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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Oct 12. 2024

[화폐,계급,사회](1952) - 빌헬름 게를로프

- "화폐는 '사회적 재화'이다"

"화폐는 '사회적 재화'이다"

- [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는 '사회교류적 행동'의 산물이다."

- [화폐, 계급, 사회], <1-1. 사회교류적 현상으로서의 화폐-연구과제>,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란 무엇인가.


미국의 경제학자 랜덜 레이의 '현대금융이론(MMT:Modern Money Theory)은 '화폐'는 국가에서 찍어내는 '명령화폐' 또는 '표권화폐'로서 중앙은행이 언제든지 엔터키만 누르면 발행되고 이 돈들은 다수 노동계급의 소득증대와 완전고용을 전제로 균형을 맞춘다면 인플레이션의 폐해도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재정균형론'이나 '재정건전성'은 허구이며 국가의 적자는 다수 국민의 흑자로서 "둘이 함께 추는 탱고"에 비유된다.

'MMT'에서 화폐는 국가권력과 재정정책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49


한편, 19세기 근대 '노동가치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품론'에 기초하여 상품생산과 자본증식 과정에서 교환의 '일반적 등가물'이자 상품의 특수한 형태로서의 '상품화폐론'을 주장한다. 즉, 상품생산 및 유통과정, 자기증식을 본질로 하는 자본의 상품생산 과정과 자본주의 총생산에서 주요한 매개수단으로서의 화폐론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50


'현대화폐이론'은 화폐에 대한 '현상'적 설명이고,

'상품화폐론'은 '본질'적 설명으로 나는 판단한다.

그러나 이런 화폐이론들은 오로지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역사에만 기반한 공시적 설명이다.





"본서에서는 화폐가 '경제적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교류적 영역'에서 기원된 것이라는 견해를 견지한다. 화폐는 이러한 '사회교류적인 영역'에서부터 발출하여 '경제적 영역'으로 침투하고 이윽고 '경제적 영역'을 지배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경제적 영역'을 넘어선 일반적인 '사회교류적인 것'까지도 포획한다."

- [화폐, 계급, 사회], <1-2. 사회교류적 현상으로서의 화폐-화폐의 사회적 이론이 가지는 의미>, 빌헬름 게를로프, 1952.



독일의 재정경제학자 빌헬름 게를로프(Wilhelm Gerloff : 1880~1954)는 1952년의 저서 [화폐, 계급, 사회]에서 인류 전역사를 관통하는 '화폐론'을 전개한다.

나치에 대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총장직에서 해임된 후, 1940년 [화폐의 발생과 화폐체계의 시작]으로 사회학적 관점의 화폐론을 열었고 1952년에는 [화폐와 사회]라는 주저를 통해 그의 '사회교류적 화폐론'을 완성한다.


게를로프의 [화폐와 사회](1952)의 한글판 제목이 바로 [화폐, 계급, 사회]다.

원제는 [화폐와 사회(Geld und Gesellschaft)]인데, 그의 화폐론에서 화폐의 발생과 변천의 배경인 사회가 '계급사회'이고 화폐의 역사적 형태가 '계급화폐'이므로 국역판 제목에 '계급'이 포함된 듯 하다. 부제 또한 <사회적 화폐이론에 관한 연구(Versuch einer gesellschaftlichen Theorie des Geldes)>인데, 국역은 <계급화폐의 발생과 발전, 화폐권력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로 했다.

화폐의 역사에서 '계급'과 '권력'의 중요성이 게를로프 화폐론의 주요내용이기 때문이다.


[화폐, 계급, 사회]의 주요 명제는, 화폐는 특정 '경제적' 영역이 아닌, '사회적', 역사적 영역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화폐 사용자들은 '경제합리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을 넘어선 '사회교류적' 인간이자 '야심'에 찬 '평판집착적' 인간이 그 기원이라는 것이다.



[세리들], 캉탱 마시, 16세기.



"모든 '문화적 소유', 즉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문화적 재화'의 소유는 '계급소유'에서 기원하였다. 그런데 화폐도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류학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당시 사용된 '화폐증표'는 바로 '계급표시'였다는 사실이다."

- [화폐, 계급, 사회], <2-10. 화폐관용의 여명기-계급화폐>,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는 그 발생의 여명기에 '선물교류'의 형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익히 배웠듯, 근대 상업과 산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지배계급의 '우월성' 과시수단으로 통용되던 게르만족의 금속고리 같은 희귀하거나 특별상징으로 통용된 재화가 바로 화폐의 기원이라고 게를로프는 말한다.


