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Jan 23. 2021

[기본소득과 좌파](2020) - 안효상

'기본소득'인가, '보편복지'인가

'기본소득'인가, '보편복지'인가
- [기본소득과 좌파], 필리프 판 파레이스 외, 안효상 옮김, <박종철출판사>, 2020.





"'기본소득 대 복지국가'라는 허구적 대당 속에서는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1) 노동, 특히 고용 노동의 중심성 혹은 우선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하든 '완전고용'을 목표이자 기반으로 보고 있다는 점, 2) 기본소득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드는 것에 비해 그 효과는 떨어진다는 점, 3)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 다른 사회보장제도를 몰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 [기본소득과 좌파], <역자후기 - 한국에서 벌어진 기본소득 논쟁(?)>, 안효상, 2020.


다음 대선에서 내 나름대로의 최대 쟁점 또는 이슈를 꼽는다면, 나는 '기본소득'이 될 것이라 본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경선후보였던 이재명은 '기본소득'을 앞세웠고 현재까지 코로나 재난수당이나 성남시 청년수당 등을 '기본소득'과 무조건 연결시키고 있다. 정치인 '이재명' 하면 '기본소득'이 자동으로 연상되도록 완전히 이미지화시켰다. 그에게는 이미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물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2020년 총선에서 허경영 무리들이 내건 '국가배당금'과 동전의 양면이다.


'기본소득' 관련 논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노동당대회에서 데니스 & 메이블 밀너 부부가 제안한 '국가보너스'로부터 시작한다. 전후 빈곤해결책으로 개인의 '삶과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현금수당을 '국가보너스'로 명명한 이 안건은 당대회에서 부결되었고 이후 '사회배당(social dividend)'이라는 이름으로 변호된다. 재원은 공기업이나 국유화 기업의 이윤으로 노동과 별개인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것이었다. '기본소득'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데모그랜트(demogrant)'라는 정책제안으로 다시 나타나는데, '민주주의(democracy)'와 '급여(grant)'의 합성어로서 매년 모든 미국시민들에게 각 1천 달러를 지급하는 '민주급여'가 그것이다. 미국 민주당 좌파의 이 제안은 결국 공약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1980년대 유럽의 급진좌파와 녹색당 등 대안세력들이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각국에 지부를 결성하면서 논쟁을 다시금 촉발하였는데, 2008년 세계 경제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현상을 배경으로 더욱 논쟁이 필요한 대목에 이르렀다. '4차 산업혁명' 또한 그 주요한 배경이 된다.
'기본소득' 논쟁에서는 1) '노동'과 2) '국가재정', 3) '보편복지'가 주된 키워드다.


"기존 사회부조 계획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에서 '무조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당은 현금으로 지급되며, 사회보장 기여금의 사전 납부라는 조건부가 아니며, 해당 나라의 시민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세 가지 추가적인 의미에서 '무조건적'이다. '개별적'이다. 기본소득은 수급자의 가구 상황에 독립적이다. '보편적'이다. 기본소득 수급 자격은 다른 원천에서 나오는 소득의 수준에 의존하지 않는다. '의무 면제(duty-free)'다. 기본소득은 일하고 있거나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 [기본소득과 좌파], <기본소득과 사회민주주의>, 필리프 판 파레이스, 2016.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이자 전 사회당원 안효상은 한국의 대표적 '기본소득론자'다. 체제 전환을 기획하는 주요 대안으로써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그는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유럽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논쟁'을 소개하면서 그 자신의 '기본소득론'을 '역자후기' 형식으로 싣고 있다. 번역은 직역수준인 듯 하며 읽을 때 잘 이해되지 않는 편인데 말 그대로 유럽 논쟁글들은 '소개' 수준이며 책의 주요내용은 '역자후기'에서 그가 하고 싶은 '기본소득론'이다. 원문의 엮은이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기본소득론자인 유럽의 대학교수로서 유럽에서 시작된 '기본소득'의 기본개념 등을 설명하면서 논쟁을 주도하고 있으며, 보 로트슈타인 교수, 빈센테 나바로 교수 등의 '사회적 유럽' 논자들은 '보편복지'와 '공공정책론'으로 기본소득에 반론을 펼친다.


