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아닌 '반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신'이 아닌 '반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 역사의 연구,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개관과 이해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사회적 통찰, 자아의식, 정치적 성숙, 거시적 사고를 가져다 주려면 '유물사관'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과거의 연구는 단지 호사가의 골동품 수집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달성을 재촉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서문>, 1908.
영국 BBC 다큐멘터리 작가 헨리 링컨은 [성혈과 성배](1981)를 통해 구세주(메시아)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그것도 4세기 유럽의 메로빙거 왕조를 통해 자손을 잇고 현대 유럽에서 '유태왕국'의 재림을 도모하기 위해 '유력자' 가문들을 장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추적한 바 있다.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태왕족' 예수의 반란 실패 후, 그의 '부인' 마리아는 예수의 자손(성혈)을 잉태한 '성배'로서 유럽 왕가에 침투했고, 예수를 사이에 두고 마리아 집안과 '경쟁적 제자' 관계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의 '신격화' 교리를 전세계에 유포하며 현재의 '종교권력'이 되는 등 예수 종파를 분화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예수 후손의 가계도(성혈과 성배)를 추적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예수'라는 가설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칼 요한 카우츠키는 그보다 이전인 1908년에 [그리스도교의 기원]이라는 저작으로 '반란자로서의 예수'라는 가설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적 본질을 파헤친다. 카우츠키는 유태계에서 흔한 이름인 '예수'라는 '인간'이 어떻게 '메시아'로서 출현했고 어떻게 이례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당시 로마 제국의 '노예경제'라는 사회구성체의 토대와 '국가제도(고리대금업과 속주약탈)' 및 '사상과 정서(개인주의 철학)'의 상부구조에 대한 분석을 선행한다. 이것이 '역사가'인 카우츠키가 말한 '거시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유물사관'적 '역사의 연구'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많지 않았던 대도시는 없었다. 로마 다음으로 예루살렘이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그런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가장 많이 몰려있던 도시였다."
-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 제3부 제2장, 1908.
'무산계급'을 이르는 프롤레타리아는 로마 시대 노예에서 면천된 후 도시에 운집하며 로마 민주정(공화정)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다수를 이루던 계층(소상인,걸인,자유노동자)에서 유래하는데 이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대다수가 된다는 것은 노예경제의 몰락을 징후한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대산업 생산양식에서 일체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배제된 채 일체의 '사회적 노동'을 담지하는 '노동계급'이라는 점에서 자손생산 기능 밖에 없던 로마의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다르다.
초기의 원시 그리스도교는 로마 시대 프롤레타리아의 공동체에서 출발하면서 반로마 기치를 내건 민족주의적이고 계급증오에 기반한 메시아적이고 폭력적 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그리스어)의 십자가 처형 이후 4대(마가,누가,마태,요한) 복음서들은 최초 '폭력적 반란의 지도자'였던 예수의 출생과 죽음, 부활에 대해 상호모순된 보도를 하면서 결국 예수의 '폭력성'을 '평화주의'로 기록하는데, 이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몰락과 로마 제국지배의 공고화에 기인한다. 즉, 로마 제국의 지배가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민족적 메시아주의'가 유태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메시아주의'가 되고, 나아가 '국제적 메시아주의' 양태를 띄며 '신격화'와 '평화주의' 외피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모순이 없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만큼 모순과 엉터리투성이인 다른 종교는 좀처럼 없다...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에서 로마 양식으로, 프롤레타리아 공동체에서 세계 지배자로, 공산주의 조직에서 모든 계급들에 대한 착취의 조직으로 진화했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제4부 제2장, 1908.
헨리 링컨의 [성혈과 성배]는 '과격성'과 '급진성'으로 인해 유태인들로부터도 박해받고 고립되면서 로마를 당장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예수의 반란조직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의 '타협'을 통해 '십자가 처형'과 '부활'의 '연극'을 연출함으로써 훗날을 도모한다는 음모적 가설까지 내세운다.
