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주의는 항상 부활한다
[서문] '문사철(文史哲)'을 연재합니다!
- 인문주의는 항상 부활한다
'문사철(文史哲)'은 내가 스무살이 되던 1993년에 처음 들은 말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제도교육 속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기술이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생인 우리가 스무살을 앞두고 진로를 정할 때 문학과 역사, 특히 철학 쪽으로 가면 밥벌이를 못할 거라는 어른들의 준엄한 말씀만 들려왔다.
'문사철(文史哲)'은 바로,
굶어죽기 딱 좋다던 '문학(文)'-'역사(史)'-'철학(哲))'의 인문계 삼각편대였다.
"이와 같은 인신공양제와 검투사 산업의 소멸은 모두 외래문화의 간섭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인은 나중에 기독교에 귀의했고, 전통적인 아즈텍 종교는 식민주의자들의 천주교로 대체되었으나, 은상(殷商)은 그와 달랐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한 뒤에 인신공양제사는 주나라 사람들에 의해 소멸했으나, 주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 않고 세속적인 '인문주의' 입장을 채용하여 극단적인 종교 행위와 거리를 두고, 그것이 현실 생활에 관여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른바 '귀신을 경외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는 것이었다. 이것은 후대 중국문화의 토대를 닦아놓았다."
- [전상(翦商)], <프롤로그>, 리숴, 2022.
1990년대 중반, 영국의 기자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1995)이라는 책이 한때 유행했다.
세기말이 다가오니 종말론적 현상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기도 했는데, 적어도 7천년에서 1만년 정도 발전해온 인류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괴담의 배후는 명확히 짚을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신(神)'이었을 게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앙에서는 천상의 절대자일 것이며, 철학적으로는 근대 고전철학의 '일자(the One)'일 테고, 기후생태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적으로 풀자면 '자연' 자체일 수도 있겠다.
20세기말에는 고대의 대홍수나 현대의 대행성 충돌 같은 천재지변에 인류의 기후생태 파괴가 함께 작용하면서 인류가 일구어온 문명 일체가 사라질 거라는 괴담도 있었던 한편, 나의 조카들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들이 변함없이 태어나고 있었다.
[신의 지문]은 기원전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은 물론 기원전 1~2천년 전 추정되는 마야 문명 등은 자체의 문명이 아닌 그보다 더 오랜 거대 문명의 전승자일 수 있다는 가설을 두고 그 증거들을 추적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지구의 오대양 육대륙이 정착한 이후에도 동서양과 남북방의 문명 공통점의 기원과 그 뿌리에 관한 의문을 던진다.
그 중 하나가 사람을 제사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제'다.
중국 은(상)나라는 기원전 1세기경 주나라로부터 멸망당했는데, 은나라 또한 한참 후였지만 접촉은 없었던 중앙 아메리카의 아즈텍 문명처럼 '인신공양제'와 식인의 풍습이 있었단다. 20세기말 그레이엄 핸콕이었다면 [신의 지문]으로 찍혀서 전승되어온 공통 문명 중 하나라는 가설로 주장되었겠지만 21세기 중국의 역사학자 리숴는 은-주 문명 교체기를 다루는 책 [전상(翦商)](2022)에서 양자는 그 풍습의 형태가 다르므로 연관성은 없다고 강조한다. 즉 아메리카 아즈텍의 인신공양제에서는 거대한 건축과 공예품, 식인의 잔치가 있다면 동아시아 은상의 인신공양 풍습은 갑골문의 형태로만 전해지며 공연성은 남지 않았다면서 동서양 '인신공양제'의 공통성은 부정한다.
"... 멕시코에서 '케찰코아틀'이 지배했던 시대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의식이 금지되었다. '케찰코아틀'이 사라진 후에 피를 뿌리는 의식은 더욱 거칠게 재개되었다. 그러나 중앙 아메리카의 역사 가운데에서 가장 열렬하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거행한 아즈텍족조차 '케찰코아틀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 [신의 지문], <3-14. 뱀의 사람들>, 그레이엄 핸콕, 1995.
인신공양 및 식인을 했던 은상을 멸한(전상;翦商) 주(周)나라는 이 잔인한 문명과 결별했다. 그로부터 5백년 후 공자가 이상화했던 주공 단 시대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풍습을 금지했다. 정치경제적으로도 '정전제'를 통해 '계민수전', 즉 모든 농민에게 토지를 주고 공동경작을 시행하기도 했단다.
공자는 이러한 이상사회를 '대동사회'라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면서 공자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논어]의 <술이>편에는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과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라 하여 인간사회를 중요시했던 공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고 귀신을 두려워하되 이에 의지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동아시아 인문주의의 기원인 유학에서 제사의 대상은 관념적인 천상의 신이 아니라 우리와 늘 함께하는 물질적 '조상신'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46
마야-아즈텍 문명의 구세주와 같은 '케찰코아틀' 또한 '인신공양제'에 반대했다. 밤과 암흑의 신 '테스카틸포카'에게 케찰코아틀이 패배한 후 잔인한 인신공양과 식인이 만연했지만 이 문명이 끝나고 케찰코아틀이 재림하는 날 인신공양 풍습에도 종말이 온다는 믿음이다.
선한 문명은 악의 문명에게 패배하지만 언젠가 잔혹한 현세를 물리치고 다시금 재림한다는 이데올로기다. 종교도 그렇고 정치이념도 그렇다.
기독교가 고대 로마 문명을 밀어낸 중심에 메시아 그리스도가 있었지만 시대가 흘러 지배계급이 된 중세 가톨릭은 민중들을 억압했다.
주나라는 인신공양제를 끝장내고 신이 아닌 세속권력체제를 도입했지만 수백년을 지나오면서 민중들을 인신공양 못지 않은 전쟁의 희생물로 내몰았다.
우리의 유교도 조선후기 지배계급 질서를 강조한 이념적 수구반동성 이전에 조선 건국 시기에는 '계민수전'의 정신으로 모든 민중들에게 땅을 주고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혁명적 성리학'의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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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문명교체기의 특징을 나는, '인문주의(人文主義)'로 본다.
서양 16세기 르네상스라는 '인문주의' 부활은 단지 중세 가톨릭을 벗어나 고대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었다. 고대의 '인문주의'를 다시금 돌아보고 이제 새로운 '인문주의' 사상을 발전시키자는 운동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내가 존경하는 삼봉 정도전은 다 썩은 고려체제에서 역시 썩어빠진 성리학과 유학을 복고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삼봉이 여말선초 14세기에 성리학을 급진적 혁명이론으로 채택한 이유는 헐벗고 굶주린 민중들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국가건설의 목적이 있었다. 시대적 한계로 공화정으로까지 갈 수는 없었지만 사대부가 왕조를 견제하는 새로운 체제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44
이처럼 모든 문명 충돌과 혁명적 문명 교체기에는 '인문주의'가 부활한다. '미륵' 같은 '메시아'나 '구세주'를 앞세워도 실질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인문주의'가 그 주요 이념인 것이다.
내게는 그 '인문주의'가 바로,
'문사철'이다.
과학의 진보와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인문주의'는 항상 부활한다.
평범한 노동자인 내가,
'문사철'을 연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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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상(翦商)](2022), 리숴(李碩),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4.
2. [신의 지문 -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1995), 그레이엄 핸콕, 이경덕 옮김, <까치>, 1996.
3. [청나라 귀신요괴전 1~2], 원매, 조성환 옮김, <글항아리>, 2021.
4.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푸른역사>, 1997.
5.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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