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행정일을 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했다. 두 가지 일을 해결하는데 한 개의 회의록, 세 개의 공문, 하나의 수기결재, 두 개의 예산 공문, 총 7개의 문서가 필요하다. 이 일을 실행하기 위해 관리자, 행정실, 센터, 학부모와 각각 두세 번씩 연락한다. 그 외 가정통신문, 회의 참여 및 요청 문서를 꾸리고 나니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매년 공문서를 줄이라는 공문이 내려오지만 여전히 이 중에서 사중의 문서를 작성한다. 관리자에게 같은 내용이니 좀 줄이자 해도 대답은 그대로 해라이다. 하나라도 줄였다가 일이 생겼을 때 '왜 증거를 남겨놓지 않았니?'라는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 와중에 학생들을 위해 힘쓰라 한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행정일만 했는데도 퇴근이 한 시간 늦어졌고 여전히 일이 남아있다는 것은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다.
집에 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잘까 생각해본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엇을 해볼까 생각해본다. 자꾸 스트레스에 지니 추슬러야 할 시간들이 필요하다. 나는 운동을 하고 싶고, 공부를 하고 싶고, 재밌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그런데 자꾸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만 시간을 쓰게 된다.
대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한 달짜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80여 명이 모여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영어 연극을 하고, 조별 활동을 하고 세 명이 함께 방을 쓰는. 영어 공부를 하는 듯했지만 한 달짜리 MT 같은 즐거운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2주 차에 두 달된 남자 친구와 헤어졌었다. 너무 짧은 인연이라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 기억조차 안 나지만 그 당시 누군가와의 이별은 나를 참 힘겹게 했다. 내겐 즐거운 MT가 아직 3주 정도 남아있었고 슬퍼하다가는 이 프로그램이 끝나버릴 듯했다.
나는 몇 시간을 힘들어하다 결심했었다. '나중에 힘들어하더라도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자. 나의 힘듦은 나중에 기억도 잘 안 날 일일지도 모른다.(실제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 일을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곧 졸업할 거고 이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할 일은 없을 거다. 시간이 아깝다. 지금을 살자.'
놀랍게도 나는 정말 금세 괜찮아졌고 그때의 재밌었던 추억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오는데 집중하는 것보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과정이 더 나은 것 같다. 시간을 아까워하는 마음이 지금을 살게 한다.
바로 어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에 가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노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안도로를 찾았던 것처럼, 과거와 미래의 걱정으로 지금의 아름다운 시간을 잊지 말자. 지금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