기본소득은 '무조건성'과 '보편성', '개별성' 등이 특징이다. 즉, '조건없이 모든 개인에게 일정금액을 지급한다.' 단기적인 목적은 '빈곤'과 '불평등'의 완화이고, 장기적인 목표는 '체제 전환'이다. 재원은 공유재(commons)로부터의 초과이윤이든, '부유세'나 '누진세', '자본(금융)거래세'나 '기후세' 등의 누진적 세금이든 세부전략으로 다듬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이 세부 방안에 대해서는 토론을 통해 수정될 수 있지만, 체제 전환의 '대안'으로서 '기본소득론'을 수정하거나 정정할 마음이 없다. 이는 '보편복지'를 사수하기 위한 '좌파'들도 마찬가지인데, 양자의 기본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논쟁은 있으되 토론은 불가능해 보인다. 루이 알튀세르가 말했듯, "철학적 토론(꼬뮈니까시옹)은 없다." 각자의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무조건기본소득 아이디어의 기본적 오류는 '무조건성'에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계속해서 세금을 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호혜성' 원리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공동선'에 생산적으로 기여한다. 복지국가의 주요 몸체는 이타주의가 아니라 '호혜성' 위에 세워졌다. 이 원리와 헤어지면 이러한 복지국가를 세운 광범위한 토대의 '사회연대'의 유형을 해체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 십중팔구다."
- [기본소득과 좌파], <무조건기본소득: 복지국가에 해로운 아이디어>, 보 로트슈타인, 2017.


안효상이 제목에서 언급한 기본소득 반대론자로서 '좌파'라는 용어는 거의 풍자에 가깝다. 급진좌파였던 본인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을 전통 사회민주주의 입장 또는 구좌파의 전통 혁명론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세력을 싸잡아 비난하기 위한 레토릭인 것이다.
그가 보기에 '기본소득'과 '복지국가'의 대립은 허구인데, 사민주의 '좌파'는 1) 완전고용 달성을 전제로 한 '노동윤리'에 기반하고, 2) 재원 걱정을 하는 '국가재정균형론'에 머물러 있으며, 3) '기본소득'이 '복지'를 축소시킨다는 주장을 기본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 전환을 기획하는 진짜 '좌파'의 '기본소득론'에 의하면 1)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화로 인해 산업사회 '강제 임금노동'이 줄어들고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에 대한 구속이 완화되면 그것이 '노동해방'이고, 2) '재원'에 관한 전략은 얼마든지 생산적 토론을 통해 수정 및 조정이 가능하며 나아가 내가 보기에는 '현대화폐이론(MMT : Modern Money Theory)'처럼 '균형재정론'을 벗어날 수도 있겠으며, 3) '예산제약'에 관한 염려를 너머 진정한 체제 전환을 목표로 하는 '기본소득론'은 '보편복지' 축소로 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제국]에서부터 현재 [어셈블리]까지 '공통적인 것(공유재/commons)'을 '다중(대중)'이 공유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기본소득'을 '사회적 임금' 등의 형태로서 긍정적인 제안으로 본다.
한편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는 최근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누진적 자본세' 등의 재원을 고민하지 않는 현실 우파 '사회토착주의자'들의 '기본소득론'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라고 평가한다.
'완벽하게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 :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를 21세기에 선언하는 아론 바스타니는 '보편적기본소득(UBI : Universal Basic Income)'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이 들어간다는 사실 외 모든 게 불확실'하므로 주거와 의료 등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보편적기본복지(UBS : Universal Basic Service)'가 체제 전환의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전망한다.

