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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Oct 22. 2022

위안이 되지 않는 날의 위안

떠나가는 것들.

내게는 언제나 위안이 되는 것들이 있다

제주여행, 홀로 드라이브, 헤이리, 달리기...


  오늘은 나를 달래기 위해 홀로 차를 타고 헤이리에 왔다. 헤이리에서도 유독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이 있다. 새우고로케, 가지 돌마, 게살 크림 파스타, 음악 감상 카페... 이것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글을 쓴다. 출발할 때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가 헤이리에 반쯤 덜어내고 온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완전히 홀가분한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 어딘가 숨 쉴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얼마 전 나의 게살고로케가 사라져 오늘은 애플파이를 먹었다. 방금 나온 빵이라 기대하며 한 입 물었지만 '아, 나 단 빵 안 좋아했었지.' 하고 이내 후회한다.

  그 대신 저녁은 게살 크림 파스타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그치만 메뉴판에 보이지 않는다. 영원히 있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다 가버렸다. 이 집은 유독 크림 파스타가 맛있었기에 비프 크림 파스타를 시켜본다. 웬 갈색 파스타가 나왔다. 영어로 된 어떤 소스라고 읽은 것 같은데 맛은 간장 같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파스타를 좋아해 보통 음식을 가리지 않는데 결국은 반쯤 남기고 일어난다.

  맛없는 음식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눈물이 날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 먹다 우는 건 너무 처량할 것 같아 얼른 빠져나온다. 오늘은 헤이리도 위안이 되지 않아 집에 얼른 가고 싶다.

  

  세상엔 절대적인 게 있다고 믿고 살았다. 가족의 사랑, 진실함, 성실함, 따뜻함... 그렇기에 가끔은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들도 절대적이라고 믿고 살아가곤 한다. 헤이리의 별미들도 언제까지나 날 위해 있어 줄 거라 믿었고,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도 지속적일 거라 믿었다.


  너무 자만했던 걸까? 서로 통하고 있다는 혼자만의 믿음 하나로 나는 뭔가 실수를 저질렀나 보다. 내 성실함이, 따뜻함이, 상대방도 함께 해주길 바라는 내 기대가 그를 떠나게 했다. 그는 내가 착하고 다정한 사람인 것을 좋아했지만, 내게 무언가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무언가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싫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집에 꼭 데려다 주려는 그가, 친절과 애정으로 나를 대하는 그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진실함은 말과 행동 중에 어디에 있는 건지 혼란스럽다.


  위안이 되지 않은 오늘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된다. 네가 믿고 있던 것들은 언젠가 다 변하는 거라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떠날 것은 언젠가 떠날 것이고, 돌아올 것은 애쓰지 않아도 돌아올 것이다. 그가 내게 얼른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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