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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May 14. 2022

나를 이해할 기회를 주는 거야.

자기표현의 타당화, 감정 타당화

  가까운 관계를 맺다 보면 오해가 생기곤 한다. 가볍게 해명하고 넘어갈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화가 먼저 나버리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럼 상대방도 처음엔 설명하려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오해에, 혼자 판단해버린 모습에 같이 화가 나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오해받는 입장일 때 나는 화를 내기보다는 설명하고 해명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의 상황을 있었던 일 그대로, 했던 말 그대로 들려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할만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아 기분대로 굴어도 계속 설명한다. 어디서 오해할만했는지를 다시 묻는다. 그러다 보면 상대도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내가 자기를 기분 상하게 할 의도가 아니었구나 그런 상황이었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사과받지 못한다. 상대는 '그런 게 아니라니 다행이야. 기분 상할 뻔했어.'라고 느낄 뿐, '그런 게 아니라니 내가 잘못 생각했네. 너 기분이 상했겠다. 미안해.' 하지는 않는다.


  기분이 상한 건 상대이고, 나는 이성이 살아 있으므로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를 점점 더 쉽게 오해하고 점점 더 감정적으로 구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친절히 설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몇 번의 작은 오해, 감정들은 받아내 지면 점점 더 커지는 반복적인 오해들은 받아내지 못한다. 감정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 힘겹고, 오해를 받아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 애가 자꾸 내게 감정적이 되어가는 걸 친구에게 토로했다. 나 스스로는 소화가 안 되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연을 끊어야 할 것 같았다. 친구는 말했다.

'너 스스로가 너를 감추고 그 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 그 애에게 너를 이해할 기회를 주는 건 어때? 이럴 때 기분이 상한다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거지.'


나를 이해할 기회는 주는 것.


  누군가에게 감정 표출을 하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적절히 표현해내고, 너무 감정적이지 않아야 하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가장 적당한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나를 이해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그 애를 함부로 대한다고 오해받는 것. 그것 역시 내게 상처였음을, 감당하지 못함을 알려준 적이 없다. 나는 홀로 끊임없이 상처를 치유해가며, 나를 오해한 이유를 살펴가며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거다.


  



  얼마 전 싸이월드가 복구되어 들어가 보았다. 20대 초중반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남겼기에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용서란 온전히 그 사람의 입장에 되어 생각하고 느껴보는 거야.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거야'

'좋은 의사소통이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그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는 거야.'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진심이고 많이 노력했음을 느끼면서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용서란 내 기분이 풀리고 상대가 내 입장을 이해해줄 때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20대 때 나의 용서는 '상대는 나한테 그럴 만했어.'였나 보다. 용서는 잘못한 상대가 내게 '화날만했어. 내가 미안해.' 해야 하는 것인데... 20대의 나는 화를 낸 적이 없었기에 그런 이야기도 못 들어봤나 보다.


  이렇게 이성적으로는 잘못된 용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쓰고 있었더라...

  그 애에게 화가 난 건 나인데 우리가 만나면 그 애가 왜 내게 그랬는지가 주제가 되곤 한다. 그 애의 행동으로 인해 내 감정이 어땠는지는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유난히도 노력하면서,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 애에게 나를 이해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거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거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거다...


  내 감정을 이야기해도 될까?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나를 알려주는 거야.

나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이야.



용서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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