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답은 중요하다인데 실은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도 있다. 누군가는 전략적으로 밀당을 한다고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는 '사랑은 분별 있게 주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에서 아주 영리하지는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날이다.
자꾸만 거리를 두는 사람을 만났다. 사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평일 주 1회 만남, 전화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이유로 겨우 주 1회 전화를 한다. 전화도 초반엔 받지 않다가 나의 잔소리로 인해 겨우 1번 얻어내었다. 처음엔 상관없었다. 매번 너무 다가와 밀착하는 구남친들에게 지쳐있기도 했고, 그로 인해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우리의 관계에 대입하며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좀 더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좀 더 가까워지면, 시간이 지나면.'이라는 그를 믿었고 그 시간은 한 달 정도로 짧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 사이에 큰 변화는 없고 심리적으로는 더 가까워졌으나 주 1회 만남과 전화를 유지하고 있다. 전화를 적게 하는 것은 조금 섭섭하지만 주 1회 만남이 아주 싫은 건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주말에 보고 싶기도, 주 2회를 보고 싶기도 한데 칼같이 1회만 만나는 것이 무척 답답하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주 1회로 정해놓고 내가 전화하고 싶을 때도 못 한다는 점에서 이게 세 달이 다 되어가는 커플의 모습인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연인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영역을 보여주고 침범하며 밀고 당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사람은 당겨도 당겨오지 않고, 밀면 밀려난 대로 그대로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당기는 쪽을 맡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크게 싸우고 기분이 상해 며칠 동안 카톡을 뜸하게 한 적이 있다. 미운 마음이 있어 연락을 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속으로는 내심 이런 내 마음을 알고 나를 당겨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꾸준히 몇 번의 카톡을 이틀동안 하고는 삼일째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냐 하니 '본인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연락한 건데 뜸했던 건 너 아니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화를 하거나 좀 만나자고 했으면 금방 풀렸을 것 같다 하니 '나는 너를 당겼고 그래도 네가 오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땐 어쩔 수 없다.'라는 입장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라는 단어에 섭섭하기만 했는데, 감정이 가라앉은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을 당긴 건 또다시 나였다. 뜸했던 건 나면서, 밀어낸 사람은 나면서, 왜 나를 당기지 않느냐 보채는 것도 나인 것이다.
많은 연애에서 나는 연인과의 거리에 집착했었다. 말로는 약간은 멀어질 수도 그러다가도 가까워질 수도 있는 고무줄 같은 관계가 좋은 관계야 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상대가 내가 원하는 거리에 있지 않을 때 불쾌했었다. 연애 초반에 남자친구들이 좋다고 과하게 다가오면 무척 부담스러웠다. 자꾸만 밀어내고 자꾸만 그쪽에 있으라 하며 상대를 불안하고 섭섭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기꺼이 가깝게 지냈어도 되는데, 상대의 성화에 마지못해 가까워진 양 굴었다. 나는 회피애착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아마도 그 성향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는 거리가 멀어도 개의치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거리보다 멀리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위치로 그를 끌어당기려 한다. 어느 날 남자 친구는 말했다. '전화하는 거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네가 너무 강요하니 반발심이 들어.' 여자 친구가 목소리 듣고 싶다는데 반발심이 드는 것도 웃기지만, 나 또한 반발심이 들게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연애 초반에 전화를 했더니 카톡으로 무슨 일이냐고 연락온 적이 있었다. 이미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와... 그냥 다시 전화할 수 있는 거 이렇게도 거리를 두는구나.' 싶어 이미 기분이 상했었다. 왜 콜백을 안 하냐며 정색을 했었고 나도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전화를 했을 땐 내가 화가 났을 때였다. 잦은 만남을 자꾸 거절하는 남친에게 화를 내고 약속을 받아내고, 남친은 나와의 전화가 불편해졌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해해 보려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주 1회 요일을 정해놓고 전화하는 건 뭔가 상대는 나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좋아하니 내놔라 협박하고 구걸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자꾸만 그가 왜 그런지, 우리 관계가 어떻길래 그런지, 나를 배제한 채 생각이 많다.
섭섭하다, 애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는 어디까지 허용할지 경계를 정한 적이 없다. 어쩌면 남자친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길 수 있는 만큼 당겼다. 그것에 네가 당겨지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번 연애뿐만 아니라, 나는 최근 짧은 연애들에서 유독 거리를 두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상대를 그리 당기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가 원하는 거리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결국 관계가 끝났을 때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내가 과도하게 노력했음에도 내 마음을 몰라준 그들은 나쁜 놈이 되어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얼마큼 당길 수 있을지, 당겨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과도하게 당겨봐야 튕겨나갈 수도 있고, 그 위치에 온다 해도 계속 그 거리에 두려면 나는 계속 과하게 당겨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만나자, 전화해라, 왜 거절하냐, 거절하지 말아라가 아니다. 전화를 하고 받지 않는다면 그냥 두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 전화를 해보고 또 두는 것이다. 만나자 하고 안 된다 하면 보고 싶다 표현하는 것이다. 몇 번 거절당하고 나면 그냥 두는 것이다. 그러다 내 마음이 멀어지면 그것도 그냥 두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러다가 한 번씩 전화를 받고, 전화를 해오고, 좀 더 자주 보고, 일상을 나누고, 나눈 일상이 다툰 속상한 마음을 덮어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싸워도 또 일상을 나누고, 좋은 감정을 나누고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 달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동안 이 사람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이 정도면 다음의 한 달을 지내볼 수 있을지 느껴보고 결정해보려 한다.
우리 사이의 거리에 집착한 나머지 관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내가 지쳐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내가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괜찮다.