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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채와 하고 싶은 수 백가지 | 은하수

다시 시작하는 은하수

by 제이스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고 6개월이 지난 후였다. 가족 모두 경황이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지 서툴렀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제주도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신 가까운 대구 동화사 근방을 여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더 멋진 곳으로 떠나자며 너스레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한 번도 제주도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제주도는 희망이었다. 암 진단을 받고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거치면 예전처럼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간 상태가 좋지 않아 항암 치료조차 어려웠고, 림프관을 통해 온몸으로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시간이 갈수록 계단조차 홀로 오르지 못하셨다.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휴직서를 냈다. 하루에 한 번 아버지를 보러 가는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모습,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아버지는 병동 창문으로 내려다보곤 하셨다.


아버지가 입에 맞을 만한 음식과 과일을 가리지 않고 바리바리 싸들고 병원을 오갔다. 하지만 그것도 한 달이 전부였다. 더 이상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졌고, 진통제 없이는 고통을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버지도, 가족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종이 한 장을 꺼내 딸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나는 아직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없지만, 삶이란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법이다. 내일 내가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놓일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늘 ‘언젠가’를 이야기하지만, 미루다 보면 하루가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10년이 될 수도 있다. 아등바등 일에 쫓겨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 할 수 있을 때 딸과 함께 하나하나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100가지를 채우고 싶었지만, 막상 그 많은 리스트가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았다. 워낙 즉흥적인 생각이었다. 당시 딸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심으로 리스트가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0개 정도 실행에 옮겼을 때 깨달았다. ‘함께 리스트를 만들려면, 딸아이가 조금 더 자라야겠구나.’

7년이 흘렀고,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아빠랑 하고 싶은 100가지 리스트를 다시 만들어볼까?” 내 말에 딸은 갸우뚱했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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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채가 하고 싶은 수백 가지 - 동물원 가기


100가지를 실행에 옮길 때, 사진도 찍고 느낌도 글로 남겨볼 생각이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찍고 확인하는 사진보다는, 몇 년째 방치해 둔 필름 카메라를 써야겠다.


필름 카메라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할 수 없기에, 기억이 흐려질 만하면 현상을 맡기고 사진을 받아보는 그 순간이 더욱 특별할 것이다. 한 롤에 10장밖에 찍을 수 없는 필름 카메라에, 아이의 모습과 경험을 담고 싶다.


그렇게 쌓인 기록을 책으로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디지털이 아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오프라인 결과물이면 더욱 좋겠다.


먼 훗날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혹시라도 딸아이가 그 책을 펼쳐보며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함께했던 아빠의 마음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 100번째 버킷리스트에는 ‘함께 제주도 가기’를 넣어야겠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 부녀를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에게, 제주도의 바다와 바람을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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