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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Sep 01. 2023

[1990's](2023) - 윤여일

- [서문] '90년대 '신세대'라 해두자

[서문] '90년대 '신세대'라 해두자

- [1990's], 윤여일, 2023.




"1990년대 초중반 '신세대론'이 기세등등할 무렵, 1980년대와 작별하는 후일담 문학이 부상했다면, 1990년대 후반 '신세대론'이 위력을 잃어갈 무렵 30대인 기성세대가 1980년대를 긍정적으로 회상하며 자기서사를 구축한 것이다. '386세대론'은 '신세대'를 탈정치적이고 개인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세대로 담론화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변별하며 자신의 출현을 예비하고 있었다. 이후로 10대와 20대에 관한 세대론은 짧고 다양하게 변주되었지만, '386세대론'은 486, 586세대론으로 업데이트되며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이처럼 호황기에서 (IMF) 불황기로 넘어가며 젊은 세대담론은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공통점이라면 어느 쪽이든 기성세대가 젊은세대를 대상화하고 평가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 [1990's], <6. 세대, 혼란의 범주>, 윤여일, 2023.



일단, 나를 '신세대'라 해두자.

First, call me 'new generation'


나는 1974년도에 태어났고, 1993년에 스무살이 되었다.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아직 서른살도 안되었고 서울 종로에서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목도하려는 열정으로 친구들과 그 '천년의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남들보다 굼뜨고 조숙하지도 못했던 내가 스무살에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는 더 이상 군사정권 시대가 아닌 '문민정부'였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독재'보다는 '개혁'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다.

스물한살이 되었을 때 후배들을 보게 되었고 선배인 나는 그들을 유행 따라 'X세대'라 불렀다.


부조리한 군부독재와 독점자본의 세상에 저항했던 1980년대 선배들을 동경했던 나는, 옆구리에 거대한 모토로라 삐삐를 차고 자가용을 끌려고 운전면허 학원에 가던 한 살 어린 후배들에게 세상을 바꾸는데 관심없다며 비난의 말을 던지기도 했다. '80년대식 끝물을 들이고 있었던 선배들이 보기에 '신세대'였던 나는 'X세대'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동경했던 '80년대 젊은이들은 '90년대 말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기성세대'인 '386세대'로 무대 위에 등장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이 규정하는 세대로, '90년대 '신세대'로 머물렀다.



"1990년대는 동질적 내지 연속적 시기로 환원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이질적 시간성들이 교차하고 혼재하고 갈등하는 여러 국면들로 짜여 있다. 그래서 그 때를 회상하는 사람의 이유와 방식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소환된다. 1990년대는 하나가 아닌 복수다."

- [1990's], <2. 문제적 시대로서의 1990년대>, 윤여일, 2023.



'90년대 초반 'X세대'와 중반의 'Y세대' 등은 지금 21세기의 'MZ세대'처럼 특정시기의 세대론을 지칭한다. 현재는 'X-Y-Z세대'가 없지만, 어느 시대든 '신세대'는 존재한다. 로마시대나 삼국시대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었을 테고 어른들이 보기에 그래서 세상은 '말세'였을 게다. 다만, '어린이'나 '젊은이', '청춘'이나 '청년'이 아닌 '신세대'로 세대론이 이 땅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가 내 생각엔 1990년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말고.


기성세대가 되어 정치와 경제 전반의 권력이 된 '80년대 청춘 '386세대의 회고와 추억으로 내가 접했던 1980년대는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했다. '후일담 문학'으로 문화권력까지 접근하던 '80년대가 보기에 1990년대는 더 이상 '변혁이론'도 안 통하고 '포스트모더니즘' 같이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 '혼돈'에 앞장섰던 자들은 '소련의 몰락'과 탈냉전', '변혁이론의 쇠퇴' 등을 맞아 한 시대를 청산하고자 했던 '80년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90년대의 '신세대'는 여전히 '80년대 기성세대의 영향력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사회학자 윤여일 박사는 2016년에 1990년대 '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담론]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가 '한국사상계의 한 단면'으로서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주제를 연구할 때 주요 소재가 '잡지(雜誌)'였다. 그에 의하면 1990년대는 '잡지의 시대'였다. 시대의 저항과 진보를 대표하는 담론들이 수많은 무크지와 계간 및 월간지로 등장했다가 '90년대 후반의 불황기를 거치며 명멸했다. 윤여일 박사가 2023년도에 [1990's]라는 표제로 전 사회적 영역에서 1990년대의 특징을 설명하고자 했을 때는 박사논문 집필 과정에서 수행했을 '잡지'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조사, 그러나 [동아시아 담론]의 주제와 무관하여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꺼내고 싶어서였을 거다.


