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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ug 26. 2023

[동아시아 담론](2016) - 윤여일

- '동아시아 담론'의 '동아시아화'

'동아시아 담론' '동아시아화'

- [동아시아 담론], 윤여일, 2016.





"'동아시아' 고정된 경계나 구조를 가진 실체가 아니라,  지역을 구성하는 '주체의 행위' 따라 유동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 <창작과비평사>, 2003.


나는 '주체사상'은 읽지 않았다.

적어도 20세기말을 잎둔 1995년의 '주체사상'은 '김주의', 즉 '김일성주의'였다.

남한 자본주의체제의 기본모순을 '계급투쟁'으로, 주요모순' '민족분단문제' 정리한 1995년경의 나는 중국의 '마오주의',  모택동(마오쩌뚱) [모순론] [실천론], [신민주주의론] 등에 기반하여 남한체제를 사고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78


스무살이던 1993년에 서구의 마르크스주의를 접했고 1994년에는 마르크스주의를 현실적 혁명으로 실현했던 '레닌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M-L)' 학습하면서  다음은 '아시아' 넘어와서 1995년에는 중국의 '마오주의' 읽었다. 이제 다음은 '한반도' 범위를 좁혀 '주체사상' 봐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접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무관하고 인류의 해방과는 거리가 먼 북조선의 봉건세습왕조와 나는 '담론의 지향성'이 달랐다.


그럼에도 체제의 '변혁론'은 내 나라, 내 주변 지역에 천착해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오십줄에 들어선 지금 '동아시아'가 눈에 들어온 이유다.



1.


"'동북아'의 지역범위는 주로 지정학적 차원에서 한반도와 주변 4강(중-러-일-대만)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동아시아'는 지문화적 시각에서는 한중일 삼국, 지정학적 시각에서는 '동북아' 수준의 지역범위, 지경학적 시각에서는 동북아와 동남아 지역을 아우르는 등 탄력적으로 활용되었다. 그 탄력성이 한편으로는 '동북아 담론'이 아닌 '동아시아 담론'의 부상을 가능케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담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 [동아시아 담론], <1-6. 담론 이행의 결과>, 윤여일, 2016.


사회학자 윤여일은 2016년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 책의 부제는 <1990~2000년대 한국사상계의 한 단면>인데, 1980년대 남한체제 변혁이론과 저항적 지식사상계의 계승으로서 1990년대를 풍미한 '동아시아'에 관한 학술논문이다.


1990년대는 윤여일 박사의 주요한 관심사인 듯도 한데, '90년대는 '동아시아'가 다소 모호하고 중층적이지만 거대한 '담론'으로 활발히 기능하던 연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인해 미-소간 또는 1세계와 2세계간 냉전이 끝난 '탈냉전'이 그 중요한 시대배경이다.

'90년대 한국 지식계에 회자되던 '포스트(post)~ 주의'는 냉전시대의 주요 변혁이론이었던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탈주'를 의미했고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논쟁되던 '사회구성체론'도 남한체제의 구조적 설명의 도구로서 유효성을 상실했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냐 '식민지반봉건사회'냐가 아니라 남한체제는 그냥 '승리'한 '자본주의' 체제 또는 그러한 '세계체제'의 종속변수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지식계에서는 '80년대의 저항성을 이어가고자 했다.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빛나는 경제성장의 이면에 체제모순으로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변혁적 진보진영에게 '포스트'는 '탈주'보다는 '이후(후기)'였다. '후기-마르크스주의'에게 변혁이론은 여전히 유효했다. '7~80년대의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은 주요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고, '오리엔탈리즘'을 탈피하여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굳게 정립하는 것이 저항적 인문학자들의 사명이었다.


저자가 '동아시아 담론'의 시작으로 삼은 <창작과비평사>의 최원식 논문([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은 1993년 봄에 발표되었다. 내가 스무살 때였는데 <창비>도 알았고 <시대와철학> 등도 읽어봤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아직 '동아시아'로 갈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탈냉전' 시대를 맞은 남한 사회에서 '동아시아 담론' 포문을 열고 논쟁을 주도한 분야는 단연 '인문학'이었다.




2.


