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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Sep 12. 2021

[그레이트 게임](1990) - 피터 홉커크

'The Great Game' vs. 'Bolshaya Igra'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vs. '볼샤야 이그라(Bolshaya Igra)'

- [그레이트 게임](1990), 피터 홉커크, 정영목 옮김, <사계절>, 2008.





"...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그 출발선에는 1810년의 헨리 포팅어와 찰스 크리스티가 서 있고, 거의 100년 뒤의 프랜시스 영허즈번드가 마감을 한다. 이들에 맞선 러시아의 선수들도 영국인들에 전혀 뒤질 것이 없었는데, 이들은 용맹스러운 무라비요프와 은밀한 빗케비치에서 시작하여 가공할 그롬쳅스키와 교활한 바드마예프에서 끝이 난다... '볼샤야 이그라(Bolshaya Igra)'..."

- [그레이트 게임], <프롤로그>, 피터 홉커크, 1990.



1981년에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는 책으로 영국 도서 논픽션상을 수상한 피터 홉커크(1930~2014)는 1990년 소비에트러시아연방이 해체되던 시기에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21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알 카에다 '9.11 테러' 후 나토군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후인 2006년 개정판을 냈다.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지역은 2021년 미군의 철수를 계기로 다시금 '핫 이슈'가 되고 있다.



영국의 '중앙아시아' 전문 탐험가이자 작가였던 피터 홉커크는 러시아 '제국'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대영 '제국'의 신민이자, '그레이트 게임'의 '전진파'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충실한 계승자였다. 그는 20세기 중반 영국군의 장교로서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근무했으며 신문사의 통신원으로서 중앙아시아 일대를 두루 다니며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아마도 19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레이트 게임'의 영국 선수들 중 하나가 되었을 피터 홉커크는 대놓고 영국을 옹호하지도, 적국 러시아를 비난하지도 않은 채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자 한다. 1981년 [실크로드의 악마들]에서 돈황 유적을 약탈해 간 서양 탐험가들을 동양인이 부른 대로 '서양 악마들(Foreign Devils)'이라 칭하지만 그들의 '악행'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1990년의 [그레이트 게임]에서는 영-러간 '제국주의' 전쟁의 서막을 소개하면서도 균형적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중간중간 모국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개인들의 한계다. 요동과 한반도의 후예인 우리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동조할 수 없는 그런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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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여왕과 러시아의 차르는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치열한 경쟁을 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근동의 오스만 투르크와 페르시아를 두고 벌인 크림전쟁과 같은 실제 유혈 전쟁도 있었고, 영국의 주요 식민지 인도 북부접경인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일대를 두고 '첩보전쟁'을 이어갔다. 호전적인 부족들이 '칸'을 자처하며 할거하던 중앙아시아는 험한 지형과 약탈의 위험으로 인해 유럽인들의 지도에 공백 상태인 '미지의 땅'이었다. 러시아는 지속적인 남방정책을 추진했고 영국은 식민지 인도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를 광적으로 견제했다. 천년 전까지 동서양의 통로였던 '실크로드'는 해양 무역과 신대륙 시장의 확장 등으로 이미 끊긴 채 지도로 그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에 영국과 러시아의 모험심과 공명심 높은 젊은 장교들이 투입되는데, 피터 홉커크는 영국과 러시아의 소리없는 '제국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되 미지의 세계에서 수없이 죽어간 젊은 탐험가들 개인을 중심으로 서술을 이어간다.

그들의 조국이 벌이기 시작하던 '제국주의' 전쟁 자체가 세계지도를 펼치고 대자본들과 국가권력들이 벌이는 무모한 '도박'이었는데, 이 용감하고 대담한 젊은 스파이 개인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모험은 한탕의 '큰 도박'이었다.

