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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14. 2020

[제국;Empire] -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자유주의:신자유주의=제국주의:제국

자유주의:신자유주의=제국주의:제국
-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사회과학 이론서 [제국;Empire]을 통해 본 세계체제 인식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른 지금, 사회체제에 대한 해석은 기본적으로 과학적 방법에 의거한다. 여기에서 ‘과학’이란 보편성에 대한 지적 열망의 학문적 표현이었던 철학의 추상성으로부터 보다 현실에 입각한 구체성을 담보하기 위해 채택된 학문적 인식의 방법이다. 그리하여 사회체제에 대한 보편적 분석과 이해는 ‘사회과학’이라는 방법론으로 획득된다.
일찍이 19세기에 인류는 사회체제, 나아가 세계체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정식화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이 그것이다. 그의 사상에 개인적으로 동의를 하느냐 마느냐와는 상관없이 마르크스는 당시의 자본주의 체제를 과학이라는 예리한 메스를 가지고 해부하였으며, 역시 자본주의 체제는 그가 분석한 논리대로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다.
 
이탈리아의 실천적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미국의 문학교수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공저 [제국;Empire]은 걸프전이 끝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저술되었고 2000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채택한 방식인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세계체제 인식이라는 계보를 잇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계는 어떠한가. 제목에서 보듯 ‘제국’의 시대이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제국은… 전지구적 교환들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 즉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sovereign power)이다.”라고 규정한다. 근대를 시작하며 봉건적인 신분제를 타파하고 ‘제3신분’이었던 신흥 부르조아지의 지배력을 획득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공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배태된 ‘자유주의’ 사상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선언적 주장을 통해 상품을 매개로 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기가치증식을, 대다수 산업노동자의 착취를 통한 자본의 ‘자유로운’ (원시)축적을 보증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20세기에 이르면 ‘자본주의 최고의 발전단계’로서 ‘제국주의’ 이론이 탄생한다. 이 또한 세계체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20세기적 계보인데 ‘제국주의론’은 가치증식에 대한 자본의 욕구는 무한한 반면 시장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자본가들은 국내의 시장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로까지 영역을 확대하여 자신의 자본력으로 다른 국가의 자본주의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농업을 피폐시키고 대다수의 임금노동자를 양산하며 그 국가의 자본가를 통해 토착 노동자들에 대한 이중착취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확대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세계 여러 국가들의 영토를 분할하고 재분할하는 방식으로, 극단적으로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침략전쟁의 양상으로 나타나기에 ‘제국주의’적 형태가 되는데, 개별자본이 아닌 독점자본의 발전이라는 토대로, 산업자본의 이동이 아닌 금융자본의 이동을 전제로 하기에 ‘자본주의 최고의 발전단계’가 된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는 [제국]의 저자들은 ‘제국주의론’을 낡은 ‘은유’라고 규정하고 자신의 ‘제국론’을 차별적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저자들은 역시 <서문>에서 말한다.
 
“제국주의와는 달리 제국은 결코 영토적인 권력 중심을 만들지 않고, 고정된 경계나 장벽들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제국은 개방적이고 팽창하는 자신의 경계 안에 지구적 영역 전체를 점차 통합하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하는 지배 장치이다… 제국 개념의 근본적인 특징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제국의 지배는 한계가 없다.”

- [제국],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서문>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의 지적 흐름을 지배했던 ‘탈중심’과 같은 개념도 등장하고 정치적 ‘노마디즘(유목주의)’의 원류가 되었다는 철학자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독해의 흔적과 그 과정에서 질 들뢰즈나 펠릭스 가타리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의 난해함을 닮아 있는 저자들의 언사들은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무시해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국’의 본질,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론’과의 ‘차별성’을 갖는 현대 세계체제로서의 ‘제국’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읽기 어려운 이야기의 중심에는 ‘고정된 경계나 장벽들’이 없는 현대 세계체제의 ‘전지구화(globalization)’가 있으며, 지난 시절 문민정부가 지겹도록 외쳐대던 ‘세계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지난 세기와는 달리 현재는 일국의 자본이 아닌 다국적, 나아가 초국적인 세계자본이 전지구를 장악하고 세계의 모든 것이 가치증식을 위한 초국적 자본의 논리대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결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패권국인 미국을 ‘제국’의 중심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신자유주의 사상이 중심을 이룸에 틀림없는 초국적 자본의 전지구적 ‘제국’화에 초점을 두고 그 경향성만을 과학적이고 지루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는 마치 두 세기 전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당시 최고의 자본주의 발전 국가인 영국을 현실적으로 중심화하지 않고 다만 그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자본주의의 이상적 평균’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평균적 모델을 제시했던 과학적 서술방식과 일치한다. 그리하여 [제국]의 저자들은 현대 세계체제에 대한 분석을 ‘제국’이라는 개념으로 일반화시키고 보편화시킨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세계의 철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저자들은 역시 ‘해석’이 아닌 ‘변혁’의 무기로서의 철학을 주장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데-물론 [자본] 자체는 ‘변혁’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체제 해석으로서 ‘제국’의 개념과 대별되는 ‘대중’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부조리한 세계체제의 변혁과 혁신을 기획한다. 저자들은 이제 ‘제국’에 관한 이 책 1장, 2장을 거쳐 3장과 4장에서는 ‘사유의 영역에서 생산의 영역으로의 전환’을 통해 대안세력을 제시하는데, 이들은 탈중심화된 전지구적 차원에서 공간적, 시간적 권력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대중(multitude), 또는 대다수 일하는 ‘대중 노동자(mass worker)’들이다. 왜냐하면 “생산의 영역은 사회적 불평등이 분명히 드러난 곳이며, 더욱이 제국의 권력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저항과 대안이 생겨나는 곳”이기 때문이고, 또한 신자유주의적 사상을 기조로, 초국적 자본의 무한한 가치증식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세계체제로서의 ‘제국’은 실상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대중’들의 “욕망과 노동이 제국을 끊임없이 재생성하기 때문에 우리(대중들)가 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론서가 그렇듯이 분석과 서술과정에서 지루하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제국]을 통해 읽어내야 할 골자는 세계체제의 구성논리로서의 ‘제국’의 개념과 그에 대한 실질적 담지자이자 변혁을 향한 유일한 대안세력으로서 ‘대중’의 두 개념에 대한 이해, 그리고 대다수 일하는 우리 임금노동자들은 결국 ‘세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이다.
 
근대 자본주의 태동의 배후에 ‘자유주의’라는 사상이 있었고, 독점자본의 발전과 세계영토 분할의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배태된 ‘신자유주의’는 이제 우리 사는 세계가 새로운 ‘제국’의 ‘개념’이든 낡은 ‘제국주의’의 ‘은유’든 간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다. 온갖 현학적 언사의 기름기를 빼고 읽어내는 이론서 [제국]은 ‘자유주의:신자유주의=제국주의:제국’의 비례등식을 우리 사회, 나아가 세계체제의 역사에 대입시켜 대다수 일하는 노동자들이 세계체제에 대하여 다시금 인식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된다.
 
- [제국;Empire],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共著, 윤수종 譯, ‘이학사’, 2001.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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