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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l 29. 2023

[동아시아 자본주의/마르크스주의] - 박노자/정성진 외

- 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 [동아시아 자본주의] /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2023.





"21세기 들어 '국가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귀환했다... '국가자본주의'의 귀환, 즉 '신국가자본주의'가 대두하게 된 주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드러난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의 실패이다... '신국가자본주의론'은 기존의 '국가자본주의론'과 달리 국가분석을 사회계급 권력분석과 분리한다...

오늘날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를 해명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신국가자본주의론'이 환기한 고전 마르크스주의 시각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업데이트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조건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 [동아시아 자본주의], <3장.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평가와 과제>, 정성진, 2023.



1.


'국가사회주의'가 무엇입니까?

1학년 후배가 대뜸 물었다.


그것도 모르느냐,

그는 그렇게 반문하고는 학생회실을 박차고 나왔다.


학회 세미나 시간이 끝난 후였던가.

현대철학반 1,2학년 여럿이 모여 잡답하던 중 어느 1학년 여자후배가 던진 질문에 2학년 학회장이었던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아무도 모르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국가사회주의'가 뭔지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고작 2학년이었음에도 명색이 '학회장'이었으므로,

그래도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데,

갑자기 그는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고는 몰래 도서관 가서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정확히 정리해본 후 다음날 조용히 그 후배를 불러 설명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학생회실에 벙쪄서 남겨진 동료와 후배 학회원들은 자고로 '철학' 학회장이란 자가 그것도 몰라서 내뺐다고 생각할 거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그는 부끄러워졌다.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철학' 학회장이 '국가사회주의'를 몰라서 그랬던 건 진짜로 아니었다.

질문을 받자마자 갑자기 '국가자본주의'가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


"오랜 관료주의적 질서의 근본적인 힘은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임용관행과 함께 제국의 질서회복에 기여하게 되었다... 탈귀족주의와 '능력' 중심적 관직 임용은 중세 중국 역사의 진화에 매우 중심적인 요소들이었다... 객관적인 등용, 고과의 기준은 공공성, 공익 같은 관념들을 공고화시키고 공적인 기관으로서의 정부의 위상을 정립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당대 유럽에서 정부의 권력이 특정 귀족가문의 사적소유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좀더 긴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국가의 이미지는 '공적인 영역'이라는 현대적 개념의 전조였다...

다양한 형태의 '능력주의'를 포함한 '관료제도'에 기반한 국가경영의 장기적인 지속성은 서구가 보다 일찍 달성한 자본주의의 축적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따라잡는 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동아시아 자본주의], <1장. 동아시아 관료국가의 형성과 그 특성>, 박노자, 2023.



경상대학교 '한국사회과학연구단(SSK)'에서 2023년에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동아시아의 체제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연구총서'를 냈다.

우리 사회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인 SSK연구단장 정성진 교수가 엮은 이 총서는 박노자와 인도 및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 한국의 학자들이 국가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노동,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테마를 가지고 동아시아 정치경제체제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연구총서의 첫째 권은 [동아시아 자본주의]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을 역시나 피해갈 수 없다. 인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잔 차크라바티와 사요네 마줌다르는 <2장.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전환과 발전~>에서 중국 체제를 분석한 후 이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겉으로는 '사회주의'지만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극 편입한 자본주의 체제 중 하나에 불과하며 국가권력이 노동계급 착취의 주체로서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전형적인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식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 모두 마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사회주의'일 수가 없다.

'사회주의'는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이 창출된 노동가치를 전유해야 한다. 어떤 식이든 '착취'로 돌아가는 체제는 '사회주의'일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신흥공업국으로서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의 나라들도 동일한 모델이다. 즉, '경제 발전'을 이룬 동아시아 나라들 대부분이 '국가자본주의'인 것인데, 정성진 교수는 <3장. 동아시아 자본주의론의 평가와 과제>에서 이들의 진화단계를 1) '국가자본주의' - 2) '발전국가' - 3) '포스트 발전국가' - 4) '신국가자본주의'로 구분한다.


최초로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부터 1961년까지의 냉전 초기 아직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과 '종속이론'이 지배적이었던 시절 국가 주도의 산업과 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자체가 자본축적의 주체가 되었던, 현재의 중국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단계에서 시작한다. '국유화'를 중심으로 제3세계의 '국가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발전'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발전국가'는 국가의 금융업 지배를 통해 국가권력의 자본주의 개발계획이 적극 수립되고 집행되던 경쟁적 냉전시대의 모델이다. 소련을 중심으로 했던 당시의 공산국가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이 '발전국가'는 1997년 IMF 세계금융지배 체제로 인해 해체된다.

20세기 말 새로운 세계체제론과 함께 동아시아에 등장한 '포스트 발전국가'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발전국가'의 말기적 현상으로 자본주의 계급모순과 불평등이 심화된 단계다. '후기'로 번역되곤 하는 '포스트~(post~)'는 보통 연속을 의미하면서도 이탈을 내포하는 '~이후'를 뜻하기도 하는데, '발전국가 이후'로서의 '포스트 발전국가' 체제는 알다시피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함께 휘말리게 된다.

자본주의는 살아남기 위해 '국가자본주의'를 다시금 소환한다. 자본축적의 무한자유를 보장하되 또 다시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를 정성진 교수는 '신국가자본주의'라 말한다. '국가자본주의'처럼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결합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유화'를 무덤에서 살려낼 엄두는 내지 못하지만 21세기의 국가권력은 자본 일체의 무한확장과 축적 일체를 규율하고 통제하며 총괄한다. 이 강력한 '신국가'는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도 자처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모순인 계급투쟁을 철저히 은폐한다. 계급투쟁을 노골화시켰던 '국가자본주의'의 현대화된 형태로서 손색이 없다. 세련된 21세기 '신국가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을 말하면 왠지 촌스럽게 여지기도 한다. 계급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음에도 말이다.


