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재장전]을 통해 돌아보는 현재의 정치정당
‘현대의 군주’, 당(黨)의 재장전
- [레닌 재장전]을 통해 돌아보는 현재의 정치정당
"현대의 군주, 즉 신화, 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이미 인정받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인한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혹은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유기체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이다."
- A. Gramsci. [옥중수고](1929~1935),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중.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신의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 사람답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에 주목한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마키아벨리는 이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이고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으며,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으로서의 군주를 통해 궁극에는 민중과 하나가 되고, 이 과정에서의 발화된 정치적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실존하는 ‘군주’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론’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에 있어 정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고, 군주제 또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시도를 ‘군주’라는 한 개인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치체제인 것이며, 현대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보편적이고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여진 최소의 세포’로서 ‘정치정당’이 실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의 역사는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나, ‘이 사회집단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친척집단과 반대파와 적을 가지고 있’어 ‘주어진 정당의 역사는 오직 사회와 국가의 총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기술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당연히 정당을 어느 특정한 사회집단, 즉 ‘계급’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 결국, ‘모든 정당은 어떤 계급의 학명(學名)에 불과한 것이므로 계급분열의 종언을 지향하는 정당은,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의 표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정당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기충족을 달성할 것’(이하 [옥중수고])이라고 정당의 정치성을 ‘육화’시키고 있다.
"20세기 정치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조직이다. 조직적이지 않은 정치활동은 없으며, 실제로 정당이라는 단어가 이를 잘 보여준다. 1871년에 구성되었던 파리코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세기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지형이 펼쳐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활동의 기본은 봉기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에는 정치활동의 개념이 반란이었다면 20세기에 그것은 정당활동이었다고… 19세기 말에 정치를 담는 유일한 그릇이었던 계급이라는 범주가 몰락했다. 20세기 말에는 국가 정당이라는 정당 형태가 몰락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정당 없는 정치활동이라는 명제를 부여잡게 되었다. 이 메커니즘은 권력과 국가를 겨냥하지 않으며 인민을 지지하고 편든다. 이 메커니즘은 국가를 규정할 능력이 있지만, 국가의 주변에서 입장을 취하면서도 외부에 존재하고, 동시에 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얘기이다."
- [레닌 재장전], 실뱅 라자뤼스, <레닌과 정당, 1902~17년 11월> 중.
20세기 정치사에서, 그것도 정당의 역사에서 레닌을 빼놓을 수는 없다. 노동계급의 ‘자생적 의식’에 ‘혁명적 정당’이라는 외부로부터 ‘사회주의 의식’이 주입되어 혁명을 이룬다는 ‘혁명이론’과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이라는 ‘실천’까지 이루어낸 정치가가 바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 저작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주장한 ‘혁명이론 없이 혁명운동은 없다’라는 테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당(黨)이 있다.
이러한 사실이 유효한 이유가, 정당이라는 것이 정치권력 장악을 위한 도구로서 자본주의가 성숙했던 유럽에서는 정당의 정치활동 주무대가 의회였으므로 19세기의 계급이라는 범주는 정당 속에서 희석되어왔고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당활동 자체가 20세기의 정치활동 개념이 되었는 바, 이러한 정치활동 개념을 뒤집고 정당을 중심으로 혁명을 실천한 이가 바로 레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변혁을 위해 레닌은 기존의 무대-의회주의 정당-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닌 재장전]에서 슬라보예 지젝, 알렉스 캘리니코스, 에티엔 발리바르, 안토니오 네그리 외 여러 저자들이 지적한 지점은 비단 ‘정치영역’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레닌을 반복하기> 기획은 ‘철학’과 ‘정치’의 영역, 그리고 20세기 세계정치를 규정짓는 ‘제국주의’라는 주요한 이슈에 대한 레닌의 다양한 입장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들에게 20세기의 출발, 레닌의 재발견의 토대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국면이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의회주의 활동에 국한된 각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대부분 국익을 위해 전쟁을 지지했고 초반에는 독일 사회민주주의 교과서 칼 카우츠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레닌은 이 국면에서 결국 ‘배신자 카우츠키’와 등을 지고 망명지의 도서관에 파묻혀 헤겔을 연구한다.