영국인들에게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었도, 러시아인들에게는 '볼샤야 이그라(Bolshaya Igra : 큰 도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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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와 맥노튼에게도, 또 코널리와 스토다트에게도 '그레이트 게임'은 끝이 났다. 모두 그들 자신이 열렬하게 옹호하고 또 입안한 '전진정책'의 희생자들이었다... 엘드라드 포팅어... 존 코널리 중위... 이렇게 해서 여섯명의 저명한 영국 선수들이 윌리엄 무어크로프트, 그리고 러시아 선수들인 그리보예도프와 빗케비치의 뒤를 이어 잇따라 '그레이트 게임'의 영웅들을 위해 마련된 '발할라'에 들어갔다. 물론 이들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 [그레이트 게임], <코널리와 스토다트의 최후>, 피터 홉커크, 1990.



러시아의 유라시아 정복욕을 잘 아는 프랑스 나폴레옹 1세는 이미 19세기 초에 중앙아시아를 장악하여 영국의 식민지 인도를 침략하고 유라시아를 프랑스와 러시아가 나눠먹자는 제안을 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와 등을 지고 아시아는 커녕 유럽에서 패퇴하고 있던 시기 영국의 주적은 러시아가 되었는데 1810년 찰스 크리스티 대위와 헨리 포팅어 중위가 순례자 복장을 하고 각각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을 때 중앙아시아에서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은 시작되었다. 물론 러시아의 지리학자와 군인들은 수없이 다녀갔을지 모르지만 '그레이트 게임'은 영국이 인도 북부 국경을 넘고 펀자브 지역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한 이후부터 이야기가 된다. '제국'에 의해 아프가니스탄과 주변 지역의 정권이 좌우된다는 요소가 이 도박판의 주요 변수였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의 히바, 부하라는 물론, 옛 실크로드 상의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 및 코칸트, 중국(청나라)으로 이어지는 카슈가르와 야르칸트 등의 '아미르(제후)' 군소국가에 상인이나 순례자로 잠입했다가 죽어간 피끓던 젊은 '선수들'을 생각한다. 이후 20세기 들어 좀더 동쪽으로 진출한 스벤 헤딘(스웨덴), 폰 르코크(독일), 오렐 스타인(영국), 폴 펠리오(프랑스), 랭던 워너(미국) 등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비록 '제국주의'를 등에 업었지만 '학자'였다. '학자'나 '지식인'이 '제국주의'의 더 나쁜 첨병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인류 문명 보존의 '사명'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의 초기 첩보전에는 젊은 장교 뿐이었다. 전투에서 공을 세우지 못한 군인들의 공명심과 모험심이 주된 동력이었고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던 아서 코널리 중위 또한 그칠 줄 모르는 모험 끝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기꺼이 '제국주의'의 제물이 되었는데, 물론 운좋게 살아남은 젊은 장교들은 보고서 기록의 책 출간과 장성 진급을 통해 '대박'이 났다. 피터 홉커크의 생생한 기록 또한 이 탐험가들의 기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국과 러시아의 위대한 모험가들은 용감하고 대담했으며 중앙아시아의 권력자 앞이나 경쟁자들 곁에서도 유연했고 또 의연했다.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밀어붙인 그들의 탐험정신은 결국 미지의 땅을 세계지도에 그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위대한 정신들은 '제국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으니 본국의 정세에 따라 그들의 모험이 빛을 발할 수도, 조용히 사장될 수도 있었다. 영국의 강경 '매파'는 소위 '전진정책'을 지지한 '전진파'로서 '러시아 도깨비'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증으로 인도를 지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정권들을 조종하고 이들을 앞세워 중앙아시아를 영-러 전쟁판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들이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면 불나방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이 첩보전장에서 죽어가거나 공적을 남겼다.

그렇게 중앙아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또는 '볼샤야 이그라'는 땅따먹기 도박판이자 개인적 성공의 판돈도 걸렸던 한편, 치열하지만 소리없는 대규모 전쟁이었다.





"1907년 8월... '그레이트 게임'은 이제 급속하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영국과 러시아간) 이 합의는 이 지역에서 양국의 입장 차이를 영원히 해소할 뿐 아니라 독일의 동진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또 앞으로는 러시아가 터키 해협들을 지배하고자 할 때 영국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 영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독일이 그곳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1907년의 영-러 협약은 '그레이트 게임'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 [그레이트 게임], <게임종료>, 피터 홉커크, 1990.



