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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May 09. 2022

쓰러지지 않을 걸 알기에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어.

취미는 달리기.

  달리기는 나의 오랜 취미다.

  언제부터 왜 달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엔 너무 움직이질 않으니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였던 것 같다. 장비도, 센터에 등록도 필요 없으니 몇 번 하고 말아도 괜찮을 그런 운동이었다. 지금은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이상 일주일에 한두 번은 달리는 것 같다. 어떤 의무도 없고 그저 달리고 싶을 때 뛰러 나간다.

  왜 달리냐고 묻는다면 스트레스 풀러, 혹은 몸이 찌뿌둥해서이다. 소 생각이 많은 편이라 고민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땐 어김없이 달린다. 집 근처 천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데 처음엔 고민을 안고 달린다. 생각하느라 풍경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달려볼 뿐이다. 그러다 몸이 조금 풀리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는데 항상 그때 고민의 실마리가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앉아서 하루 종일 고민해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깊은 우물을 파듯 점점 더 심각해지던 것들이 '유레카'를 외치듯 번쩍 떠오른다. 보통 떠오르는 내용은 진짜 내 마음이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 왜 그랬는지, 뭘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 떠오르곤 한다.



  어제도 무거운 마음을 앉고 달리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그런지 안양천의 모든 불이 꺼졌다. 꽤 깜깜해서 무서운 마음이 들지만 이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끝나는지 알고, 이곳의 치안이 좋은 것을 알기에 괜찮아하며 달릴 수 있다. 그 끝이 너무 깜깜하지만 난 그 끝을 알기에 괜찮다.


  그러다 문득 롯데월드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롯데월드를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공포체험 시설을 예약했는데 놀이기구 하나를 타고 왔을 땐 뛰지 않으면 늦을 상황이었다. 우리는 롯데월드 실내에서 실외까지 뛰기 시작했다. 5분 가까이 뛰어야 하는 거리였다. 처음에 함께 뛰던 친구들이 하나 둘 뒤쳐지기 시작한다. 나도 숨이 차올랐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 제시간에 도착했다. 친구들이 뒤늦게 와서 말했다.

'평소에 달리기를 하니까 잘 뛰네. 너는 숨이 안 찬가 봐?'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숨 많이 찼어.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달리는 거야.'


  내 다리가 풀려 넘어지거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 쓰러지지 않을 걸 알기에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거다. 달리기의 끝이 내 몸을 해하지 않을 걸 알기에 가쁜 숨을 버틸 수 있는 거다.

  어두운 밤길을 달릴 수 있던 것도 내가 위험하지 않을 걸 알기에 달릴 수 있는 거다.



  나의 무거운 마음은 거기서 실마리를 얻는다. 내가 이성관계의 끝이 두려운 이유.

  애인과 좋게 헤어진 적도, 나쁘게 헤어진 적도 있지만 내 속마음은 항상 좋지 않았다.

'그래. 우린 어차피 잘 되지 않을 거였어. 그 애의 이런 부분 때문이었지. 나도 조금 잘못이 있지만 그 애의 잘못이 커.'

  나는 나의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 탓을 해버렸다. 처음엔 그로 인해 내 자존심이 잘 유지되었지만 그게 자꾸 반복되다 보니 '왜 나는 자꾸 별로인 사람만 만날까? 내가 보는 눈이 없는 걸까? 내가 이 정도의 사람밖에 안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결국은 내게로 화살이 돌아왔다.

  이별을 건강하게 흘려보내지 못한 탓에 연애를 시작할 때 그 끝이 두렵다. 이별의 끝에 성장한 적이 없기에, 애인의 단점을 제대로 수용한 적이 없기에 상대가 단점을 보이면 두려움에 파르르 떤다. 두렵고, 불안하다.


  이렇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이게 나의 약점이라는 걸 알면, 이런 내 마음을 인정한다면 상대의 단점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내 단점을 받아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나도 상대의 단점을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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