‘철학’의 영역. 저자들은 레닌의 [철학노트]를 중심으로 레닌의 헤겔 다시 읽기가 그 자신 혁명사상의 ‘인식론적 단절’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관념론자 헤겔을 유물론적으로 단순히 뒤집는 것이 아니라, 헤겔 사유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유물론을 재사유함으로써 그렇다는 것인데, 헤겔을 통해 마르크스를 재사유하려는 슬라보예 지젝의 작업이 <레닌을 반복하기> 기획에 미친 영향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레닌은 헤겔을 재사유한 [철학노트]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음과 같이 재조명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맨 먼저 부르주아(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량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목격되는 단계, 즉 상품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부르주아 사회의 이 ‘세포’ 속에서-개별로서의)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모든 모순의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되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은 물론 운동도)과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내지 탐구)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
- V. I. Lenin, [철학노트],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 1915. 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년)을 통해 확고하게 재정립된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헤겔 속에서 한 번 더 ‘변증법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다음으로 ‘제국주의’ 영역에서 레닌의 역할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물론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인해 ‘민족주의’에 대한 레닌의 입장은 일관성이 없기는 하나, ‘독점자본주의 최고단계로서 제국주의’를 규정한 레닌의 정식화는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참고로,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1) 독점을 낳을 만큼의 생산 및 자본의 집중, (2) 금융자본(은행자본+산업자본)에 의한 금융과두제, (3) 자본수출의 중요성, (4) 독점자본가들의 국제적 동맹, (5) 독점자본 및 그 대변인인 국가에 의한 세계분할과 재분할.
마지막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가장 주요한 테마는 혁명과 정치정당이다. 또한 알튀세르에 의하면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이 현실에서의 계급투쟁이므로 ‘정치’의 영역은 [레닌 재장전]의 모든 부분을 포괄할 수 있다. 1905년부터 시작한 러시아 차르체제에 대한 민중봉기, 총파업과 소비에트의 ‘자생성’은 레닌에게는 노동계급의 필연적인 사회주의적 자생성이며, 혁명을 목표로 사회주의정당의 ‘전위’는 이를 의식적으로 조직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로 대표되는 레닌의 당조직론과 철학적 재사유를 통해, 레닌의 정치이론이 기존 정당활동과 차이를 보이는 배경은 바로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대전-더 정확히는 1914년의 파국으로 진보주의라는 긴 시기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붕괴하고 난 뒤’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고, 그 조건 속에서 그야말로 혁명적인 철학적 자기성찰이었으며, 그에 따른 신념 가득한 정치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레닌’은 낡은 독단적인 확실성을 향한 향수어린 이름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되살리려는 레닌은 생성중인 레닌, 그의 근본적인 경험이 파국적인 새 성좌 속으로 던져지고 그 속에서 오래된 참조점들이 아무런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나버려 할 수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재발명해야 했던 레닌이다. 묘비석을 찾거나 그림을 바라보는 것처럼, 레닌으로 단순히 돌아가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레닌을 반복하고 재장전해야만 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성좌에서 똑 같은 추동력을 되살려내야 한다. 레닌으로의 변증법적 회귀는 ‘좋았던 옛혁명기’를 향수 속에서 재연하는 것도,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옛 프로그램을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 보다 이 귀환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대전-더 정확히는 1914년의 파국으로 진보주의라는 긴 시기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붕괴하고 난 뒤-이라는 조건 속에서 혁명의 기획을 재창조하려는 ‘레닌의’ 제스처를 현재의 지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라는 개념을 자본주의의 오랜 평화로운 확장이 끝난 1914년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식이 생겨난 1990년 사이의 시간으로 정의한다. 레닌이 1914년에 한 것을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해야만 한다."