한편으로 '국가재정 거덜난다'는 '균형재정론'적 우려에 관해서는 누진적 자본(금융)거래세 등 피케티식 사후적 조치와 달리 자국통화로 화폐가 유통되는 한 국가는 지속적으로 지출할 수 있고 국가재정의 적자는 국민소득의 흑자가 되는 '탱고춤'이라는 랜덜 레이 식 '현대화폐이론(MMT)'도 참고할 만 하다. 단, '화폐'에 관한 전통적 '상품화폐론'과 MMT의 '명목화폐론'의 기본 전제 또한 '기본소득론'과 '복지국가론'에서 '노동'에 대한 본질적 관점의 차이 못지 않게 '철학적 토론'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MMT는 '완전고용'과 '소득 주도형' 이론이라는 점에서 '노동'에 친화적이라 '기본소득'의 국가재정 논쟁에서 고려할수 있는 하나의 전략적 이론이 될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별적' 이타주의가 아닌 '사회연대성'에 기반한 '호혜성'을 더욱 유지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 감소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정치적'인 것이며, 다시 말하지만 이는 각국의 자본-노동 관계의 상태를 토대로 삼는다. 노동이 약한 나라에서는 불평등이 크다... 우리는 자본에서 얻는 소득이 노동에서 얻는 소득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고 있음을 보아왔다. 사실, 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부의 집중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것(소득을 낳은 재산)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각 개인이 동일한 액수를 받는) 보편기본소득을 토대로 불평등을 교정하는 것으로는 매우 불충분하다."
- [기본소득과 좌파], <보편기본소득이 빈곤이나 불평등을 줄이는 최선의 공적 개입이 아닌 이유>, 빈센테 나바로, 2016.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의 '혁신'과 일자리 감소는 자연사적이고 경제적인 논리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정치적'인 영역에서 인간의 권리보장 차원으로 보호된다. 우리는 18~19세기 증기기관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을 지속적으로 지키고 확장해온 '보편복지'의 '정치적' 경험을 가진 21세기 인류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화로 인한 무차별적 '노동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노동을 하고 그로 인해 정체성을 지키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빈곤은 줄일 수 있을 지언정 자산(자본/금융)소득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는 현재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도 없다.


'체제 전환'을 기획하는 '좌파'들 사이의 합치되지 않을 '철학적 토론'도 필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점은 이미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의 밥상에 극우파들이 숟가락을 얹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란 '상대'가 있는 투쟁이다. 당장 수구정당도 '기본소득' 공약을 내걸 것이고 다음 대선이나 총선 등 선거에서 정책화할 것이다. 수구정당은 한정된 국가재정을 이유로 '기본소득' 또는 '국민수당' 따위와 보편복지 제도를 함부로 맞바꾸려 할 것이며, '국가배당금'으로 최악의 우파 포퓰리즘을 시현했던 극우정당은 아예 더 나아가 모든 복지를 무력화하고 국가가 하나의 거대독점자본가처럼 국민들에게 임금수당을 지급하며 다수 민중들을 국가의 노예로 공공연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하는 다수인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국민임금수당'에 불과할 '나쁜 가짜 기본소득'을 가려내고 우리가 땀흘려 이룩한 우리의 기본권으로서의 '보편복지'를 굳게 지켜내는 것이다.

'보편복지' 제도에서 아우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각종 '수당'과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다르다. '좌파적 기본소득'은 나중에 '정치적'으로도 우리의 노동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때까지 잘 다듬고 있으면 어떤가.

지금은 설익은 '기본소득'보다는 우리 다수의 '노동'과 '기본권'에 기반한 '보편복지'를 지켜야 할 시기다.

***

1. [기본소득과 좌파 - 유럽에서 벌어진 논쟁], 필리프 판 파레이스 엮음, 안효상 옮김, <박종철출판사>, 2020.
2.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3.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4.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5.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MMT)](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6. <좌파 기본소득, 우파 기본소득을 모두 반박한다>, 이상이, 2020.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0060811214851134?fbclid=IwAR2Z6tI73Eqz3X4HM90cDe9BD3IuCzOWdZy1ZUR8NPGmdpJin5H67_Wxdgg#0DK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