"'동아시아 담론'은 인문학과 사회과학 영역을 망라하는 학제적 담론이다. 하지만 영역에 따라 '담론의 지향성'은 달랐다. 인문학 영역에서는 문학-역사-철학(문사철) 해석에 사용되는 서구에서 유입된 이론, 이념, 개념, 논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서양중심적 지식체계에 맞서려는 언술들이 도드라졌으며, 그러한 지식체계에 의해 망각되거나 가치절하되었던 사상적 전통을 복원하려는 논의들이 힘을 얻었다. 사회과학 영역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발전 혹은 쇠퇴를 설명하거나 정치-경제 영역에서 지역협력체제의 제도화를 모색하는데 치중하는 경향이었다... 복수의 하위계열 구분... '동아시아 문화정체성론', '동아시아 대안체제론', '동아시아 발전모델론', '동아시아 지역주의론'... 분류의 기준은 '담론의 지향성'이다... 결국 '어떤 동아시아 담론인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왜 동아시아인가', '무엇을 위한 동아시아인가'다."

- [동아시아 담론], <2-1. 동아시아 담론의 네 가지 계열>, 윤여일, 2016.


사실, 지식인의 저항성은 본래부터 '인문학'의 몫이었을지 모른다. '사회과학'은 '과학'이므로 추상성보다 현실성을 추구할 수 밖에 없기에 '정책'과 맞물린다. '휴머니즘'과 '인류해방' 같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인문학'이지만 그만큼 '저항성'만큼은 전위적이다.

'탈냉전기' 새로운 지식체계의 패러다임 구축을 위해 '냉전기'와 '80년대의 서구중심주의에서 '탈주(post)'하여 '동아시아 담론'의 '네 가지 하위계열' 중 두 가지 계열로서 1) '동아시아 문화정체성론'과 2) '동아시아 대안체제론'을 주장한 인문학계의 '동아시아 담론 지향성'은 저항과 변혁이었다. 서양의 이념으로 안된다면 동양의 사상을 변혁 이데올로기로 새롭게 정립해야 했다. 그러한 차원에서 유교를 재해석하기도 하고 우리의 동학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을 거쳐 퇴락해갔듯, '동아시아 담론'도 현실적 정치외교 정책을 거쳐 결론적으로 소멸해 갔다.

1970~80년대 군부독재를 거쳐 1993년 문민정부의 '세계화'와 동아시아 IMF 경제위기를 맞아 한중일의 '동북아'와 '동남아'는 단일한 경제블럭을 구축하고자 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 등 부르주아민주정권이 정책적으로 추진했던 '동북아' 구상의 배경이 그러한 시대정신이었다. 이는 동남아 열국들과 동북아 삼국의 결합인 '아세안+3'으로서 지경학적인 '동아시아' 개념이다. 물론, 지정학적으로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교/매개)이 되고자 했던 남한의 시도는 서아시아와 러시아를 망라한 유라시아까지 확장하려는 '대륙세력'인 중국과 미국을 계속 끌어들이는 '태평양해양세력'  일본의 의도와 같을 수 없기에 외교적 현실성이 퇴색되면서 '동아시아 담론'의 쇠퇴를 보여주고 말았다.

3) '동아시아 발전모델론'과 4) '동아시아 지역주의론'이라는 나머지 두 계열은 사회과학자들이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하고 더욱 확장하려는 '담론의 지향성'을 가졌지만 역시 현실정치 앞에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담론으로서 '동아시아'는,

"왜 동아시아인가"라는 성찰과 "무엇을 위한 동아시아인가"라는 지향성의 문제를 담고 있다.


역시, 인문학 또는 '--' 사명인 것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66


"이처럼 '동아시아' 서구의 식민주의적 확장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전후 초강대국 미국이 지역정책의 필요에 따라 구도한 지역상이다. 그것은 '동아(대동아공영권)'라는 일본제국의 지역상이 패배했으며, '극동'이라는 지역상으로 대변되는 유럽중심적 지식권력구조가 미국중심적 지식권력구조로 전이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동아시아' '동아' 대한 아시아적 해결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적) 각축 속에서 분할되었다. 그리하여 위쪽의 동아시아에서는 과거 러시아제국(이후 소련) 중화제국의 잔영을 간직한 대륙의 사회주의권이 형성되었고 아래쪽의 동아시아에서는 유럽의 '극동' 대결하여 일본제국이 추구했던 '동아'라는 지역상이 '거대한 초승달(Great Crescent)' 지역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지정학적 구도 안에서 온존되었다. 아래쪽의 동아시아는 군사적으로 한미일 삼국관계가 골격을 이루고 경제적으로는 일본 중심의 수직적 경제구조가 짜여 그렇게 일본은 '동아시아' 복귀했던 것이다."