최초에는 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적인 재화로서 우월함에 대한 '인정수단'(같은책, <3-15>)이었던 이 원시화폐는 다수 농민의 직물이나 가축과 같은 재화로 그 징표가 확장되었다. 게를로프는 이를 화폐의 '민주적 확장'으로 본다. 이러한 화폐의 '민주화' 과정에서 기존의 소수 지배계급에 의한 축적된 재화 또는 '선물'로서의 화폐는 다수 거래를 통해 "측량과 숫자로 표현되는 '물질가치'로 변화하여 결국 '화폐'가 된 것이다"(같은책, <2-4>).


'계급사회'에서 출발한 만큼 화폐에는 '계급'과 '권력'의 낙인이 찍혀 있다.

즉, 화폐는 '계급사회'의 산물이다.



[예수, 고리대금업자를 신전에서 몰아내다], 마티어스 스톰, 17세기.



"시장은 경제적 '권력투쟁'이 펼쳐지는 장이다. 화폐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내에서 특별한 적응과 발전을 거쳐온 이러한 투쟁에서의 무기이다. 이에 화폐가 준비되게 하고 또한 그것을 구성시키는 여러가지 요건과 '특성들' 중에서는, '경제사회'에 있어서만 무한하게 발휘될 수 있는 '화폐'의 '구매권력'의 발전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화폐, 계급, 사회], <3-16. 화폐의 본질-사회교류적 권력수단으로서의 화폐>,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발생과정을 살핀 후, 게를로프는 [화폐, 계급, 사회]의 <3부>에서 본격적으로 '화폐의 본질'을 탐구한다.


화폐는 사회적 '관계수단'(같은책, <3-14>), '인정수단'(<3-15>), '권력수단(<3-16>), '경제수단'(<3-17>), '교환수단'(<3-18>), '가격표현수단'(<3-19>), '계산수단'(<3-20>), '지불수단'<3-21>)의 성격을 지니고,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수 불가결한 '자본기능'(<3-22>)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낸다.


'화폐의 본질'을 서술함에서도 "화폐는 '사회교류적 행동'의 산물(창조물)이다"(같은책, <1-1>,<5-30>), 또는 "화폐는 '사회적 재화'이다"(같은책, <3-12>)같은 주요 명제는 견지된다.


화폐의 '사회적 이론'이 관찰대상으로 삼으면서 다루어지는 주요한 개념은 '화폐관용'이다. 즉, 화폐는 국가권력의 '법적 명령' 같은 '표현수단' 이전에 그런 기능을 갖게 되어온 '관용'적 성격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교환매개수단'이나 '지불수단' 같은 '경제적 화폐' 이전에 '우월성 과시충동'이나 '인정수단', '선물교류', '속죄금', '결혼지참금(신부값)' 같은 '사회적' 화폐가 선행되었으며, 이런 원시화폐의 '필수 서비스'에 '사회교류적 권력수단'으로서의 '본질적 서비스'(같은책, <3-13>) 형태가 결합되면서 비로소 '사회적 화폐'가 된다.


화폐는 '우월성'의 '인정수단'으로 시작되어 '사회적 계급권력 관계'에 의해 '경제적' 교환의 매개수단이 되었으나, 이 화폐라는 수단이 '권력의 담지자'(같은책, <5-30>)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되는, 즉 "수단이 목적으로 격상된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같은책, <3-13>)가 된다.


본질적 근원인 '사회'와 현상적 표상인 '화폐'와의 변증법적 관계이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말하듯 수단과 목적이 역전되어 인간의 '사회적 관계'보다 '물질적 화폐'가 우선시 되는 '물신화'의 과정이다.





"자본은 특정 목표를 위하여 배치된 화폐의 명칭이다. 따라서 '화폐의 자본기능'은 화폐가 사용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화폐는 화폐의 이득을 창출하는 수단이거나 혹은 수단이 될 수 있는 한에서만 '자본'이다. 즉, 생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화폐가 제공되는 경우에 비로소 '화폐'는 '자본'이 된다... 화폐의 '자본기능'은... 화폐의 '구매권력'의 결과이다."

- [화폐, 계급, 사회], <3-22. 화폐의 본질-화폐의 자본기능>, 빌헬름 게를로프, 1952.



상품생산에 '비용재'로서 투입된 화폐는 '자본'이 되어 자기가치를 스스로 증식시키는 매개수단이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C(상품)-M(화폐)-C'(가치증식된 상품)'의 단순 상품생산 과정이 'M(화폐)-C(상품)-M'(가치증식된 화폐)'로 변태되는 상품의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화폐라는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특정 상품형태가 곧 자본주의 상품경제를 확대재생산하는 주요 매개고리가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자본주의 상품생산에서 가치증식의 수단으로 기능했던 화폐가 상품유통과 자본주의 총생산과정에서는 그 자체로 가치증식된 자본의 표현물인 목적 자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물신화'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에서 돈이 최고다'라는 말의 화폐론적 표현이다.