한편, 카우츠키는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탁월하게 적합한 제도들을 갖춘 조직을 물려준 점(카우츠키, 같은책, 제4부 제2장)"에서 당시 다른 메시아주의와 차별성이 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300년 이상 투쟁하고 변화 및 발전하면서 로마로부터 국교로 공인된다.
"유태공동체가 왕족혈통을 지닌 그 메시아에게서 바랐으나 헛수고였던 것이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십자가에 매달린 메시아에 의해 달성되었다. 그는 로마를 제압했고 황제들을 무릎꿇게 했으며, 세계를 정복했다. 그러나... 그 승리로 돌아간 싸움의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적... 조직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와 착취의 기계(교회)로 변형되었다. 이 변증법적 과정은 전례가 없지 않다... 카이사르와 나폴레옹도 민주주의의 승리에서 등장했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제4부 제2장, 1908.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라는 '투쟁교리'(같은책, 제3부 제2장)를 가능하게 한 '반란자' 예수의 '수난'은 "유태 민족의 수난사의 증거"(같은책, 제4부 제4장)에 불과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확대발전 과정에서 '주교'의 권한이 강화되고 결국 가톨릭 교회(Katholikos;'전체교회' 또는 '보편적 교회') 체제가 확립된다.
"현대의 절대왕정이 봉건귀족 계층과 부르주아지간의 계급전쟁에서 성장했듯이, 교황의 절대왕정은 주교 귀족계층과 수도자들, 곧 수도원식 대농장 소유자들간의 계급투쟁에서 성장했다. 교회의 상승적 발전은 교황권의 공고화로 결말을 맺는다... 교회는 철저히 반동적인, 사회에 유해한 제도가 된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제4부 제5장, 1908.
'신'이 아닌 '인간'이자 '반란자'로서의 예수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면서 카우츠키는, 20세기초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집권(같은책, 제4부 제6장)"하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결론에 이른다.
"현대의 공산주의는... 오직 전체의 사회생활을 지배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의 획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힘은 국가권력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통한 힘의 쟁취가 현대 공산주의 실천의 첫번째 조건이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제4부 제6장, 1908.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민주주의의 붕괴와 일치한다. 그것이 공인되기까지 300년간의 발달기간은 자치의 모든 흔적의 지속적인 퇴화시기였다. 이는 그 시대가 생산력의 지속적인 퇴화시기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노동자 운동은 민주주의의 가공할 승리인 프랑스 대혁명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로 흘러간 한 세기는 온갖 변천과 격동을 거치면서도 민주주의의 끊임없는 전진, 생산력의 그야말로 거짓말같은 증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크기만이 아닌 독립성과 현명함의 증대도 가리켜 준다."
- 칼 카우츠키, 같은책, 제4부 제6장,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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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교의 기원],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흥기를 자신의 필생의 업으로 삼은 모든 이들의 의무는…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거시적 관점, 거시적 관계들, 거시적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의 연구,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개관과 이해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사회적 통찰, 자아의식, 정치적 성숙, 거시적 사고를 가져다 주려면 유물사관(역사적 유물론)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과거의 연구는 단지 호사가의 골동품 수집 취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달성을 재촉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는 <서문>과 함께,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칼 요한 카우츠키는 로마 제국의 하부구조로서 “노예경제”의 쇠퇴를 토대로 하여 고리대금업과 제국의 속주 수탈(세금 및 노예노동력)의 “두 가지 착취제도”에 기반한 “국가제도”의 “독점성”과 개인주의, 신비주의 철학이 팽배한 “사상과 정서” 등 상부구조 분석을 선행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주로 정치적 목적에서였지만 또한 상부상조의 목적에서도 클럽과 협회를 결성하는 추세가 두드려졌다. 황제들은 그것들을 해체했다. 사회적 조직체들보다 독재권력이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국가권력이 유일한 사회의 조직체이고,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서만 존재할 때 그 권력은 가장 크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 열망은 비밀결사에 의존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에서 형성된 유일신상에는 플라톤 이래로 점점 더 유일신론을 향해 가던 철학보다 황제의 독재가 적지 않게 기여한 것을 보게 된다.”(제2부 제3장)
“이스라엘에서 농민층의 몰락과 따라서 국가의 몰락은 나중에 로마에서도 그러했듯이 불가항력이었다.”(제3부 제1장)면서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생성과 그의 원인으로서 노예경제의 쇠퇴를 분석하면서 예루살렘 또한 그러한 사회체제였음을 밝힌다.