한편, '신국가자본주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효율적 방역체계로도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동아시아 국가권력의 목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완전한 편입이며, '국가자본주의'의 완성이다.

연구총서는 21세기 '신국가자본주의'는 20세기 '국가자본주의'를 다시금 소환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론의 부활 또한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며동아시아의 미래 대안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 불평등 체제에서 계급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1장. 동아시아 관료국가의 형성과 그 특성>이라는 박노자 교수의 글은 이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론'의 기본배경을 의미심장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의 비약적이고 효율적인 발전과 성장의 정치적 배경으로 동아시아의 오래된 '관료주의'를 전제한다.

중국의 고대 한나라에서는 효렴과 천거(찰거) 등의 추천 형태였고 수당시대를 거치며 발전한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된 동아시아의 사대부 또는 신사계층 관료들은 경학이든 논술이든 국가경영의 '능력' 인정받은 자들로서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갱신을 통해 국가의 안정적 경영을 이룬 자들이었다. 세습귀족들만의 사유물이었던 서양의 국가들과 달리 동아시아 '관료제' '능력주의' '효율성' 비록 왕조국가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공공성' 오래전부터 공고히 다졌고, 현대에 이르러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 발전을 담보하는 정치문화적 배경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13

https://brunch.co.kr/@beatrice1007/141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 조차도 '국가자본주의'다.

경제발전은 물론 세계체제 편입과는 거리가 먼 북한의 세습봉건왕조는 아예 연구대상도 못되지만,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는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표방했던 '국가사회주의' 조차도 못되지 않을까 싶다.



3.


"식민지는 주로 원자재 공급지의 역할과 식민종주국의 공산품 판매를 위한 시장의 역할을 강제로 강요받았다는 논리... 동시에, 식민지 착취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한 '초과이윤'은 '선진국'에서 고임금 노동자계층('노동귀족')이 '혁명' 대신에 '개혁'을 지향하도록 매수하기 위해 그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데 사용되었다.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은 식민주의를 주변부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통제와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결속과 연결시켰고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레닌이 공헌한 매우 큰 부분이다. 레닌의 이런 이론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월러스타인이 '세계체제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실제로 '세계체제'라는 용어는 레닌의 주요 논문들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상당히 잦은 정책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이론적 근거는 일반적으로 동일했는데 물품의 시장, 자원공급원, 값싼 노동력의 창고로서의 악착같은 식민지 착취는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1장. 조선적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주의>, 박노자, 2023.



연구총서의 두번째 권은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다.

앞서 동아시아 주요국들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박노자 교수와 한국 및 인도와 일본 등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동아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분석한다.


박노자 교수는 <1장. 조선적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에서 식민지 조선 시기 소련 등지에서 조국을 분석했던 '디아스포라(망명)'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조선 체제 분석이 얼마나 정교했으면서도 현실적이었는지 문헌연구를 토대로 소개한다. 1916년 [제국주의론]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불균등발전론'을 이론화한 레닌의 사상에 입각했던 이들의 마르크스주의적 체제 분석은 해방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남북한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명시하지는 않았다 해도 식민지 시대 조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방 후 남북한 양측에서 공히 이 조선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잊혀졌다. 남한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성지가 되었고, 북한의 스탈린주의 또한 이들 조선식 '디아스포라' 마르크스주의를 숙청했다.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과거'를 거쳐 '현재'는 또 어쩔 수 없이 중국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된,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세계의 공장(글로벌 공장)'이자 '노동의 대륙'으로, 대다수 동아시아 노동계급을 거대한 세계체제 피착취의 대상으로 노골화시키는 '국가자본주의' 또는 '신국가자본주의'가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인 것이다. 연구논문은 길고 복잡하지만, 결국 동아시아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분석이다.

연구총서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적 모순을 타파하는 '미래' 대안으로 세계체제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세계의 공장(글로벌 공장)'을 벗어나, 불안정/비정규 노동과 인종혐오를 넘어서는 반제국주의적 노동계급 투쟁의 집단적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동아시아 자본주의], <4장>).


그 외, '신자유주의' 이야기는 다소 진부하다. 다만,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신보수주의'에 불과하며, '신자유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 불완전노동과 복지축소로 변질된 '새로운 케인스주의'까지도 포괄할 정도로 유연하고 총체적이라는 점을 기억할만 하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 마르크스주의는 그 전통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인류세의 자본론]에서 강조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의 역할과 자연철학적 '물질대사'로까지 자본의 물신성을 밀어붙이려던 [자본론] 1권 이후의 노년의 마르크스에 대한 재조명 정도로 주목해보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사이토 고헤이 정도로 연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37



4.


대학 2학년의 어수룩한 철학 '학회장'이었던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국가사회주의'를 설명하기 전에 '국가자본주의'를 먼저 꺼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


후배들 앞에서 완벽하고 싶었던 스물한살의 철학 학회장은 당시 동료후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결국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몰라서 자리를 피한 거였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결국,

'신자유주의'처럼 또다시 진부한 얘기 같지만,

'국가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동아시아 체제는,

우파 자유주의자가 보면 '국가사회주의'일 수도,

좌파 사회주의자의 눈에는 '국가자본주의'일 수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


1. [동아시아 자본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2.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 과거,현재,미래], 박노자/정성진 외 경상대 SSK연구단 연구총서, <진인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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