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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11. 2022

[화석은 말한다](2017) - 도널드 프로세로

'진화'는 '덤불'이지 '사다리'가 아니다

'진화'는 '덤불'이지 '사다리'가 아니다

- [화석은 말한다], 도널드 프로세로, 2017.




"생명은 처음에 창조주에 의해 소수의 또는 하나의 형태로, 여러가지 능력과 함께 불어넣어졌다는 견해, 그리고 이 지구가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계속해서 돌고 있는 동안에, 그렇게 단순한 발단에서 매우 아름답고 놀라우며 무한한 형태로 수없이 생겨나고 또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는 견해(생명관)에는 '장엄한 점(장엄미)'이 있다."

- [종의 기원], <15. 요약과 결론>, 찰스 다윈, 1859.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 1809~1882)이 1859년에 [종(種)의 기원(起源)]을 출간했을 때는 사실 '진화론'이라는 것의 첫 출현은 아니었다. 당시는 아직 신이 세상만물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의 시대였지만 칼 폰 린네 같은 생물학자들이 생물 분지학 및 계통분류학을 정립했고, 라마르크와 같은 초기 '진화론자'들도 이미 있었다. 그러나 과학사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후 본격적으로 열린 '진화론'의 세계는 생명체가 '신의 법칙'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따른다는 생물학의 '혁명'이었다.

에이브리엄 링컨과 같은해 같은날 태어난 찰스 다윈은, 링컨이 미국 전근대식 흑인노예들을 근대식 노동자계급으로 '해방'시킨 것처럼 생물학을 신의 '초자연적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도 하는데([화석은 말한다], <4. 진화론의 진화>, 도널드 프로세로, 2017.), 이는 물리학에서 아이작 뉴턴의 '중력 이론'이나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이 이룬 '과학혁명'에 비견될 수 있다. 생명체의 역사에서 생물이 변화해 왔다는 '증거'로서의 '진화' 사실과 이러한 유구한 '진화'가 일어나는 방식으로서 '자연선택'([종의 기원], <4. '자연도태' 또는 '적자생존'>)이라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다윈의 [종의 기원]은 아직 '화석'이라는 주요 증거가 많이 발견되지 못했고 고생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당시의 상황에서 주류 '창조론'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의심할 여지 없는 생물학의 '혁명'이었다.

[종의 기원]의 원제는 '자연선택 방식에 의한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이다. 다윈은 비록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또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생명체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이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방법도 아니라는 것도 확신하고 있다"고 [종의 기원] <머리말>과 <15장 요약과 결론>에서 강조한다. 새로운 객관적 '증거'에 의해 반박되고 만약 오류가 드러나면, 즉 다윈이 "... 유익한 개체적인 차이와 변이의 보존 및 자기에게 유해한 형질을 가진 생물은 멸망된다는 것"([종의 기원], <4>)을 의미하는 '자연선택'이나 '자연도태' 또는 '적자생존' 외에 다른 '진화'의 요인이 발견되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잠정적인 '과학적 가설'임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당시 '화석'과 고생물학의 발전이 더딘 관계로 '인간'의 '진화'에 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룰 수는 없었지만, 다윈은 '중력'과 같은 자명한 '사실' 못지않게 생명의 '진화' 사실 자체에는 '장엄미'가 있다는 감탄과 함께 [종의 기원]을 마무리하고 있다.




"'중력'이 일어나는 방식을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물체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어쩌면 완전히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생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신다윈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진화'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 [화석은 말한다], <4. 진화론의 진화>, 도널드 프로세로, 2017.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도널드 프로세로(Donald R. Prothero)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의 '화석' 발굴 결과에 맞춰 수정해가면서 발표한 [화석은 말한다]라는 책에서 아직도 미국의 정치권 및 교육계에 만연한 '창조론'을 최근 화석과 고생물학의 증거를 토대로 강력 반박하고 있다. 객관적 증거들을 토대로 잠정적 '가설'들을 세우지만 새로운 증거들에 의한 '실험' 및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미련없이 폐기되는 '잠정적 가설'인 '과학'적 지식으로서의 '진화론'에 기반하여, 온통 '도그마'로 점철된 '창조론'을 박살내는 과학자 프로세로의 이 책은 엥겔스의 [반뒤링론](1878)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못지 않게 다분히 논쟁적이다. 프로세로에 의해 '창조과학'은 논리로도 부정되고 '창조과학자'들은 인격적으로도 모독된다. 단, '창조론' 또한 하나의 '의견'이기에 '민주적'으로는 존중될 수는 있으나 '창조론'이 증거도 공부도 과학훈련도 없이 감히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ID : Intelligent Design)' 같은 '과학'적 외피를 둘렀을 때는 '과학적'으로 무참하게 깨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과학자'인 프로세로 또한 생명의 '진화'가 왜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다. 이는 '중력'이 왜 발생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논하자면, '진화'는 '이론(theory)'이라기 보다는 '사실(fact)'에 가깝다. 실제로 초기 '진화론자'들은 신을 믿는 자들이었고 [화석은 말한다]의 저자인 프로세로도 교회에 다니는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즉, '진화론자'라고 해서 '무신론자'는 아니다. 다만, '과학'도 아니면서 감히 '과학'을 참칭하는 '창조과학'은 쌍욕을 들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분히 '미국'적인 시각에서 '창조론'이 끼치는 해악으로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적 면모인 기독교 근본주의와 공화당 트럼프와 같은 인종주의 등을 예로 들며 '창조론'이 미국의 정치권과 교육계에 더이상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결론'([화석은 말한다], <16. 무엇이 중요한가?>)으로 남기고 있다.




