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관계를 맺다 보면 오해가 생기곤 한다. 가볍게 해명하고 넘어갈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화가 먼저 나버리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럼 상대방도 처음엔 설명하려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오해에, 혼자 판단해버린 모습에 같이 화가 나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오해받는 입장일 때 나는 화를 내기보다는 설명하고 해명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의 상황을 있었던 일 그대로, 했던 말 그대로 들려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할만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아 기분대로 굴어도 계속 설명한다. 어디서 오해할만했는지를 다시 묻는다. 그러다 보면 상대도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내가 자기를 기분 상하게 할 의도가 아니었구나 그런 상황이었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사과받지 못한다. 상대는 '그런 게 아니라니 다행이야. 기분 상할 뻔했어.'라고 느낄 뿐, '그런 게 아니라니 내가 잘못 생각했네. 너 기분이 상했겠다. 미안해.' 하지는 않는다.
기분이 상한 건 상대이고, 나는이성이 살아 있으므로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를 점점 더 쉽게 오해하고 점점 더 감정적으로 구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친절히 설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몇 번의 작은 오해, 감정들은 받아내 지면 점점 더 커지는 반복적인 오해들은 받아내지 못한다. 감정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 힘겹고, 오해를 받아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 애가 자꾸 내게 감정적이 되어가는 걸 친구에게 토로했다. 나 스스로는 소화가 안 되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연을 끊어야 할 것 같았다. 친구는 말했다.
'너 스스로가 너를 감추고 그 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 그 애에게 너를 이해할 기회를 주는 건 어때? 이럴 때 기분이 상한다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거지.'
나를 이해할 기회는 주는 것.
누군가에게 감정 표출을 하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적절히 표현해내고, 너무 감정적이지 않아야 하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가장 적당한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나를 이해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그 애를 함부로 대한다고 오해받는 것. 그것 역시 내게 상처였음을, 감당하지 못함을 알려준 적이 없다. 나는 홀로 끊임없이 상처를 치유해가며, 나를 오해한 이유를 살펴가며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거다.
얼마 전 싸이월드가 복구되어 들어가 보았다. 20대 초중반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남겼기에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용서란 온전히 그 사람의 입장에 되어 생각하고 느껴보는 거야.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거야'
'좋은 의사소통이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그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는 거야.'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진심이고 많이 노력했음을 느끼면서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용서란 내 기분이 풀리고 상대가 내 입장을 이해해줄 때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20대 때 나의 용서는 '상대는 나한테 그럴 만했어.'였나 보다. 용서는 잘못한 상대가 내게 '화날만했어. 내가 미안해.' 해야 하는 것인데... 20대의 나는 화를 낸 적이 없었기에 그런 이야기도 못 들어봤나 보다.
이렇게 이성적으로는 잘못된 용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쓰고 있었더라...
그 애에게 화가 난 건 나인데 우리가 만나면 그 애가 왜 내게 그랬는지가 주제가 되곤 한다. 그 애의 행동으로 인해 내 감정이 어땠는지는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유난히도 노력하면서,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 애에게 나를 이해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거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거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