“그러한 무산 민중계층들(프롤레타리아)은 다수가 몰려든 곳에서는 (로마처럼) 특히 전투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는 가진 자들처럼 잃을 것이 없다… 다수… 거리투쟁의 두각… 평상시에 프롤레타리아들은 바리사이파(부르주아 민주주의?) 사람들의 지도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로마간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소심해졌으며 앞으로 나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과 점점 더 갈등관계에 들어갔다… 농민의 지지… (사두가이파의 가혹한) 세금과 고리대금… 산적들이 내걸고 싸운 기치는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메시아) 부활에 대한 믿음은 투쟁의 교리였다.”(제3부 제2장)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 후 로마의 지배가 공고해지자, 기원전 150년부터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에세네파를 제외한 다수 유태종파(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는 로마와 타협하게 되는데, 이른바 ‘열심당’이라는 정파로서 젤롯당과 예수의 반란조직 또한 유태종파로부터 박해를 받아 고립되는 처지에 있었다. 후대 복음서들의 보도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잔인하기로 유명한 당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의 죄명을 밝히지 못하였으나 다수 유태인들의 기소를 토대로 예수를 십자가 처형했다고 한다. 이후 “부활의 투쟁교리”를 통해 존속하던 예수 반란조직은 “부유한 동지들”을 끌어들여 “계급증오”를 탈색하고 “기회주의적, 수정수의적”으로 변질되는 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확장되면서 기존의 “사도”와 “예언자”들 대신 “부유하고 교육받은 교사들”의 입지가 넓어지고 조직의 행정관리 필요에 따라 “주교”, “부제”, “장로” 등 “지도자들의 독재”가 강화된다. 한편으로 “노예경제” 붕괴의 흐름을 타고 “수도원” 조직이 기존 노예의 노동에 기반했던 대농업(라티푼디움)을 물려받아 농촌에서 대농장을 운영함으로써 농노의 노동에 기반한 봉건경제의 토대를 세우게 된다. 전유럽적 교회권력과 대농업의 발전이 결합한다.
“… 다수의 결정이 대표(주교)를 파견한 모든 공동체들에게 구속력을 갖게 되었으며, 그 공동체들을 통일된 탄탄한 몸으로 융합… 그리하여 가톨릭 교회(Katholikos;전체교회,보편적 교회)가 만들어졌다.”(제4부 제5장)
이 책의 결론과 같은 제4부 제6장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에서 카우츠키는,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그 근원적 본질의 정반대로 변했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것, 그리스도교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아니라 이들을 착취하고 지배한 성직자 계층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그리스도교는 전복세력이 아닌 보수세력으로 억압과 착취의 새로운 버팀목으로서 승리했다는 것, 그것은 황제의 권력, 노예제, 민중의 헐벗음, 소수의 손아귀에 부가 집중되는 것을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공고화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교의 조직인 교회는 그 원래의 목표들을 포기하고 그 반대의 것을 감싸는 것으로써 승리했다.”면서, 로마 제국과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차이로 인해 “로마 제국에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투쟁능력과 투쟁의욕이 계속 감퇴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상승하며, 계급대립은 때를 기다리며 날카로워져 간다.”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확고히 한다. 카우츠키의 결론은 이렇다.