- [레닌 재장전], 슬라보예 지젝 외, <서문-레닌을 반복하기> 중.
21세기인 현재 정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지금의 정치활동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 그람시가 규정한 정치의 첫 번째 요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인데, 정당이든 무엇이든 정치활동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재차 상기함으로써 현재의 정당을 ‘재장전’해야 하지 않을는지. [레닌 재장전] 저자 중 하나인 앨런 샨드로는 1905년 혁명기의 소비에트와 노동계급과 당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은 그람시의 [옥중수고] 속 문제제기로 끝맺는다.
"지도부를 구상하는 데서 한 가지 전제가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와 지도받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게 목표인가. 아니면 이런 분리가 더 이상 필요없는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인가?"
- [레닌 재장전], 앨런 샨드로,
<레닌과 헤게모니:1905년 혁명기의 소비에트와 노동계급과 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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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닌 재장전],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재원 외 옮김, <마티>, 2010.
: 스탈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승리’가 선언된 후 진보좌파 마르크스주의가 나아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저자들-슬라보예 지젝,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이 <레닌 반복하기>를 기획하며 철학, 제국주의, 정치 영역에서 레닌의 혁명성을 재조명하고 있는 책. 현재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1914년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조차 국익을 위해 전쟁을 지지하면서 진보의 위기가 발생한 이른바 20세기의 시작과 닮아 있으며, 1914년의 국면에서 레닌이 헤겔 속 유물론을 재사유하고, 소비에트로 대표되는 노동계급의 자생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혁명정당의 전위들의 결합을 통해 혁명을 이루어내었던 혁명의 제스처들을 현재의 조건에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2. [철학노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 국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할 때 그러했듯 망명지의 도서관에서 헤겔로 되돌아간다. 이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주제도 ‘철학’이었지만 이는 경험주의, 상대주의인 오스트리아 마흐주의식의 ‘경험비판론’에 대한 다분히 논쟁적 의도로 저술되었고, [철학노트]에서는 헤겔의 [논리학] 적요를 시작으로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 등 철학의 ‘기본개념’부터,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레닌은 ‘헤겔 속의 유물론’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철학의 ‘대선배’들의 사상 등도 두루 재학습하고 있다. [철학노트]는 헤겔의 [논리학]은 물론, [철학사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에 대한 적요 등을 포함하면서 관념론 철학의 완성체로서의 헤겔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리한 대량의 노트라 할 수 있다. 그람시의 [옥중수고]와 같이, 발간목적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재정립이라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행한 방대한 학습노트, 수고록을 나중에 엮은 것이다. 철학학습을 시작하는 레닌의 ‘금언’은 다음과 같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특히 제1장(상품)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를 경과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3.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전유럽에서 기승을 부렸던 ‘경험비판론’ 또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마흐주의’를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분쇄하기 위해 논쟁적으로 저술한 저서이다. 아직까지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경향이었던 엥겔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던 시기였다. 즉, [반뒤링론](1878년)이나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1888년)에서의 엥겔스의 기본입장, ‘철학의 전장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양 진영 간의 투쟁’이라는 테제를 기본으로 관념론 일체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목적의식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주어져 있으며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모사되지만 우리의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시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라고 하는 유물론의 기본전제로부터 시작하여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며 ‘상대적 진리’ 속에 ‘절대적 진리’가 항상 내포되어 있다는 식의 변증법적 사유방식이 결합된 ‘변증법적 유물론’의 엄격한 정식화를 시도하고 있다. 주관적 관념론에 불과한 ‘경험비판론’, ‘마흐주의’적 경향을 이러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철저히 비판하고 관념론 일체와의 적대적, 비타협적 투쟁을 위해 저술된 다분히 논쟁적 저작이다. 주제는 ‘철학’이지만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다루지는 않고 있으며, 전술했듯 레닌은 1914년의 국면에 이르러서야 [철학노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4. [국가와 혁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김영철 옮김, <논장>, 1994.
