창출했고"(4-14), 역사적으로 "공화국을 창립했다"(4-15).


이 과정에서 '대의제'를 대표하는 '리더십'은 더 이상 큰 기획의 '전략'적 위치에 있을 수 없다. 마키아벨리식 '왕자(The Prince)'도 그람시의 '현대 정당'도 아닌 '민주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군주'인 '다중(多衆:multitude)'이 '전략'을 이끌어가고 '대의'적 '리더십'은 그때마다 '전술'로 활용되는 '전복적' 약술론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그야말로, '리더십(leadership)'은 더 이상 '지도'나 '지배'가 아닌 라틴어 어원인 '여행하다(laedan)'의 원래 의미로서 '다중'들의 '자율적 여정'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말미에 잠시 언급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이전 저작인 [제국]에서 지난 세기말에 이미 '사회적 임금'으로서 제기된 바 있으며, 현재는 '사회적 노동'으로 인해 '공통적인 것'을 되찾고 재전유하는 투쟁에서 '다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회의제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사회적 생산의 결과들을 더 정당하게 분배하는 것을 제도화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의 가난과 혹사노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기본소득은... 공통적인 것의 화폐와 새로운 민주적인 사회관계들의 더 실질적인 제도화를 이미 암시하고 있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16. 포르톨라노(중세의 해양지도)>, 2017.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다중의 저항과 투쟁의 방식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어셈블리(Assembly)', '집회/모이기'다.


"'집회/모이기(Assembly)'는 '구성적 권리'가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 대안을 구성하는, 권력을 장악하되 '다르게', 즉 사회적 생산에서의 협동을 통해 장악하는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사회적 부에 기반을 두고 오래 지속하는 제도들을 창출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구성적 과정'으로, 그 관계들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다중의) 힘에 의해 성취된다."
- [어셈블리],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4-16. 포르톨라노>, 2017.


***

1.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2. [제국(Empire)](1998),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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