- [동아시아 담론], <3-1. 동아시아 지역상의 유동성>, 윤여일, 2016.


결국, 인문학의 저항정신과 사회과학의 현실정책은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기획하며 실현하기 위함이다. 비록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중층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사상계를 지배했던 '동아시아 담론'이 쇠퇴해 가기는 했지만, 저자 윤여일 박사의 논문의 목적은 이 '동아시아 담론'을 소중한 '유산'으로 삼아 다시금 '역사화'시켜('재역사화') '동아시아'의 현실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80년대의 저항과 변혁론을 계승하고 '90년대의 다양성을 부활시켜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그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오래된 나라이자 젊은 국가다. 중국의 국가형태는 아직 굳어지지 않았으며 중국의 국가형태가 정립되어가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국제관계라는 시각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중국의 운동은 한반도의 변혁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한반도 문제의 특수성과 중국 행보의 독자성은 어떻게 '생산적 접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들을 남겨둔 채 '동아시아 담론'이 소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동아시아 담론], <3-5. 한반도 문제와 동아시아 담론의 동아시아화>, 윤여일, 2016.


이 논문이 도출한 본론에서의 소결론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강대국들과 대립하면서도 '생산적 접점'을 찾아가면서 '동아시아 담론'을 지속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최종 <결론>으로서 '동아시아 담론' '동아시아화' '동아시아 담론' 과거의 '유산화' 현재의 '재역사화' 대상은 물론, 우리의 '주체성' 견지하면서 다시금 부활시켜야 하는 미래의 이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3.


"... '동아시아 담론'의 '유산화'... '동아시아 담론'의 '재역사화'... '동아시아 담론'의 기본적 가치를 꼽는다면 서구의 경험을 일반화한 이론을 수입해 자신의 현실에 적용하고 그 이론의 결론에 자신의 현실을 끼워맞추려는 풍토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실에서 지적 과제를 발굴하고 언어를 개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주체성의 문제의식'... 지식식민화와 공동언어의 소실현상이 심각한 한국지식계에서 '동아시아 담론'의 부흥은 분명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이었다... '동아시아 담론'의 '유산화', 논문의 목적이 이것 하나이듯 논문의 주장 역시 하나였다. '동아시아 담론'은 '동아시아화'되어야 한다."

- [동아시아 담론], <결론>, 윤여일, 2016.



그렇게 나는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나라  땅의 문제로서 '동아시아' 만났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20


우리의 정체성  사상과 가치를 찾아  책과  책을 헤매다가 아예 허접한 '주체사상' 보다는 차라리 600  삼봉 정도전의 '성리학' [조선경국전] 훨씬 '동아시아' 가치에 맞는 '변혁적 유물론'일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김일성을 중심으로 황장엽 같은 자가 정립했다는 '주체론' '품성론' 등을 진지하게 읽어보지는 못했으니 차치한다.

한편으로  책에 의하면 북한은 '동아시아 담론'에서는 거의 배제  고립되어 있다는데, 북핵문제에서만큼은 '동북아' 6자회담 등의 지정학적 문제에서 "일부이자 전체"([동아시아 담론], <3>)로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29


앞으로도 '동아시아론' 가벼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이유는 나의 '주체성' 이제야 제대로 확립되고 있기 때문이겠거니, 남의 어려운 박사논문을  읽고 나서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다음 책은, '동아시아론자' 윤여일 박사의 좀더 읽기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대중서인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2023).



***


1. [동아시아 담론 - 1990~2000년대 한국사상계의 한 단면], 윤여일, <돌베개>, 2016.

2.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돌베개>, 2023.

3. [동아시아 자본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4.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 과거,현재,미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5. [지정학의 ], 김동기, <아카넷>, 2020.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3193510634?afterWebWrit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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