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과 일본 '적군파'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과 일본 '적군파'
- [신좌파의 상상력](1987),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만약 1968년이 그 누군가의 해였다면, 바로 이 해는 학생들의 해였다. 베이징에서 프라하와 파리를 거쳐 버클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1968년을 특징짓는 운동들의 도화선이 됐다... 학생들은 대중 동원을 불러 일으키고 혁명적 조직의 초기 형성을 주도하는 등, '민족해방' 운동 내에서 오랫동안 중요한역할을 담당해 왔다... 1968년의 학생운동에서 돋보이는 점은 이들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변해갔던 단계이다... 자기 이해(경제투쟁)에서 보편적 이해(정치투쟁)로의 전환(에로스 효과의 또 다른 차원)이 1968년에 발생한 일이었으며, 모든 이들이 이를 분명히 목격했다... 1968년에 학생들이 전개한 활동이 직접적으로는 정치적이었다면, 이들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는... 일상생활에 대한 가정들(소비주의에 대한 문화적 순응, 여성억압, 소수집단과 젊은이들에 대한 차별)을 의문에 부치면서, 학생운동은 전세계적인 정치적 반란을 동반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됐던 '문화적 자각'을 전세계적 차원에서 촉진... 핵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학생운동은 기존의 현실과 날카롭게 대비되는 전세계적 열망을 '자율적으로' 일치단결시켰다."
- [신좌파의 상상력], 조지 카치아피카스, <1968년의 사회운동들>
[신좌파의 상상력]은 미국의 인문사회과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1987년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한다. 그가 이 논문의 서두에 "스승이자 친구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게"라는 헌사를 바친 것을 보면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일군의 마르크스주의 일파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제자였던 듯 하다. 동서냉전의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영구적 '부정의 변증법', '끝없는 혁명'의 편인 것이다.
카치아피카스는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과 미국의 '1970년 5월 혁명'을 주로 다루는데, 국제적 사건의 기원은 1961년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의 결성과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1968년 베트남의 대대적 '구정공세'로 수세에 몰린 미국의 군대 증파로 인한 '반전운동'의 확산이다. 그러나 그 물적토대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와 비록 '노동계급 혁명'을 이루었음에도 '혁명'을 배신한 '스탈린주의'였다. '68 혁명' 기간에 '반스탈린적 마오(모택동)주의'와 '영구혁명'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발호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기존의 '(구)좌파'와 차별화되면서 '신좌파'로 명명된다.
"(1968년) 5월은 경제적 해방을 위한 사회적 운동과 거대한 문화적 반란이 융합됐다는 특징이 두드려졌다... 사회주의적 저항이라는 오랜 전통 내에서 5월의 사건들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 것은, 바로 대규모의 사회운동 내에서 문화적 반란과 정치적 반란이 결합됐다는 사실이었다... 역사는 자신을 반복할지 모르지만,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아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희극)'으로. 물론, 다음과 같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첫 번째는 '에로스'로, 두 번째는 '카오스'로."
- [신좌파의 상상력], <프랑스 신좌파, 1968년 5월>
'에로스'는 '로고스' 즉, '이성' 지배에 대항한 '감성'이나 '욕망'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카치아피카스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마르쿠제에 의하면 '이성 지배'의 극단적 반대급부로서 프로이트식의 '성적 욕망'과는 다른 '인간 본성'인데, 동양식으로 보면 공자의 '인'이다. '인'의 정치는, 인간의 '어진 본성' 또는 '인류애'를 실현하는 정치이며, 이것이 서양 '68 혁명'의 '에로스'의 정치와 맞닿는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일상 혁명'으로서 '신좌파'의 '68 혁명'은 일단의 '실패'로 귀결되는데, 새로운 '상상력'에 기반했던 '일상 혁명' 의제들이 기존 의회정치에 포섭되면서 진보적이고 급진적 정치는 '사표'가 되고, '학생운동가'들의 운동이 '직업화'되고 이전의 '수단'이 '목적'으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된다. 체제 변혁의 '거대 담론'은 '가부장제 혁파', '군축'과 '젠더', '세대' 등의 '부문(운동) 담론'으로 분화된다.
