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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Dec 12. 2022

괜찮아지고 싶지 않아.

이차적 이득

힘들다 힘들다 입에 달고 사는 요즘이다.

동시에 평온한 요즘이다.


힘들다는 이유로 일을 전보다 소홀이 하고, 사람들을 덜 신경 쓰고, 사람들을 덜 만난다.

애써야 할 것이 줄어들고, 자극이 줄어드니 스트레스도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힘들기도 하고 기운이 없기도 하다.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는 내게 상담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는 것이 편한 것이냐 물었다.

금방 대답하지 못했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내가 나를 챙기고 있는 지금 이 상태가

내가 편해지는 결론인 것 같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떳떳하기 위해

누군가 내 일을 모르고 욕하더라도

'아닌데요. 전 누구에게나 떳떳할 정도로 열심히 제대로 일했는 걸요.'

라고 말하기 위해 너무 애써서 일해왔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다하고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을 꺼렸다.

때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라며 나쁜 사람이 아니라며 이해하고 넘겼다.

표현하지 못한 내 기분은 소통 없는 상태로 어디엔가 남아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덜 일하고 덜 신경 씀은 나를 챙겨야 한다 생각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자꾸만 이 힘듦을 놓고 싶지 않다.

내가 괜찮아지면 난 다시 열심히 일할 거고 다시 애쓸 거니까...


아픔으로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이차적 이득이라 한다.

이차적 이득은 마음을 병을 낫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계속 힘들게 지내고 싶지는 않은 심정이다.

내가 괜찮은 상태일 때도 덜 일하고 덜 이해하는 나를 봐줘야 하는 거 아닐까?

왠지 죄책감이 느껴진다.

제 역할을 다 하지 않은 채로 편해지려 하는 것 같아서...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언제나 불편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려고만 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써도 결국은 내 사고방식을 통한 배려일 뿐인데...

내 기준일 뿐인데

결국은 그 배려도 이기적이게 되는 순간들이 왔었다.


원하지 않는 배려, 원하지 않는 이해, 원하지 않는 연락이 되어

사람들에 내게 화를 내게 만들었다.

너를 위해서야 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 했다.

결국은 내 기준이었던 거다.




타인을 배려하려 애씀으로써 나도 타인도 이득을 얻지 못한다면

내가 이걸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익숙한 삶을 놓아버리기에 겁이 나기도 하고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힘들다는 핑계로 내가 원하던 삶을 살아버리고 싶은 것 같다.

조금 더 힘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평온한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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