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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Sep 29. 2022

기대하는 게 뭐 어때서

좋아할수록 더 좋아지길 기대하는 것.(예전 글)

  사랑 없는 연애를 한 적이 있다.

  나이가 적당히 들자 결혼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모순이다. 평생 함께할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랑 없는 연애를 하다니...


  어렸을 때는 끌리는 사람을 만났다면, 결혼을 생각하고 나서는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면 좋아질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소개팅에 나왔던 사람을 생각하며 '그래. 이 정도 조건에 이 정도 성격인 사람은 여태 없었지. 앞으로 이런 사람이 또 소개팅에 나오려면 한참 걸리겠지?'란 마음을 가졌다.

  성격이 안정적 이어 보인다면 당장 사랑이 꽃피지 않아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아무리 좋아해도 결혼하면 현실과 부딪히기에 경제력을 안 볼 수 없다는 생각. 그러다 보니 괜찮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좋아지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A는 좋은 성격의 사람이었기에 특별한 갈등이 없었다. 불만이 조금 생기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잖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넘어가자.'라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도 나도 갈등을 만들지 않으니 우리의 관계는 평화로웠다.

  실은 크게 기대가 없었다. 기대하는 것이라곤 우리가 신뢰가 쌓일 수 있는 얼마간 평온할 수 있기를... 혹시 갈등이 있더라도 크게 부딪히지 않길... 그래서 우리가 결혼하고 싶어 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갈등은 곧 시작되었다. 그의 가치관에 의구심을 표현했던 날, 그는 천사 같은 내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그는 6시간을 혼자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꽤 컸던 갈등을 나는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 이후로 우리는 천천히 헤어졌다.



  난 그저 그가 과민 반응한 거라고, 그런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니 나는 그에게 어떤 기대가 있었나 생각해본다. 헤어지는 날까지 그의 말이, 그의 행동이 미웠을 뿐. '당신이 이렇게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아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길, 그가 날 어떤 방식으로 대하길 기대하기보단.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부디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그가 보기 싫어졌다. 내게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없었던 거다. 평화가 깨트린 그에게 무척 화가 나고 실패로 끝났다는 것에 절망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어땠나 생각해보면, 혼자 좋아하다 차이는 순간까지도 나는 바라는 것이 있었다.

  오랜 친구였던 내게 매몰차게 구는 B를 보며 조금만 다정해주길, 우리가 조만간 다시 볼 수 있길 바랬다. 이런 바람에 있으니 화보다는 슬픔이 올라왔다. 그러지 못함에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상형을 한 번도 다정한 사람으로 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친구로서의 다정함을 보여주길, 내 안부를 걱정해주길 바랬다. 내가 다정한 사람을 원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연애 시작조차 못해본 사이지만 사랑 없는 연애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 나의 단점도 껄껄거리며 재밌어하던 그가 좋았다. 무뚝뚝하지만 내가 어쩔 줄 몰라할 때 도움을 주는 그가 좋았다. 말 없는 그가 아주 드물게 하는 잔소리가 좋았다. 유독 내 칭찬을 자주 하는 그가, 내가 추천해준 노래를 좋아하는 그가, 나랑 이야기하기에 제일 편하다는 그가 좋았다.

  우리의 관계 속에서 나는 기대한 것이 많았다. 조금 더 가까워지길, 조금 더 내 걱정을 해주길, 조금 더 그의 속이야기를 해주길... 그러면서 내가 연인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최근 만난 C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다. 내게 호감이 간다는 이유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다정을 건네는 사람이다. 주말에 만날 수 없음에 아쉬움을 표하니 미안하다 사과하고 전화를 걸어 친밀감을 표현한다. 그의 바쁜 일정 때문에 조금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가 다시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정식으로 만나기 전에 과한 기대나 다정함은 부담스럽다 생각했는데 나는 벌써 그에게 더 큰 다정함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될지 궁금하다.



  사랑은 그 사람을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이 관계가 더 좋아지길 기대하지 않는 것, 애정이 부족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통해 어떤 좋은 것을 원하는지 알게 되는 것.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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