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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03. 2022

[행복의 기원](2021) - 서은국

'행복'은 '목적'이 아닌 '도구'다

'행복'은 '목적'이 아닌 '도구'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북스>, 2021.





"뇌는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일종의 '생존지침서'다... 뇌는 생존경쟁에서 직면하게 되는 과제들이 무엇이고, 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담고있는 수백년간의 생존기록서다...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다. 바로 이것이 최근 심리학계를 뒤흔드는 연구들의 공통점이다... 인간은 (이성통제라는) 자화자찬의 몽상에 수천년간 빠져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현재 심리학에 막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물결에 이상할 정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연구자들이 한 부류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서양학자들은 '진화론'과 대조적 시각을 가졌던 한 철학자의 영향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다."

- [행복의 기원], <2. 인간은 100% 동물이다>, 서은국, 2021.



'스노비즘(snobbism)'이라는 용어가 있단다. 대상의 실체에는 관심없이 단지 아는체 하기 위한 '문화적 허영'이라고 번역된다는데, '스노비즘'적 해당 '전문가'는 속된 말로 '좆문가'란다.

이삼십대에는 별 관심도 없다가 나이들어 심심해진 내가 미셸 푸코 같은 난해한 프랑스 현대철학자의 저작에 손을 댔고 서평까지 써서 대학동기 단톡에 올리니 어느 동기 하나가 인간 모두의 '지적 허영'을 '스노비즘'에 빗대었다.


이십년 전 푸코의 [감시와 처벌](1975)을 읽고 나서는 책 자체를 처단했고, 며칠전 [지식의 고고학](1969)과 [말과 사물](1966)을 읽을 때는 사실 '왜 이딴 책을 이리도 장황하게 썼을까?'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더랬다. 물론, 학자가 아닌, 특히 철학자가 아닌 일반인인 내가 푸코의 철학적 개념의 엄밀한 규정 속에서 그의 '고고학'적 사유를 추적하고 검증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란 건 안다. 푸코의 저작이 프랑스인들의 주식인 바게뜨빵만큼 팔렸다는 1960년대 중후반 프랑스 지적 분위기 자체도 곧이곧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동일자' 중심의 고전주의적이고 근대적인 철학관념이 견고했기에 1960년대 '신좌파'들이 니체와 같이 망치를 들고 고정관념을 깨부수려는 푸코 부류의 신사상에 그만큼 환호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한편으로, 철학자 푸코는 박식하기 때문에 자기 사상의 증거로 온갖 사상가들과 예술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사실 그게 바로 '스노비즘' 자체였다. 다시 말하지만, 학자가 아닌 내 눈높이에서는 푸코가 끌어다쓰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이나,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및 잡다한 사상가들의 비유 같은 건 독서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푸코나 나나 '근대성'의 '인문과학'과 함께 등장한 '유한성'의 '인간'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 '인간' 모두는 100% '동물'이고, 그 무엇을 하든 '생존과 번식'을 위해 오랜 세월 그 최적화된 선택을 따라 유지되어온 '진화'의 산물이다.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

- [행복의 기원], <5. 결국은 사람이다>, 서은국, 2021.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를 오래 연구한 학자라고 한다. 미국에서 역시 '행복' 권위자인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에게 배우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 종신교수가 되었으나 귀국하여 국내에서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다.

그가 2021년에 낸 '행복'에 관한 심리학 대중서 [행복의 기원]은 일단 쉽고 재미있다. '행복'에 관해 학술연구서 같이 써봐야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이 결코 '행복'할 리가 없을테니 당연한 귀결일게다.


[행복의 기원]의 출발은 '철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다. 인격화시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다윈'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진화생물학'에 가깝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목적론'적 사고 방식은 우리 인간사회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굳혀진 반면, 18세기 다윈으로부터 본격화된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수많은 생물들 중 하나의 동물종에 불과하고 이 '호모 사피엔스' 또한 다른 종들처럼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된 조건으로 '적응'하며 지금까지 진화하고 살아남았다는 거다. 쉽게 말해 다들 알다시피 '인간도 100% 동물'이며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이라는 '정신적 도구'를 역시 진화시킨 것이다. 인간의 뇌는 바로 '생존과 번식', 그리고 '진화'에 최적화된 기계이며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이 오래된 '진화'의 습성을 따른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이 책의 제목이 [행복의 기원]인 이유는, '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의 기념비적 저작인 [종의 기원](1859)을 기리기 위한 일종의 오마쥬와 같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 [행복의 기원], <4. 동전탐지기로 찾는 행복>, 서은국, 2021.



그리하여 다시 푸코 얘기를 한다면, 그의 '스노비즘' 또한 철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의 영역에서 놀고는 있으나 철학하는 인간으로서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지적 허영'이라는 '행복'한 '도구'를 이용한 것이다.

한편, 이런 푸코를 씹으면서도 서평으로 요약하려는 나는, '글쓰기'나 '서평'이라는 '행복'한 '목적'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심심하지 않고 나름 즐겁게 '생존'하기 위해 '지적 허영 따라하기'라는 '행복'한 '도구'를 이용했을 뿐이다. 나는 '글쓰기'로 '생존'은 물론 '번식'도 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서은국 교수는 이 책에서 '행복'이라는 '정신적 도구'는 아이스크림과 같이 녹는 성질이 있으므로 복권 당첨과 같은 큰 '행복'보다는 시시하고 사소하고 작은 '행복'들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46억년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수백만년 동안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해 온 인류는 이 수많은 작고 사소한 '행복'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화론'적 사실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6


그렇게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로 예리하게 다 베어내고 남은 [행복의 기원]의 결론은 결국, 우리는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음식, 그리고 사람"(같은책, <9장>)이라는 것이며, '사회성'을 통해 자연에 '적응'하고 함께 생존해 온 "결국은 사람이다"(같은책, <5장>과 <7장>)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으로서 '행복'의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이상 같은책, <9장>)가 된다. 음식은 금방 소화되고 '행복'은 아이스크림처럼 금세 녹지만, 이 맛을 안 사람은 또 다시 그 맛을 찾아 '사냥'에 나서고 그 무한반복 과정에서 '최적'의 형태로 '적응'하고 또다시 '진화'하게 될 것이다.



"결국 진화 과정에서 도움을 줄 때 기쁨을 느꼈던 자들('외향성'='사회성')이 선택적으로 더 많이 생존하게 되고, 그들의 유전자를 통해 우리는 이 습성을 물려받은 것은 아닐지..."

- [행복의 기원], <7. '사람쟁이' 성격>, 서은국, 2021.





'행복' 심리학자의 짧고도 유익한 책 덕분에 나는, 오래전 사두었으나 읽지 않았던 '진화론' 관련 책을 다음으로 읽기로 한다.


바로, '진화론'은 과학적 가설로서의 '이론(theory)'이라기 보다는 '창조론자' 조차도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fact)'이라고 단언하는 도널드 프로세로(Donald Prothero)의 [화석은 말한다(Evoluton : What the fossils say and What it matters)](2017)가 나의 다음 서평 타겟이다.



"결론...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가장 본질적인 쾌감...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하기 위함이었다."

- [행복의 기원], <9.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서은국, 2021.


***


1. [행복의 기원 -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 서은국, <21세기북스>, 2021.

2.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2021),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어크로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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