여기서 빌헬름 게를로프의 [화폐, 계급, 사회]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구매권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구매권력'은 화폐가 양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수량적 표현으로서의 '구매력'과 다르다.

게를로프에 의하면 화폐의 '구매권력'이란 "교환가능성에 대한 보증"(같은책, <4-27>)으로서 화폐가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능력", "교환수단'으로서 화폐가 소지한 '사용능력'의 종류와 그 외연"(<4-27>)을 의미한다. 화폐의 양적 측면 뿐만 아니라 화폐 자체의 객체적이고 본질적 측면과 그 사용 주체의 권력적 측면 모두를 고려한 게를로프 화폐론의 필수적 개념인 것이다.



"... 화폐는 항상 '권력수단'으로 남아있게 된다... '화폐관용'이 바로 '화폐의 권력'을 결정한다. 화폐는 그 '화폐관용'이 보편화되고 확립됨에 따라서, 그리고 특히, '교환경제적' 거래에서 '화폐의 구매권력'을 획득함에 따라 '권력수단'이 된다."

- [화폐, 계급, 사회], <5-30>, 빌헬름 게를로프, 1952.



'사회적 화폐관용'에 따라 출발하였고 '경제적 교환수단'을 거쳐 다시 '사회적 권력수단'으로서의 자리로 돌아오는 화폐의 발생과 변천 과정을 둘러본 빌헬름 게를로프의 '화폐론'의 결론을 볼 때가 되었다.


애초에 화폐의 '경제적' 지위를 넘어 그 근원으로서 '사회적' 역사를 다루는 게를로프의 '화폐론'은 화폐의 '사회심리적 기초'(같은책, <1-3>)를 연구의 기반으로 삼고 있기에 주류경제학으로부터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사회과학으로서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도 게를로프의 화폐론이 내린 결론은 비슷한 비판의 여지를 둔다.


[화폐, 계급, 사회]의 결론에 해당하는 <5부 화폐와 사회교류적 질서>는 '올바른 화폐'(같은책, <5-28>)란 무엇인가의 질문부터 시작된다.


게를로프에 의하면 "올바른 화폐"란 "정의로운 화폐"이자 "가치유지적 화폐"다. 이는 국가가 법적 명령으로 화폐를 규정한다는 '명목화폐론'처럼 "국가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5-28>). 이에 대해서는 화폐사용자들이 답할 수 있는데, "국가화폐나 법적화폐가 실질적이며 생동하는 화폐인지의 여부는 화폐사용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에 의해 결정"(<5-28>)된다. '올바른 화폐'는 어느 정도 고정된 가치를 유지하며 사회경제적 교류의 안정화를 유지하는 화폐인데 게를로프의 이상주의적 경제사상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회주의' 못지 않게 이상주의적 화폐이론이다.


게를로프는 말한다.

"세상이 변하면 화폐도 변한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 다른 종류의 화폐, '올바른 화폐'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화폐는 '사회교류적 행동'의 창조물이다."

- [화폐, 계급, 사회], <5-30. 화폐와 사회교류적 질서-화폐의 사회적 이론>,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 계급, 사회]의 <1부 1장>을 위와 같은 말로 열었던 게를로프는 이 책의 결론인 <5부 30장>에서도 역시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사회적 인정표현의 수단'으로서 화폐는 '사회적 권력행사의 수단'이기도 한데, 경제에서의 화폐는 '권력관계', '권력역학'과 '권력차이'를 표현하는 공통분모가 되며 결국 '권력의 담지자' 그 자체가 된다(같은책, <5-30>)는 화폐와 사회의 변증법적 관계의 재반복이기도 하다.


게를로프는 화폐를 자본주의 역사에 국한시키거나 '경제적' 관점에서만 고찰하지 않는다. 결론은 화폐가 '사회교류적' 산물이라는 당연한 주장이다.

인류사회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화폐론'이다.


다시 기억할 것은,

'화폐'와 '사회'의 변증법적 관계다.

즉, 인류역사에서 필연적인 공동체로서 사회는 자연적으로 화폐를 발생시켰지만, '사회교류적 행동'의 산물인 화폐는 역으로 해당 사회체제를 지배하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


1. [화폐, 계급, 사회(Geld und Gesellschaft) - 계급화폐의 발생과 발전, 화폐권력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1952), Wilhelm Gerloff, 현동균 번역/역주/해제, <진인진>, 2024.

2. [균형재정론은 틀렸다](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3. [자본론](1867~),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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