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평전], 김삼웅, <한겨레출판>, 2012.
대다수 민중의 자주적 공동체를 향한 ‘진정한 지성’
- ‘민족경제론’ 학자 박현채 : [박현채 평전], 김삼웅 지음, <한겨레출판>, 2012.
"(민족경제론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주의 침략과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반제국주의적 경제이론이 민족경제론이며, 경제종속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탈종속의 경제이론이 민족경제론인 것이다. 시장과 무역자유화 때문에 민족경제가 받는 피해가 이득보다 크다면 보호무역주의 경제이론이, 반대로 민족경제의 활로가 무역자유화에 있다고 판단되면 자유무역론이 민족경제론이 될 것이다. 또한 계급갈등과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실업증대, 환경파괴, 민족분열의 조장으로 기존 체제의 의미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체제 변혁을 위한 혁명의 경제학이 민족경제론으로 등장할 것이다."
- 박영호의 [역사적 맥락에서 본 민족경제론](1995)을 참고한 [박현채 평전] 중.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김영삼이 주창했던 ‘40대 기수론’의 분위기에서 치열한 경선 끝에 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 후보는 ‘대중경제연구소’를 세우고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를 비롯한 여러 재야 학자들에게 의뢰하여 ‘대중경제론’을 확립한다.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경제체제’로 선언되는 ‘대중경제론’은 ‘대중이 참여하는 시장경제를 모델로 만들어본 것’으로, ‘우리 정치사에서는 정책 대결의 장을 여는 획기적인 정책 이론이자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인 이론’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훗날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앞세운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경제이론으로서 ‘대중경제론’의 뿌리였으며,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가 설파한 ‘민족경제론’의 근원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 ‘민족경제론’으로 성장위주의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대한 대항담론을 형성했던 경제학자 박현채는 박정희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궤적은 정반대였다.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였던 박정희와 10대에 이미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섭렵하고 17세에 지리산에서 ‘소년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박현채, 부정부패와 장기집권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했던 독재자 박정희와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행동하는 ‘진정한 지성’의 길을 택한 채 안정된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지식보따리상’을 자처했던 박현채.
1978년에 출간한 [민족경제론]은 우리 현대사에서 저항의 삶을 살았던 그의 젊은 날과 1960~70년대의 장년기 그의 삶을 관통한 대다수 민중에 기초한 역사관을 굳건한 토대로 했던 경제학 논문들을 엮은 저서이다. ‘민족경제론’이라는 제목은 박현채 자신이 아닌 편집자가 ‘급조’한 것으로서, 박정희 개발독재시대에서 그의 ‘민족경제론’은 다름 아닌 “체제 변혁을 위한 혁명의 경제학”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민중의 상황은 그 역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능동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경제의 상황에서 경제성장 결과의 광범한 민중소외로 사회적 불균형을 확대시키고 있다. 국민경제에 있어서 민중의 소리는 근원적인 국민경제의 구조에서 이미 주어지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국민경제의 성장유형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되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 민중이 당면한 문제는 많다. 그것은 민주주의, 평화, 민족과 통일, 인권에 이르는 광범한 자기 과제에서 제시된다. 계급적, 계층적 이해의 조정에서 공동의 자기요구를 정립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처하는 중요한 계기다."
- 박현채, [민중과 경제](1978) 중.
대다수 민중의 자주적 공동체를 향한 ‘혁명의 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박현채와 그의 ‘민족경제론’은 이후 1980년대 중반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하기도 하였다. 1985년 [창작과 비평]에서 박현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이나 ‘주변부 자본주의론’을 비판한다. 이는 ‘민족경제론’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이론으로서 우리 경제체제를 종속성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단계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는 이론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사회구성체 논쟁’은 관념적 형태로 변질되어 가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된 계급투쟁의 기본모순과 예속적 분단국가 민족모순으로서 주요모순의 치열한 선후논쟁의 결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신식민지반봉건론’ 또는 ‘신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대략 수렴하기도 하는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성격 규정을 하고자 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의 출발점 또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현채 평전]에 따르면 박현채는 ‘민족경제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적 연관성을 완전히 제시하지는 못한 바, 그가 못다 이룬 연구와 과제는 후학의 역할로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평전]은 결말을 맺는다.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처하는 중요한 계기”로서 “계급적, 계층적 이해의 조정에서 공동의 자기요구를 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일 것이며, 박현채는 대다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정치경제학을 설파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지성’임을 지금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지성은 역사에서의 충실을 위한 현실적인 반역행위와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억압과 소외에 의해 규정짓는다."
- 박현채, [시대와 지성](1988) 중.
(201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