결국 저자의 논문 [동아시아 담론]과 대중서 [1990's]의 결론은 같다. 1990년대의 '유산화', '역사화'다. 즉, 우리 역사에서 1990년대를 돌아보고 재역사화하여 미래로 이어지는 사상적 담론을 그려보자는,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https://brunch.co.kr/@beatrice1007/323



"... 그래서 1990년대는 무엇이었나... 희망도 자라났으며 위기도 드리웠다. 어떠한 변화는 원치 않았는데 닥쳐왔고 어떠한 변화는 그토록 갈구했으나 지난했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변화들 중에는 1980년대와는 달리 지금 시대에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게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1990년대는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만이 아니다."

- [1990's], <2>, 윤여일, 2023.



그래서 '90년대 '신세대'였던 나 또한 묻게 되었다. 나에게 1990년대는 무엇이었나.


군부독재의 종식과 문민정권의 등장, 초중반의 경제활황과 후반의 IMF 초유의 불황, 새세상을 꿈꾸었다면 역시 실망했을 수도, 역사는 진보하지만은 않는다며 회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세기말이었기에 그랬는지 지난 시대인 '80년대를 계승했을 수도 부정했을 수도 있겠다. 또한 21세기하고도 사반세기가 지나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인 것처럼 도무지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의 본격적 태동기였을 수도 있겠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나날의 시사적 사건에 그때그때 반응하는 것보다 그 사건을 사태, 추이, 국면 그리고 시대의 징후로 옮겨서 읽어내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에는 더한 정신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굳이 그런 노력을 감당하려는 자가 있다면, 과거의 '잡지는 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 [1990's], <16. 에필로그>, 윤여일, 2023.



사실, 1990년대 말 이십대 중후반의 내가 만약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면 어떤 '당선소감'을 낼까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하며 몰래 써보았을 때, 그 주제는 '90년대의 '부재(不在)'였다.

'80년대에 열렬하게 세계의 '변혁' 외쳤던  세대들의 '부재', 현실에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부재'하던 '신세대' 사상. 허생이 뒷문으로 달아난 좁은 방을 바라보던 어영대장 이완처럼, 어느덧 멍해져 버린 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잡지'를 통해 1990년대의 징후를 읽을 수 있는 것처럼, 한때 '90년대의 '신세대'였던 나는 생각한다.


지난 시절 인류의 '고전'들을 '20세기 소년'이자 '90년대 '신세대'의 눈으로 읽어서 계속 남겨보자.

'90년대를 살았다 해서 다 같을 수는 없지만, '다양성'의 시대였던 '90년대를 함께 통과했던 사람들이었으니만큼 한 시절 '신세대'의 이름으로 인류의 '고전'들과 몇 가지 책들을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읽어주자.

'노동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범상하게 커서 '노동자'가 된 나의 '90년대 관점으로, 나와 같이 늙어가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자.


내가 쓰는 서평 아닌 '서평' 또는 소설 아닌 '소설'의 독자는,

'20세기 소년'들이자 '90년대 한 때 '신세대'들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11


한 때 우린 '변화'와 '다양성'을 지향하던 한 시절 같은 '신세대' 아니었는가.


그렇게,

아직도 '책 읽어주는 노동자'인 나를 여전히,

일단 '90년대 '신세대'라 해두자.


***


1. [1990's -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돌베개>, 2023.

2. [동아시아 담론 - 1990~2000년대 한국사상계의 한 단면], 윤여일, <돌베개>, 201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beatrice1007&logNo=223199910375&navType=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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