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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Sep 26. 2022

세상은 결국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연애 후유증

  변덕스러웠던 그가 나를 훑고 지나갔다. 1달 간의 간헐적인 썸, 1달 간의 연애.

  두 달이 뭐 길겠냐만은 나로서는 많이 좋아해 기대를 했던 연애였다. 조금은 자신감 없었던 구남친들을 지나 이제 자신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 우리의 연애 순탄하게 흘러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열흘간의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뉘앙스의 카톡을 보냈다. 그의 말투에서 눈빛에서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나를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 했다. 그의 바쁜 일정 속에 우리는 사귀기로 한 날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모르지 않는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를 좋아했다가 이후로 만난 적 없이 식어버린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전화라도 한 통 하자 매달렸고 우리는 헤어진 채 만났다. 나의 어느 부분이 당신을 식게 했을까?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았고 결론은 사귄 첫날에 [호캉스 가서 넷플릭스 보자.]라는 질문에 [호캉스는 좀 이르지 않아요?]라고 말했던 것 때문이었다. 그는 스킨십이 중요했고, 야근이 잦은 일과 골프를 위한 시간이 중요했고, 그 때문에 아마도 맘에 들지 않는 즉시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거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는 내가 보수적으로 살아온 탓에 인생에 몇 번 없는 맘에 드는 남자를 놓치게 되는 건가 전전긍긍했다. 여러 번 연락했고 대화를 시도해본 결과 그의 답변은 [그럼 넷플릭스 보러 갈래?]였다. 헤어진 상태로 말이다. [1박으로 가냐?]라는 나의 질문에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좋은 이미지를 가득 갖고 있던 그가 와장창 무너진다.



  나는 그의 무엇을 좋아했나 생각해본다. 잘생긴 얼굴, 비교적 관리된 몸매, 수영, 골프 등 운동하는 열정, 애교 섞인 말투, 행복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거라던 이야기. 그 와중에 내게는 무엇을 해주었는지 생각해본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기분 좋을 때 쏟아지던 카톡들. 그렇지만 잘 만날 수 없었고 연락은 매번 일정치 않았다. 나는 그가 이미 갖고 있던 모습을 좋아했고 그런 멋있는 그가 나를 좋아해 주길, 내게 잘해주길 기대했을 뿐, 잘해준 시간들은 잠시 뿐이었다.

   답장 없는 밤, 약속이 취소된 밤, 나는 그 잠시에 매달렸다. 그에게 사정이 있어서 꾸준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안정적인 관계를 맺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3주를 기다렸는데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듣자 나는 계속 화가 났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 화는 점점 커져갔다. 객관적으로 우리는 한 것이 없었다. 세 번의 식사와 커피 또는 술, 몇 번의 통화, 일상을 묻는 카톡. 내가 결국 억지로 호캉스를 간 것도 아니었고 많은 추억이 쌓인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러 날을 인내하며 기다렸는데 돌아온 것이 이별이라는 것에 나는 분노를 느꼈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편한 적은 없었다. 사귀기 직전 쏟아지던 카톡과는 달리 사귄 다음 날부터 눈에 띄게 줄어든 연락 횟수, 통화를 해도 일과 피곤을 핑계로 빨리 끊어버렸고 출장 간 뒤엔 거의 연락두절이었다. 나도 가끔은 화가 났다. 이제 친해져야 할 시기에 이렇게까지 거리가 생길 일인가? 참다 참다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더니 오히려 친구들이 더 분노했다. 그렇지만 이별을 통보받기 전까지 난 끊임없이 그를 이해했다.



  이 이야기는 변덕스러운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나를 진심으로 돌아볼 일이 거의 없다. 나의 대인관계 패턴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이해하는 일이다. 상대가 설명해준 적도 없는 상황을 나를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가 출장 가기 전이라 바쁘니깐], [피곤해서 나를 보기보단 쉬고 싶을 거야. 다녀오면 우리에게 시간이 많으니까]

  아직도 미련이 조금 남은 나는 내가 달랐다면 우리가 좀 더 사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생각 속에서도 나는 항상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다.

  끊임없이 내 욕구를 죽이고 상대의 욕구가 중요한 듯이 군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나 홀로 남게 되는 건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생각, 내 감정, 내 가치관을 벗어날 수 없는데 난 그게 가능한 듯이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착하다고 말한다. 안정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내 안에는 불안이 가득하다. 그에게 화가 났을 때 제일 먼저 생각했다. [나는 비교적 시간이 많으니까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 아닐까? 잠도 잘 못 자고 피곤한 걸 이해해줘야 할 사람은 나일 거야.] 그렇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생각들이 나온다. [내가 분노하는 것이 옳을까? 내가 화낼 자격이 될까? 우리는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래도 되는 사람인지 검열하고 판단한다. [내가 뭔데 화를 내?]라는 생각은 화가 날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의 불안을 건드린다. 나의 분노는 나의 초라한 자격과 싸우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나는 화를 낼 수 없고, 초라한 자격이 건드려지기에 불안하고 위축되는 것이다.


  내게 분노는 초라한 나를 확인하는 시점이다. 즐거운 나, 도전하는 나, 공부하는 나, 일에 전문적인 나, 수많은 긍정적인 나는 잊힌 채 순간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렇기에 이성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한다. 분노를 누르는 일은 온몸에서 심장이 뛰듯 두근대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지만, 초라한 내가 되느니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다.

  나의 분노가 내 것이 아닌냥 구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감정은 결국 어느 방향으로든 터져 나온다. 친구들을 향한 하소연, 너무 잦은 외출, 과음, 무기력. 때로는 이번처럼 뒤늦게 분노가 터지곤 한다.


  사람을, 세상을 이해하며 내 것이 중요하지 않은 듯 굴지만 결국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눌러 놓은 분노가 해소될 때까지는 아름다운 노을이 앞에 있어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 변덕스러운 그를 잊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타인의 상황이 중요한 듯 행동해도 결국 내 세상은 내 감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상대에게 좋은 감정만 내어주고, 나쁜 감정들은 혼자 삭혀내는... 타인에게 나는 밝고 착한 사람일지 모르겠으나 내 마음속은 혼란스럽고 어둡다.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이 가득한 요즘, 좋은 일이 있어도 잠시 뿐인 요즘, 내 세상은 내가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상황이나 감정 때문이 아닌, 나의 상황과 감정이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내가 중심이었던 내 세상을 인정해주고 싶다. 원래 내 것이었던 내 감정을 내 것이 맞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변덕스러운 사람의 인생은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내 인생은 끝까지 나와 함께 할 거라고.

  내 세상은 결국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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