: ‘모든 부르주아 국가는 그들의 형태가 아무리 다양하더라고 끝까지 그 본질을 분석해 보면 부르주아지의 독재라는 동일한 본질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풍부하고 아주 다양한 정치적 형태들을 창출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동일하게 될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이다’라고 하면서 계급사회 국가의 본질을 분석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수립할 ‘노동자국가’는 기존 계급사회의 국가장치를 파괴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행체제를 통해 계급사멸-공산주의-을 달성해야 하고 그와 함께 국가의 역할도 소멸된다는 주장이다. 소비에트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7년 8월과 9월에 발표된 저작으로서 계급국가의 정의와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엥겔스의 보충설명, 국가에 관한 각종 기회주의적 경향-카우츠키 류-에 대한 비판을 지나 1905년과 1917년 사이 러시아 혁명의 경험까지 기획하였지만, 임박한 실제 혁명의 정세를 맞아 제7장인 ‘1905년과 1917년 사이 러시아 혁명의 경험’의 장을 시작하기 전에 중단된 미완의 저작이다. [레닌 재장전]에 따르면, 혁명 전의 레닌과 혁명 후의 레닌은 사상 및 실천적으로 구분되므로 [국가와 혁명]은 레닌의 혁명 전 사상을 표현하는 ‘마지막 저작’이 된다. 레닌의 이 미완의 저작은 1976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알튀세르의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레닌 재장전]의 저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가 저술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한역판은 [민주주의와 독재])를 통해 요약 및 정리된다. 그 한 예로, 국가론,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레닌의 세 가지 테제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국가권력은 항상 단일한 계급의 정치권력이다. (2) 국가장치가 없이는 국가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그리하여 기존 계급사회의 국가장치들은 혁명기에는 철저히 파괴되어야 한다). (3)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이다.
결국, 계급사회에서 국가를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는 결국 한 계급의 ‘독재’에 불과하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동일하다.
5. [옥중수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거름>, 1994.
: ‘국가는 강제의 갑옷을 입은 헤게모니’, ‘국가와 시민사회’, ‘강제와 헤게모니론’, ‘기동전, 진지전’ 등의 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옥중에서 각 테마별로 저술한 기록을 엮은 책. <현대의 군주>-정당, 정치 등, <국가와 시민사회>-헤게모니론, <미국주의와 포드주의>, <역사와 문화>-지식인, 교육, <이탈리아 역사>, <실천철학> 등 각 주제별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람시의 사상에 관한 해설서는 많지만, 그 자신의 저서는 별도로 없다. 그람시가 한 말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면 [옥중수고]를 직접 읽기를.
6. [레닌과 철학], 루이 알튀세르 지음, 이진수 옮김, <백의>, 1995.
: ‘철학과 과학의 관계’, ‘철학과 정치의 관계’ 등을 연구한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철학 학계에서 철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레닌을 ‘철학적’으로 재사유한 책.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라는 유명한 테제로써 ‘새로운 철학’이나 ‘실천철학’ 따위가 아닌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라는 사유의 증거로 레닌의 철학을 조명하고 있다. 레닌의 관점에서 철학의 당파성은 알튀세르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철학은 어떤 영역에 있어서 어떤 현실에 관한 정치의 어떤 연속이다. 철학은 이론 영역 내에서 보다 정확히 말해, 과학 곁에서 정치를 대변한다. 그리고 역으로, 철학은 계급투쟁에 참가한 계급 곁에서 정치의 과학성을 나타낸다.’ 유럽 전통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운동이 위기에 처한 1968년에 레닌을 철학적으로 <반복하기> 시작한 철학자, 바로 알튀세르였다.
(2010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