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해 줄래요?
직장 후배의 결혼식이 열렸다. 4월의 눈부심이 가득한 날이었다. 벚꽃이 꽃망울을 떨어뜨리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햇살이 제법 따가운 날씨였다. 먼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하객들에게 신부 아버지는 감사의 인사가 적힌 꼬깃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멋쩍은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서 대본대로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애드리브로 인사를 이어갔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번졌고 환호성으로 변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몇 학년에 서로를 알아보고 인연을 이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세월로 따지자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어떤 인연이 10년 넘게 이어져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야외 결혼이어서 곳곳에 배치한 꽃나무가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여느 결혼식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신부의 웨딩 사진이 연출된 느낌이 아니라 실제의 마음을 담은 듯한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는 얼굴이 건너편에 있을 반쪽을 향해 행복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남편의 직업이 사진작가라는 말을 뒤늦게 알았다. 신부의 사진을 직접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찍었다고 한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그동안의 밥벌이 작업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내었을 것이기에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한결같은 그 마음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식이 이어지는 동안 둘은 수줍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처음 맞이하는 과정이었을 것이고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고비를 지나 이제 하나가 되는 과정이 감격스럽기도 하고 앞으로의 과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순간이 벅차기도 했을 것이다. 사회자가 특별한 코너가 준비되어 있다고 예고 멘트를 날렸다. 잔잔한 음악이 식장에 울리기 시작했고 신부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쑥스러움이 밀려왔는지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랫말에 담긴 마음이 그대로 와닿아서 뭉클했다. 분명 노래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서툰 음색이 매력을 더했다. 힘을 내라고 그 마음이 더 잘 전달되도록 그곳에 모인 모든 마음이 한결같이 응원하고 있었다.
비 내리는 날엔 우산이 돼주고
어둠이 오면 빛이 돼줄게
추운 겨울이면 난로가 돼주고
더운 날엔 바람이 될게
잠이 들 때까지 머릴 만져줄게
네가 두려울 때마다 꼭 옆에 있어줄게
갑작스러운 맘에 문득 떠나고 싶으면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떠나 줄게
Marry me
내 손 잡아줄래요
Marry me
나와 평생 함께 할래요
남은 나의 모든 삶
오직 그대 여자로 살고 싶어요
Marry me, darling
나와 결혼해 줄래요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Marry Me라는 노래였다. 딱 1절까지만 불렀지만 여운이 오래 남았다.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준다는 것. 의지할 수 있고 수만 가지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는 것. 늘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깊이 공감하고 더 험난하게 지나쳐야 할 수많은 날들 앞에서 부르는 다짐이 4월의 눈부심만큼이나 찬란했다.
지금 잡은 두 손이 언제까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도록 멀리서 축복하고 응원한다. 더불어 십여 년이 지난 나의 결혼 생활도 그 시절의 다짐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