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이고 싶기도, 혼자이고 싶기도 한 여행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소소한 파티를 즐기고 싶었다. 어색한 첫 분위기 속 유머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자를 접시에 놔주며 친절함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MBTI를 이야기하며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와인을 마시며 조금씩 분위기를 풀어본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근처에 나가 맥주 한 잔을 더 해보자 한다. 취미 이야기, 가벼운 농담 속에 무거움이라곤 없는, 나는 원래 무거운 구석이란 조금도 없는 사람인 듯 굴어본다. 최근 고민거리를 나누며 골몰하는 대화를 자주 한지라 이런 분위기가 좋다.
다음 날 함께 아침을 먹으며 어딜 가느냐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에 계시던 잔잔한 분이 김영갑 갤러리를 간다고 한다. 남원에서 세화로 이동하는 것 말곤 계획이 없었던지라 뚜벅이인 그분을 태우고 들러보자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제 술을 많이 마신 터라 해장라면을 먹으러 간다 한다. 누구도 내게 가자한 적 없지만 나와 잔잔한 분 빼고 다 가는지라 그저 다수에 동조해본다. 해물라면은 신선하지 않고, 한치 해물파전은 기름에 절여져 있었지만 한 테이블에 앉은 넷 만의 대화 속에서 다른 삶을, 나와 다른 종류의 열정을 경험해본다. 아직 일교차가 큰데 2주간 캠핑 여행을 온 분이 있다. 회사에 다니지만 사업가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 한다. 40살 전에 200억을 모으는 게 꿈이란다. 처음엔 웃긴 이야기를 들은 듯 웃었지만 진지한 그의 모습에 언젠가 그 목표 근처에라도 갈 것 같은 느낌이다. 한해 한해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해뒀던 분은 코로나 때문에 여러 나라를 뛰어넘고 올해 남미를 갈 차례라 한다. 많은 나라를 경험해보고 남미에 도전하려 했는데 바로 가야 하나 싶다 한다.
내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 듯 틀어지면 큰 일 나는 듯 살아가지만 내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처럼 삶의 방향은 무궁무진하다.
식사 후 만난 표선의 바다, 해안도로를 찾다 발견한 '경치 야무진 넓은 잔디밭'(구글에 그렇게 쓰여 있다.) 모두 황홀했다.
잔디밭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함께 하는 동행과 함께 감탄사를 계속 내뱉으며,드넓소에게 인사하며 이곳에 나의 답답함을 모두 내려놓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2차 술자리, 표선의 해장라면, 누군가와의 동행. 잔잔한 분은 잔디밭에서 말했다. 오늘 봐야 할 것들을 다 본 기분이라고. 나 역시도 그랬다. 그걸 넘어 내게 꼭 필요했던, 중요한 장소를 만난 기분이었다.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지만 문제라 생각되는 것은 없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공짜로 주어진 휴가, 그 안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여행이 끝나고 나면 재미난 에피소드로 남는 것.
여행하듯 살면 심각할 것도, 큰 일어날 것도 없다. 여행하는 나도 나이듯, 일상에서의 나도 나다. 일상과 여행을 구분 지을 것 없이, 그렇게 살아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