"다윈의 책([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오고 불과 두 해 뒤인 1861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졸른호펜의 석회암 채석장에서 놀라운 화석이 하나 발견되었다... 대영박물관 학예사였던 리처드 오언(Richard Owen)-'공룡(Dinosauria)'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이 (이 화석을) 서술할 책임을 맡았다. 그보다 앞서 그 표본은 이미 '시조(始祖)새'(Archeopteryx : '고대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오언도 기본적으로 그걸 '새'라고 서술하기는 했으나, '공룡'이 가진 모든 형질들이 그 골격에 담겨있음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저명한 생물학자 가운데에서 '진화론'에 반발한 마지막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오언은 이 화석을 그 친척(공룡)들과 결부시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언의 맞수였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이 무렵에 그는 '다윈의 불독'이 되어 말과 글로 다윈의 이론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시조새'에서 보이는 그 '공룡' 형질들을 놓치지 않았다. 현생 조류를 처음으로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자 콤프소그나투스 같은 공룡도 여럿 연구한 헉슬리는 '시조새'가 '새'와 '공룡' 사이를 이어주는 훌륭한 '빠진 고리'임을 놓치지 않고 알아보았다."

- [화석은 말한다], <12. 공룡이 진화하다. 그리고 하늘을 날다>, 도널드 프로세로, 2017.



그렇다고 해서 프로세로의 책 [화석은 말한다]가 비난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진화론'의 사실적 정당함을 '잠정적'으로나마 증명하는 '과학책'인만큼 흥미로운 '화석'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은 <1부. 진화와 화석 기록>에서 '증거'로 세워지고 수정되며 과감하게 폐기될 수도 있는 '잠정적 가설'로서의 '과학적 지식'의 본성(1장)'과 '창조과학'의 허위성(2장), '화석'의 의미(3장)와 '진화생물학'의 발전과정 등(4~5장)에 관하여 서술하고,

<2부. 화석은 진화를 말한다>를 통해 5억년 전 '생명의 기원들(6장)'과 5억5천만년 전 고생대 초 '캄브리아기 대진화'라는 '폭발'이라기 보다는 미생물에서부터 시작된 8천만년 동안의 점진적이고 '느린 도화(7장)' 과정을 거쳐 '무척추동물(8장)'로부터 '물고기(9장)',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10장)'와 '양막류(11장)'와 같이 '땅 위로 올라오거나 바다로 돌아간 동물'들로 이어지는 생명체 '진화'의 과정, 중생대의 '공룡과 조류(12장)', 백악기 말기부터 '진화 방산(evolutionary radiation)'으로 폭발적 진화를 이룬 '포유류(13장)'와 거대 '말굽동물(14장)'인 유제류(有蹄類)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유인원의 반영(15장)'으로서 인류의 '진화사'를 돌아보며 '결론(16장)'으로 치닫는다.


과연 이 '진화사'의 '장엄'한 과정은 '창조과학'의 허위성을 밝혀내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로서 '화석'의 역사다. 라틴어로 명명된 온갖 학명들은 몰라도 상관없다. 그저 이 5억년 이상의 '장엄'한 역사에서 '진화'라는 것이 '사다리'처럼 직선적 변화 과정이 아니라 '덤불'과도 같이 우거진 광경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다윈의 '진화론'을 '점진적'인 과정으로 정의하고 옹호하던 '신다윈주의'도 있었지만 이는 이른바 '신플라톤주의'와 같이 원래의 학설을 신비화시키거나 보수적으로 해석했던 경향이었다. 다윈 '진화론'의 본질은 '진화의 덤불' 속에서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혁명'적 '진화'의 과정이었다.

고대 해양 '미생물'이 '무척추동물'로 진화하고, 바다 물고기가 지상으로 올라오거나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과정도, 공룡이 조류로 변신하는 과정 및 포유류와 인류의 폭발적 '진화 방산(evolutionary radiation)' 모두는 '사다리'처럼 직선적 과정이 아니라 '덤불'과도 같은 공존과 공생의 과정이었다.