“발흥하는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슬프기 짝이 없는 정신적 쇠퇴의 시대, 우습기 그지없는 무지와 극히 우둔한 미신이 급증하던 시대라면, 사회주의의 발흥시대는 자연과학의 눈부신 진보시대, 사회민주주의에 사로잡힌 민중에게서 교양의 급속한 증대시대이다… 그리하여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집권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완전히 다른 영향력 행사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은 일체의 계급지배를 영원히 종식시켜야 한다.”
2. [성혈과 성배], 헨리 링컨,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 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 1880년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인 렌르샤토의 사제였던 베랑제르 소니에르가 지역의 교회유물에서 가톨릭 교회 전체를 뒤흔들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BBC 방송작가 헨리 링컨과 ‘이단적’ 사진작가 마이클 베이전트, ‘이단적’ 작가 리처드 레이는 이 책을 통해 소니에르 신부가 발견한 것은 ‘예수 집안의 가계도’였다는 추정을 하면서,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가톨릭 교회의 ‘이단’이기도 했던 ‘시온수도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카우츠키처럼 유물사관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4대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의 보도들이 편집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조명하고 현재에도 ‘예수의 자손’들이 유럽을 넘어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
‘기름부어진 자(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가난하지 않고 부유했으며 교육을 받은 랍비(바리사이파)였는데 그가 랍비였다는 사실은 그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의 아내는 그에게 ‘기름을 부은’ 마리아(어머니 마리아와는 다른)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모호한 예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는 그의 부인 마리아와 그의 처남 라자로였다는 것, 베드로는 예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의 가족인 마리아, 라자로와 대립했다는 것, 결국 예수의 봉기가 실패한 후 예수 일가는 ‘성혈’이 든 ‘성배’, 즉 ‘아이’를 임신한 ‘마리아’를 유럽으로 도피시켜 ‘유태왕국의 재림’을 도모했던 한편, 베드로 같은 제자들은 ‘신격화’된 예수의 교리를 전유럽에 설파하며 현실적 종교권력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 등의 내용이 전개된다. 또한 예수가 다윗의 ‘유태왕조’ 재림의 중심이었으므로 다윗왕의 자손이 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그의 출생지가 나자렛이 아닌 베들레헴으로 위조되어야 했다는 것은 예수 탄생 즈음 로마에서 실시되었다는 인구조사가 거짓이라는 사실로도 바로 증명된다. 또한 이 책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 또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의 ‘거래’를 통해 당시 관행과 다르게 진행된 ‘십자가 처형쇼’를 거쳐 거짓 죽음 후 ‘부활’하였으며 마리아와 함께 도피한 예수는 이후 다른 지역 어딘가에서 천수를 누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결국 ‘성배’로 이어져 온 ‘성혈’은 기원후 4세기경 게르만계 고트족 일파 중 하나인 메로빙거 왕조로 이어져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여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예루살렘 성전에 숨겨져 있던 예수의 가계도를 지키기 위해 신비로운 ‘성당기사단’이 창설되었다는 이야기, 이슬람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이 기사단은 ‘성배(가계도)’를 지키기 위해 유럽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는 ‘시온수도회’를 장악하고 ‘장미십자회’ 등을 결성하면서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로버트 보일, 빅토르 위고 등 유명한 인물들이 ‘시온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를 역임했다는 이야기 등등. 가톨릭 교회가 ‘시온수도회’, ‘장미십자회’, ‘성당기사단’ 등을 ‘이단’으로 탄압한 이유는 예수의 혈통과 가문이 드러나면 예수는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인간’이 되므로 수 세기 동안 굳건히 유지해 온 가톨릭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가톨릭 교회는 ‘이단’들과 타협하고 이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렌르샤토의 소니에르 사제가 가톨릭 교회와 ‘거래’하고 죽기 전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력한 일가와도 모종의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스부르크 왕가도 ‘예수의 가문’일 수 있다는 것.
예수 가문과 혈통은 지금까지도 ‘시온수도회’의 엄호를 받으며 전세계 곳곳 유력한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인류는 이러한 예수 재림과 같은 “사제왕”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으로 이 책은 결말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