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일이 바빴다. 학기 중후반이 되니 참다 참다못한 담임들이 상담 의뢰를 해온다. 아마 학생들도 참다 참다 터트렸을 것이다. 행사도 몇 개 있어 과부하가 걸릴 때쯤 일주일에 걸쳐 위기 사안이 두 개 터졌다. 자세히 쓸 순 없지만 자살과 관련된 일이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무사했고 일처리도 작년과 다르게 이어졌다. 작년은 학생, 학부모, 경찰, 센터, 교육청, 교원연수 등 모든 일이 내 손을 거쳤지만, 이번엔 교감 주도 하에 교감, 담임과 함께 업무분담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내겐 고맙고 다행인 일이었다.
주변 선생님들이 괜찮냐 물을 때마다 작년보단 낫다고 반복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안절부절못해하고 학교 행사 진행 중 멍하게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 감정은 항상 한 발자국 늦게 온다. 그래도 학생이 생각보다 빨리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고 일은 다 해결됐노라 안심하자 생각했었다.
조금 쉬엄쉬엄하자 하는 찰나 한 선생님이 들어온다. 학생 일이면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되겠냐 내가 조금 지쳐있다 손사래를 치자 선생님은 학생 일은 아니라 한다. 무슨 일이냐 묻자 학교 일이 힘들어 정신과 문의를 하고 싶다고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평소 좋게 봐왔던 선생님이 마음이 쓰인다. 도와주고 싶다. 나는 남아있던 힘을 모아 모아 그녀를 위로해주고 정신과 목록을 뽑아주었다.
얼마 전부터 만나기 시작한 남자 친구를 보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던 차에 연락이 왔다. 고모님이 돌아가셔서 고향에 내려가 봐야 한다는 거였다. 충격받았다는 말에 무슨 일일까? 갑자기 돌아가신 걸까? 남자 친구, 가족들, 친척들은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혹시 갑자기 돌아가셨냐는 물음에 나중에 연락하겠다 하고선 연락 두절되어 버렸다. 다음날 안부를 물으며 다시 한번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똑같이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답변뿐이었다. 혹시 자살이라도 하신 걸까? 교통사고로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을까? 고모님이면 자녀들이 내 또래일 텐데 다들 힘들지 않을까? 그걸 보는 남자 친구도 많이 힘들 거라고, 아버지도 많이 힘드실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쓰였다. 지병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해도 쉽지 않을 장례식이 혹시나 너무 처참하진 않을까 상상이 되었다. 친척의 죽음을 겪은 남자 친구가 가장 힘들겠지만, 무슨 일인지 괜찮은 건지 듣고 싶은 내 마음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예상치 못하게 일찍 생리도 시작했다. 처음엔 왜 일주일이나 당겨졌지 생각했지만 이내 싸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있었던 생리통도 없고 냄새도 익숙하지 않다. 주말이라 응급실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상황에 당황스럽다. 큰일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무척 불안한 마음이 든다.
무언가 일이 더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어제 울다 잠들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울었다. 하루 종일 감정과 싸우며 왜 이렇게 힘들지 생각했다가도 지금 얼른 힘들고 털어내자 생각도 했다. 평소 같으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놨겠지만 이번 일은 쉽지 않았다. 학생의 상담내용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간단히 이야기한다 해도 상황이 심각해 사람들이 충격에 빠질 터였다. 그리고 주변에 남자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았다. 최근 사귀고 금방 헤어지는 걸 반복하면서 친구들은 나만큼이나 불안에 떨었다. 남자 이야기를 했을 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금세 욕하고 괜찮겠냐 물었다. 친구들 걱정에 휘말려 더 불안해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가운데 땅굴을 있는 데로 파고 들어갈 만큼 들어가니 어떤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네가 직접 겪은 일이 뭐니?"
그렇다...... 내 주변에서 자살위기와 장례식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일은 아니다. 나는 감정이입을 과도하고 하고 있던 모양이다. 공감한다는 핑계로 남의 일을 내가 겪은 일인 마냥 느끼고 있었다.
상담에서는 공감과 감정이입을 구분하고 감정이입을 경계하라 한다. 비유적으로 공감은 물에 빠진 상대를 물 밖에서 꺼내 주는 것이라 하고, 감정이입은 물에 빠진 상대를 보고 같이 물에 뛰어들어 허우적대는 거라고 한다.
감정이입은 나를 투사하여 마치 내가 겪는 것처럼 느끼고 힘들어하는 것이고,
공감은 타인의 입장에서 느끼되 나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거리를 둘 줄 아는 것이다.
나는 괴로워하는 학생을, 충격받은 남자 친구를 짧은 대화 속에 다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 누구 하나 친절하게 내 마음은 이래요. 실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설명해주지 않았다. 학생이 힘들겠지 그걸 보는 친구도 부모도 힘들겠지 생각했고, 남자 친구가 이야기를 못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마도 큰 일인가 보다 생각했다. 다들 본인 고통이 많아 상냥하지 못한 그들에게 내 이해가 필요할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겪은 일도 아니었고, 내가 들은 설명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상냥하게 다가간다 생각했지만 우리들은 실제 그럴 듯한 교류도 없이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면 넌 학생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매번 이렇게 무너질 거니?"
그렇다면 나는 아마 이 직업을 지속하지 못할 거다. 작년에 처음 발생한 자살 소동은 올해도 발생했고, 그 말은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라는 거다. 위기 사안이고 학생이 안타까운 건 맞지만 일이 일어날 때마다 영향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만 무너지고 싶진 않다.
나는 이제 내게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는 감정을 떼어내고 싶다.
내 일이 아니야.
내가 겪은 일이 아니야.
그 일을 겪은 건 남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감이야.
안타깝지만 남의 일로 남겨둬.
되뇌고 되뇌어보다.
타인이 겪는 감정을 온전히 내가 겪어낼 필요는 없다. 때로는 거리를 두고 모르는 채로 남겨둘 수도 있고, 거리를 두고 내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 내게 이해가 갈 정도로 설명을 들었을 때 공감해주면 된다. 내 일이 아닌 것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고 불쌍해하는 친구들 때문에 힘든 적이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런 걸 보면 감정이입이 반드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위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나는 나로서 잘 지내고 들어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정도면 되는 것 같다.
아마도 학생의 순간적인 강렬한 감정에 내가 휘말려버린 것 같다. 나 또한 그 일에 충격받았으므로... 그걸 남자 친구와 만나며 풀려다 더 한 일이 생기니 거기에도 휘말려버린 것 같다. 스스로 해결했어야 하는 것들도 있는데 너무도 기대려 한 건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몸이 아픈 것도 정 불안하면 병원에 가자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