"'진화'는 '덤불'이지 '사다리'가 아니다."

- [화석은 말한다], <10.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도널드 프로세로, 2017.



1859년에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은 변화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변화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종의 기원], <머리말>과 <15. 요약과 결론>)라고 강조했듯, 2017년의 도널드 프로세로도 현대판 [종의 기원]인 [화석은 말한다]에서 "진화는 덤불이지 사다리가 아니다"([화석은 말한다], <10장>부터 <16장>까지)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화석 진화의 '중간 단계'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진화는 예를 들어 6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7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 및 1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로 '사다리'처럼 이어진 것은 아니다. 6천만년 전까지 2억년 동안 이상 지구를 지배했던 거대 공룡이 대멸종을 맞고 중생대(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가 끝난 후 신생대 초기인 팔레오세에서 '진화 방산'을 시작한 소과 말과인 '말굽동물(유제류)'이 '덤불'처럼 분화하고 에오세에 개과 동물이, 올리고세에 고양이과 동물들이 분화 방산된 과정 자체도 '사다리'처럼 곧은 직선의 과정이 아니었다. 고래의 조상인 '암불로케투스'도 3천만년 전 올리고세에 바로 고래로만 진화한 것은 아니고 고래와 가장 비슷한 친척인 하마로 '덤불'처럼 분화했다. 인류 또한 600~700만년 전 지금은 '투마이(Toumai)'로 불린 화석인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와 320만년 전 '최초의 인간 루시(Lucy)'로 불린 화석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의 진화 '사다리'가 아니라 '덤불' 방식의 폭발적 '진화 방산'이었다. 오늘날 밝혀졌다시피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은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조상'이 아니라 동시대 유라시아에서 공존했다. 4만5천년 전 아프리카 더운 지역에 살던 사피엔스가 추운 북쪽 유라시아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의 영역으로 이주하여 두 종은 9천년 이상 공존하며 이종교배도 한 결과 현대인의 3% 정도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네안데르탈인의 형질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역시 '직립인간'인 '에렉투스(Homo erectus)'와 '도구인간'인 '하빌리스(Homo habilis)' 또한 '사다리' 형태가 아니라 190만년 전부터 3만년 전까지 '덤불'처럼 퍼져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피엔스'와의 '사회성' 경쟁에서 밀렸을 수도 있을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운명은 아니었을지라도 '에렉투스'가 '하빌리스'를 경쟁에서 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프로세로에 의하면 "사람족 가운데에서 (180만년 이상 존속했던) 호모 에렉투스는 처음으로 널리 퍼진 종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번성하고 가장 오래 존재한 종에 해당"([화석은 말한다], <15장>)한다고 하는데, 46억년 지구의 역사와 5억년 이상의 생명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이제 겨우 10~20만살 정도 되는 '사피엔스'가 더욱 겸손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덤불'과도 같은 '장엄'한 '진화사'에 담겨 있다.



도날드 프로세로의 다분히 논쟁적이지만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화석' 정보로 가득한 이 책 [화석은 말한다]의 원제는 '진화 : 화석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그것이 중요한 점(EVOLUTION : What the Fossils Say and Why It Matters)'이다. 즉, '과학적 가설'은 객관적 '사실' 및 '증거'로 인해 언제든 폐기될 수도 있는 '잠정적 가설'이기는 하나, '창조과학'처럼 '과학'도 아니면서 '증거'와 '사실'까지 조작하는 도그마와 달리 '사실'과 '증거' 자체를 매우 중시하는 지적 훈련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던 19세기와 달리 20~21세기 현대는 '진화'를 증거하는 '화석'들은 아주 풍부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그리고 미지의 '화석' 증거에 의해 '진화론'이라는 '잠정'적인 '과학적 가설' 자체가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화석'의 객관적인 '증거'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명체의 '진화' 자체는 '중력' 못지 않게 자명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화석'이 지금껏 우리에게 '말'하는 것(What the fossils say)이 바로 이 '진화(evolutio)'의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중요(Why it matters)'한 것이다.



"... '과학적 가설'이란 반드시 시험 가능하고 반증 가능해야 하며, '과학자'들은 제 아무리 소중히 여기는 생각이 있다 할지라도 그게 잘못임을 '데이터'가 보여주면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요점은, '과학'은 '이념'에 무릎을 꿇을 수 없으며, 정치지도자들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진실을 억지로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화석은 말한다], <16. 무엇이 중요한가?>, 도널드 프로세로, 2017.



***


1. [화석은 말한다 -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EVOLUTION : What the Fossils Say and Why It Matters)](2017), Donald R. Prothero,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9.

2. [종(種)의 기원(起源)(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1859), Charles R. Darwin, 김창한 옮김, <집문당>,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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