결국 '그레이트 게임'을 종료시킨 것은 영국과 러시아의 야욕에 도전하는 새로운 '제국'의 등장이었다.

유럽에서 독일(프로이센)의 성장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득세였다. 당시까지 미국은 구대륙에 대한 힘을 크게 미치지 못했고,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와 친하게 지내려던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영국의 주요 경쟁자로 부상했다. 영국의 관심사는 예전 프랑스 나폴레옹이 시도했던 것처럼 아시아에 독일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되었으며 이를 위해 예전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때마침 러시아의 극동 함대는 1905년 일본에게 대패를 당했고(러-일전쟁), 소비에트 혁명운동의 시작('피의 일요일') 등 대내외적 난관으로 인해 러시아의 남방정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 겹쳐 영국과 러시아 두 '제국'은 1907년 '그레이트 게임'을 종료시키는 데 합의하게 된다.



이후 유럽의 구세력인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합스부르크 왕국을 앞세운 독일과 러시아가 '유럽의 병자'라 칭한 오스만 투르크의 부흥을 막고자 영국과 러시아는 한 진영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른다.

1차 대전의 결과로 러시아는 1917년 소비에트혁명을 야기했는데, 소비에트러시아연방은 이전 차르가 맺은 조약 일체를 부정했다. 그러므로 '그레이트 게임'의 종료 조건으로 러시아 차르가 인정했던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권은 무효화되었고,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왕국들은 사회주의 '혁명지대'로 바뀌었다. 1979년에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갔을 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이 득세했다지만, 이들은 아마도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앙아시아를 '세계지도'에 채워넣기 위해 잠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지역에서 살아가던 주역들이라는 점에는 틀림없다. '그레이트 게임'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이나 러시아가 장악할 수 없는지역이었고, 20세기의 소련도, 21세기의 미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지 못했다. 피터 홉커크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선택한 전장에서는 과거의 막강한 전투능력을 조금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신속하게 최신 전쟁기술까지 끌어안는"(이상, [그레이트 게임], <프롤로그>) 그들의 힘을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림랜드(주변부)'의 저력이다.


'탈레반' '인권탄압' 전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는 맞다. 그러나 서방의 뉴스매체가 내보내는 정보가 과연 현실 사정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또한 의문스럽기도 하다. [유라시아 견문](2018) 통해 이슬람사회의 독립적 역사와 그들의 '영성' 강조한 이병한 원광대 교수는 해당 지역의 현장에서 지역언론은 '제국주의' 국제언론의 논조와  차이가 있다는 생생한 증언을 한다. 미군의 철수로 인해 '독립정권' 세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관점을 바탕으로  국제언론의 그것을 배경으로 하지는 않았는가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15


19~20세기 영국('시파워')과 러시아('랜드파워')의 소리없는 전쟁에 이어 20~21세기 미국의 '시파워(sea-power)'와 러시아 및 중국의 '랜드파워(land-power)'의 지정학적 대립은 여전히 가장자리 '림랜드(rim-land)'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고대 유목민들과 중세 몽골 제국 등이 활약하며 동서남북을 이어주던 이 주변부 '림랜드'는 오랜 동안 이슬람인들이 자취를 남기며 문명교류를 활발히 만들어간 지역이었다. '제국주의' 침탈로 인해 부침을 겪은 동아시아의 '림랜드'인 우리 요동-한반도인으로서 중앙아시아가 남의 역사 같지 않은 이유다.


한편으로, '시파워'와 '랜드파워'가 접속하는 가장자리 주변부의 우리 '림랜드' 요동-한반도 또한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처럼 '제국주의'가 결코 "이길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실 또한 기억하기로 한다.

수천 년간 지역민인 우리들 외에 그 어떤 외부 세력도 한반도를 오롯이 지배하지는 못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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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On Secret Srevice in High Asia)](1990,2006), Peter Hopkirk, 정영목 옮김, <사계절>, 2008.

2. [실크로드의 악마들](1981), 피터 홉커크, 김영종 옮김, <사계절>, 2000.

3. [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이병한, <서해문집>, 2018.

4. [지정학의 힘], 김동기, <아카넷>, 2020.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2503141613?afterWebWrit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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