영구적인 '일상 혁명'의 반복 속에서 1968년도는 '에로스'로, 이후의 반복은 '카오스'로 보일 수 있겠다.
"... '문화 혁명'의 자동적 발생이라는 초월적 믿음(일단 경제가 변혁된다면,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도 곧 따라 변할 것이라는)... 즉 지난 60년 동안의 실천 속에서 완전히 그 신용이 상실된 이론... 하지만 이와 동시에, 철저한 '정치 혁명'이 사회를 철저히 변혁시키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도 안된다."
-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정치적 유산>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계속 혁신되고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지식인 노동자와 관료주의가 강화되고 기업의 경제영역에도 확산되면서 기존의 '프롤레타리아'는 분화되고 이간된다. 이러한 계급의 분화 속에서 [신좌파의 상상력]의 마지막 질문은 '혁명의 주체'에 대한 그것이다. 또한 다양해진 '혁명의 주체'들에 의한 부단한 "필수적 정치 혁명"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정치경제적인 '물적 토대'와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상부 구조'는 여전히 상호 영향을 미치며, 결국 더욱 근본적인 것은 '경제'이고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노동자 계급의 변화에 덧붙여, '혁명적 주체'가 스스로를 구성해 나아가는 방법상의차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좌파'가 던져준 유산들 중 하나는, '혁명적 주체'의 형성이 객관적으로규정된 생산 범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역사적 통찰이다. '대자적 계급(부르주아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같은 상대적 계급 각성)'의 형성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민족이 공장 내에서 경제적 착취를 당하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억압 및 정치적 지배를 겪는 차원에서도,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차원 모두에서 발생한다. 현대 세계에서 원자화된 개인이 '혁명적 주체'로 변형된 사례에는 제3세계의 민족해방 운동은 물론이고, 학생과 여성 및 공동체, 그리고 특히 중요하게는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발생한 운동도 포함된다."
-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정치적 유산>
'신좌파'는 분화된 '혁명적 주체'라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일체의 모든 '억압'에 맞서는 다양한 '혁명 주체'들의 영구적이고 일상적인 '혁명'이 1968년'신좌파'의 유산이며, 이를 끊임없이 추동하는 것이 바로 꺾이지 않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상상력'이다.
"너희에게 베트남 동지들을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멋대로 죽일 권리가 있다.
...
너희에게 오키나와 동지들을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있다면,
우리에게도 너희를 총검으로 찌를 권리가 있다."
-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군사혁명위원회, '전쟁 선언' 중 /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재인용
한편, 1968년 유럽과 1970년의 아메리카, 일본을 휩쓴 '학생운동'은 1968년 일본의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세대를 양산하는데, 특히 일본 '전공투' 세대의 교조적 '섹트'인 '적군파'는 독일어 '분트(공산주의자동맹)를 모체로 하였고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테러' 등을 통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일본 내부에서는 반자본주의 '무장 투쟁' 공동체로서 1970~1972년 '아사마 산장 농성'과 같은 폐쇄된 조직 내 살인과 숙청, 비극적 몰살 등의 엽기 행각으로 '사이비 종교단'과 같은 신비주의적 관심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적군파' 초기 멤버이자 '일본 적군'의 여성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는 2000년부터 '전향'을 거부한 채 20년째 복역 중이고, 역시 일본 '전공투 세대'인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는 '허무주의 또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소설화하는데, 일례로 하루키의 [1Q84]에 등장하는 변태적이고 이단적인 '종교단체'의 모티브 또한 '전공투'의 '좌파 섹터' '적군파'다.
여담으로, 1972년 '마징가 Z' 원작 만화의 '선과 악'의 이분법을 허무는 염세적 세계관 또한 '신좌파'의 영향을 받은 작가 나가이 고의 '상상력' 때문 아니겠는가.
(2020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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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
2.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임정은 옮김, <교양인>, 2013.
3.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2009.
4. [이성과 혁명](194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